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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자권!(23) : 영향력 있는 장자로 살라!”
+ 본 문 : 열왕기하 5장 1절 - 4절 (구약성경 567쪽)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 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아멘!
서로 축복 / “나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장자 –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권세를 회복하고, 그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오늘 주일은 “장자여! 영향력 있는 장자로 살라!” 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나는 / 영향력 있는 / 장자로 살리라! 아멘!”
인터넷에 “흑인들의 모세” 라고 치면, 헤리엇 터브먼이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사진 1)
그는 그다지 인상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은 아닙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150cm 좀 넘는 작은 키에,
흑갈색의 건조한 머릿결을 가진 여성입니다. 그녀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배우지 못한 여성입니다.
그는 항상 남루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앞니도 두개가 빠져 없습니다. 그녀는 혼자 살았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스물아홉 살 때에 남편과 헤어져 살아가는 이혼녀였습니다. 직장도 다니다 말다 했습니다.
주로 작은 호텔에서 잡일을 했습니다. 소위 하우스 키핑으로 호텔 바닥도 닦고 방 정리도 합니다.
그러다가 매년 봄과 가을에는 직장에서 간다온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두세 달 후면,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취직을 하게 되면 진짜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쥐꼬리만큼의 돈이라도 벌기 위해 힘을 다해 일했습니다. 사실 그는 간질 증세까지 있던 여성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국 돈 20달러짜리에, 그 여성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사진 2)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존경받을 여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그 여성을 많이 존경합니다.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고,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들이 노예가 되어 물건처럼 팔릴 때였습니다.
헤리엇 터브먼이라는 여성은 미국 남부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서 탈출하는 노예들을 돕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노예들을 탈출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밀 조직의 은신처 “지하 철도” 의 탈출로를 따라,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자유로운 북부로 옮겨주는 일을 했기 때문에 “흑인들의 모세” 불린 것입니다.
사실 그 여인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며, 인생 밑바닥에서 잡일을 하며 사는 흑인이었지만,
그는 흑인들을 탈출시킬 때마다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 호텔의 종업원으로 취직하여 잡일을 하므로,
돈이 모아지면 바람과 함께 종적을 감추고, 남부의 흑인들을 북부로 이송시켜주는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자, 그 여인의 일이 알려졌고, 많은 미국인들이 존경한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열악하고 불행한 환경에서도, 이처럼 위대한 거인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인생의 밑바닥에서 잡일을 하면서도, 인간으로서 가장 숭고한 일을 하는 거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비범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들려줍니다. 성경은 그 사람이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름 모를 한 소녀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얼마나 나타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어린 소녀 하나” 라고 소개합니다. 그 어린 소녀는 포로로 잡혀온 노예요.
당시 남존여비 사상이 분명한 시대의 여자 아이였지만,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끼쳤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아람의 침공을 받아 망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뿔뿔이 흩어졌고,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람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집의 하녀로 끌려온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끌려왔기에, 힘도 없고, 신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하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했고, 그 일로 아람제국을 복음화 시키는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름 모를 하녀 아이 하나를 통해서, 아람 제국을 복음화 시키는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는 이 여자아이의 담대한 믿음이, 아람의 국방장관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낫게 해주었습니다.
한 작은 소녀가 장군을 살리고, 한 나라의 왕을 감동시키므로 한 국가와 한 시대를 복음화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히 아람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 치유 기적사건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름 없는 한 작은 소녀, 그것도 전쟁 포로로 잡혀와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계집종의 조용한 전도가,
결국 200년 후에 요나 선지자를 통한 아람의 수도 니느웨의 회개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는 이미 큰 숲을 이루는 한 알의 겨자씨 같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아람 전도의 성령의 불쏘시개였습니다.
마치 기독교 초기의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 내시를 전도하므로, 이디오피아를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든 것과 같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그 당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 보다, 훨씬 더 훌륭한 믿음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거룩한 땅에서도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살고 있었는데도,
그는 비록 이름 없는 한 작은 소녀, 그것도 전쟁 포로로 잡혀와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계집종이었지만,
이방 땅 아람에서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왕보다 존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어떻게 하면 작으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작으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려면 -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확신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가면 갈수록 미래의 삶에 대한 염려, 불안과 긴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확신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이스라엘 어린 소녀는, 자기 집 주인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절망에 빠져있던 자기 주인마님에게 너무나 확신에 찬 말을, 이렇게 고백하며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입니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아멘! 이건 죽음을 내건 발언입니다.
만일 낫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아이는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어린 소녀 하인은 비록 몸은 포로로 끌려왔으나, 신앙은 포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확실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도하려면 먼저 나부터 구원의 확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말이 길지 않아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마음을 쉽게 감동시킵니다.
수가 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의 여인은, 그가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한 후,
동네에 들어가서 확신을 가지고 선포합니다. 그러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감동을 받았습니다.(요한 4:39)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전도자 D. L 무디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확신을 심어주는 전도를 했습니다.
“너 자신을 믿어 보라. 반드시 실망할 것이다.” “친구를 믿어 보라. 어느 날 죽거나 이별할 때가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명예나 돈을 믿어 보라. 어느 날 순식간에 사라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절대로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인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확신이 있는 사람은 말이 길지 않습니다. 말이 많지도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전한 말에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과 설득력이 있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의 친형 시몬 베드로에게 “나는 메시아 - 구원자를 만났다.” 고 확실히 전도했습니다.
빌립은 그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 하고 심플하면서도 확신 있게 전했습니다.(요 1:41, 4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이 짧으나 많으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확신한 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작으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려면 – 예수님을 믿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작으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려면 – 신임 받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목적으로 우리 마음에 잉태한 잠재적 그리스도인! - 태신자를 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가족, 친척, 동료, 친구, 이웃 중에서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내 가슴에 품고, 그 영혼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만나 그를 전도하는 신자가 태신자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예수 믿고 구원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가족과 친지, 친구와,
이웃들입니다. 교회를 나와 등록하고 구원받는 사람의 86%가 이들의 전도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 가족, 친지, 동료, 이웃들이야말로 내가 전도해야 할 태신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태신자 전도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은 관계전도요. 가장 효과적인 전도도 관계전도입니다.
한 마디로 내가 정한 태신자들로부터, 신임을 받는 삶을 살아야 전도의 열매가 쉽게 맺혀집니다.
오늘 설교의 주인공이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어린 소녀는 신분이 하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어린 소녀 하인은, 자신의 안주인으로부터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상시 신뢰를 받았던 어린 소녀 하녀이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말이 먹혀 들어갔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어린 소녀 하인이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은 곧바로 자기 남편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그리고 나아만 장군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자기 나라 왕한테 소녀의 말을 보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관계전도의 표본입니다.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뢰가 그를 구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 어디에서나 신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뢰성이 필요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을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우리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신뢰성과 미래, 그리고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약의 믿음의 거인 요셉의 성공 비결은, 신임 받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철강 회사 앤드류 카네기가 후계자를 선임한다고 했을 때, 전 세계의 눈길이 모아졌습니다.
회사의 중역들 중에 두뇌가 탁월하고 학력이 월등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카네기가 지명한 그의 후임자는,
‘쉬브’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청소부로 회사에 입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성실성과 신임도가 카네기에게,
인정을 받아 비서가 되었고, 그렇게 그는 카네기 회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공장 확장과 생산과정을 연구하느라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문을 열고 나왔는데 비서인 쉬브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카네기가 깜짝 놀라 묻습니다.
“왜 아직 퇴근하지 않았느냐?” 고 물자, 비서인 쉬브는 “회장님께서 언제 나를 부르실지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자리를 비웁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카네기는 그런 쉬브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자네의 그 성실함으로 인해 이 회사가 계속 성장하리라 믿네. 이 회사의 성공여부는 자네의 학력이나,
실력이 아니라, 자네의 성실성에 달려있네.” 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성실과 신뢰가 성공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으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려면 – 성실과 신임 받는 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작으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려면 – 희망을 주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옛날의 문둥병 – 요즘 말로 하면 한센스 병은 절망적인 불치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나아만 장군이 비록 아람제국의 총사령관이요 국방장관이라 하더라도,
그가 불치병에 걸린 이상,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 화려한 계급장도 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도 격리되어야 하고, 동네로부터도 추방되어야 하는 처참한 절망적인 병입니다.
이런 그에게 이스라엘 땅에서 포로로 끌려온 하녀 아이가 놀라운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얼마든지 나병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절망 상태인 그에게 놀라운 희망을 심어주는 선포입니다. 이것이 희망의 메시지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과 희망은 생각의 차이일 뿐입니다. 절망은 앞으로 다가올 나쁜 것들을,
너무 일찍 느끼는 것이요. 희망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찾는 힘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삼중고 –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삶속에 살면서도, 역사의 큰 사람이 되었던,
유명한 사람 헬렌 켈러 여사는 “희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고산지대의 식물인 에델바이스는 한 겨울에도 봄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에 눈 속에서도 꽃을 피웁니다.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좌우명에는, 반드시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 둘째는 반드시 끝까지 해낸다. 셋째는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둡고 암담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심어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역사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명의 정탐꾼들 중에서, 절망적인 보고를 했던 열 명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의 보고를 했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고 선포한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불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서 절망적이었기에 패배자로 종지부를 찍었고,
다윗은 어린 소년이었으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희망적인 신앙으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처럼 힘든 선교 현장과 암울한 감옥에서도, 그는 여전히 희망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32번이나 거듭 반복하여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은 지중해 한 복판에서 광풍을 만나 배가 완전 파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지 않고,
나는 살아 로마로 가서 복음 전한다.” 는 그의 희망대로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였습니다.(행 26: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희망입니다.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라. 걸을 수 있다. 너도 고침 받을 수 있다. 나을 수 있다. 회복된다. 죽지 않는다. 살아난다.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하여 살아난다. 누구든지 변화 받을 수 있다. 너는 내 자녀다.
너는 장자다. 너는 상속자다. 내가 복주는 복의 근원이다. 너의 자녀들은 반드시 큰 인물이 되리라.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 이렇게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계십니다.
아프리카 최남단의 곶(串)을 옛날에는 ‘폭풍의 곶(Cape of tempest)'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은 너무 험한 바다여서 수없이 많이 배들이 그곳을 통과하는 항해를 하다가 침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감한 포르투갈 선원들이 여러 번 도전하여 이곳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해로를 발견합니다.
그 후부터 그곳 이름이 “폭풍의 곳” 에서 “희망의 봉우리, 희망봉” 이라고 바뀌어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 인생의 절망의 폭풍 가운데서도 희망의 길을 내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희망의 길을 내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희망을 심는 사람이 됩시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영웅들의 공통점이 바로 그렇습니다. 모두가 희망을 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말라기 등, 이들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을 나누어주는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울, 요한도 주님에게서 희망을 찾았고, 그 희망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한 여자아이도 이스라엘에서 이방 땅 아람으로 끌려와 하녀가 된 신분이었는데도,
한 가정, 한 왕실, 한 나라, 한 시대를 복음화 시키는데, 위대한 업적을 쌓는 믿음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놀라운 영권이 있기를 소원하며 선포합니다.
지금의 나의 신분과 역량을 초월하여 성령의 큰 역사가 일어나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보며,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찾으며, 성령님을 통해 그 희망을 나누며 살아갑시다.
저는 우리 해남중앙교회가 이 해남 땅에 희망봉교회가 되고, 우리 해남중앙교회 성도인 우리 모두가,
이 해남 땅에 희망 없이 절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느 위치,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계십니까?
오늘 본문의 하녀보다는 훨씬 더 나은 위치, 더 나은 상황, 더 나은 처지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모든 삶을 초월하여, 영적으로 확신에 거하는 사람들, 신임 받는 사람들,
희망을 심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거장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