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수상자 고경숙 작품
달무리
저녁은 밤에게 말했다
칠흙같은 밤 동이 틀때까지
댤맞이꽃을 잘 지켜 달라고
달이 달맞이꽃을 몹시 그리워하니까
보름밤이 되어 달은 하늘의 신에게 졸라
눈부신 빙정氷晶 두루마기 선물을 받고서
가장 밝은 빛을 내며 달맞이꽃을 찾았다
달맞이꽃은 옆 친구 옥잠화에게
향내나는 분가루를 얻어서 단장하고
노랗게 화사한 미소로 기다릴 뿐이다
가늠없이 닿을 수 없는 거리와 기다림
달의 그리움은 언제적부터인가...
달맞이꽃은 한해와 굳이 또 한해를 기다린다고 했다
달은 신에게 간청하여 그믐밤마다 땅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이윽고 달무리 수레를 타고 땅으로 내려 왔다
얼음 보석 찬란한 달무리 두루마기는 녹아 이미 흔적 없고
배고파 허기진 나그네처럼
점점 야윈 초승달 되어
깊은 수심에 보름달을 향해 길을 나섰다
눈물
눈 속에 가득 채우는 것
시냇물 속 바닥 보이듯
흘리는 것
미처 받을 수 없이 구슬 되어 또르르
훔치는 것
되돌아 서서
짜내는 것
깊은 통증으로
삼키는 것
온몸을 적셔 순환하다
심장에 더운 피로 붉게 물들고
머릿속 구불구불 굴곡진 혼돈의
미로에서 진액이 더하고
눈이라는 출구 찾아 눈물된 것은
신비
카타르시스<catarsis>!
능소화
능소화
고경숙
늘상 일터에 앉아 눈을 들면
황폐한 심상을 능소화가 미소로 쓰다듬네
땅을 불사를 것 같은 칠월
이전엔 기억 없는 맹열한 폭염에도 개의치 않고
나팔 같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조신한 꽃 짓은
숨죽인 바람이 스치는 까닭이라
부질없이 하늘을 기어오르고 뛰어넘고 싶은
작렬하는 욕망 때문에
이 대지가 이렇게 뜨거운 것인가?
진정 그리운 그 무엇이
닿을 수 없는 궁창 너머에 있어서인가
하늘을 넘어서려는 집요한 그리움 때문에
능소화가 피고 지고
다 떨어져 바닥에 누울 때까지
더운 숨을 들어 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