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하교회가 살아 있는것은?
주님의 은혜와 사명자의 유연함때문이다.
바울이 유연하고자 한 것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관계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목적이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성품(性品)까지 개혁했다. 또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할 줄 아는 사람,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잠언 25: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우리말성경> '마음이 무거운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은 추운 날에 겉옷을 빼앗거나 소다에 식초를 붓는 것과 같다'(잠25:20)
마음이 상한 자, 곧 마음이 무거운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한 사람의 인격을 다치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기는 것 같고, 알칼리성인 소다(soda)에 산성인 식초를 부어서 끓어오르게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노래 한다는 것은 위문공연의 개념이 아니다. 남의 상처나 괴로움을 아랑곳 하지 않고 혼자 흥겨워(exciting)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무거운 근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위로를 전해야 한다. 이게 상식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 혼자 흥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자신을 선전하는 것은 일종의 가해(加害,offense)라고 생각한다. 가해자인 셈이다. 이것은 마치 슬픔에 잠긴 사람 앞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리는지 모르겠지만 이또한 마음이 굳어짐에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성경은 우리에게 공감(共感,empathy)하라고 말씀한다.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메마르고 굳어진 심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이 유연한(flexible) 사람이라야 공감도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창칼로 세계를 호령하던 징기스칸(Genghis Khan)과 로마 황제들은 역사의 기억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노자와 공자 같이 유연함, 온유함, 인애를 가르친 이들의 교훈은 지금도 빛을 내고 있다. 생물진화사를 살펴 보더라도 공룡이나 거북이나 고슴도치같이 자기 몸을 단단하고 강하게 무장한 동물은 이미 멸종했거나 상당부분 퇴화해 버리고 말았다. 봄에 연초록 나뭇잎이 돌처럼 단단한 목질(木質)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보면 유연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자연의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ruminate) 된다.
성경에 주님의 뜻에 언제나 유연할 수 있는 마음을 ‘온유함’이라 한다. 그 온유함을 우리 안에 만들기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온유함은 우유부단함과는 다르다. 또한 주님의 뜻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주저없이 내 계획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유연함이다.
성경은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모세를 지목한다. 모세는 생후 3개월이 지나 애굽 공주의 양자(養子)로 입양되어 40세까지 왕궁에서 살았다. 그리고 40세에 살인죄로 왕궁에서 쫓겨났다. 왕궁에서 쫓겨난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고 80세에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진다.
모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모세의 이력(career)은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세는 레위인으로 태어났고, 왕자로 살아온 세월이 무려 40년이나 되고,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께 개인코칭(Private coaching)을 받은 사람이었다. 지도자로서의 이력을 다 갖춘 사람이 모세였다. 80년에 걸쳐 영적으로 육적으로 잘 준비된 인물이었다.
모세의 권위에 가장 먼저 도전해 온 사람들은 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었다. 이들은 모세가 후처를 맞이하자 그를 비판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도 말씀하셨다며 모세의 권위에 맞서려고 한다. 그러나 모세는 잠잠했다. 그들의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이런 태도를 성경은 온유함으로 평가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모세에게 도전한 미리암에게 문둥병(나병)을 내리심으로 영적인 질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신다.
(민수기 12:1-3)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9-10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우리는 유연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아마도 짐작컨대 모세가 형과 누나 앞에서 잠잠했던 것은 자신이 비난의 실마리(clue)를 제공했다는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모세는 80년을 훈련받은 사람으로서 지금 형과 누나도 하나님의 일을 배워가는 중이라고 여긴 까닭이 아닐까?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 저 사람도 삶을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 다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구약성경 욥기(Job)의 저자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솔로몬, 헤만, 이사야, 예레미야, 모세, 엘리후, 에스라 등 여러 사람이 고난의 책인 욥기의 저자로 추정되어 왔다. 하지만 구약성경 시리아 번역본과 지혜서인 탈무드(Talmud)에는 모세가 욥기의 저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욥은 모세와 동시대 인물로 평가되는데 모세가 욥의 삶을 살피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모세와 욥, 두 사람 모두 신앙인의 고난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님의 대표적인 가르침인 팔복(八福)은 강함이 아닌 유연한 삶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이웃에 대해 그들도 나처럼 연약하고 그들도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김상용 목사의 잠언 에세이 글 중에서)
유연함으로 민족복음 통일을 준비하며 기다리자!
북한 지하교회가 유연함으로 70년을 견디며 기도로 준비한 민족복음
통일이 속히 완숙되길 소망하며, 준비하며, 선교하는 통일선교회
lim선교사 부분편집글.
https://youtu.be/fVC4iz6mO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