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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 없이도 들어가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모나밸리 미술관..황홀 그 자체!
■봄을 선물하는 왕열 화가
단단했던 유리도 날카로운 쇠뭉치로 두드려 대면 금이 간다. 유리는 쇠뭉치를 견뎌낼 수가 없다. 누가 유리인지, 누가 쇠뭉치인지 알 수가 없다. 혼돈이다. 어제의 유리가 오늘은 쇠뭉치로 돌변하고, 금이 간 유리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찔러댄다.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절망한다. 훌쩍 떠나고 싶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다. 꽃은 피는 것을 잊은 것 같고, 봄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 한 사람이 봄 봄 봄, 봄을 소리치며 달려온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노오란 봄, 연두색 봄, 빠알간 꽃봄이 말 등에 얹혀서 온다. 그래. 말을 타자. 말을 타고 날아보자. 순간 깨진 유리조각들이 봄을 소리치며 서로 달라붙는다. 금이 간 흔적이 사라진다. 평화다.
왕열 화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붓을 들었을 때는 오직 화폭만 보지만 그의 영혼은 언제나 자유롭다. 화폭에 던져지는 말과 나무와 산과 강은 희망의 언어이다. 화해의 강물이다.
왕열 화가의 그림에 압도된 사람들은 왕열 화가를 감히 마주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알아챈다. 그러면 허물없이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아니다. 언제나 왕열 화가가 먼저 사람들을 불렀다. 왕열은 사람을 좋아하는 화가다.
왕열 화가의 그림을 본 관객들은 그의 그림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옷깃을 툭툭 털며 나온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당신 가슴에 새 한 마리를 올려준다. 순간 당신이 서 있는 곳은 무릉도원이 된다.
왕열 화가의 그림이 보고 싶은가? 그의 마음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나밸리로 달려가면 된다. 모나밸리 곳곳에 그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의 그림 앞에서 도란도란 오래도록 무릉도원을 달려도 된다. 당신의 다리에 불편이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엔 거대한 말 한 마리 사뿐 나타나서 당신을 태울 것이다. 당신을 등에 태운 백마가 멈춰서는 곳은 유토피아가 분명하다. 당신은 그곳에서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질 것이다. 더 이상 쇠뭉치를 두드리는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다시는 유리가 당신의 발을 찔러서 피가 흐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꿈꾸는 유토피아 세상, 모나밸리에 가면 우리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은 왕열 화가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우리들을 보자마자 봄 봄 봄을 소리치며 하얀 눈밭에서 길어 올린 봄을, 태고의 숲속에서 안고 온 봄을 건네줄 것이다. 당신은 무엇으로 화답하겠는가? 우리들은 거대한 바위틈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던 봄을 깨우고, 판도나무가 고이 간직했던 오래된 봄을 안고 왕열 화가를 만나러 가자. 모나밸리 미술관에서 그가 기다린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꽃이다, 안진의 화가
안진의 화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천경자 화백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무언지 모르게 닮은 것 같은 느낌, 두 화가의 영혼이 맞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꽃의 시간을 말하는 안진의 화가에게 꽃은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희망이 아닐까?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꽃만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색깔을 지닌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화가가 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꽃만 꽃일까? 안진의 화가는 세상 모든 것에서 꽃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안진의 화가의 마음이 머무르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꽃이 피어난다. 그 꽃은 깊은 밤중에도 색깔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위안을 준다. 그 뿐이 아니다. 그녀는 날카로운 칼날과 총과 전투기도 꽃으로 만드는 화가이다. 꽃이 된 무기들은 인간을 상하게 하던 일들을 당장 멈출 것이다. 하늘을 날 수 없는 비행기에 꽃을 얹으면 고결한 향기를 품고 우리들을 지극한 아름다움 속으로 안내할 것이다. 안진의 화가는 때때로 책장에 꽃을 얹어 세상을 향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우리도 이미 꽃이다.
꽃의 순간을 잡아내는 안진의 화가, 그녀는 꽃이 없는 곳에서도 꽃을 보고, 꽃의 우주를 그려낸다. 꽃의 시간은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유토피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꽃들이 토해 놓는 긴 서사가 우리를 몽환으로 이끌고, 우리는 몽환 속에서 춤을 추게 된다. 꽃은 결코 정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꽃은 가장 역동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안진의 화가는 힘주어 말한다.
안진의 화가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들어본다.
"제가 화폭에 옮기는 꽃들은 단순히 실재 존재하는 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매일 오가는 작업실과 집 사이, 아파트 단지와 길가 보도블럭을 산책하면서 패턴화된 도시의 길바닥을 보게 되는데, 과거와 달리 도시를 산책하는 것은 정형화된 구조에서 극히 제한되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내 그 적막한 보도블럭 돌 틈에서도 토끼풀, 민들레와같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것을 봅니다. 그 생명체들은 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보지 못했죠. 어느 날 그 생명체들이 눈에 띄었을 때, 정형화된 보도블럭조차 살아서 일어나더군요. 순간 돌 틈에서 피어난 꽃과 보도블럭에 서 있는 내가 매우 긴밀해졌습니다. 존재하는 것들을 보면서 '관계'는 존재의 의미라는 것, 그러니까 세상은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에 달려 있었던 거죠. 결국 꽃 속에서 삶을 보고, 우주를 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관계,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의미에 집중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간곡한 마음이 분명 세상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드디어 독자들은 은밀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속닥속닥 숨을 쉬고 있는 꽃들을 찾아낸다. 어느 꽃인가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가벼운 숨을 불어 깨우지는 않았는지, 어느 꽃인가는 벌떡 일어나 어느 관객의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안진의 화가, 사람들은 그녀를 색채의 마술가라고 부른다.
당신은 그리움을 찾고 싶은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건지고 싶은가? 삶의 본질을 찾고 싶은가? 우주를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나밸리 미술관으로 달려가라! 달려가서 안진의 화가의 마법 같은 꽃을 보라. 그 순간 반짝이는 기쁨 한 송이를 들고 있는 당신은 이미 꽃이다.
■‘최초의 정오’를 건네는 황인란 화가
꽃 속에서, 나비들 속에서 소녀가 눈을 감고 있다. 눈만 감은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입만 막았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소녀는 코도 막고 있다. 소녀가 내뱉거나 조용히 들이마시는 숨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가느다랗게 새어 나온다. 그 가는 숨소리에 놀란 나비가 살짝 날개를 웅크린다. 하지만 이내 날개를 활짝 펴더니 소녀의 어깨에 가 앉는다. 그러자 꽃 속에 있던 나비들도 소녀에게 다가간다. 나비가 다가오는데도 소녀는 눈을 뜨지 않는다. 꽃들이 조금 더 크게 입을 벌려도 소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소녀의 손을 내려놔 주고 싶다. 그러면 소녀가 웃을까? 그러면 소녀가 놀라서 눈을 뜰까?
2019년도 인사동에서 만났던 황인란 화가의 화폭 속 여자는 손으로 뭔가를 가리진 않았지만 그때도 여전히 혼자이고 싶은 모습이었다. 놀라서 나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나만 그런 느낌이었을까? 그림을 감상하던 사람들마다 가슴속으로 걸어오던, ‘나 같구나. 내가 저 화폭 속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감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 황인란 화가의 여자를, 더듬더듬 세월을 거슬러 성숙한 여인이 된 소녀를 다시 만났다. 인사동이 아닌 내가 사는 아산에서 만나다니, 황홀하다.
모나밸리 미술관에 황인란, 안진의, 왕열 화가의 작품들이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왔다. 이 얼마나 보배로운 선물이란 말인가? 입장권 없이도 들어가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모나밸리 미술관, 덕분에 미술관 근처에 사는 필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모나밸리는 정말 특별하다. 한 개인이 운영하면서도 아산시의 문화적 수준을 상당히 높여 놓고 있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곳이 모나밸리이다. 지금 만약 모나밸리로 발걸음을 한다면 왕열 화가의 <봄 봄 봄>도 만나고, 꽃의 화가이면서 색책의 마술사인 안진의 화가도 만날 수 있다. 왕열 화가와 안진의 화가, 그리고 황인란 화가 모두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세 화가를 한꺼번에 담아내는 것은 글 작가에게도 영광이다. 황인란, 그녀에게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그녀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없어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온 것 같다. 그녀가 말한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와 아픔을 지닌 많은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러한 계기는 인간에 대한 내 관심을 고조시켰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인간 존엄과 자율성, 평등함을 배운다면 우리는 타인을 더욱 이해하고 연대하며 애정을 갖게 되겠죠. 그러한 생각들이 제 작업과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황인란 화가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작품 곳곳에서 따뜻함과 존중이 감지된다. 참을 수 없는 감동이 있다. 우리는 듣게 된다.
“나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 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황인란 화가의 외침에 우리들은 다리에 묶여 있던 사슬들을 풀어낸다. 황인란 화가가 갈망하고 있는 때 묻지 않은 사랑, 깊은 지성, 견고한 우정들을 함께 소망하게 된다.
정오는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뜨거운 시간이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르는 순간을 잡아낸 ‘최초의 정오’를 선물 받고 싶다면 모나밸리 미술관에서 황인란 화가의 작품들과 마주 서면 된다. 분명 나비가 먼저 사뿐히 날아서 당신의 가슴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꽃들은 또 당신의 가슴팍에서 소리를 지르며 만개할 것이다. 당신이 만나고 있는 소녀가 찬란한 생명의 세계로 당신을 이끌어 가는 순간 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다. 화가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태워 관객을 부른다는 것을 황인란 화가의 작품 앞에서 알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어쩌면 당신은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꽃이 당신을 부른다.
나비가 당신을 부른다.
아름다운 소녀가 당신을 부른다.
황인란 화가가 당신을 부르고 있다.
초침과 분침과 시침이 모두 ‘최초의 정오’를 가리키고 있는 모나밸리 미술관에서 당신들을 부르고 있다. 긴 노동의 시간이 흐르고,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르는 내내 혼신의 힘을 다한 모습으로.
박은자 작가 pulbat@daum.net
출처: 아산포커스
https://www.asan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