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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수요水曜카페cafe 모임
일시 : 2007년 10월 17일 수요일 오후 7시
장소 : 시와산문사무실
참가 : 시와산문문학회회원
주제 : 시의 체험 - 꿈꾸는 자의 이름
토론 : 박미경 진행
교제 : 팜플렛, 작품, 기타
시의 표현
- 꿈꾸는 자의 이름
박미경
처음 시를 접하게 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것은 어슴푸레 하게 희미한 몸통으로 다가왔다, 재수하던 시질 뭣도 모를 열정에 손끝이 시키는 대로 휘갈겨 적은 지금은 누래진 고풍한 노트 한권. 그것이 나의 시작(詩作) 생활의 첫 부르짖음이었으리라.
시는 무엇보다 언어로 표현된 예술 장르이며 타 예술 장르와는 다르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되살아나는 것도 좋은 시가 가진 미덕중의 하나이다. 하나의 작품이 독자에게 보여졌을 때 그것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접근해 오며 독자에게 미감을 자아내게 한다.
시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할 때가 많다. 당연하다. 사람마다 한 줄씩 천천히 쓴다는 사람, 단숨에 써놓고 거의 퇴고를 안 한다는 사람 등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그 창작 방법도 다양하리라 본다. 이백 스타일과 두보 스타일의 비교라고나 할까.
나는 맨 처음 시를 치유의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때 나는 아직 젊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난 무기력했고 무기력한 내가 슬프면서도 짜증났고, 안쓰러웠고 미웠다. 공연히 옆의 사람에게 화를 내고 점점 누에고치처럼 파묻혀 갔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인기가 있을 때였다. 세속 사람처럼 나도 시집의 환하게 웃는 시인의 얼굴에 끌려 시집을 사서 보았다. 잘 쓴 시집이었다. 서사적인 내용도 있었고 지난 세월을 떠오르게 하는 시도 있었다.
나도 시를 써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발에 내 시가 채이더라도 한번 쯤 쨍그랑 소리를 맑게 내며 빛나 주리라 믿었다. 믿고 싶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가들이 옆에 있었지만 집안일을 마치고 먼 바다를 보는 해질녘이면 문득 눈물이 났다. 천성적인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를 구원해 준 건 시 쓰기 였다. 흔히들 말하듯 접신의 경자라 던지 자동기술법이라 던지 하는 것이 게으르고 우둔한 나의 몸에도 잠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시의 스승도 없었고 문우도 없었다. 그야말로 절대 고독, 혹은 고독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시 쓰기에 아니 시 비슷한 것을 쓰기에 몰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분명 신열에 들뜨듯 무언지 모를 시 쓰기가 나의 존재양식의 전부인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인이 그러하리라.
결국 시는 나를 구원했고(외관상 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따끔씩 나는 웃으며 그 시간들을 추억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가끔씩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따라서 나에게 시가 쓰여지는 시간은 우두커니 홀로 침잠해 있는 시간이기 일쑤다.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고 책과 대화하고 난 뒤끝이면 언제나 가슴에 웅덩이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시들을 읽다보면 또 하나의 시가 나를 불렀다.
처음엔 체험과 상상력으로 시를 썼다. 소설책을 좀 많이 읽은 것이 확실시 되었다. 그렇지만 감정의 분출만으로는 시가 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등단이라는 어설픈 제도를 거치면서 조금씩 문우들을 알아가면서 그들에게서 얻어듣는 한두 마디 말이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 나의 장단점을 사심 없이 지적해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좋은 시인으로 발전할 수 있냐의 여부와 관련된 매우 큰 자질이라는 생각이다.
일찍이 시인 정지용은 그의 시론‘ 『시와 언어』에서
‘시는 마침내 선현의 밝히신 바를 그대로 좆아 吾人의 性情에 돌릴 수밖에 없다. 성정이란 본시 타고난 것이니 시를 가질 수 있는 혹은 시를 읽어 맛들일 수 있는 은혜가 도시 성정의 타고 낳은 복으로 칠 수밖에 없다. 시를 향처럼 사용하여 장식하려거든 성정을 水性과 같이 가다듬어 꾸미되 모름지기 孶孶勤勤히 할 일이다.’ 라고 하였다. 먼저 사람 됨됨이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자신을 꾸미는데 시를 연장으로 사용하려고 무작정 덤비다 보니 상투적인 시어, 미숙한 표현, 감정의 불필요한 노출 등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책을 많이 읽고 (시집이나 시론집 외에도 소설, 철학, 역사서 등 모든 책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좋은 시,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으면 베껴 적기도 하고, 비유를 사용하여 사물을 묘사해 보기도 하였다. 사물의 성질을 시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오랜 시간 헤매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가 잘 쓰여지는 체험에 다다르는 길을 남몰래 터득하여 양껏 우물 속에 푸욱 들어가 있어 보기도 하고 시창작 교실 같은 곳에 몰래 가보기도 했다. 그런 나의 체험 들은 시 쓰기에 조금씩 자양분으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의 심층까지 빠져보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는데(예를 들면 사랑이라던가 처절한 고독이라던가? )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핍만큼 예술가에게 소중한 자산은 없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시를 쓰고 있는 순간만큼 소중한 시간이 없고 몰입과 행복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비평가적 시선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는 생각이다. 몇 권의 책을 뒤적이다가 결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애증의 선배 시인 서정주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을 인용한다.
“시는 머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의 감동을 거쳐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전달하는 데에 있다.”
한마디로 시에 푹 빠져 가슴으로 전달해야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는 말. 연극배우 누군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예술과 연애의 공통점은 모든 것을 요구한다는 데에 있다.” 시는 모든 예술의 근본이리니 어떻게 쉽게 그 몸을 빌려볼까.
다음은 본인의 시 몇 편입니다. 나름대로 좋은 평도 듣고 한 작품이라서 부끄럽지만 골라봅니다.
그리운 날
박미경
사람 있어 너무 그리운 날은 비오는 창가이거나 갈대바람 무성한 바닷가 습기 찬 벌판에 온종일 서 있어 보는 일도 괜찮을 것이다 밤개구리 구성지고 귀뚜리도 울고 가고 갈대들이 온몸으로 투망질해대는 그리움의 목소리를 엿들어보는 일도 썩 괜찮은 일이리라
떨어지는 빗물을 목 안에 달고 종아리로 찰박찰박 떨어지는 물소리 서늘함조차 더 흰빛으로 야물어지리니
사람으로 너무 허전한 날은 물가 그 근방 조금 더 아득해져도 괜찮을 것이다
빛보다 맑은 물살
박미경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있었다
드넓은 바다에서 작은 지류를 찾아 단 하나 남은 사랑 찾아 떠났다
나침판도 등대도 없는 길이다 팔도 없고 다리도 없는 길이다 무섭고 기막힌 길이다 허나 가야 한단다 물수리가 호시탐탐 노려도 가야 한단다 슬픔을 접고 가야 한단다 생각나지 않는 아버지지만 맨 처음 사랑 보여준 아버지 체온이 그곳에 가면 녹아있더란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면서 폭포보다 심한 속도로 냇물 찾아 올라가면서 물고기는 몸이 형편없이 일그러져 가는 걸 몰랐단다 거울이 없어 몰랐단다
양쪽으로 붙은 눈 온통 푸른 절망뿐이었다고 절망이 조금씩 하얀 양수로 흘러내릴 때 마침내 기쁘고 황홀한 재생이 찾아왔다
어떤 속도로 흘러왔는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흘러왔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다
죽음 마침내 왔을 때 그의 눈 온통
환한 빛 차올랐다
빛 때문에
눈이 감기는 것도 몰랐다
주변 강들에게
박 미 경
극락강에 간 적이 있었지 드들강도
채 떠나지 못한 유기 혹은 방기들이
지난한 시간들을 싣고 지난날을 증거하더군
생이 뭐 별것이냐고
공평한 것 아니더냐고
이루지 못한 사랑 따윈 없었지
그냥 가지 않은 길이라 해두지
떠밀려가는 게 생인지도 모르잖아
미련했던 인연이었걸랑 타래 째 던져버리고
이미 강물의 체온이 되어버린 널빤지거나
신혼 시절 이가 빠진 사연 있는 그릇이거나
으깨어진 각목들 사이
쓸모없어 버려진 헝겊들 사이
하얀 분말처럼 내려앉는 햇살
수면에 동그랗게 반짝거려도
그냥 스쳐가는 거라고
한때 누군가의 애증이었던 것들
강 건너 글썽이며 눈에 띄는 정든 동네 풍경들
스스로 꽃을 달아주던 많은 세월들
무심한 채
어깨에 매달린 햇살 투욱 털어내며
흘러가는
그런 게 아니겠냐고
극락강에 간 적이 있었지 드들강도
시간은 망각의 강도 삼킨 듯 새하얗게
드들드들 지난날을 증거하고 있더군
용두동, 그 골목 끝에는
청계천 따라 실개천을 오르내리던 서쪽에서 불어오는 숨찬 바람도 고단한 코를 막고 한숨 돌리는 비린 저녁 양복쟁이 울 아버지 피곤을 요리하던 선술집 보조개진 웃음이 심상찮던 그 살집 넉넉한 아짐씨 있는 추억의 개천 앞
이름도 우렁찬 국민학교 담장을 기일게 돌아가면 거기 어린 날 수줍은 내 첫 정도 꿈인 양 서려있다 뒷담을 돌아들면 설화처럼 들려오는 나직한 웃음소리 밤하늘 별헤며 걷는 여자 오늘은 그 어느 누가 태어나고 어느 누가 잠들었소 터질 듯 한 울음보 달래며 가다가 보면
시립병원 앞길 숙이네 작은 할머니가 차에 치어 숨진 곳 수국빛 한의 빛깔로 저물던 한 생애는 문득 고단해지고 욕망을 삼킨 슬픔의 뭉치가 울컥대는 거리 노랭이 할아버지 본처는 집나가 딸네랑 살고
사금파리 조각을 통과한 햇빛의 파편 손에 고이는 어여쁜 시간들 기우며 운동장을 뛰놀던 아이들은 담장 아래 졸음에 겨워 강아지처럼 큼큼 짓다가 놀다가 순하게 어디에선가 코를 풀고는 단단한 돌멩이처럼 엎어져 잠들곤 했다 느티나무 그늘이 아이들의 붉은 뺨을 너울져 덮어주었울지 모른다 보름달 몇 모금 아이들 입술에 꿈처럼 머물러 있었을 지도 모른다 발치에 핀 개망초꽃 슬몃 아이들 발 간질여 주었을 지도 모른다
적멸의 빠금살이에 지쳐 태양을 희멀뚱 해바라기 하다가 햇빛 잘게 부서져 내리는 초록색 사금파리 조각 하나 단풍잎처럼 물든 손에 꼬옥 쥐고서
취한 사내
취한 사내가 중얼거린다
제길 복권에 당첨됐다구
이번에는 자동기술법으로 시를 써야지
내 꿈이 원래는 소설가였거든
나뭇가지가 내 몸 속에 있는데 내가 꺼내주고 싶어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지루한 비유가 사내를 화나게 했다
무의식은 수시로 푸른 곰팡이처럼 힐끔거리고
그는 거리에서 키스하고 있는 남녀들과
노상방뇨하는 사내들의 작은 흐느낌과
모텔 앞에서 실갱이하는 사람들을 지그시 지켜본다
취한 사내의 잎에서 수만 마리 빛을 매단 은빛 물고기가 튀어나왔다
사내는 자신의 수액으로 물고기가 산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찔끔 눈물을 허리춤에 쑤셔놓았는지도 모른다
생은 좀 더 난폭해져야 했다
여기부터는 영향을 많이 받은 시인들의 작품입니다. 아래에 간단한 소감도 적어보았습니다.
정든 유곽(遊廓)에서 : 이성복(李晟馥)
1
누이가 듣는 음악(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잡초(雜草) 돋아나는데, 그 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와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
목단(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地下)의 잠, 한반도(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벌목(伐木)
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임종(臨終), 병(病)을 돌보던
청춘(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者는 누구인가
일본(日本)인가, 일식(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와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 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다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呻吟),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전쟁(戰爭)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혁명(革命)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행진(行進)하는 나의 별 //
그리고 별은 나의 조국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後世)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口味)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韓族)의 별 //
이성복 시인. 더 말이 필요 없는 시인. 때로 그의 누이가 살던 금촌으로 그가 사는 대구로 불쑥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싶게 만드는 시의 저자. 누이의 연애가 아름다워도 될까 불쑥 궁금해지는 남성 상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깰까? 여성 상처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얼마 안 되는 남성 시인. 난 이성복 시가 좋다.-박미경
폭풍의 언덕
기형도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유리같은 밤을 지났다.
그날 우리들의 언덕에는 몇 백개 칼자국을 그으며 미친 바람이 불었다. 구부러진 핀처럼 웃으며 누이는 긴 팽이모자를 쓰고 언덕을 넘어갔다. 어디에서 바람은 불어오는 걸까? 어머니 왜 나는 왼손잡이여요. 부엌은 거대한 한 개 스푼이다. 하루종일 나는 문지방 위에 앉아서 지붕 위에서 가파른 예각으로 울고있는 유지 소리를 구깃구깃 삼켜 넣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가 끊어뜨린 한 가닥 실정맥이야. 조용히 골동품 속으로 낙하하는 폭풍의 하오. 나는 빨랫줄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아버지의 런닝셔츠가 흙투성이가 되어 어디만큼 날아가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헤아려보았다. 공중에서 휙휙 솟구치는 수천 개 주사바늘. 그리고 나서 저녁 무렵 땅거미 한 겹의 무게를 데리고 누이는 뽀쁠린 치마 가득 삘기의 푸른 즙액을 물들인 채 절룩거리며 돌아오는 것이다.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암흑 속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집. 이 불끈거리는 예감은 무엇일까. 나는 헝겊 같은 배를 접으며 이 악물고 언덕에 섰다. 그리하여 풀더미의 칼집 속에 하체를 담그고 자정 가까이 걸어갔을 때 나는 성냥개비 같은 내 오른팔 끝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무서운 섬광을 보았다. 바람이여, 언덕 가득 이 수천 장 손수건을 찢어날리는 광포한 바람이여. 이제야 나는 어디에서 네가 불어오는지 알 것 같으다. 오, 그리하여 수염투성이의 바람에 피투성이가 되어 내려오는 언덕에서 보았던 나의 어머니가 왜 그토록 가늘은 유리막대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는지를.
다음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폭풍의 밤마다 언덕에 오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무수한 변증의 비명을 지르는 풀잎을 사납게 베어 넘어뜨리며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였다.
정신분석적 분석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시. 강렬한 흡인력을 가지면서도 쉽사리 해석되지 않는 그의 시의 마력. 남쪽 항구의 어느 서점에서 소문에 둔한 나는 서가에서 그를 만났다. 이성복 이후에 강렬하게 나를 끌어들이게 만든 시. 그리고 결국 나를 시인이게 한 시인.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불끈 거리는 예감 속에서 시인이 심야영화<뽕>을 보면서 마지막 떠올린 시구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갈증이었을까? -박미경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의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눈물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 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야겠다
<슬픔이 기쁨에게> 아직 내가 시를 잘 모를 때 이 시집을 들고 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그 시집 뭐냐고 묻던 내게 선배는 ‘기쁨은 슬픔에게 주는 거 없나?’고 말했다. 때로는 기억 속에 있는 게 더 힘이 되는 일도 있다. 그나저나 슬픔은 춥겠다. 겨울이 오고 있는 데. 슬픔을 모르는 사람들은 더 춥겠다.
비망록 /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 네 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아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 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 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시인은 스물다섯에 실제로 이 시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나이에 저리 성숙한 의식과 시적 성취도를 가지다니... 놀라왔다. 남몰래 좋아하는 그녀의 시 중에 ‘야간여고수업’이라는 시도 있다 찾아서 읽어보면 알 것이다. 그녀의 시를 좋아한 독자로서 고백한다. 스물하나 그 나이 때 이시가 나를 견디게 한 힘이었다고.- 박미경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룹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이미지의 탁월함이란 이런 것이리라.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 언젠가 서성이던 그 때가 떠오른다. 낯선 추위에 옹송거려가며 두 시간이 남은 송정리역에서의 필자의 기억도 함께 섞여든다.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에 남겨두고 우리는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오래된 냉장고 / 김혜순
나보다 먼저 내 발이 너에게로 가려고 하는 것. 필사
적으로 참고 있다. 나보다 먼저 내 입술이 너에게로 가
려고 하는 것. 나는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벌써 이렇게
참은 지 수십 년. 생각해보니 참 묘하다. 내가 이렇게 참
고 있었던 건 내가 내 소유의 냉장고를 갖게 된 후부터
인 것도 같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생각해왔다. 내 머릿
속은 얼음으로 꽉 차 있고, 내 차디찬 발을 만진 사람은
모두 기절한다. 내 가슴속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입
술이 얼어붙는다. 그러니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자. 아무에게도 손 뻗지 말자. 나는 또 이것도 잊지 말
자고 생각했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참고 있
으니 내 방 안에서 나뭇잎 하나 떨어지지 않고, 땅을 박
차고 새 한 마리 날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바람이
불어와도 필사적으로 220볼트의 콘센트 속에 손가락을
끼운 채 버티자. 얼어붙은 풍경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풍경 속의 얼음나라 얼음공주 얼마나 순결한가. 그러
니 허벅지 밑으로 피가 조금 흘러내려도 금방 얼어붙을
테니 걱정 말자. 밖은 뜨겁고, 안은 시리다. 시리다 못해
팽팽히 끓는다. 문을 열면 화들짝 놀라 불을 켜는, 얼어
붙은 창자들을 매단 겨울 풍경화 한 장. 태풍이 와서 정
전이 며칠째 계속되고 몸속이 전부 썩어 문드러지기 전
까지 몇십 년째 혼자 새침을 떨던.
김혜순 시는 단숨에 읽힌다. 그녀가 초현실주의 기법을 쓰면서 신들린 듯 시를 써간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녀는 거침없다. 끝간 데 없는 기발한 상상력에는 혀를 내두른다. 그러면서도 단숨에 읽힌디. 사물을 통해 내면 상처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시인 자신이 바리데기의 현신임을 시론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시대에 이런 당당한 여성 시인 하나 쯤 있는 건 분명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