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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해요 캡틴] 이재연 - 시놉시스
fly again !! - 작품기획안
2012년 7월 30일
✈ 타 이 틀 : Fly Again !! (가제)
✈ 형 식 : 70분. 20부작 미니시리즈
✈ 기획의도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사연을 안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 속에는 모처럼의 휴가에 한껏 들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뼈아픈 이별에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풍운의 꿈을 안고 먼 이국땅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비행기 안에는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파일럿의 멋진 제복만 보고 부러워들 하시지만 사실, 300명이 넘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항상 긴장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힘들다.
그래도 내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나쁜 일은 빨리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저 젊은이의 꿈이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안전하게 모셔다 드려야지’, 이럴 때 파일럿이 되길 참 잘했다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던
어느 파일럿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 왜 항공 드라마인가?
something new 가 있는 드라마.
국내 항공 역사 60년 만에 금녀의 벽을 허문 여성 조종사...something new !!
국내 드라마에서는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인천 타워의 관제사...something new !!
카트 서빙과 환한 미소가 전부가 아닌 하늘의 진정한 수호천사 캐빈어탠던트...
...something new !!
하나의 여객기를 안전하게 띄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을 흘리는
정비사, 지상 요업, 마샬러들....something new !!
환타지가 아닌 실제적이고 생산적인 드라마.
늘 희망직종 상위권에 랭크되며 선망의 대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항공 파일럿,
멋진 제복에 늘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 세계를 내 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만끽하는 자유,
높은 연봉, 그러나 이들의 실상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일 년에 두 번씩 있는 신체검사, 시뮬레이터 훈련, 컴퍼니 체크, 파일럿들은 자신들을
‘두 달 파리 목숨’이라고 명명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항목에서 2회 FAIL 되면 가차 없이 제복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3 수험생 따로 없단다.
‘콜레스테롤 무서워서 물하고 김치만 먹어요’ 가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삶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다, 현재 진행형이다.
백조의 날개 짓은 호수 위에서만 우아할 뿐이다.
파일럿들이 살얼음판을 걷듯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철저한 프로의식과 열정 때문이다.
훌륭한 롤모델이다. 훌륭한
롤모델은 우리들 삶에 무한한 생산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해 내고 말거야.
우리는 그들을 통해 내 꿈의 가능치를 계산해 본다.
힘찬 내일을 준비하는 밝은 드라마.
우리의 주인공들은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과거 속에 얽매인 어둡고 무거운 모습 보다는, 밝고 감각적인 캐릭터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better than yesterday” 의 희망을 유쾌하게 전달하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꿈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드라마
‘이룰 수는 없어도 절대 버릴 수는 없는 것’...그것이 ‘꿈’이다.
팍팍한 현실에 묻혀 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그 녀석을 큰소리로 깨워 보자.
꿈꾸는 자에게는 날개가 있단다. 다시 한 번 힘차게 비상해 보는 거다.
이에 항공사는 우리 드라마가 추구하는 ‘꿈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풀어내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라 하겠다.
좌절했던 주인공들이 다시 한 번 힘찬 날개 짓을 하며 비행할 때,
보는 이들의 가슴 속에도, 희망이라는 놈이 꿈틀거리기를 기대한다.
✈ 등장인물
한다진 여| 29살 | 부기장 ✈ 캐스팅(예정) :
“하늘은 우리를 결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늘은 우리를 결코 쉽게 버리지도 않는다”
나는 ‘한다면 하는 한다진’이다.
현재 보잉 747기의 풋내기 부조종사, 매사 긍정적, 힘들다고 투덜대지 않는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니까.
꼴통 소리, 자주 듣는다. 너 여자 맞니? 소리, 역시 자주 듣는다.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님 제 3의 성인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중성적인 매력도 남과는 다른 독특함이다.
다혈질에 성격 급하고, 고집 세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야 마는 독한 근성을 가지고 있지만, 타인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같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따듯한 마음이 있다.
오지랖이 태평양,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지나쳐 오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냉철한 판단력이 중요시 되는 칵핏에서 이건 분명 단점이다.
Behind Story
파일럿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칵핏에 처음 앉아 하늘이 아닌 우주를 보았던 어린 소녀 한다진,
“저건 아름다운 왕비 카시오페아..저건 무시무시한 전갈...
저건 내가 좋아하는 용맹한 장수 오리온..
..와...!!하늘이 아냐! 저건 우주야!!”
그 후로 자연스레 소녀의 꿈은 파일럿으로 낙찰을 봤다.
한 번도 그 꿈을 놓쳐 본 적이 없다.
내가 조종사가 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 한규필님 이다. 아버지는 자타 공인, 최장시간 비행시간과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전설적인 파일럿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의 영웅이었고 신이었다.
직업 특성상 자주 집을 비우셨던 아버지,
아버지가 비행에서 돌아오시는 날이면 아침부터 동네 어귀에 나가 아버지를 기다렸다.
멋진 제복을 입고 검정색 기장가방을 끌고 당당히 걸어오는 아버지의 품으로 숨도 안 쉬고 냅다 달려가 안길 때는 세상이 온통 내 것만 같았다.
자랑하고 싶은 내 마음을 어찌 그리도 잘 아시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두 팔에 나를 번쩍 안아 들고 골목 모퉁이를 한 번씩 돌아주시는 센스까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놀고 있던 동네 아이들이 부럽게 쳐다보던 그 시선에 한껏 우쭐했었다. 몰래 아버지 기장 견장을 훔쳐 학교에 가지고 가서 자랑했던 일도 있었다.
그 기장견장으로 왕딱지, 별딱지, 참 많이도 따 먹었다.
어깨너머로 아버지가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습 하는 것을 즐겨 보다가,
한 번은 너무 하고 싶어서 아버지를 졸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처음엔 의아하게 바라보던 아버지는 금세 눈이 알사탕만큼 커졌다.
핏줄은 정말 못 속이는 것일까? 천부적인 소질이 엿보였다.
이상기류를 어떻게 우회해 갔냐고 물으니,
“그딴 거 모르는데?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내친 김에 아버지를 졸라 00항공사 시뮬레이션 대회에 참가했다.
물론 당당히 1등을 했다.
아버지는 내심 또래의 여자 아이들과 다르게 성장하는 나를 보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혹여 파일럿이 되겠다고 하면 어쩌지?
남자들도 죽네 사네 매달려도 될까 말까며, 설령, 파일럿이 된다고 해도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맨 날 천 날 보따리 싸야 하는 이 직업의 특성상 힘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뭐, 아직 어리니까, 좀 더 자라면 달라지겠지,
그러나 아버지의 이 바람은 슬프게도 가차 없이 절단나고 말았다.
아버지가 시뮬 1등한 것에 대한 축하선물이라며 고도 3만 피트 상공에서 보여준 하늘,
와!, 정말 엄청났다.
땅 밑에서 보던 하늘이 아니었다.
그건 말 그대로 우주였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파일럿, 그 후로 한 번도 그 꿈이 변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극구 반대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고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어느 아버지가 쉬이 허락을 하겠는가? 그러나 나에게는 또 한 명의 열렬한 후원자 엄마가 계시다.
‘한다면 하는 한다진’을 엄마는 끝까지 밀어주셨다.
넓은 세상에 나가 하고 싶은 거 실컷 해봐 어디, 하시면서.
어렵게 들어간 항공대를 졸업하고 3명중 2명 탈락이라는,
혹독하기로 유명한 에어버스 비행훈련원 과정을, 그것도 수석 졸업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일생일대의 가장 행복한 날, 그러나 행복은 불행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던가?
같은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백이었던 사랑하는 엄마를 잃었다.
내 졸업식을 보기 위해 먼 길 마다 않고 비행기에 만삭의 몸을 실었던 엄마가
승무원의 조치미숙과 부기장의 어이없는 실수, 캡틴 기장의 신속하지 못한 비행운항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병원 이송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과 과다 출혈로 돌아가셨다.
나만 아니었다면 엄마는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죄책감에 아무리 울부짖고 몸부림을 쳐봐도 엄마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강보에 쌓인, 아직도 군데군데 버짐 같은 백태가 끼어 있는 늦둥이 내 동생 뽀송이를 세상에
내 놓기 위해 그 좁은 벙커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뽀송이는 신생아 패혈증 때문에 제 숨도 찾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간신히 생명줄을 의지한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그 모습이 눈물겨워 몇 날 며칠을 울고 또 울었드랬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왜냐하면....엄마가 탔던 그 비행기의 캡틴 기장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1차적인 사고의 책임은 풋내기 부기장이었지만, 엄마보다 300명 승객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결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훗날, 내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 놓이면서 그 당시 아버지가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실체를 깨닫게 되었지만 당시엔 쉽게 아버지가 납득되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나라 최고의 파일럿이,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가 타고 있는
비행기 하나를 지켜내지 못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해서든 엄마를 구해냈을 것인데.
엄마 미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나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아버지는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슬픔과 원망에 오열하다 지쳐 돌아보니,
강보에 싸인 핏덩어리 뽀송이가 허기에 지쳐 빽빽 마른 울음만 토해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파일럿이 되겠다던 그 불타던 열정과 패기는
비정한 현실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이 모든 불행한 일들은 나로 인해 비롯됐다.
내 졸업식만 아니었으면...아니었으면.....
뼈에 사무친 죄책감은 나를 절망의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시켰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힘을 내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내 동생 뽀송이..
패혈증 후유증 탓에 하루가 멀게 응급실 신세를 지고,
쌕쌕 마른 숨을 쉬는 것조차 위태로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내 작은 천사 뽀송이를 위해 힘을 내서 다시 일어섰다.
이룰 수는 없을지라도 버릴 수는 없는 것이 꿈이다.
나의 소중한 꿈.....
내가 흘린 땀방울과 열정은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것이라며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던 엄마, 겉으론 힘든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누구 보다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아버지,
그리고 지 언니야가 세상에서 젤로 멋지고 훌륭한 줄 아는 뽀송이를 위해 못 다한 파일럿의 꿈에 재도전한다.
뽀송이가 무슨 카드도 아니고 이 집 저 집 돌려 막기로 지인, 친척들의 신세를 지고 경제적 어려움을 힘들게 극복하면서 20대 1의 훈련원 과정을 통과, 마침내 OZ 항공 부기장으로 입성한다(7년의 과정)
파일럿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씩 집을 비워야 하는 직업이다.
겨우 일곱 살 밖에 안 된 뽀송이를 혼자 남겨둘 수 없어 그 동안 여기 저기 안 맡겨 본 곳이 없다.
그래도 사고뭉치 이모지만 같이 살면서 뽀송이를 돌봐주는 바람에 한 2 년 걱정을 더나 했더니만 또 돈 사고를 치고 잠적했다.
잠적도 잠적이지만 이번엔 내 월급까지 차압당하게 만들었다.
불쌍한 소녀가장도 모자라 이젠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다.
화가 나서 당장 뒤로 넘어갈 지경이다.
어찌됐건 빨리 돌아와 주기나 했으면.....
당장 성수기의 살인적인 비행 스케줄을 소화해내자면 또 우리 뽀송이를 여기 저기 돌려막기 해야 하려나 보다.
한참 부모 앞에서 재롱이나 피우고 티 없이 밝게 자라야 할 나이이건만....미안하고 짠해 죽겠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우리 뽀송이,
되레 내 지친 어깨를 토닥여 주고 백만 불짜리 해맑은 웃음, 넘치게 쏘아 주신다.
우야든둥...큰 일이다.
회사에 한참 감원 바람이 불어 파일럿 수요를 줄인다 난린데...
기장 부기장 할 것 없이 CRM 안 되고 인사고가 미달된 파일럿들은(우리는 이들을 불량감자라 부른다) 가차 없이 쳐 낸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려오고..
갑작스런 뽀송이 응급실행 때문에 지각이 두 번 있었고
(그러나 절대 스케줄 펑크는 내지 않는다. 뽀송이를 포대기에 들쳐 업고라고 달려간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성격 탓에 고참 기장과의 불협화음도 몇 번 있었고....
내 인사고가는 동기들 중에 최악이다,
1순위 감원 대상이다.
조심해야지, 나는 불쌍한 소녀가장이고 갚을 빚도 무지 많고....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지만 긴 건 기고, 아닌 건, 아닌 거고, 승객의 생명을 담보로 대충대충 눈치 보며 묻어가기 식의 파일럿은 정말 곤란하지 않은가?
기장과 부기장의 평등한 파트너 쉽이 안전 비행을 담보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회사에서는 안전한 비행을 위해 기장과 부기장과의 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관계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교육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기장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개인 비서나 시다바리 정도로 생각하는 고참 기장들이 많다.
이런 기장들한테 밑 보였다가는 인사고가에 치명타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래저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장들 비위도 맞춰야 하고(옛날 일이지만 실제로 비행 갈 때 밥통 준비해 가서 깐깐한 기장 밥 해 먹인 부기장도 있다) 회사 눈치도 봐야 한다.
노조에 가입해 파일럿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던 어떤 부기장은 회사의 미움을 사,
9년 넘도록 기장 승급을 하지 못 했다는 이야기도 남일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부기장들 중에서도 니 편 내 편, 기장들 비위 맞추기 바쁜 부류가 있는 반면, 소신껏 눈치껏 할 말 다 하는 부류도 있다.
물론 나는 후자이기 때문에 이해 관계가 다른 동기들과 간혹 언성을 높인다.
잘난 척 한다, 왕따도 당했다.
하지만, 역시 긴 건 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300명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 칠 지경에도
기장님, 나이스!”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두 달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체크와 까다롭기로 유명한 파일럿 신체검사,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쉴 새 없이 바뀌는 규칙과 매뉴얼에 대한 꾸준한 학습
(고3 수험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파일럿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리 녹록한 직업은 아니다.
평생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투쟁이다.
이런 싸움과 투쟁을 겪으면서 실제 비행에서 얻은 많은 경험과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발전한다.
냉혹한 카리스마, 기장 김윤성...
사랑의 다른 슬픈 이름!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사람, 정말 빡시다.
저렇게 철저하게 냉혹한 카리스마는 대관절 어디서 나오는 거야? 학원에서 배워왔나? 독불장군에 저만 잘났단다.
솔직히 비행실력, 인정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마인드 컨트롤은 반드시 내가 배워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하나의 비행기를 안전하게 띄우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독단이나 아집은 매우 위험하다. 기장과 부기장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승객의 안전이 보장 된다.
자기 맘대로 할 것 같으면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두 사람씩이나 있어서 뭐하겠느냐 말이다. 절대적으로 상대방에게 의지해서도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스타기장이면 뭐해? 인간이 먼저 되어야지....
근데, 왜 난 이 인간 앞에서 걸핏하면 스타일 구기지?
그 동안 구긴 스타일만 펴도 문 닫는 세탁소 하난 건질 것 같다.
그랬는데....정말 왕재수, 싸가지에 두 번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는데....
내가 그만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장대연 기장님과 보람이를 위해 남 몰래 호의를 베풀어줬던 그때부터였나?
차갑고 냉정한 줄만 알았는데 그런 따듯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에 그가 새롭게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어쩜 처음부터 그가 좋았는지 모른다.
조인트에 바닥소리까지 들으면서 있는 모욕 다 당했지만
그가 쏘는 독에는 항상 그 무엇이 있었다.
그의 칼날 같은 독설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켰고 부끄럽게 만들었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7년 전 엄마를 죽게 만든 객실 승무원 최지원의 등장으로 마인드컨트롤에 실패해 고도미스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그는 나를 저질 조종사 취급하며 벼랑끝까지 몰아 붙였었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종사의 책임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당시엔 잘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해 보면 내 성장의 발판에는 이상하게 항상 그가 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변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연민 같기도 했고 질책 같기도 했고, 어떨 땐, 두려움 같기도 했고 슬픔 같기도 했다.
정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나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멀리 했다.
몰래 숨어서 나와 뽀송이를 지켜주고 챙겨 주면서도 한사코 내 마음만은 거부했다.
그래도 나는 그를 향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열심히 달려갔다.
그러나.....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가, 내가 사랑하는 그가, 엄마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란다.
아버지가 늘 얘기했던, 그 747 점보를 닮아 크고 믿음직하고 진중한 그 녀석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김윤성이란다.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를 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그는 화목하기만 했던 우리 가족을 하루아침에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버린 잔인무도한 살인자다. 나는...그 살인자를 용서할 수가 없다.
꼴통 관제사, 걍동수.....
사랑과 우정사이!
그와의 만남은 멱살잡이부터다.
공항의 트래픽 잼에 걸려 장시간 선회 비행하던 중 기체에 결함이 생겨 급히 비상착륙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타워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결국 빛총을 쏴서 비상착륙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던 나는 그 놈을 찾아 멱살부터 거머쥐었다.
그것 때문에 징계까지 먹고..., 악연 중에 악연이다.
그렇게 끝났으면 다행이련만, 그 후로 사사건건 이 꼴통 관제사와 부딪쳤다.
어라, 이젠 아주 제 집처럼 우리 집을 드나드네?
하필 달호 아저씨는 왜 저런 싸가지랑 친한 거야?
나도 꼴통이지만, 이 인간 정말 재수 없다.
관제는 어떨지 몰라도 인간성은 제로다.
애초부터 상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 인간, 자꾸 겪어 보니까 괜찮은 구석도 있다.
꽤나 근성 있는 프로 관제사더라.
그러시거나 말거나, 제발 걸리적거리지 좀 말아주쇼, 에? ...했는데.....
그가 나를 사랑한단다.
난 그저 좋은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나? 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그가 나와 뽀송이를 위해 궂은 일 마다않고 애쓰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안다.
I LOVE YOU!, ‘ .___...___’ 그의 사랑의 모스부호에 귀 기울여 줄 수 없어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과거의 그 여자, 캐빈어탠던트 최지원....
7년 전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에서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
그 여자가 승무원 사무장이 돼서 돌아왔다.
아무리 진정을 하고 긴 호흡으로 숨을 가다듬어 보지만 두 주먹에 불끈불끈 쥐어지는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오늘 비행은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
조종사의 심리상태가 비행운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엄마를 잃고 우리 가족이 겪었던 고통을 저 여자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저 여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 사고가 언제 있었느냐는 표정이다.
나는 적어도....이해하려고... 용서하려고.. 노력했었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운이 나빴다. 의도하지 않은 불행은 언제나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니...
감정 컨트롤이 안 된다.
김윤성 남 | 36살 | 기장 ✈ 캐스팅(예정) :
“조종사에겐 굿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종사에겐 “준비”와 “완벽”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행운을 빈다면, 하늘은 우리에게 죽음을 선물할 것이다”
나는 현재 보잉 747기의 최연소 기장이다.
나는 언제나 포커페이스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 능력을 지닌 완벽주의자로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는다.
악조건 하에서의 비상착륙, 최연소 기장, 비행시간 20000시간 돌파, 천부적인 조종실력,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플래시 세례를 받았고 곧바로 신기록이 되었다.
철두철미하고 깐깐하다.
승객 불만 사항이 접수되거나 나의 판단 기준에 부적격한 스텝들과는 절대 비행하지 않는다.
내 겉모습만 보고 사람들은 괴물이니,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사람이니, 말들이 많다. 하지만 속은 누구 보다 여린 휴머니스트다.
안전한 비행은 축적된 경험과 철저한 준비, 항로, 지형에 대한 숙지,
꾸준한 시뮬연습만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새벽까지 나의 방엔 불이 꺼지지 않는다.
금색 견장에 폼 나는 제복만이 파일럿의 전부로 착각하는 미성숙한 인간들을 제일 혐오한다. 그들은 모른다.
하늘이 얼마나 무서운 줄을. 하늘에서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다.
하늘은, 무서운 블랙홀이다.
한 번 빨려 들어가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을 초래한다.
나는 독선적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그딴 거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기분 생각하면서 할 말 못 할 말 구별하지 못한다.
300명의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행운 따위 운운하는 거 절대 용납 못한다.
Behind Story
네 살 이었나? 눈을 떠 보니 땟국에 절은 아이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아원이었다.
네 살이 되면 다 이런 곳에 오는 건줄 알았다.
철수도 영이도 순이도 꼭 그런 줄만 알았다.
나는...고아였다. 부모 얼굴, 생각나지 않았다.
4살 때 입양이 되었다.
드디어 나도 엄마 아빠, 사랑하는 가족을 갖게 되었구나, 하늘을 날 것처럼 기뻤다.
그러나 1년도 채 못 돼 파양되었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파양 당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작은 머리로는 알 수가 없었다.
7살 때, 또 다시 입양이 되었지만 2년 후 다시 파양 되었다.
이번에야 말로 좋은 아들, 착한 아들이 되어야지 굳게 결심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일 나가는 엄마 아빠의 구두를 파리가 미끄러지게 닦아 놓았다.
100점짜리 시험지에 목숨을 걸었다. 똑똑한 아들 뒀다는 소리 듣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또 다시 파양 되었다.
이번엔 파양 이유를 알았다.
싫증...나서다. 귀여워서 낼름 집어 갔다가는 싫증나서 냉큼 갖다 버린 것이다.
마치 치와와나 마티즈 같은 강아지처럼....
무책임한 파양, 그것은 명백한 유죄다.
두 번의 파양을 겪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때 나의 유일한 돌파구는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파일럿이 되는 거였다.
우리 천사원에 자원봉사를 오던 제일항공 조종사들,
그들의 빛나는 유니폼과 다정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모습들은 내게 신천지로 다가왔다. 저들처럼 당당하고 멋지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도 사람들도 더는 내게 멸시를 퍼 붓지 않을 것이기에...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은 지키고 살 수 있을 것이기에...
조종사들을 따라 칵핏 구경을 하던 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과학책에서나 보아왔던 우주를 경험한다.
카시오페이아, 북극성, 황소자리.......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내 깨지고 갈라진 마음이 넘치게 위로를 받았다.
나는 결심했다.
기필코 파일럿이 되겠다고.....
파일럿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돈도 많이 들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시궁창에 곤두박질 칠 적이 많았지만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타고난 머리는 있어 한 번 맘먹으면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절대 남한테 지지 않았다.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 다섯 개씩 해가면서 죽자고 내달렸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한규필 교관님,
제일항공 전설의 탑건이시면서 모두에게 존경 받는 스승님,
그로 인해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파일럿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세상에 닫힌 내 마음을 따듯한 햇빛으로 열어 주셨다.
미처 등록금을 못내 휴학할 처지였는데 한규필 교관님께서 도와 주셨다.
나를 인정해 주고 틀림없이 훌륭한 파일럿이 될 거다, 격려해 주셨다.
틀림없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 말인지 처음 알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사히 훈련원에서의 혹독한 시간을 견뎌내고 나는 오늘 처녀비행을 나간다. 더군다나 캡틴 기장이 한규필 교관님이시다.
처녀비행에 떨고 있을 나를 위해서,
스케줄 무리하게 조절해가면서 기꺼이 나의 파트너가 되어 주셨다.
이 깊은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 최고로 잘 해야 한다.
절대 누가 되지 않으리라....청출어람...꼭 보여드리리라.....
항로지도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완전히 외워 버렸다.
그러나 그날, 그 칵핏에서 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실수로 인해 한 산모가 위기에 빠졌다.
객실의 미흡한 조치까지 발목을 잡아 산모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설상가상, 그 산모가 한규필 기장님의 아내였던 것..
한규필 기장님은 아내보다는 300명 승객의 목숨을 먼저 생각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으나 7년의 경험을 쌓은 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네 줄짜리 기장 견장의 의미를...그 무거운 책임과 희생의 의미를....)
나는 기장님께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다.
기장님은 내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해 주셨지만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더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제일 항공사를 떠났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지독하게 외롭고 거칠었다.
절망 속에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한국에서 날아든 비보, 한규필 기장님께서 돌아가셨단다. (그때는 몰랐다. 한국 떠나 오기 전, 나를 잡기 위해 뛰어오시다가 차에 치이셨다는 것을)
하늘이 무너졌다.
하지만 이대로 침몰할 수는 없었다.
이런 모습을 하늘에서 보신다면 얼마나 한심하고 걱정하실까?
나는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났다.
규필의 대를 이어 그레이트 기장이 되리라. 그리고 결심했다.
발전되고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가 규필의 남은 가족을 위해 평생 참회하면서 살겠노라고...
7년 후,
나는 OZ 항공 홍명진 사장과의 남다른 인연으로 인해 OZ 항공으로 스카우트 되어 돌아왔다.
홍명진 사장이 얼마 전 미국 출장 중, 내 비행기를 탔었는데,
갑작스런 심장이상으로 급히 인근공항으로 회항했다.
기상도 안 좋고, 시계도 확보되지 않고, 착륙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공항 활주로였는데
무사히 착륙해서 미리 준비시킨 앰뷸런스로 이동, 병원진료를 받게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웠을 상황이었다.
홍사장은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며 그 후로도 여러 번 감사표시를 해 왔고
그런 저런 인연으로 이번에 00항공사로 이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규필 기장님과 사모님이 묻혀 계시는 산소를 찾았다.
나는 자신의 고통보다도 이 부족한 제자를 먼저 걱정해 주었던
규필의 그 가없는 사랑 앞에서 처절하게 오열했다.
대책없이 당당한 여자, 한다진 부조종사
사랑의 다른 슬픈 이름!
막상 막하의 녀석, 아니 여자를 만났다.
우선, 성질머리가 그렇다.
덮어 놓고, 머리말 꼬리말 다 떼고 대책 없이 다혈질이다.
마인드 컨트롤은 조종사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덕목이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조종사가 흔들리면 승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런 면에서 한다진은 낙제다.
장담하건데, 조종사로서의 생명, 그닥 길지 않을 것이다.
저런 류의 녀석들 숱하게 보아왔다.
하늘의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은 핵폭탄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는 타인의 삶까지 송두리째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인정하기 싫지만 조종 실력은 생각보다 수준급이다.
웬만한 생각 없는 기장들보다도 한 수 위인지도 모르겠다.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아버지에 그 딸, 그 피가 어디 가겠는가?
한다진은 내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 한규필의 딸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다진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당신 엄마를 돌아가시게 한 원흉이다, 나설 수가 없었다.
그때 이미,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를....감히 이 죄 많은 놈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녀에게 무턱대고 달려가던 물색없는 마음을 몇 번이나 돌려 세웠는지 모른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며 내게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나는 두려우면서도 주책없이 설렜다. 이러면 안 되고, 나한테 그런 자격 따위 있을 리 없지만...
나는 정말 그녀가 좋았다.
나는 그녀와 뽀송이를 위해서 그림자가 되어 살아간다.
그녀를 프로 파일럿으로 성장시키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조금이라도 죄를 씻는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재능 있는 조종사이긴 하지만 아직은 풋내기였다.
마인드컨트롤에도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가 한규필 못지않은 훌륭한 조종사로 성장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의 마음을 애써 멀리하던 어느 날,
그녀가 체류하고 있는 나라에 폭동이 일어나 그녀의 생사를 알 길이 없게 된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그녀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그러다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나 해 맑게 웃어주는 그녀,
나는 무작정 뛰어가 그녀를 안는다.
신이여 용서하시라! 이 자격 없는 놈이, 이 여자 내 여자 해야겠다.
그러나 7년 전의 사고의 전말이 드러나고, 규필의 죽음에 내가 원인 제공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나는 또 한 번 깊은 수렁 속에 빠진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녀의 눈, 증오심과 분노로 이글거리던 그녀의 눈......
나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섰다.
절대 나를 용서할 수 없다면서.....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 홍미주....
오즈항공으로 스카우트 되어온 후, 경영전략 상무인 홍미주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홍미주는 지위를 남용하고 매사가 독단적, 강압적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실리만 추구하느라 미처 다른 문제점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소신껏 주장을 피력했고 강압적인 태도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부사장 딸이든 아니든 나한텐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그 역할 만큼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사사건건 마찰을 빚던 그녀를 은혜 고아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알고 보니 그녀, 그 꼬마란다.
9살, 두 번째 파양을 당하고 고아원으로 돌아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원망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던 때였다.
한 집 잃은 꼬마 아가씨가 들어왔었는데 그 꼬마는 첫 날부터 목이 터져라 울기만 했다. 가여워서 손이라도 잡아 주고 싶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느 날 뜨거운 국솥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고 있는 꼬마를 들쳐 업고 응급실로 뛰어 갔다.
하도 무서워 하길래 주머니에 있던 자두맛 사탕을 주었다.
그 사탕을 손에 꼭 쥐고 나를 올려다보던 그 꼬마의 맑은 눈동자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꼬마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의 품에 안겨 펑펑 울던 그 꼬마가 너무도 부러웠었다.
찾아 줄 부모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저 꼬마는 알고 있을까?
그 꼬마가 홍미주란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좋아한단다.
아무 것도 아닌 날 좋아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미 내 가슴에 다른 사랑이 들어와 있다.
강동수 남| 32살 | 인천타워 관제사 ✈ 캐스팅(예정) :
“왜 공무원을 지원했는지 솔직히 말해 보세요”
“제가 관제가 하고 싶어서 관제사 지원한 것이지,
공무원 하고 싶어서 지원한 거 아닌데요”
“공무원으로서의 보람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공무원으로서의 보람...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다만, 제가 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꼴을 못 보거든요.
제가 관제업무 말끔하게 처리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항공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랄까..
뭐 그닥....”
나는....걍....동수다.
나는 대한민국 인천공항 7년차 타워 관제사다.
어떤 관제사냐? 엄청 잘 나가는 관제사다.
국토해양부 부산지방항공청 주관,
‘보다 안전하고 신속하며 효율적인 관제 시스템 구축’이라는 구호 아래 열린
‘항공교통관제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막말로 전국 통 털어, 나 보다 타워 관제 잘 하는 인간, 없다. 단연코....,
관제는 진지하게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즐겨야 할 술자리다.
여자, 술만큼이나 관제가 좋다.
조종사가 ‘손맛’이라면 관제사는 ‘입맛’이다.
한참 미친 듯이 떠들다 보면 수백 톤의 거대한 쇳덩어리가 활주로에서 얌전히
내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내 말을 아주 잘 듣는다.
가서 꽉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내가 젤 싫어하는 동물은 강아지다. 이유는 단 하나, 내 말을 안 들어서다)
관제석에 떡 버티고 앉으면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나만의 즐거운 게임이 시작된다. 절차와 안전 효율성에 맞게, 내가 이놈의 비행기를 언제 어떻게 활주로에 올려놓을 것인가? 배풍로에 있는 비행기를 언제 base turn 시킬 것인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소소한 것들이 쌓이다 보면
5분, 10분 후엔 장주상황이 180도 바뀌어 있다.
묵은 때 팍팍 거둬내고 말끔하게 정돈된 내 방 같아서 기분 베리굿 된다.
바둑에서 몇 수 앞을 미리 내다 보며 끊임없이 전략을 짜듯이,
수 분, 수 십분 후의 상황을 미리 고려해서 관제지시를 발부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정확히 맞아 떨어져서 복잡했던 교통상황이 완전 말끔하게 정리될 때의 성취감이란...,
바로 그 맛, 그 입맛 때문에 나는 관제를 한다.
누가 누가 관제 많이 하나? 아무리 덤벼봐라? 내가 지나.
사실, 모든 관제가 어렵지만 특히 타워 관제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 만큼 중압감이 크다.
‘마의 11분’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행기는 이착륙시 가장 사고가 빈번하다.
잠깐의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이런 긴장감이 관제의 매력이라면 또 매력일까?
3교대로 근무하는데 낮밤이 바뀌는 스케줄은 기본이니
조종사만큼이나 체력관리가 중요한 직업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명랑 유쾌,밝은 사람이다.
그러나 널널하게 좋은 사람은 아니다. 까탈스럽지만 쿨하다.
쓸데없이 무게 잡는 카리스마는 싫다. 장난꾸러기고 때로 쥐어박고 싶은 악동이다.
뜯어보면 귀여운 구석도 많다. 싫은데 죽어도 좋은 척 못 한다.
싸가지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눈물도 많고 잘 찾아보면 배려 비슷한 것도 있다.
사실 까칠한 성격이 본심과 달리 오해도 많이 사고 가끔 주먹다툼도 피해 갈 수 없지만
나름 나를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방어벽이기도 하다.
까칠한 사람은 자기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까칠해 봐서 안다.
누가 뭐 부탁하면, 야! 관둬!저리가!, 뒤돌아서서는 다 해 준다.
그럭저럭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
나이 육십이 넘으면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철없는 남자들, 헬스 가서 근육 빵빵하게 키우는데, 그거 다 소용없는 일이다.
나이 육십에 근육 있으면 뭐하냐? 나이 들면 귀여운 게 최고다.
아마도 양로원에서 할머니나 꼬시고 있겠지?
“~조종사 까탈스럽게 굴면~ 빙빙 돌리면 되고,
그래도 자꾸 까불면~ 활주로 안 주면 되고,
외로울 때면~ 야동 보면 되고,
기분 나쁘면~ 술 먹고 청소하면 되고
걍~동수 생각대로 하면 되고~”
Behind Story
나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손재주가 뛰어났다.
아버지가 김포에서 대규모 고물상을 하셨는데
마당에는 늘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잘 뒤져보면 재미난 꺼리들이 참 많았는데, 요상하게 생긴 각종 기계,
부품에서부터 골 때리게 생긴 이름 모를 물건들까지...
그것들은 내 장난감이고 밥이었다.
나는 걔네들을 붙이고 조이고...트랜스 포머를 만들었다가, 우주의 괴물을 만들었다가...
끝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는 일단 모여! 조립! 해체!의 천재였다.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그 날도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모아서 뭔가를 뚝딱거리며 만들고 있었다. 빨간 전선을 연결하는 순간 그 네모난 상자에서 쏼라쏼라 이상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 강동수가, 모여! 조립! 해체! 의 천재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기똥찬 대물 하나는 건졌다 생각했다.
그것은 햄무선통신 기계....
이런 식으로도 생판 모르는 남과, 그것도 전 세계의 허옇고 노랗고 검은 사람들과,
목소리를 주고받고, 헬로! 밥 먹었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다는 경이로움에 살이 다 떨렸다.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후로 자연스레 햄무선 통신에 푹 빠졌고, 내처 무선자격증까지 땄다.
공항이 있는 김포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간간히 주파수에서 들려오는 파일럿들의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파일럿이 궁금한 게 아니라
그들의 항공길을 열어주고 안전신호등이 되어 주는 관제사들의 일상이 더 땡겼다.
루이암스트롱처럼 완전 찰지던 어느 관제사의 목소리가 나를 매료시켰던 것일까?
(에피소드:우연히 듣게 된 김포 공항 항공기 운항 교신, 항공사고로 오해해서 무척이나 놀랐다.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 암튼 솜털이 죄다 일어날 만큼 온몸에 전율이 이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항공세계는 알면 알수록 별천지고 신세계였다)
내 어릴 적 꿈은 교통순경이었다.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교통순경이 ‘서!!’하면 서야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땅의 교통은 존경하는 교통순경 아저씨께 맡기고 나는 하늘의 교통을 책임지는 관제사가 되어야겠다고 태극기 앞에서 굳게 다짐했다.
자연스레 항공기 운항 교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고 군대도 공군 관제사(MCRC),
이어서 인천 타워 관제사로 입성하게 된다.
우리 아버지 강팔봉씨,
김포가 개발되면서 백억대 갑부가 되었다.
아기자기 매화꽃 닮은 우리 영숙씨,
쳐다보기도 아까운 곱디고운 우리 영숙씨,
우리 엄마, 먼저 떠나보내고 홀몸으로 나를 정성껏 키워주셨다.
고물상으로 어렵게 살림 꾸려온 지난 세월 탓에 검소함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갑부가 된 지금도 얼핏 봐도, 공들여 자세히 봐도, 후줄근하고 촌스러운 시골 아저씨다.
나를 낳고 돌아가신 엄마,
나는 우리 아버지한테 그 사랑스런 우리 영숙씨 빼앗아간 나쁜 놈이다.
얼른 장가가서 효도하고 손주 열 둘 안겨 드려야 할 텐데...
참한 며느리감 찾는다고 공항을 동부 서주하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이쁜 여자들은 공항하고 텔레비전에 다 있는 줄 아신다.
자꾸 승질나게 만드는 여자, 한다진 조종사...
가질 수 없어 속만 태우는 사랑!
자꾸 비위를 긁어 대는 이 여자 조종사,
여자다운 구석이래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선머슴아 같은 이 여자.
지가 무슨 잔다르크야?
하늘의 안전은 자기 혼자 다 지키지? 조종사라고 관제사 깔보는 거야 뭐야?
간혹, 관제사를 자기들 밑으로 보고 무례하게 나오는 조종사들이 있다.
어디서 군대서 하던 버릇을 들이밀고 있어. 여긴 군대가 아니라고!
군대야 계급순이니까 까라면 까는 거지만 여긴 민간항공이라구!!
여자 조종사 어쩌구 방송에서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신문에도 나오고 그러니까 뵈는 게 없나? 그런데 말야, 자꾸 보다 보니까 귀여운 구석도 있네.
저런 열정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암튼 연구해 봐야할 가치가 있는 여자다.
처음엔 이 정도였다. 멱살잡이로 시작된 이 여자와의 악연은 이 정도 관심에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째 그녀를 만난 곳은 시뮬레이터,
나는 그녀가 천방지축 조종사, 그저 그런 쌈닭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종사로서의 열정과 사명감, 근성, 거기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충만한
상당히 괜찮은 여자였다.
내 오랜 조립 친구인 격납고 정비사 최달호 아저씨 집에 얹혀살면서
일곱 살 난 계집아이를 키우는 불쌍한 싱글맘,
싱글맘인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사랑에 국경이 어딨고 나이가 어딨어?
싱글맘이 뭐 대순가?
나중에 알고 보니, 싱글맘도 아니고, 그냥 어렵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웃어라! 캔디더라. 그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니 더 짠하고 안 됐고, 보호해 주고 싶어졌다.
그래, 그녀 주위를 맴돌며,
위기에 처한 한다진 공주를 구하기 위해 멋진 백마 탄 왕자가 되었다.
내가 원래 별명이 300원만!이지만(맨 날 커피값 300원 구걸하니까)
쓸 땐, 특히 내 여자한테 쏠 땐, 가빠 터지게 확실하게 쏜다구!
(힘든 비행에 축 늘어진 그녀에게 BMW 촥촥 대령해 줄 수 있다니깐!)
그런데 이 여자....한사코 다른 곳만 보고 있다.....
김윤성만.... 보고 있다.
나는....그 여자 눈 속에 없다......
모스 부호를 두드려 간절하게 사랑을 전달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묵음이다.
그녀는 언제쯤 I LOVE YOU!, ‘ .___...___’ 내 사랑의 모스부호에 귀 기울여 줄까?
두 번 보게 되는 남자, 김윤성 기장
숙명적인 사랑의 라이벌!
나는 이런 스타일의 기장이 마음에 든다.
요점 간단, 명확 이해, 현명하고 재빠르다.
꽤나 유명세를 타는 기장이라고 들었는데 그 명성이 괜히 얻어진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하늘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당히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걸 미리미리 파악해서 안전하게 대처하는 것이 노련한 파일럿이다.
그런 면에서는 관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하는 가치인 승객의 안전이라는 공통분모가 또한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뭐, 인간 됨됨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어쨌든 맘에 든다.
그러나, 바뜨!!,
한 다진을 사이에 두고 숙명적인 사랑의 라이벌로 만난 이상,
강동수 인생에 양보란 없다.
정정당당하게 한 번 겨뤄 볼 작정이다.
싸나이 인생, 뭐 있어? 사랑에 목숨 한 번 걸어 보는 거야!
홍미주 여 | 33살 | 관제사 ✈ 캐스팅(예정) :
나는 홍미주, OZ 항공 홍인태 부사장 딸이다.
깐깐하고 도도하고 직선적이다.
현재 OZ 항공 경영전략팀 상무이사다.
하버드에서 MBA 했고, 머리 대박 좋아서 하는 기획마다 빵빵 홈런 쳐댄다.
우리 아버지는 홍인태는 부사장이고 우리 큰아버지는 사장 홍명진이다.
우리 집안이 손이 귀해 일가 통 털어 자손이라곤 나 하나다.
나라면 모두 껌벅 죽는다.
그래서 나는 집안에서건 회사에서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5살 때, 아빠랑 나들이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은혜 고아원이었다.
땟국에 절은 아이들도 인자하게 웃고 계신 수녀님도 모두 나를 잡아먹기 위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괴물 같았다.
무서웠다. 빨리 부모님이 나를 찾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실크 잠옷을 입고 푹신한 내 공주 침대에서 따듯하게 잠들고 싶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소리부터 질렀다.
못된 악당!, 저리 꺼져!!
그 후 얼마 있다가 뜨거운 국솥을 엎어 왼쪽 팔을 데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아픔 때문에 목이 터져라 울고 또 울었다.
그때, 4살 위인 고아원 오빠가 나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이상하게 그 등에서 아빠의 냄새가 났다. 안심이 되었다.
오빠가 무서워하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하며 자두맛 사탕을 건내주었다.
그 달콤하고 기분 좋게 시큼한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오빠는 4살, 7살 때 두 번 입양 되었다가 파양 되었다고 한다.
상처를 크게 받았는지 말도 잘 안 하고 웃지도 않았다. 항상 슬픈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내 팔에 난 화상자국이 징그럽다며 놀리고 때렸다.
그럴 때마다 오빠가 바람처럼 나타나서 아이들을 혼내고 나를 지켜 주었다.
나는 아빠 냄새가 나는 그 오빠가 좋았다. 졸졸 따라 다녔다.
항상 살갑게 대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오빠 옆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6개월을 고아원에서 보내고 드디어 부모님이 나를 찾아왔다.
나를 잃어버리고 아빠는 그 동안 폐인처럼 살았다고 한다.
나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 안 찾아다닌 곳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애지중지 무남독녀 외딸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는 생각 못하는 아직 어린 꼬마였다.
나는 아빠가 미워서 조막손을 움켜쥐고 아빠 등을 때리고 또 때렸다.
아빠는 미안하다며 자꾸 울기만 하셨다.
집으로 돌아왔다.
실크 잠옷을 입고 푹신한 내 공주 침대에서 몇 날 며칠을 잠만 잤다.
눈을 떠 보니 6개월 전 그대로였다.
빨강,하양 내 공주 드레스도 옷장에 그대로 걸려 있었고, 사랑스런 헬로 미미 인형도 내 품 안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 봐도 그 오빠가 없었다.
고아원을 떠나올 때 오빠가 잘 가라며 손에 쥐어 준 자두맛 사탕 두 개만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비록 6개월이었지만 아빠는 나를 잃어버린 죄 갚음 하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인 사람처럼 한 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과보호 속에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두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무서웠다. 불안장애 치료를 계속 받았다.
팔에 성형 수술도 다섯 번이나 했다.
하지만 화상 자국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 화상 때문에 지금도 여름엔 반팔을 못 입는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나에게 이 상처는 볼 때 마다 욱신거리는 지독한 트라우마다.
그 못되고 입 큰 괴물들이 우~하고 또 다시 달려들 것만 같아 무섭다.
약으로도 치료 안 되는 불안장애, 그럴 때마다 나는 자두맛 사탕을 찾아 물었다.
그러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이 되고 무서움이 가셨다.
로얄패밀리가의 아이들이 그렇듯 엘리트 코스만 밟으며 순탄하게 성장했다.
불안장애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당당하고 거칠 것 없는, 똑 소리 나는 엘리트 우먼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급 불안해지면 자두맛 사탕을 찾는다.
내 오랜 버릇이 되어 버렸다.
사사건건 김윤성 기장과 마찰을 빚었다.
아무리 파격적으로 스카우트 되어온 기장이라지만 감히 차기 오즈 항공의 오너가 될지도 모를 사람 앞에서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명분? 좋지, 하지만 너 명분 그거 하면서 잘난 척하는 밥값, 우리 오즈에서 주는 거거든?
김윤성은 지금껏 내가 봐 왔던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구석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비굴하게 굴 때도 그는 항상 당당했다.
오기가 생겼다.
내 앞에 무릎을 꿇어앉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오기 부릴 상대가 아닌, 한 남자로서.....
할 말만 똑부러지게 하면서 전혀 웃지도 않고 슬퍼 보이는 그 눈빛은
문득 어린 시절 고아원 그 오빠가 생각나게 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지금 왜 그 오빠 생각이 나는 걸까?
생각하기도 싫은 무서운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갑자기 그 고아원이 궁금해졌다.
아니, 그 오빠가 궁금해졌다.
그때는 고마웠다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떠나왔었는데......
오래 갚지 못한 빚처럼 마음 한 구석이 늘 무거웠다.
그래서 그 고아원을 찾아 나섰는데 그곳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김윤성을 만났다.
아니 왜 이 사람이 여기에.....
그가...김윤성이, 그 오빠란다.
그 이름은 잊었지만....자세히 뜯어보니 그 오빠가 맞다.
자두맛 사탕을 건내 주며 걱정스럽게 나를 보던, 그 슬픈 눈동자의 소년이 맞다.
나도 놀랐고 그도 놀랐고....그 후로 나는 자주 그를 찾아 서성거렸다.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그와 함께 밥 먹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뻘쭘해 하는 그를 졸라 자주맛 사탕도 두 봉지나 얻었다.
나는 그를 갖고 싶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더 이상 불안장애 약을 먹지 않아도 됐고
자두맛 사탕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모든 게 좋았다. 그가 욕심났다.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빠가 눈치 챘다.
제 발등 제가 찍었다는 심정이실 거다.
아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자기 사람이 필요해서 윤성 오빠를 스카우트 해 온 것인데, 예상치도 못 한 곳에서 동티가 나고 말았으니...
아빠는 고아에 별 볼 일 없는 배경을 가진 윤성 오빠가 무남독녀 외동딸을 먼저 넘봤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를 쳐내기 위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셨다.
나는 윤성 오빠를 보호하고 나섰고 그 바람에 정겹기만 했던 우리 부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욕심을 내면 낼수록 그는 저 만치 도망갔다. 나를 경계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만한 조건의 여자 단연코 못 만난다.
나를 잡으면 일생이 보장되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신분상승, 대박 인생이 펼쳐질 텐데,
한사코 나를 멀리한다. 분명이 다른 이유가 있다.
알고 보니 그, 다른 여자를 가슴에 품고 있다.
오즈항공 한다진 부기장....
부모 없이 어린 동생 하나 키우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저 별 볼 일 없는 소녀가장을 사랑한단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갖고 싶은 것 한 번도 포기해 본 적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는 꼭 저 남자, 김윤성을 갖고 말 것이다.
최지원 여| 34살 | 승무원 사무장 ✈ 캐스팅(예정) :
나는 최지원, 7년 동안 브랜치(OZ항공의 자회사인 저가항공)를 두루 거치고 이번에
승무원 사무장이 되어 본사로 돌아왔다.
이곳은 내가 승무원으로서 재기발랄하게 첫걸음을 떼었던 곳임과 동시에
뼈아픈 고통을 안겨 주었던 곳이다.
제일항공에서 있었던 7년 전의 사고, 그때 나는 2년차 덜렁이 승무원이었다.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의 그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아직도 나는 덜렁대고, 잘 웃고,
잘 떠들고, 사는 게 즐겁기만 한 보통의 여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덜렁대지도, 잘 웃지도, 떠들지도, 사는 게 마냥 즐겁지도 않다.
뜨겁게 달군 무쇠 못에 갈빗장이 찢겨져나가는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은 안다.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7년 전, 비행기 안에서 나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한 산모가 죽었다.
천신만고 끝에 태어난 산모의 아기는 신생아 패혈증에 걸렸다.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고,
끝내 나는 사표를 냈다.
그러나 산모의 남편, 한규필 기장님의 진심어린 설득으로 OZ항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밤에 불을 끄고 잠을 자지 못한다.
두서없는 악몽에 시달리며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곳에서는 자폐에 걸린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이런 고통스런 나날이 그나마 마음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한규필 기장님의 가족들 슬픔에 비하면 한낱 아이들 투정에 불과할 것이니...
분명히 나는 변했다.
깐깐하고 차가우며 일에 있어서 무서울 정도의 완벽주의자가 되었다.
더 이상 예전의 덜렁이 승무원이 아니다. 30second review(비상사태 발생시 행동요령에 대해 30초 동안 리뷰 하여 만일의 사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를 철저히 하는 것도 사고 이후에 생긴 습관이다.
다시는 7년 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절대 다시는 그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엄격한 원칙주의자다.
승객서비스는 물로, 메이크업 상태나 립스틱 색깔, 손톱의 청결상태까지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동료들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대강대강은 없다.
지난 7년 간 단 한 번의 지각, 결근도 없었다.
동료들이 나를 기피하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OZ 본사로 돌아오면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한다진’조종사다.
그녀가 누구인가? 한규필 기장님의 딸이다.
그녀도 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소리 내서 엉엉 울지도 못하고 있던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그 눈빛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 하고 싶었다.
나를 용서하라고..., 그러나 차마 용기가 없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이제는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다가가야겠다.
그리고 훌륭한 파일럿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다.
객실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맘 놓고 조종간을 붙잡고 있으라고.
그녀가 나의 마음을 받아 줄지는 모르겠다.
아니,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나는 묵묵히, 그녀가 가는 길을 지켜 줄 것이다.
***한다진의 가족***
한규필 남 | 55살 | 전직 파일럿 ✈ 캐스팅(예정) :
“경험은 지식과 기술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00항공 여조종사 한다진의 아버지이며 전직 파일럿이다.
풍부한 경험과 인자한 성품, 뛰어난 실력 면에서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전설적인 파일럿이다.
7년 전 사랑하는 제자 김윤성의 부기장 첫 비행에 캡틴으로 조종간을 잡았는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아내를 잃게 된다.
아내 보다는 300명 승객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던 숭고한 직업정신의 소유자.
현재 사망.
양미혜 여 | 50살 | 동수의 어머니 ✈ 캐스팅(예정) :
한다진 조종사의 엄마이며 한규필 조종사의 아내이다.
현모양처 타입으로 명랑하고 따듯한 성격이다.
나이 마흔 둘에 늦둥이 뽀송이(태명)를 가졌다.
한 다진이의 졸업식을 보러가던 중 응급분만, 하혈과 감염으로 죽게 된다.
한다연(뽀송이) 여| 7살 | 유치원생 ✈ 캐스팅(예정) :
나는 한 다연, 태명은 뽀송이다.
한다진 조종사의 여동생이다.
우리 아버지는 한규필인데, 예전에 엄청 잘 나갔던 조종사였다고 언니야가 말해줬다.
지금 우리 엄마야 아빠야는 하늘나라에 계신다.
나의 고향은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이다.
엄마가 나를 비행기 안에서 낳으셨기 때문이다.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의 고향은 비행기라고 자랑하면 친구들은, 와~하고 탄성을 질러댄다.
괜히 으쓱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젠가 꼭 한 번 고향에 가 보고 싶다.
약 잘 먹고 말 잘 들으면 데려가 주겠다고 우리 언니야가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우리 언니야는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까 나는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 된다.
내가 태어날 때, 그 뭐시라 하덩가?..
아, 신생아 패혈증, 그래서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단다.
힘들어도 내가 아프면 언니야가 걱정하니까 착한 다연이는 오늘도 열심히 약을 먹는다.
패혈증 후유증으로 온갖 잡다한 병을 다 달고 살지만 또래 아이들 보다 똑똑하고 명랑하고
속 깊다. ...고 우리 언니야가 그랬다.
양말자 여 / 40대 후반/ 무직
다진의 사고뭉치 이모. 돈 사고를 자주 쳐서 가뜩이나 힘든 다진을 더 곤란하게 만든다.
뽀송이의 양육을 돕는 인물. 철없지만 천성은 곱고 따듯하다.
***한다진의 동기***
장민아 여| 31살 | 부기장 ✈ 캐스팅(예정) :
나는 장민아다.
한다진과는 동기생, 베프, 우리 회사 통 털어 여자 기장 셋인데, 그 중 하나.
잘난 척, 날라리, 사고뭉치, 하지만 은근 소심한 구석이 많다.
턱턱 일은 저질러 놓고 수습 못하는 스타일(다진이가 도와준다)
나는 뭐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조종사가 되었다.
다진이처럼 투철한 목적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회사도 다녀 보고 사업도 해 보고, 근데 재미가 별로 없었다.
파일럿이 되면..뭐 일단 폼은 나니까.
연봉도 높고 사람들한테 인기도 많고...
근데 이거 막상 들어와 보니까 상상 초월, 그 이상으로 빡세다.
수 없이 되풀이 되는 체크와 훈련, 연애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내가 ...
남자 꼬실 시간도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래도 제복을 딱 입고 게이트에 서면 뭔가 뭉근한 것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온다. 예전 같으면 재미없다, 당장 때려치웠을 텐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나도 어느새 초보 파일럿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다.
허재수 | 31살 | 한다진의 부기장 동기
나는 허재수, 00항공 부기장, 다진과는 동기로 베스트 프렌드다.
나는 항상 다진이 부럽다. 다진은 나와는 정반대 성격이다.
당차고 활발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기죽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나는 겁도 많고 소심하고 쉽게 상처 받는다.
어려서부터 조종사가 되고 싶어 천신만고 끝에 부기장이 되었지만 정말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것인지, 요즘은 정체성의 방황을 겪고 있다. 그때마다 다진이 위로해 주고 챙겨 준다.
다진이 없었으면 나는 진작에 낙오되고 말았을 것이다.
기장이 되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그 날이 오기는 오는 것일까?
최달호 남 | 60살 | 정비반장
항공기 정비에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OZ항공사 베테랑 정비사로,
죽은 한규필과는 죽마고우.
한 집에 살면서 다진과 뽀송이를 보살피고 챙겨준다.
최민숙 여 | 46살 | 최초의 여자 기장
금녀의 벽을 허문 최초의 여기장. 다진이 닮고 싶은 롤모델
***홍미주의 가족**
홍인태 남| 54살 | 항공사 부사장 ✈ 캐스팅(예정) :
나는 홍미주의 아버지이고 현재 00항공사 부사장이다.
욕심 많고 매사 독단적이다.
이런 나를 두고 욕들도 많이 하지만 난 이런 내가 별로 싫지 않다.
나나 하니까 이 정도 규모의 항공사 적자 안 내고 건실하게 키워 온 거다.
합리적인 운영? 해 봐라 합리가 되나.
수 천 명 직원들 꼬박 꼬박 월급 주는 거, 그거 합리적인 운영만으로 안 된다.
쫄 때 쪼고, 필요 없어도 계속 쫘 놔야 게으름을 안 피운다.
사실 오즈 항공은 우리 아버지가 세운 회사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를 믿지 못하셨고, 사촌 형인 홍명진에게 회사를 물려 주셨다.
내가 오즈를 말아먹을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나는 반드시 오즈를 되찾을 것이다.
아버지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말 것이다.
우리 사랑하는 딸 홍미주가 홍명진 라인의 김윤성기장을 좋아한단다.
갖고 싶단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감히 고아 주제에 우리 딸을 넘봐?
우리 딸이 어떤 딸인데...
5살 때 데리고 나갔다가 잃어버리고 방방곡곡 미친놈처럼 뒤집고 다녀서 어렵게 찾은
내 딸이다.
불안장애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팔에 남은 화상 자국을 볼 때마다 가슴을 뜯으며 울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딸을 감히 고아 주제에.....김윤성, 너 각오해!!!
김순옥 여| 53살 | 홍인태의 아내.
따듯하고 인자한 성격. 홍미주의 엄마. 현재 외할머니 간병차 미국에 가 있다.
홍명진 남| 58살 | 항공사 사장
인자하고 마음 따듯한 초식형 인간형. 홍미주의 큰 아버지.
홍인태와는 다르게 합리성, 순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윤성을 스카우트 해 오고 홍인태의 서슬에서 윤성의 보호막이 되어 준다.
항공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강동수의 가족***
강팔봉 남 | 55살 | 강동수의 아버지
김포가 개발되면서 백억대 갑부가 되었다.
아기자기 매화꽃 닮은 우리 영숙씨, 쳐다보기도 아까운 곱디고운 우리 영숙씨,
먼저 떠나보내고 홀몸으로 동수를 키웠다.
순애보적인 인물이나 나중에 다진 이모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고물상으로 어렵게 살림 꾸려온 지난 세월 탓에 검소함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갑부가
된 지금도 얼핏 봐도, 공들여 자세히 봐도, 후줄근하고 촌스러운 시골 아저씨다.
참한 며느리감 찾는다고 공항을 동부 서주.
이영숙 여 | 54살 | 강동수의 어머니
동수를 낳다가 사망.
***객실 승무원***
조완준 남| 29살 | 스튜어드 ✈ 캐스팅(예정) :
나는 조완준, 남승무원이다.
젊고 잘 빠진데다 청일점이라 여성 승객들에게 특히나 인기가 많다.
남녀노소에게 친절하지만 특히 여성에겐 조금 더 친절한 약간의 바람기를 가지고 있다. 유머감각 있고 쾌활해 늘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한다.
나는 원래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왜? 폼나잖어. 그러나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시력이 뒷받침 해주지 못해서 결국 파일럿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하늘을 나는 꿈을 버리지 못해 남자 승무원이 되었다.
유치원 선생도 남자가 있고 가사 도우미도 남자가 있는데..., 처음엔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바람둥이고 속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직업적인 철학이 있다.
그외 승무원 다수(주리, 지나, 사랑...
그외 관제사 다수(이현수 외)
그외 항공인력 다수.
그외(막둥이 할매외)
✈ 줄거리(기승전결)
(기)
에어버스사 비행교육원 마지막 훈련(commercial multi engine flight training),
솔로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다진은 수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안게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졸업식에 참석차 비행기를 탔던 만삭의 엄마가 응급분만으로 인해
칠삭둥이 뽀송이(동생)를 간신히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숨을 거둔다.
엄마가 그렇게 된 데에는 객실 승무원 최지원의 무책임한 방치와, 부기장의 어이없는 실수,
한규필 캡틴 기장의 신속하지 못한 조치에 있었지만
다진은 자기의 졸업식 탓인 것만 같아 고통스럽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왜냐하면....엄마가 탔던 그 비행기의 캡틴 기장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1차적인 사고의 책임은 풋내기 부기장이었지만,
엄마보다 300명 승객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결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훗날, 다진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 놓이면서 그 당시 아버지가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실체를 깨닫게 되었지만 당시엔 쉽게 아버지가 납득되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나라 최고의 파일럿이,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가 타고 있는 비행기 하나를 지켜내지 못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해서든 엄마를 구해냈을 것인데.
엄마 미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진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아버지는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슬픔과 원망에 오열하다 지쳐 돌아보니,
강보에 싸인 핏덩어리 뽀송이가 허기에 지쳐 빽빽 마른 울음만 토해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파일럿이 되겠다던 그 불타던 열정과 패기는 비정한 현실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이 모든 불행한 일들은 자기로 인해 비롯됐다.
내 졸업식만 아니었으면...아니었으면.....
뼈에 사무친 죄책감은 다진을 절망의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시켰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힘을 내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내 동생 뽀송이..
패혈증 후유증 탓에 하루가 멀게 응급실 신세를 지고, 쌕쌕 마른 숨을 쉬는 것조차 위태로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내 작은 천사 뽀송이를 위해 힘을 내서 다진은 다시 일어섰다.
이룰 수는 없을지라도 버릴 수는 없는 것이 꿈이다.
나의 소중한 꿈.....
내가 흘린 땀방울과 열정은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것이라며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던 엄마,
겉으론 힘든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누구 보다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아버지,
그리고 지 언니야가 세상에서 젤로 멋지고 훌륭한 줄 아는 뽀송이를 위해
못 다한 파일럿의 꿈에 재도전한다.
뽀송이가 무슨 카드도 아니고 이 집 저 집 돌려 막기로 지인, 친척들의 신세를 지고 경제적 어려움을
힘들게 극복하면서 20대 1의 훈련원 과정을 통과, 마침내 OZ 항공 부기장으로 입성한다
(7년의 과정)
파일럿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씩 집을 비워야 하는 직업이다.
겨우 일곱 살 밖에 안 된 뽀송이를 혼자 남겨둘 수 없어 그 동안 여기 저기 안 맡겨 본 곳이 없다.
그래도 사고뭉치 이모지만 같이 살면서 뽀송이를 돌봐주는 바람에 한 2 년 걱정을 더나 했더니만
또 돈 사고를 치고 잠적했다.
잠적도 잠적이지만 이번엔 다진의 월급까지 차압당하게 만들었다.
불쌍한 소녀가장도 모자라 이젠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다.
화가 나서 당장 뒤로 넘어갈 지경이다. 어찌됐건 빨리 돌아와 주기나 했으면.....
당장 성수기의 살인적인 비행 스케줄을 소화해내자면 또 우리 뽀송이를 여기 저기 돌려막기 해야
하려나 보다.
한참 부모 앞에서 재롱이나 피우고 티 없이 밝게 자라야 할 나이이건만.... 미안하고 짠해 죽겠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우리 뽀송이,
되레 내 지친 어깨를 토닥여 주고 백만 불짜리 해맑은 웃음, 넘치게 쏘아 주신다.
우야든둥...큰 일이다.
회사에 한참 감원 바람이 불어 파일럿 수요를 줄인다 난린데...
기장 부기장 할 것 없이 CRM 안 되고 인사고가 미달된 파일럿들은
(우리는 이들을 불량감자라 부른다) 가차 없이 쳐 낸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려오고..
갑작스런 뽀송이 응급실행 때문에 지각이 두 번 있었고
(그러나 절대 스케줄 펑크는 내지 않는다. 뽀송이를 포대기에 들쳐 업고라고 달려간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성격 탓에 고참 기장과의 불협화음도 몇 번 있었고....
다진의 인사고가는 동기들 중에 최악이다,
1순위 감원 대상이다. 조심해야지, 나는 불쌍한 소녀가장이고 갚을 빚도 무지 많고....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지만 긴 건 기고, 아닌 건, 아닌 거고, 승객의 생명을 담보로 대충대충 눈치 보며 묻어가기 식의
파일럿은 정말 곤란하지 않은가?
기장과 부기장의 평등한 파트너 쉽이 안전 비행을 담보한다고 다진은 굳게 믿는다.
오늘 비행은 다진에게 매우 뜻 깊다.
사내가 떠들썩할 정도로 유명한 스타 기장,
아메리카 항공에서 스카우트 되어 오는 김윤성과의 첫 비행이다.
들리는 소문에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사람이라는데... 다진은 상관 안 한다.
김윤성 기장의 뛰어난 비행실력을 옆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었다.
브리핑을 위해 들어온 김윤성을 보고 다진은 화들짝 놀란다.
바로 어제 호텔 앞에서 치한으로 오해해 한 방 갈겼던 그 변태자식이다.
완전 제대로 쪽 팔렸었는데 하필....
김윤성은 듣던 것 보다 더 까다롭고 카리스마 강한 사람이었다.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캡틴 기장의 비위를 맞춰 안전한 비행을 하자는 것이 다진의 평소 소신인데,
이거야 원, 벌써부터 오금이 저린다.
아니다, 이러 때일수록 더 당당해야 한다.
그러나 긴장한 탓인지 PACK 버튼을 끈다는 것이 APU(보조엔진 : 에어컨과 전기를 공급하는 장비로
언제나 켜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다시 이륙하기까지 2-3분이 더 걸리고 객실엔 전기와 에어컨이
들어오지 않아 승객이 매우 불편하고 불안해한다.)버튼을 꺼버렸다.
객실에서는 전기와 에어컨이 나갔다고 난리법석이다.
“내려!”
“에?”
“내리라고! 너 같은 아마추어랑은 비행 못해!”
다행히 급히 서울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응급환자가 타고 있어
윤성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륙허가를 요청한다.
그러나 긴 하루가 되리라는 예상은 질기게 따라 붙었다.
막 착륙허가를 받고 하강 중인데, 타워 강동수 관제사로부터 지시가 떨어졌다.
“착륙허가를 보류하라. 택시 웨이가 막혔다!”
측풍 착륙을 무리하게 시도했던 유로항공 엔진 파이어 사고가 원인이었다.
“장난하나 지금! ”
“이게 장난처럼 보이나! 택시 웨이가 막혔다!”
동수도 화가 머리끝까지 뻗혔다.
그거 싸가지 하고는...., 그때 갑자기 관제탑과의 통신이 두절된다.
무선장비에 문제가 생겼다.
동수는 일단 비행기를 안전하게 내려놓는 것이 급선무라 다른 통신수단을 찾아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빛총 쏴!”
(빛총:항공기와 통신이 두절 된 경우 조종사에게 관제탑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위급상황에 씀.
연속 녹색등: 착륙허가,
연속 적색등: 다른 항공기에게 진로양보, 선회, 적색등, 녹색등 교차: 최대주의 요망)
“빛총입니다. 착륙허가 났습니다!!”
긴장된 눈빛으로 조종간을 꽉 잡은 윤성과 다진은 유일한 생명줄인 활주로 유도등을 향해
온 정신을 집중, 무사히 착륙을 한다.
다진은 비행기를 위험에 빠트려 놓고 나 몰라라 교신까지 꺼버린 관제사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당장 내려와!!”
파르르해서 타워 계단을 어떻게 뛰어 내려왔는지도 모르게 동수는 지금 매우 흥분해 있다.
파르르 하기는 다진도 마찬가지, 주기장 저편,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당신이 관제사 강동수야?”
“그렇다면 어쩔 건데?”
다진은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동수의 멱살부터 낚아챘다.
“당장 그 손 못 놔!!” 돌아보니 서슬 퍼래서 서 있는 윤성이다.
“명백한 관제사의 실수입니다. 음성기록장치 분석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다진은 소장 앞에서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쪽 실수 여부가 아니라 조종사 품위 손상 문제였다.
조종사는 민간 외교관이기 때문에 제복을 입고 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정해야 하고
걸음걸이 하나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제복을 입고 쌈질을 했으니...,
설상가상으로 승객이 찍은 싸움 장면이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졌다.
‘공항의 혈투’라는 제목으로 이상하게 패러디까지 돼서 수많은 조종사들 얼굴에 먹칠을 했다.
여자 조종사의 멱살잡이라..., 세인들의 입방아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부기장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윤성의 징계도 불가피하다.
결국 일주일 운항 정지라는 징계를 먹었다.
검열기장으로 스카우트 되어 왔지만 규율은 규율이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윤성이 조인트를 날린다.
“너는 내가 본 파일럿 중에 가장 바닥이다! 부끄러운 줄 알고 당장 그 제복 벗어!!”
윤성이 조목조목 다진의 실수를 열거할 때는 맞은 조인트 보다 얼굴이 더 화딱 거렸다.
사실, 그 순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응급환자는 촌각을 다투고 활주로는 막히고....
빨리 착륙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마음만 바빴다.
지친 몸과 맘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이모가 돈 사고를 치고 도망가고 집안 살림살이는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걱정하는 뽀송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마당을 치우면서 신어 본 아버지의 구두.....크고...따듯하다.....
다음 날 사건 경위서를 제출하러 운항실로 갔다.
운항실로 들어서자마자 다진은 깜짝 놀란다.
운항실 한쪽 소파에 제복을 반듯하게 갖춰 입은 윤성이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운항 직원 말을 듣자 하니, 비록 징계는 먹었지만,
혹시 생길지 모르는 스케줄 미스(예상치 못한 일로 조종사 결원이 생기는 경우. 요즘은 성수기라
조종사 수요가 많이 부족하다)에 대비해서 아침부터 출근해 저러고 있는 거라구.
“진짜 프로답지 않아요?”
높은 지위를 가졌지만 원칙에 충실한 윤성의 태도에 다진은 할 말을 잊었다.
얼굴이 화끈 거린다. 부끄러워서 어디든 숨고만 싶었다.
‘나는 왜 이 정도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는...인정하기 싫지만...확실히 프로다. 나 같은 애송이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내가 사람을 잘 못 보지 않았어. 바닥 중에 바닥”
윤성의 독설이 다진의 가슴을 후벼파고 한 번 더 부끄럽게 한다.
다진은 생각이 많다. 적어도 근성 있는 파일럿이라고 자부해 왔었는데...,
그러나 이렇게 자학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나는 한다면 하는 한다진이다.
어긋난 걸 알았으면 다시 돌려놓으면 된다.
다진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았다.
다음 날 일찍, 다진은 제복을 챙겨 입고 운항실로 출근을 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윤성이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진이 나타나자 윤성의 표정이 복잡해 졌다.
의외라는 표정이 반,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 반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진은 윤성과 조금 떨어진 곳에 반듯하게 앉았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스케줄 미스는 생기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죽치고 앉아만 있자니 여기저기 좀이 쑤셨다.
하루 이틀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일주일이 넘어가자 윤성도 다진이 새롭게 보였다.
녀석...독기는 있구만.
일주일 만에 화물기 운항스케줄에 미스가 생겼다.
이동찬 기장과 다진, 김윤성 기장과 장대연 부기장이 한 셋으로 운항되는 스케줄이었다.
비행 중, 장대연 부기장이 손목 부상을 당한다.
다진이 걱정을 해 주자 장대연, 상관 말란다.
인상도 고약하더니 시니컬하기까지 하다.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다.
다른 날 보다 더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은 오늘이 하반기 시뮬 체크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뮬체크 2회 fail이면 제복을 벗어야 하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시뮬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며칠 동안 시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커리큘럼에 대해서 완벽하게 준비했다.
장대연 부기장을 다시 만난 것은 시뮬 센터에서였다.
왜 하필이면....편한 기장들도 많은데...하필은 현실이 되었다.
장대연 기장의 실수로 1차 fail을 먹었다. 하늘이 노래지는데,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장대연 기장의 태도다.
자긴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아니, 한 사람 fail 되면 다른 파트너도 fail인데 어쩜 미안하단 소리 한 마디가 없냐? 이런 된장할....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는데 타워 관제사 강동수가 다진을 놀린다.
“대체 당신 눈엔 우리가 뭘로 보여!금색 견장에 폼 나는 제복?세계를 내 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만끽하는 자유?고액 연봉? 귀족 노동자?제발 허우대만 보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라고!!”
동수는 정색하고 말하는 다진을 보고 미안해진다.
사실 그런 뜻이 아닌데....
이 여자, 개념 없는 파일럿은 아닌가 보다.
“다른 파트너 찾아봐요. 난 이미 포기 했으니까”
2차 시뮬 연습 시간까지 다 잡아 놓고 기다렸는데 빵구를 내더니 이걸 지금 말이라고 한다. 장대연 기장이.
“머, 뭐요? 이럴 거면 처음부터 나오질 말든가! 왜 나만 독박 쓰게 만드냐구욧!!
“내가 가서 일부러 2차도 FAIL 먹으면 당신도 끝장이야. 안 그래?”
이거 완전 똥 밟았다.
막둥할매를 통해서 장대연의 비하인드 스토리(상처를 하고 일곱 살 아들 하나를 키우는데 혼자는
너무 힘이 들어서 조종사 생활을 그만두려 한다는 것)를 듣기 전까지 장대연 기장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미안했다.
엄마 돌아가시고 괴로움에 숨죽여 울곤 했던 아버지의 또 다른 분신 하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시뮬 탈락은 조종사 최대의 수칩니다. 옷을 벗을 때 벗더라도 조종사의 자존심은 끝까지 지키십시오. 당신을 위해! 그리고 보람이를 위해!”
다행히 다진의 진심이 통해서 멋지게 2차 테스트를 함께 통과한다.
“끝까지 조종사의 자존심을 지키게 해 줘서 고맙다”
장대연은 다진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 쓸쓸하게 돌아선다.
장대연 기장을 다시 만난 건 달라스 4박 5일짜리 비행, 손님으로 만났다.
아들 보람이와 외가집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다진은 더 이상 막지 못했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해서 기꺼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운항 중, 보람이가 비행기 문을 열려고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내는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고 보람이는 겁에 질려 악다구니로 울어댔다.
사연인 즉, 보람이가 글을 깨우치기 시작하면서 하늘에 계신 엄마 앞으로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들을 모아 오늘 하늘로 날려 보내려고 했던 것.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장대연 기장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지는 상상되고도 남았다.
장대연 기장의 진심어린 사과의 말에 승객들의 화는 자자 들었고 사연을 들은 승객들 몇은 눈물까지
찍어댔다.
다진 역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어떻게 해서든 보람이의 소원을 들어 주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델타 비행훈련원 경비행기를 빌려 하늘로 편지를 날려 보냈다.
“나 조종사가 되길 참 잘 한 거 같아. 이 손으로 우리 아들 소원 들어 줬으니까”
“저도 조종사가 되길 참 잘 했습니다. 이런 멋진 감동, 어디서 맛 볼 수 있겠습니까?”
다진은 장대연과 마주 보며 활짝 웃는다.
일각에선 윤성이 그들을 조용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윤성이 다진 몰래 인맥을 동원해 오늘의 비행을 가능하게 했던 것인데,
이를 알 리 없는 다진은 윤성이 여전히 비정하고 싸가지 없는 놈이다.
달라스 시내에서 뽀송이가 사 달라고 했던 바니 인형과 소원을 덜어주는 목각인형을 사서
체류중인 호텔로 돌아온 다진은 오늘 장대연과 보람에게 비행기 선물을 한 것이 윤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진은 윤성이 생각보다 냉혈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독종으로 만들었을까? 다진은 새삼 윤성이 궁금하다.
(승-전)
테마 조종사의 마인트 콘트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손끝에 수 백 명 승객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종사도 희로애락에 웃고 우는 평범한 인간,
때로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거센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른다.
이 위기와 시련을 이겨내고 냉철한 주체로 거듭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프로가 될 수 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다진은 두 번 세 번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분명 그 여자, 승무원 최지원이 맞다.
7년 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서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
그 여자가 승무원 사무장이 돼서 돌아왔다.
아무리 진정을 하고 긴 호흡으로 숨을 가다듬어 보지만 두 주먹에 불끈불끈 쥐어지는 분노는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오늘 비행은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
조종사의 심리상태가 비행운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달래 조종간에 앉았다.
더군다나 오늘은 늘 존경해 마지않던 최민숙 기장님이 김윤성 기장의 검열을 하는 날,
다른 날 보다도 잘 해야 하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7년 전 차갑게 굳어 있던 엄마의 주검과 인큐베이터에서 생사를 왔다 갔다 하던 뽀송이의 얼굴이
겹친다. 아니나 다를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고도미스 실수를 저질렀다.
큰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김윤성 기장이 신속히 대처했지만 호된 질타는 피해갈 수 없었다.
최지원 앞에서도 큰 망신을 당하고 밑도 끝도 없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그깟 최지원이 뭐라고...다진은 애써 자신을 추스르려 노력했지만 무릎이 자꾸 꺾였다.
뒤바뀐 스케줄로 최지원과 다시 한 번 맞닥뜨리게 되자 다진은 승무원 off load(승무원 거부)를
행사한다.
아무 이유도 모르고 졸지에 무능한 승무원이 되어 버린 최지원 팀은 다진에게 강하게 반발한다.
승무원의 자존심과 관계된 일이라 이해는 한다.
그러나 전 번과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다진은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승무원 off load는 일파만파로 퍼져 모든 승무원들이 벌떼 같이 다진을 공격해 온다.
물론 그 내면에는 그 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쌓여 왔던 칵핏 기장들에 대한 불만의 토로가 숨겨
있었지만, 어찌됐든 다진이 휘발유에 성냥불을 그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결국, 다진은 승무원 단체 보이콧으로 비행이 정지되는데....
테마... 몇 백 킬로가 넘는 비행기 동체를 가뿐히 들어 올리는 칵핏의 조종간(휠),
그 휠은 항상 사람을 향해 있다.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낱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헤어진 연인을 향해 달려가는 휠, 부모와 자식을 화해시키기 위해 달려가는 휠,
꿈의 이동수단으로써의 휠...
조종간은 항상 사람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윤성과 함께 엑스트라 승무원으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다진은 우연히 승객,
이복순 할머니를 돕게 된다. 복
순 할머니는 야간 치매기가 있는 분으로 생애 마지막 비행기 여행에 나선 것인데,
목적지는 캐나다에 있는 아들, 다섯 살 때 입양 보낸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을 만나기 위해서다.
다진이 복순 할머니의 애달픈 사연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할머니 아들을 대신 찾아 나서게 되는데,
아들은 복순 할머니를 만나지 않겠단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포기할 만도 하건만, 다진은 끝까지 할머니 아들을 기다리고
결국, 비행시간을 맞추지 못하게 된다.
조종사가 칵핏 무단이탈이면 중징계 중에 중징계,
평소 친분이 있는 임현식 기장이 중간에 나서 윤성을 말리지 않았다면 다진은 이번에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다진은 마음이 불편하다.
며칠 후,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는데,
복지사 말이 얼마 후면 할머니가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게 된단다.
눈이 아주 멀기 전에 아들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던 것인데...,
다진이 캐나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으로 설득해 보려 하지만, 아들은 아예 종적을 감췄다.
다진은 가장 빠른 캐나다행 비행기 스케줄을 확인한다.
근데 하필 김윤성이다.
또 어떤 날벼락이 떨어질까 두렵기도 하지만 할머니를 위해 용기를 낸다.
“칵핏의 휠은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해 날아가라고 있는 겁니다. 도와 주십시오!!”
그러나 윤성은 오지랖 떨지 말라며 차갑게 돌아선다......
테마.. 조종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강압적인 권력자에 타협하거나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
조종사가 굴복한다면 수 백 명 승객의 안전이 위협 받기 때문이다.
다수를 위해 운항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는 승객이라면 대통령, 아니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NO!!"할 수 있는 파일럿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복순 할머니와 아들의 기적 같은 화해와 감동을 지켜보던 다진은 더욱 윤성이 궁금해 졌다.
아니, 그렇게 냉정하게 거절을 하더니.., 이왕지사 도와줄 거 첨부터 오케이 했으면 좀 좋아?
어쩜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따듯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러나 윤성에 대한 편견이 깨진 것은 ‘따듯함’이 아니라 ‘용기 있는 파일럿’ 이 먼저였다.
어느 날, 다진이 이경철기장과 비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경철 기장은 회사에서 서열 5위 안에 드는 경험 많은 노기장이었다.
그런데 그 성격이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아니다 다를까 적극적으로 조언하는 다진을 건방지게 대든다며 최악의 부기장 평가서를 매긴다.
소장실에 불려 다니며 한참동안 자질 운운 소릴 들어야 했던 다진은 이경철을 찾아가
한바탕 해 줄 심산인데, 순정이 말리고 나선다.
하긴, 힘없는 부기장이...계란으로 바위 치기지... 그래, 그냥 잘 난 내가 참고 말자 했는데,
문제는 바로 터졌다.
그 날은 하필 윤성과의 비행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늦게 와서 무슨 브리핑이야!!
뜨악해서 돌아보니 엑스트라로 이동하는 이경철 기장이다.
“또 너냐?”
이젠 아주 다진을 잡아먹을 심산으로 반말에 인간적인 모욕도 서슴지 않는다.
다진은 화가 뻗히지만 서열 무시도 할 수 없고, 부글거리는 속을 간신히 참고 있는데,
윤성이 나서며 한 소리 한다.
“이 비행기의 듀티 승무원은 우립니다.
엑스트라 승무원이 왈가왈부 할 문제가 아닌 거 같습니다. 월권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이럴 수가! 김윤성이 내 편을 들었다.
실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라 다진은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그러나 잘못 건드렸지,
이경철은 자기 권력을 이용해 김윤성을 기장들 사이에서 왕따 시키며 궁지로 몰아갔다.
그래도 윤성은 끄떡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했다. 세긴 센 놈이다.
존경까지는 아니지만 윤성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던 어느 날,
회사의 큰 투자자인 SG 박회장이 윤성의 비행기에서 술에 잔뜩 취해 난동을 부린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자 윤성은 캡틴 명령으로 박회장에게 수갑을 채워 하기 시킨다.
회사에서는 가장 큰 투자자인 박회장을 잃을까봐 윤성을 회유하고 협박하지만 윤성은 끄떡하지 않고
항공법에 근거한 절차를 밟아 박회장을 정식으로 입건시키는데....
테마.. 비행기와 조종사의 인생은 서로 닮았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마치고 만신창이 된 몸으로 원망 한 마디 없이 돌아간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는가?
오늘, 그들의 뒷모습이 눈물 나게 아름답다.
박회장 일로 궁지에 몰린 윤성이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단체 식중독에 걸린 일본 관광객들을 무사히
인천공항에 내려놓았다.
모든 사람들의 입방아를 한 방에 잠재웠다.
윤성의 프로 근성에 새삼 존경심이 이는 다진이다.
일본 승객들을 끝까지 지켜냈던 삼칠이(737 기종)는 여기저기 깊은 상처를 입고 저들의 고향
프랑스 사토르(비행기들의 무덤으로 수명 다한 비행기들이 해체 되고 재활용 되는 곳)로 돌아갈
운명에 처한다.
‘비행기의 역사’라 할 만한 삼칠이, 최장 시간, 최장 거리 비행을 자랑하던 삼칠이다.
이제 그 임무를 마치고 만신창이 된 몸으로 돌아가야 하는 삼칠이가 안쓰러워 다진은 격납고를
찾는다. 삼칠아! 그 동안 수고 많았다.
최민숙 기장도 삼칠이와 인연이 깊단다.
처음 처녀비행을 했던 녀석이 삼칠이니까.
더군다나 이번 신체검사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 1년 동안 휴직을 해야 하는 홍수인 기장은 동병상련의
정이라도 느끼는 듯 삼칠이를 오랫동안 쓰다듬는다.
“꼭 돌아와 주셔야 합니다. 기장님은 제 롤모델이니까, 롤모델은 원래 책임이 큰 거니까”
최민숙 기장은 다진의 진심 가득한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삼칠이를 사토르로 보내는 일을 자청하는데,
부기장으로 다진을, 혹시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한 교관으로 윤성을 지목한다.
다진은 최민숙 기장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 할 수 있어 감개가 무량하다.
괴물 김윤성만 없으면 굉장히 안락하고 편안한 비행이 되련만...,
마침내 최민숙 기장과 윤성 다진을 태우고 무사히 이륙하는 삼칠이,
그러나 5시간 후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적란운에 갇혀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게 되는데...
테마.. ‘어제의 악연’이라고 쓰고 ‘오늘의 용서’라고 읽는다.
용서는 어렵다. 그러나 용서는 힘이 세다.
힘센 이 녀석을 만나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고 행복해진다.
그러니 그대, 용서여! 영원토록 번성하라!!
예상치 못한 객실의 실수로 다진에게 피해를 주게 된 지원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객실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맘 놓고 조종간을 붙잡고 있어요’
수 백 번도 더 되뇌었던 말이다.
정말로 다진이 훌륭한 조종사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 지원의 진심이다.
이것이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과거에 대한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홍수인 기장님의 저녁 초대에서 다진은 지원을 만나게 된다.
홍수인 기장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지원을 맞닥뜨리니 저도 모르게 허둥거려 졌다.
며칠 전 객실과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가뜩이나 최지원 보기가 껄끄러운데....
이 자리에서 다진은 지원과 동기, 7년 전 그 사고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이효리 사무장으로부터
몇 달 전 승무원 단체 보이콧 때 다진을 도와 준 것이 지원이며, 지원이 7년 전 사고로 인해 아직도
불을 끄고 잠을 자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혹독하게 괴롭히고 있다며 용서를 빌어 왔다.
“용서?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차갑게 돌아섰지만 다진의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하다.
‘누가 자기더러 그러구 살래?’
자꾸만 화가 나는 다진이다.
결국, 지원에게 한바탕 쏘아 붙이고 말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명치끝이 아파왔다.
냉혹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지원이다.
그것이 다 7년 전 사고 이후 생긴 혹독한 자기 학대에서 온 것이라니..
그렇다고 나의 값싼 동정심 따위 구걸할 생각은 마! 나는 절대 당신을 용서 못 해!!
얼마 후, 다진의 비행에 파트너가 된 지원 앞에 만삭의 산모가 탑승한다.
산모라니...지원은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거리고 숨이 가빠진다.
7년 전 사고 이후, 산모가 탑승한 비행은 기를 쓰고 피해왔었다.
자꾸만 7년 전 미혜의 사고가 생각나 무섭기만 했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러나, 3만 피트 순항 고도에 이르자 산모의 통증이 시작되고
7년 전과 똑같은 터불런스도 겪게 된다.
이제 아예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린 지원의 얼굴, 그러나 손끝 하나도 까딱 할 수 없는 지원이다.
객실로 부터 상황을 보고 받은 윤성과 다진은 비상상황에 대비한 회항을 서두른다.
그러나 의사도 없는 상태에서 산모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지금의 사태를 수습하고 지휘 할 사람은 지원이 유일한데,
그녀는 몸만 바들거리고 떨뿐, 예전의 철두철미한 사무장의 모습은 오간 데 없다.
이를 보다 못한 다진, 윤성의 제지도 뿌리치고 객실로 뛰쳐나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지원을
몰아붙인다. 다시 7년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으냐고.
지원은 다진에게 얻은 용기 덕분에 무사히 비행을 마친다.
비록 과거의 앙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가슴에 조금씩 화해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
(결)
‘나비효과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겠지?’
다진은 며칠 전 넘어지면서 꺾였던 오른쪽 손목을 자꾸만 눌러본다.
조금 시큰거리긴 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는데...
,어쨌든 꺾인 손목 탓에 유럽 비행 중 스팁턴 과정에서 힘을 쓰지 못 했고,
힘 약한 여자라서 그렇다는 핀잔과 함께 까다로운 원로 기장의 불신을 낳았다.
그리고 그 불신은 다진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고, 더 잘 해야 한다는 욕심을 만들었고,
욕심은 스팁턴에 몰두를 만들었고, 항상 여러 계기를 한꺼번에 봐야 하는 집중력을 분산시켰고,
그래서 교신 장치의 스위치가 OFF 상태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가뜩이나 바쁜 유럽섹터에서 교신 두절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고 유럽 상공에
전투기가 출동했다.
답신이 없으니 적으로 간주하고 바로 총격을 가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 일로 인해 기장과 다진은 책임을 지고 제복을 벗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윤성의 절대적인 지지와 다진의 인내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걱정으로 간신히 위기를 극복해 낸다.
오늘은 뽀송이를 태우고 파리로 날아간다.
언니야 말 잘 듣고 약 잘 먹은 것에 대한 상이다.
감기로 며칠 앓긴 했지만 비행기 탑승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소견서까지 받아 놓은
상태라 그리 걱정이 되진 않는다.
파리에 도착한 다진과 뽀송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엄마가 돌아가신 병원도 둘러본다.
여전히 가슴은 아프지만 그 동안 웃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지원은 뽀송이를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잘 자라 줘서 정말 고맙다.
그 동안 다진이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원의 숨은 노고가 많았다.
다진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아직은 웃으면서 지원의 손을 잡을 수는 없지만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7년 동안 그녀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린다.
최선을 다했으나 의도하지 않은 불행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심정을 백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 뽀송이가 갑자기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기상 악화에 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한 동체 결함까지, 다진은 7년 전 한규필을 떠 올린다.
아버지가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가족이 먼저냐? 수 백 명 승객의 안전이 먼저냐?
다진은 뒷덜미가 바짝 조여옴을 느끼며 몸을 크게 떤다.
“너는 잘 할 수 있다! 내가 도울 테니 어디 한 번 멋지게 해 봐!”
윤성은 다진에게 휠을 넘겨준다. 그 만큼 다진을 믿었다.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기 위해 모든 프로들이 동원됐다.
베테랑 최달호의 정비지원, 동수의 이머젼시 관제, 훌륭한 조력자 김윤성 기장,
빈틈없이 움직이는 통제센터, 뽀송이 곁은 프로 중에 프로 최지원이 지키고 있다.
이쯤 되면 할 만하다.
과연 다진은 악천후와 기체 결함을 이겨내고 무사히 착륙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