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시교
•제이시교・・・ 공교空敎・・・ 소승중의 실의 집착을 파하기 위하여 제법 이를 함.
•제부의 반야경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문의 한계를 알아두어야 우리 공부를 그때그때 점검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시교 처음에는 이와 같이 우리 중생 차원에서 있다 없다 하는 이른바 유교, 우리 중생의 유무를 따지는 그런 경계를 가르침인 것이고,
그다음은 공교라! 빌 공자, 공교는 참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공교를 해석을 못하면 반야를 모르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 모르면 중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기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교를 알아야 합니다. 공교를 알아서 정말로 무상이 우리 몸에 배여야 합니다. 무상이 몸에 배여야 그래야 우리 행동이 빗나갈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공교를 말씀한 경이 반반야경은 육백 부라, 제법이라, 이 공이라, 모두가 다 본래로 공이라, 오온개공이라 색이 공이라, 이런 것을 말씀하신 부처님 경전이 육비 부란 말입니다. 이렇게 방대한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일반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아주 집착돼 있는 마음을 풀어서 모두 다 해방시켜야 할 것인데, 해방시키려면 본질대로 진실 그대로 말씀해야 할 것인데 사실 그대로 말하다 보니까 모두가 다 비었다는 그 말씀을 안 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째서 있는것보고 비었다고 할 것인가? 이것을 우리 불교인들이 알기가 어렵습니다. 불교인 아닌 사람들뿐만 아니라 불교인들도 불교를 제법 아는 소리를 하지만 말씀들 들어보면 결국 공도리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어째서 공일 것인가? 앞 시간에 우리가 연기법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연기법이란 인연 따라서 모두가 다 잠시간 모양을 냈단 말입니다. 사실 실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강물 속에 비친 달그림자 같이 보는 것이 우리 중생이 보는 있다는 세계입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강물 속에 비친다고 생각할 때에 분명히 물속에 달이 있어 보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있지가 않듯이 우리 중생이 나라고 생각하고 너라고 생각하고 밉다고 생각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틀림없이 물속에 비치는 달그림자나 같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있지가 않는 것입니다.
앞서도 누누이 말씀을 했습니다만 우리 중생이 있다는 것은 인연 따라서 잠시간 흘러가는 모양입니다. 사실은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것입니다. 우리 어제 마음 오늘 마음이 같지가 않는가? 하지마는 마음이 순간 찰나도 머물지 않습니다. 변화무상하단 말입니다. 우리 몸뚱이 항상 이대로 같지 않는가? 몸뚱이도 역시 순간순간 신진대사해서 마지않습니다. 일초의 몇 억분의 일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상대성 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연기법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인연따라서 잠시간 모양을 나투었다. 이렇다고 생각할 때는 물질이란 공간성도 없고 따라서 시간성도 없고 인과도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어야 인과가 있겠지요.
연기법이기 때문에, 나중에 나오는 법문에도 있습니다만 '인연소생법아설즉시공인연 따라서 일어나는 법은 결국 모두가 다이라'
비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는 '인연'이라는 말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인연생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확히 본다고 생각할 때는 비어 있는 것인데, 우리 중생이 흘러가는 것을 잘 파악을 못하니까 실재로 있다고 고집한단 말입니다.
반야심경을 몇 천 번 외운다 하더라도 이 공도리를 모르면 반야심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색즉공이라, 또 내 의식도 공이요, 소리도 공이요, 맛도 공이요, 다 공이라 했지 않습니까. 어째서 공일 것인가? 인연생이기 때문에 바로 공이란 말입니다. 실지로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있는 것 같이 보일 뿐입니다. 젊은 나이에서는 사무치게 느끼기가 좀 곤란스럽겠지요. 나이가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면 젊은 시절의 청춘도 별것이 아닌 것이고 몇 년 안 지나면 무덤에 들어가겠구나. 죽어지겠구나. 죽어지면 또 뭐가 남는가?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이렇게 인간의 경륜으로 해서는 느낄 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냥은 잘 못느낀단 말입니다. 자기 청춘이 항시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예쁜 얼굴이 항시 그대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무상을 느껴야 신앙의 문에 참답게 들어 올 수가 있습니다. 무상을 못 느끼면 신앙의 문에는 못 들어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내 몸뚱이 그대로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대로 있고, 항시 이별도 없고, 재산도 차근차근 불어나고 이렇게만 생각하다가는 깊은 신앙에 못 들어옵니다. 기복적인 범주에서만 뱅뱅 돈단 말입니다. 복이나 빌고 하는 정도밖에는 안 됩니다. 내 생명의 본질을 내 스스로 밝혀서 내가 참답게 나를 알고, 우주의 도리를 참답게 밝혀서 알려고 생각할 때는 싫든 좋든 간에 공포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무상의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무상하지 않는 참다운생명을 우리가 추구하고 구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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