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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STS 전공, 신경인문학 연구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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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기계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던 ‘꿈의 기계(dream machine)’였다. 20세기 초에 혈압, 심장박동, 땀의 분비 등을 동시에 측정해서 거짓말을 분별해 내는 거짓말 탐지기(polygraph)가 나왔지만, 그 불확실성 때문에 아직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가 등장했고, 미래 예측가들 중에는 fMRI 거짓말 탐지기 영상 자료가 진술의 참, 거짓을 입증하는 유력한 자료로 자리매김하여 가까운 미래에 법적 증거의 지위까지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글에서는 fMRI 뇌 영상 기법을 통해 거짓말을 탐지하는 실험적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실험들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만한 사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fMRI 거짓말 탐지기는 지금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실정이지만, 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지대하다. fMRI를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의 유용성과 한계를 짚어 봄으로써, 이에 대해 법조계와 법학계가 어떤 대비를 하고,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인간의 관찰에 의한 판단은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많으므로, 기계를 이용해 거짓말을 탐지하려는 시도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거짓말과 혈압, 맥박, 호흡의 상관관계가 발견되어 초보적인 형태로 응용이 되었고, 20세기 초엽에 이러한 원리들이 하나의 기계에 통합되면서 현대적인 거짓말 탐지기가 탄생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마스턴[William Marston(1893~1947)]은 1915년에 혈압 변화를 이용해 처음으로 현대적인 거짓말 탐지기를 고안했으며, 생리학 박사를 받고 캘리포니아 경찰이 된 존 라슨[John Larson(1892~1965)]은 마스턴의 논문을 읽고 감명을 받은 뒤에 혈압, 맥박, 호흡을 동시에 자동적으로 기록하는 기계인 폴리그래프[polygraph(여러 가지를 한 번에 기록한다는 뜻)]를 만들어 경찰에 제공했다.
라슨이 캘리포니아 경찰국에서 훈련시킨 레오나르드 킬러[Leonarde Keeler(1903~1949)]는 라슨의 탐지기에 땀에 의한 피부 전도 반응을 추가해서 자신의 거짓말 탐지기를 만들었다. 킬러는 경찰은 물론 FBI에게도 그의 기구를 구입해서 사용하도록 설득했으며, 자신의 발명에 대해서 독점적인 특허를 신청하고, 교육 기관을 세워서 2주 코스로 검사 전문가를 양성해 냈다. 킬러는 또 거짓말 탐지기의 표준화된 ‘소프트웨어’, 즉 효과적인 거짓말 탐지를 위해 검사자가 피의자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마케팅 때문에 킬러의 거짓말 탐지기는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과학기술사학자 알더에 의하면, 킬러의 거짓말 탐지기가 성공한 데에는 본질적으로 검사자가 정직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피검자의 스트레스와 위협감을 유발한 방법이 오래전부터 심문을 위해 사용된 고문의 논리와 비슷했다는 이유가 있었다(Alder 2007). 킬러의 거짓말 탐지기는 “간소화되고 인간적인 고문(simplified and humane torture)”에 다름 아니었다. 알더는 이것이 킬러가 탐지기를 고안한 1930년대 이후로 거짓말 탐지기의 기계적인 측면, 즉 하드웨어가 별로 발전하지 않은 이유라고 강조한다.
1947년에 시카고의 변호사 존 라이드(John Reid)는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하는 새로운 기법을 발명했다. 그의 혁신은 통제 질문(controlled question)을 개발해서 사용한 것이었다. 통제 질문은 알고자 하는 거짓/진실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돈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상당한 감정적인 동요를 가져오는 질문이었다. 이러한 통제 질문 검사[controlled question test(CQT)]에 의하면 유관한 질문(“부인을 살해했습니까?”)에 대한 반응이 통제 질문에 대한 반응보다 낮게 나와서 무관한 질문(“오늘 아침에 담배를 피웠습니까?”)에 대한 반응과 흡사하면 피검자는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고, 유관한 질문에 대한 반응이 통제 질문에 대한 반응보다 더 높으면 피검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CQT에는 결백한 사람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통제 질문을 너무 염두에 두다 보면 이에 대해서 애써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1960년대에 심리학자 라이켄(David Lykken)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의식 검사[guilty knowledge test(GKT)]를 개발했다. 죄의식 검사는 범죄와 관련해서 범인만이 알고 있을 것 같은 질문을 선택형으로 물어보면서, 각각에 대한 피검자의 반응을 측정해, 범죄와 연관된 사항에 대해서 반응이 급격하게 증가하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CQT와 GKT는 이후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는 두 가지 표준 소프트웨어로 널리 보급되었다.
미국의 경우 거짓말 탐지기는 경찰과 FBI 등에서 피의자 심문용으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법정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여기에는 1923년 강도 및 살인으로 기소된 19세의 프라이(Frye)라는 소년의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거짓말 탐지기 자료를 법원이 과학자 사회 내에서 충분한 수용(general acceptance)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했던 판결이 있었다. 이 판례는 ‘프라이 기준(Frye Rule)’으로 명명되어 이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문가의 증언(expert witness)이나 특정 기술이 낳은 데이터가 법정에서 유죄, 무죄를 가를 수 있는 과학적 증거의 지위를 가지는가 혹은 그렇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했다.
1993년에 미 대법원은 ‘충분한 수용’이 전문가 증언이나 특정 기술의 증거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고 판결하면서, 새로운 ‘도버트 원칙’을 제시했다. 새로운 기준은 튼튼한 토대가 뒷받침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얻은 과학적인 지식은 ‘증거적인 신뢰성(evidentiary reliability)’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후 새 기준에 따라서 거짓말 탐지기의 데이터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는 빈도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도버트 원칙이 만들어진 뒤에 2003년까지 19개 주에서 거짓말 탐지기의 증거를 법정에서 받아들였다(Grubin and Madsen 2005).
전통적인 폴리그래프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생리적 반응을 측정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활용한 기계이다. 이 기계의 한계는 충분히 숙련된 검사관이 질문을 해야 하며, 그 해석 역시 숙련된 검사관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거짓말을 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뇌파와 같은 뇌의 전기적 활동을 보여 주는 그래프인 뇌전도[electro encephalography(EEG)]를 응용하려는 연구가 시작되었고, 1970년대 이후 다양한 뇌 영상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이를 거짓말 탐지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fMRI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해 거짓말을 알아내는 사업이 2004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때,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처음 보는 대상을 보고 신기해할 때, 낯익은 대상을 다시 알아볼 때와 같은 인지 작용을 수행할 때 우리의 뇌가 활성화되는 부분을 측정하는 기술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이다. fMRI는 대부분 BOLD(blood oxygenation level dependant)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의 핵심은 뇌 혈관을 흐르는 혈액 속의 산소량을 측정하는 것이다.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뇌 부위는 시냅스 활동이 활발해지고 피가 몰리는데, 이렇게 몰린 피의 효과는 피 속에 함유된 산화 헤모글로빈의 레벨, 즉 피의 산화 레벨(blood oxygenation level)의 차이를 낳는다. 자기공명장치는 산화 레벨의 차이를 보이는 혈액을 시각화할 수 있다.
다른 뇌 영상 기법과 비교했을 때 fMRI는 뚜렷한 장점이 있다. 가령 양전자 단층 촬영(PET)이나 단일 광자 단층 촬영(SPECT)은 뇌에 방사능 물질을 주입해서 그 물질의 변화를 추적하지만, fMRI는 이러한 침입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 fMRI는 수 초, 심지어 1~2초 내의 빠른 반응 시간 사이의 변화를 볼 수 있으며, 최근에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실시간 fMRI’의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fMRI가 뇌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인 변화를 측정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도 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할 때 유의미한 뇌의 활성화 부위는 참말을 할 때의 뇌 영상과 비교를 해야만 드러나므로,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인지적 뺄셈(cognitive subtraction)’이라고 불리는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거짓말에 특수하게 활성화되는 뇌
= [거짓말을 하는 뇌 영상] - [참말을 하는 뇌 영상]
fMRI 방법에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연구자들은 인지적 뺄셈의 방법을 비판한다. 윌리엄 우탈(William R. Uttal)에 따르면 대부분의 fMRI 영상에서 인지 심리 과정이 뇌의 특정 부위에 국소화(localized)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fMRI 영상을 얻는 과정에서 자극을 준 경우와 보통의 경우를 비교해서 전자에서 후자를 빼는 ‘인지적 뺄셈’의 결과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즉, 이렇게 영상을 ‘빼는’ 과정에서 뇌 전반에 걸친 활성 영역이 사라지고 마치 활성화된 부분이 국소적인 영역에 국한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Uttal 2001; 홍성욱 2010).
게다가 뇌의 특정 영역에 피가 몰리는 것이 꼭 그 부위를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fMRI 실험에서는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여러 연구들을 통해서는 관련이 없다고 판명된 뇌 부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로고테티스(N. Logothetis)는 fMRI를 통해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 뇌의 영역이 그 부분에서 더 많은 신호를 보냄으로써 활성화된 경우도 있지만, 신호를 적게 보내려고 하거나, 균형을 유지하려고 활성화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뇌의 활성화된 부위를 보여 주는 영상만을 가지고는 왜 그 부위가 활성화됐는지 또는 뇌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Logothetis 2008).
이러한 근원적인 비판 외에도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우선 연구자는 믿을 만한 MRI 스캐너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또 연구자는 적절한 실험 패러다임과 자극의 종류를 잘 디자인해야 하고, 실험 수행 시 피험자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태도 및 반응을 주시해야 한다. 이러한 개별적인 데이터를 기준이 되는 뇌 영상에 맞춰 표준화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통계적 기법은 과학적 타당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fMRI를 이용해서 뇌가 거짓말을 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를 찾으려는 시도는 2001년에 출판된 영국의 정신과 의사 션 스펜스(Sean Spence)의 연구에서 시작했다. 그는 이 연구에서 피험자의 최근 일화 기억(recent episodic memory)을 사용해서 그가 거짓말을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을 조사했는데, 그 영역은 억제 조절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알려진 복외측 전전두피질[ventrolateral prefrontal cortices(VLPFC)]로 드러났다. 스펜스는 이 부위가 활성화되는 이유가 피험자가 진실(참말)을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Spence 2001).
이후의 연구들은 다양한 거짓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연구들은 대개 비슷한 결과를 내어 놓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을 할 때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의 VLPFC와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ACC)]이 활성화되고, 반응 속도를 잰 실험에서는 거짓말을 할 때 반응 속도가 더 느려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거짓말이 참말을 억제하는 것 같은 특정한 ‘수행 작업’이며, 참말을 하는 것 보다 더 힘들고 느리다는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과 전반적으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언론에 의해서 새로운 거짓말 탐지기의 등장으로 보도되었고, 실제로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fMRI를 이용해서 거짓말 탐지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fMRI를 이용하면 기존 폴리그래프의 한계로 지적되었던 능숙한 거짓말쟁이가 몸의 2차적 반응을 통제하여 폴리그래프를 무력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훈련된 검사자의 필요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fMRI를 이용하면 검사자가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이 컴퓨터를 통한 이미지 등을 가지고 자극을 주면서 뇌의 반응을 스캔하면 되었다(Langleben 2008).
2005년에 이와 관련된 두 개의 연구 성과가 출판되었다. 죄의식검사법[Guilty Knowledge Test(GKT)]을 사용한 코젤과 그 동료들(Kozel et al. 2005)의 연구와 다바치코스와 그 동료들(C. Davatzikos et al. 2005)의 연구에서는 거짓말을 하도록 지시를 받은 피험자를 대상으로 뇌 스캔을 실시한 결과 90%를 상회하는 적중률을 보였다. 이들은 연구 결과를 특허를 냈는데, 이 특허는 각각 시포스(Cephos) 사(社)와 노라이엠알아이(No Lie MRI) 사(社)가 라이센스를 내고 현재까지 fMRI 거짓말 탐지기 사업을 하고 있다.
뇌 영상은 1980년대부터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뇌의 질병이나 정신 이상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피고나 증인이 거짓말/참말을 하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로 fMRI 뇌 영상이 제출된 것은 2009년이 처음이었다. 당시 샌디에이고의 법정에서 자식을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고소된 부모는 자신들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라이엠알아이 사에 자신들의 뇌 스캔을 의뢰했고, 이 회사는 부모의 뇌를 스캔해서 이들이 결백하다는 증거를 법정에 제출했다. 그렇지만 이는 증거적인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0년 뉴욕 브루클린의 법정에서 윌슨(Cynette Wilson)이라는 원고의 변호를 맡던 변호사 데이비드 제빈(David Zevin)은 윌슨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정적 증인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시포스 사에서 얻은 증인의 fMRI 스캔 데이터를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피고를 변호하던 변호사들은 공판 전 회합(pretrial)에서 증인의 거짓말을 판단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배심원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조했고, 이 사건을 담당한 뉴욕의 법관 밀러(Robert Miller)는 fMRI 사진들이 배심원이 증인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이를 증거에서 제외시켰다.
브루클린 판결에 이어 테네시 법정에서는 fMRI 거짓말 영상이 도버트 원칙에 비추어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심리하는 공판이 열렸다. 2010년 6월 테네시 주에서 보험회사와 의료회사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혐의로 피소된 심리학자 론 셈로의 변호사는 시포스 사에서 얻은 뇌 영상 자료를 피고의 진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법정에 제출했다. 그렇지만 법관인 투 팸(Tu Pham)은 이것이 1) 경험적 검증을 거쳐야 하고, 2) 실수의 확률이 알려져 있어야 하며, 3) 문헌들이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서 출판되었어야 하고, 4) 과학자 사회에서 널리 수용되어야 한다는 도버트 원칙의 네 조건 중에 두 조건만 (경험적인 검증과 출판) 만족한다고 판결했다. 즉, 오류 확률과 과학자 사회에서의 인정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팸은 기존의 오류 확률이 통제된 실험실에서의 실험에 근거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fMRI에 근거한 거짓말 탐지가 실험실의 상황을 벗어난 상태에서 오류의 확률이 얼마나 적은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음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팸은 판결을 마무리 지으면서 “그 표준을 높이려는 더 많은 실험, 발전, 검증을 거치면 미래에는 이 방법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함으로써 미래에 상황이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Miller 2010).
여기에서는 fMRI에 근거해서 거짓말을 탐지하거나 그 결과를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는 시도에 대한 비판을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하는 얘기 중에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잘못된 기억일까? fMRI 방법은 이러한 잘못된 기억에 근거한 거짓말도 찾아낼 수 있을까? 2010년에 출판된 스탠포드 대학교의 리스만(Jesse Rissman)의 연구는 자신이 참이라고 믿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참이 아닌 경우, 즉 거짓 기억에 의거해서 (자신은 참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와 정말 참말을 하는 경우를 기계는 구별하지 못함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거짓말의 상당 부분이 잘못된 기억에 근거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는 fMRI를 사용한 거짓말 탐지법의 심각한 한계가 아닐 수 없다.
리스만은 자신의 논문을 맺으면서 거짓 양성반응과 거짓 음성반응이 법정에서는 한 사람을 평생 감옥에 보낼 수 있을 정도로 훨씬 큰 함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신경과학자와 법률가가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지속적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경고했다(Rissman et al. 2010).
fMRI 방법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이것이 실험실처럼 연구자들에 의해 통제된 상황에서 사용될 때와 현실 세계인 법정과 같은 공간에서 증인이나 피고인의 진실성을 테스트하는 데 사용될 때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실험의 대상이 된 피험자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모집된 사람들이며, 이러한 이유에서 법정에 출두해서 증언을 하는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 게다가 법정에서의 증인이나 피고는 거짓말이 통했을 때 큰 이익을 얻고, 그것이 들통이 날 경우에는 위증죄에 의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피험자들은 약간의 사례비를 받는 것 외에 다른 이득이나 손해를 볼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차이들이 뇌에 어떻게 다른 상태를 유발할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Simpson 2008; White 2010).
또 다른 문제는 fMRI 방법이 방해(countermeasures)받기 쉽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 연구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같은 방해 동작이 거짓말 탐지의 신뢰도를 33% 정도로 깎아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fMRI가 방해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를 유죄를 입증하는 목적으로 범죄 피의자에게 사용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시사한다(Ganis et al. 2011). 또 같은 실험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거짓말의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연구는 피고나 스파이가 오랫동안 거짓말을 되뇌어서 암기했을 때 이를 fMRI로 측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Ganis et al. 2003).
2001년에 fMRI를 이용해서 거짓말 영역의 뇌 위치를 드러낸 첫 논문을 쓴 스펜스는 2008년에 그동안 이루어진 16개의 연구를 심층 리뷰했다. 그의 분석 결과는 이러한 연구들이 거짓말을 할 때 특별히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있음을 보여 주지만 각각의 연구 결과가 조금씩 다르며, 같은 연구자들이 한 연구의 경우에도 선행 연구 결과가 그대로 재연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Spence 2008). 스펜스는 같은 연구자가 동일한 실험 패러다임을 사용해서 실험을 했지만 각각의 실험이 다른 뇌 부위의 활성화를 보였음을 사례로 들어 이러한 연구의 불일치를 지적하면서, 거짓말과 관련된 fMRI 연구가 아직도 매우 초보적인 단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과학적 증거가 사회적 맥락을 지니지만, fMRI의 경우에는 특히 더 중요하다. 다른 과학 증거에 비해서 fMRI 뇌 영상에 대한 대중적인 신뢰는 무척 높다. 사람들은 총천연색으로 표시된 fMRI 뇌 영상이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Weisberg et al. 2008).
뇌과학 연구에 대한 신문 기사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서, 한 그룹에게는 뇌 영상을 넣은 기사를, 다른 그룹에게는 영상이 없는 기사를 보여 주면, 뇌 영상을 넣은 기사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더 높게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McCabe and Castel, 2008). 이러한 결과는 배심원들이 첨단 뇌 영상 기술인 fMRI 영상을 높은 수준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fMRI 영상은 그것이 가지는 실제 신뢰도보다 더 높은 신뢰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법정과 같은 상황에서 훨씬 더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fMRI 거짓말 탐지기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fMRI 거짓말 탐지기가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인 폴리그래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에 의하면 fMRI 탐지기와 폴리그래프는 모두 다 불완전하고, 거짓말을 직접 간파하기 보다는 거짓말의 징후(전자는 뇌 특정 영역의 혈류 증가, 후자는 호흡, 맥박, 땀 같은 신체의 변화)를 측정하는 기계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의하면 기존의 폴리그래프가 이미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사고 팔리는 제품이 된 것처럼, fMRI 거짓말 탐지기도 비슷한 지위를 갖는 기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법적인 측면에서 fMRI 거짓말 탐지기의 증거 채택을 옹호하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법학자 샤우어는 증인들의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것이 대심제(cross examination system)의 중핵이라고 강조하면서, 기존의 배심원들이 이러한 역할을 잘 못한다는 점에 주목한다(Schauer 2010).
그에 의하면 실제 법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배심원 제도가 매우 합리적으로 거짓/참을 구별한다고 확신하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거짓/참을 명확히 구분해서 유죄/무죄를 판결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법정에서는 증인의 거짓말/참말을 잘 판단하지 못할 때 배심원들에게 증인들의 태도를 눈여겨보라고 조언하는데, 이 과정에서 통속적 편견, 개인적인 편향 등이 상당히 개입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거짓말 탐지기 데이터를 증거로 도입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샤우어는 fMRI 거짓말 탐지기가 검찰보다는 피고인에게 더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형사 재판에서 검찰이 피고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서는 “이유 있는 의심이 한 점도 남지 않은 증명(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fMRI 거짓말 탐지기는 이러한 정도의 증명을 제공하지 못하며, 따라서 검찰의 경우에 거짓말 탐지기의 증거를 제출한다고 해도 이것이 받아들여지기도 힘들고, 받아들여져도 배심원을 설득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거짓말 탐지기가 약간의 무죄 가능성을 시사할 경우에는 피의자가 검찰의 “이유 있는 의심이 한 점도 남지 않은 증명”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이를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샤우어는 거짓말 탐지기가 아직 실험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사용될 수 없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험과 현실 세계 사이의 실제적인 연관(positive correlation)이지 일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주장은 과학과 법은 목적이 다른 체계라는 것이며, 따라서 과학에는 충분한 것이 법정에서는 충분치 못할 수 있고, 역으로 과학에 충분치 못한 것이 법정에서는 충분할 수 있다는 근원적인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과학과 법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지만, 목적이나 과정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충분치 않은 증거가 법정에서는 (다른 증거와 결합해서) 괜찮은 증거로 사용될 수도 있다(Schauer 2010).
샤우어 같은 옹호자는 어차피 모든 증거가 다 100% 확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도 80% 이상의 거짓말 탐지기가 도입되어도 다른 증거와 연계하거나 비교하면서 사용할 경우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한 것은 배심원이나 법관이 정확도 80%의 fMRI 뇌 영상을 거의 100%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Weisbert et al. 2008; McCabe et al. 2011). 이러한 상황에서 법정에 서는 사람은 첨단 과학을 이용한 fMRI 테스트 같은 것을 받아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고, 받지 않았을 경우에는 유죄라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는 문제가 있다(Wolpe et al. 2005).
fMRI 영상이 거짓말 탐지기의 증거로 법정에서 수용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결과가 무척 제한적이라는 점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fMRI 방법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 진행중이고, fMRI 자체도 계속 진화중이며, fMRI 방법에 확신을 갖는 연구자들도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험과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존재하고, 실험실의 조건하에서 얻은 데이터를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으며, 그렇게 제출된 증거도 제한적인 설득력만을 가진다는 사실이 과학의 영역과 법의 영역 모두에게 수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기술이 가진 거품이 걷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 과학자 사회와 법조계를 포함한 시민 사회에 수용이 된다면, fMRI 증거는 제한적인 유용성만을 가지는 증거로 법정에서 수용되어 증언의 참/거짓을 판단하는 배심원이나 법관의 판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fMRI 거짓말 탐지기의 현재와 미래 (뇌과학 경계를 넘다, 2012. 11. 5.,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