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역사와 결합하는 방식은 시의성을 넘어선 강렬한 인간 드라마로 재구성되는 점에서 흥미롭다. 흔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 과연 그것이 실제 일어났던 사실과 얼마나 동일하고 다른 것인가 하는 점, 즉 고증여부를 둘러싸고 시시비비를 논한다. TV드라마 사극의 경우, 시대배경이 오래된 것일수록 고증의 능력을 갖춘 사가들이 역사를 다룬 드라마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는다. 그렇지만 사극이란 드라마 장르에서는 상세한 연도와 주요인물만 빼곤 다 바꿔도 된다는 작가측의 주장으로부터, 심지어 역사 드라마란 현재에 재구성되는 대안적 역사의 기억이라는 학술적 주장에 이르기까지 재구성과 창작의 자유를 옹호한다.
한편 동시대적 역사로 여전히 우리의 기억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 사건을 소재로 다룰 경우, 그러니까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 <J.F.K.>, 박정희 전대통령 암살사건 당시 주위사람들의 행적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 처럼 명예훼손을 걸 법적 자격을 갖춘 가족과 친지들이 생존해 있을 경우 사실여부는 법적 논쟁으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이 경우 가장 간단한 해결은 영화는 허구이니 실화와의 직접적 관계여부를 묻지 말라고 강변하는 것이지만, 그런 주장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리얼리티효과가 현실인식에 오인을 불러일으킨다는 상식적 심증을 이겨내기 힘들다.
그런 문맥에서 마르코 벨로키오가 연출한 <굿모닝, 나잇>은 동시대역사와 영화가 만나는 독특한 방식을 외부적 리얼리티의 재구성보다는 내면심리 풍경화의 리얼리티로 풀어낸다. 베르톨루치와 함께 이탈리아 뉴 시네마를 대표하며 탈권위적 정치적 영화를 만들어온 마르코 벨로키오감독은 뉴스나 시사 다큐멘타리가 건드리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는 붉은여단의 모로 전수상 납치,살해사건을 폐쇄상황속의 심리 드라마로 창안해낸다.
실제로 이 사건은 1979년 발생 당시 그 과감성과 이상적 혁명정신(부패한 정치와 재벌로부터의 프롤레타리 해방)으로 세계에 이탈리아 극좌 행동조직 붉은여단의 존재를 알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1992년 정재계 고위급 인사 3천명을 체포 구속한 이탈리아 최대 정치스캔들을 처리한 마니 폴리테 (깨끗한 손) 수사과정에서 전수상 모로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드러나면서 장기집권한 기민당의 몰락과 이와 뒷거래를 해온 사회당, 공산당의 치부를 드러낸 증거로 기능하기도 했다.
벨로키오감독은 혁명의 의지와 정,재계의 뒷거래가 엇물린 이 사건을 납치범과 납치된 사람 간의 긴장과 연민이 오가는 관계, 그중에서도 붉은여단의 여성 조직원 키아라의 관점에서 인간내면의 드라마로 성찰해낸다.
1977년 말, 로마의 아파트에 젊은 커플이 입주한다. 겉으론 학구적인 젊은 커플의 주거지로 단장된 아파트지만, 이곳은 외부에 감춰진 비밀의 문을 가진 개인감옥이 있다. 이어 납치당한 알도 모로 전수상이 이곳에 감금당하고, 그를 감시하고 재판하며 결국 처형하게 되는 붉은여단 조직의 세 남자와 한 여자가 이곳에 같이 거주한다. 이들 중 도서관 사서직을 가진 키아라(마야 산사)만이 매일 아파트 밖으로 나가 세상과 이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도서관에서 만난 청년과 데이트도 즐기고 아버지의 기일 모임에 친척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키아라는 권력과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노동자를 해방하는 이상에 동의하지만, 그런 신념 때문에 책임을 물으며 한 인간을 처형해도 되는가, 에 대해 갈수록 회의적이 되간다. 심지어 그런 회의는 조직원들의 밥에 수면제를 넣어 모로 전수상을 풀어주는 환상을 꿈꿀 정도로까지 나간다. 실제로 영화는 키아라의 이런 환상을 내면적 리얼리티로 보여주기에 마치 두 가지 결말 중 하나를 택해도 되는 얼터너티브 서사로 보일 정도이다.
노동자해방이라는 이상적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청년 좌파들의 당당한 태도 뒤에 은늑된 불안, 이들 앞에서 수상과 교황에게 간절한 협상권유 편지를 쓰는 노회한 정치인의 추락한 권위와 절실한 생존욕구, 그것을 연민과 회의적 시선으로 지켜보는 키아라의 관점이 영화를 끌어간다. 그 가운데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 그 방해세력을 처치해야하는 붉은여단의 논리가 생면존중사상과 격돌하기도 한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벨로키오의 고요한 응시의 시선은 정치적 아젠다를 넘어 인간성의 의미를 탐색한다. 그 시선을 대변하는 유일한 여성인물인 키아라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고뇌하는 인간의 얼굴을 대변한다. 아파트, 그 안에 만들어진 좁은 밀실이란 공간을 깊이 탐색해가듯 찍어나가는 카메라는 긴장감을 유발하며, 거기 곁들여지는 핑크 플로이드의 작열하는 음악과 달콤하기까지 한 슈베르트 음악은 이들의 널뛰는 심리적 거리를 청각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붉은여단 단원의 절실한 혁명의지나 진정성과는 상관없이 사건을 중계하는 TV뉴스, 그리고 곧 이어 오락프로그램들을 내보내는 TV매체, 모로의 목숨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권력유지에 급급한 고위층과 도덕성을 가장한 교황, 이 모든 상황은 반인간적 얼굴을 한 권력시스템의 본질을 서서히 폭로시킨다. 새장에 갇힌 새가 보여주는 상징성, 허구와 실제 화면을 뒤섞은 편집등 영화매체의 특징을 활용하면서 납치사건의 이면을 드러내는 벨로키오감독의 강렬한 응시적 시선의 힘은 다시 곰씹어 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역사의 이면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팁: 진지하게 영화를 보고 싶다면, 혹은 진지한 영화를 원한다면 한번쯤 깊이 들여다볼 영화이다. 깊이 안 들여다보고 싶어도 그렇게 만드는게 벨로키오식 카메라의 힘이기도 하지만....
첫댓글 세계일보용이죠. 이 영화 좀 참고보면 갈수록 긴장감이 느껴져요.
오! 멋진 이태리 영화를 볼 수 있겠군요. 기대됩니다~ 근데 '참고 보면'이요? ^^
아 그거요~ 길게찍기와 깊은 응시가 필요한 시간의 지속성을 못겨디는 요즘 영상풍토에 젖어든 이들을 격려하는 말이죠.
권력에 대한 저항은 빈자 무산자의 마지막 권리이지요..
<시민과 변호사> 웹진에 막 썼는데, 이게 이전 것보다 훨 나아서 이걸로 수정합니다. 생각해볼수록 이 영화가 괜찮네요,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