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한 해를 정리하며 '책과 만나다' 한 해를 정리하는 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뭘까? 출판사는 왜 책을 만들며, 독자는 왜 책을 읽는 걸까? 도서출판 그린비는 연구 공동체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와 함께 책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끌어낸 책의 존재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책은 그 속에서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에 그치는 것(책세계)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그 자신을 끌어내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하고(책기계), 그래서 삶의 무기가 되고 삶을 축제로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존재 의미를 갖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나름의 문제의식 속에서 출판사와 연구실은 책을 책세계가 아니라 책기계로 읽어낸 결과물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무려 93권이나 되는 책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단순히 책에 대한 책은 아니다. 책(book)에 대한 자세한 소개보다는, 책과 만나고 그 책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book+ing) 사유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이 책을 단순한 book이 아닌 book+ing으로 이용해 주었으면 한다.
'book+ing'이 만난 책들 1. 일상의 축제-되기, 코뮨적 삶을 위하여 일상은 늘 남루한 듯하다. 반면 그것이 어떤 이름을 가졌든 축제는 기쁨과 활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런 축제의 기쁨은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 1부에서는 코뮨적 삶을 살며,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책들과 만났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밥상 혁명을 통해 삶을 바꾸라고 선동하며, [파라다이스]는 견고한 뿌리를 자랑하는 나무가 아니라 범람하는 잡초가 되라고 권하고, [가비오따스]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동체의 삶을 말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흐친의 진정한 웃음([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과 마르코스의 목소리([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를 만난다.
2. 철학의 외부, 근대에 내재하는 외부를 위하여 다른 종류의 삶을 창안하고자 하는 사유는 반드시 외부를 통해 사유하는 철학이며, 철학의 외부를 긍정하는 철학일 것이다. 자기 안에 갇힌 사유는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어 다른 삶을 꿈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2부에서는 외부를 사유하는 철학들과 만났다. [천 개의 고원]은 다양한 욕망의 배치에 대한 창발적인 분석으로 우리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안내하며, [제국]은 새롭게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명령의 양식과 그것을 깨뜨려 나갈 대중들의 잠재력을 말하고, [알이 닭을 낳는다]는 다른 종들과 소통을 고민할 때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르디외([파스칼적 명상])의 "나는 내 안에 있는 지식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과, 질병과 치유의 반복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과 새로운 건강을 얻는 니체의 모습([유고:1882년 7월~1883/4년 겨울])도 만날 수 있다.
3. 우리 신체에 새겨진 근대성, 그리고 혁명 우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의 풍요를 착취하는 인간의 추악함, 도덕의 철책으로 민중을 규격화하는 국가장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의식하게 되는 타인의 눈 등을 통해 우리의 몸에 새겨진 근대성을 도처에서 확인한다. 3부에서 만난 책들은 이러한 근대성을 상기시키며 낡은 습속에 길들여진 눈을 던지고 도덕의 감금장치를 유쾌하게 뛰어넘으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이름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그래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는 한국에서 근대적 주체가 생성되는 과정을 찾아 나서며 길들여진 신체와 싸우기를 권하고, [종횡무진 한국사]는 'national history'로서의 '한국사'가 아니라 'history'로서의 '한반도의 역사'를 말한다. 또 [한국 문학사의 논리와 체계]는 한문학과 국문학,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경계를 자유롭게 종횡하며, [사생활의 역사]는 어떻게 국가가 사회성의 영역에 침입하여 그것을 공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 영역을 사적인 영역으로 만들었는지 말한다.
4.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 도덕은 자유로운 영혼을 길들여 덜 위험하게, 즉 나약하게 만드는 '동물원'이다. 지배적 사유는 도덕의 철책을 뛰어넘는 것들을 '광기'라 부름으로써 '우리'와 다른 모든 것들을 '타자'로 밀어낸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광인들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미래의 시간(항상 와 있지만 항상 오해되고 있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간)을 향해 절규한다. 근대 권력의 폭력성과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푸코([미셸 푸코]), 도덕성과 법의 원리를 '절대부정'했던 사드([미덕의 불운]), 나이 오십에 그때까지의 자신은 남들이 짖어대며 이유도 모르고 따라 짖는 한 마리 개와 같았다고 말했던 이탁오([분서]), "노예가 없어지면 흑인도 없어진다"며 흑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내파하려 했던 파농([검은 얼굴, 하얀 가면]), 대학 교수가 아니라 러시아의 노동자로 살고 싶어했던 비트겐슈타인([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주받은 영혼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예프스키]), 금기와 복제를 거부했던 고야([고야, 영혼의 거울]), 서구적 근대와 다른 독자적 역사를 만들려 했던 소세키와 루쉰([동양적 근대의 창출]) 등이 4부에서 만나는 광인들이다.
5. 고전과의 유쾌한 연애, 리딩클래식 누구나 들어봤고, 누구나 좋은 책들이라 말하지만 손에 들기가 쉽지는 않았던 책들. 누군가는 그런 책들을 고전하며 읽기 때문에 고전이라 부르는 거라고도 했다. 그러나 500년 전의 친구와 수다를 떨고, 1000년 전의 연인과 사랑을 나눈다면? 5부에서는 '저 오래된 책들'과 연애함으로써 일상의 출구를 발견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감히 알려고 하라, 네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는 칸트와 만나고, [장자]에서는 무한경계로 나의 사소함을 보여주는 장자와 만나며, [열하일기]에서는 낯선 공간과의 마주침을 때로는 개그맨의 목소리로, 때로는 화려한 수사학자의 목소리로, 또 다른 곳에서는 도도한 거장의 목소리로 전하는 박지원을 만난다. 뿐만 아니라 캉유웨이와의 연애에서는 국가와 민족, 종교, 인종, 그리고 성별까지 뛰어넘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고([대동서]), 다윈과의 우정 속에서는 '인간이란 종은 고정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종의 기원]). [인터파크 제공] |
작가 소개 |
저자 |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회원 중 고미숙, 고병권, 고봉준, 권보드래, 권용선, 김월회, 김풍기, 류준필, 박동범, 박성관, 신지영, 이승원, 이진경, 정선태, 정여울, 진은영, 최진호, 최태원 등 18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반디북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