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불꽃놀이]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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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전 민 시집 / 대교현대시선 076 / 대교출판사(2012.01.01)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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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詩 / 불꽃놀이
전 민
새소리
바람소리
별과 달빛도 닿지 않는
땅속 깊이, 어두운 곳
썩은 나무 뿌리에 의지해
밟히며 접어온 세상 구경
세월 속에 묻혀온 몸짓도
한쪽 날개깃만 밖에 허락되면
불꽃놀이를 따라 삶을 부르는
왕매미처럼 한 세상을 음미한다.
지상 위의
화한 잔치란 참으로
부질없는 가면무도회이지만
혼불 줄기 따라 땅 위로 올라
푸른 하늘 좀 바라보자구나
새처럼 훨훨 날아 보세나
우리의 이승을 다하기 전에
가슴으로 세상을 불태우자
태우다 태워버리다 남겨둔
껍데기는 내 삶의 여유, 자존
蓮
전 민
1.
고향은 진흙탕 세상에
뿌리박고 자라왔을망정
파란 하늘이나
흐르는 개울물
통 굵은 넝쿨이나 가지도
욕심내지 않고
너무 화려하지도
아주 촌스럽지도 않게
텅 비워둔 속내
올 곧은 양심의 줄기
솔바람 결 따라
수줍어 붉게 물든 볼.
2.
먼발치에서 그대의
미소를 그리면서
바라보면 볼수록
울렁이는 가슴
뼛속까지 파고드는 내음
봄비, 밤비 맞아
더욱 상쾌한 아침
옥쟁반에 은구슬
그대의 마음밭에
사랑의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 보고 싶네.
人生論, 1
전 민
용돈을 쓰듯
많이도 써버렸다
반은 썼을까
그 이상을 썼을지도
남은 生涯
존졸히 써봐야 할 텐데
누가 보태줄 것도 아니고
누가 잘못 썼다고
나무랄 것도 아니고
인생은 용돈
9시 뉴우스
전 민
TV를 대하듯 세상을 켜며
오늘의 채널을 돌려 보자구나
개새끼는 개를 바라보며 말할 때
가장 아름다운 애칭이 되지만
눈동자를 사람 향해 조금만 돌려도
꽃송이에 뱉아 놓은 가래침이 된다
우리는 그대를 당장 뭐라고 부를까
시선의 초점을 어느 한 지점에 맞출까
개만도 못한 개장 밖의 사람들과
사람보다 예쁜 개집 속의 강아지들을
멍멍이 인형을 안고 잠에든
새봄의 얼굴을 바라보며 TV를 끈다
두릅나무의 恨
전 민
유혹을 하려거든
온몸에 가시가 없던지
가시를 품었으면
유혹을 하지나 말든지
가시도, 향기도 탐내고서
전생에 무슨 지은 罪가 많아
새순, 미래마저 몽땅 털린 채
봄만 오면 오슬오슬 살추위.
나는 지금 고구려로 가고 있다
- 1, 序詩
전 민
역사는 현대 속에 살아 숨 쉬는
과거라는 생명체이며 미래 논리다
과거와 현재의 진솔한 말동무란다
한민족으로 맥이 이어져 출렁이는
깊고 깊은 역사의 바다, 고구려여
거침없이 말 달리던 광활한 삶의 터전
증원의 대평원, 지금은 비록 변방이지만
후손들에 피의 농도와 역사의 진실을
자긍심과 미래에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걸머지고
시간을 마구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
역사의 그림자 따라 고구려로 가고 있다.
현대판 勝負
전 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산삼 對 녹용이요
아버지의 아버지는
달개비 對 당귀라지
할아버지의 손자는
영지와 免絲子요
南男과 北女는
비아그라 對 가루지기라네
왕코피 터지겠다
한강물, 금강물 넘치겠다
밤이나 낮, 낮이나 밤이나
똘강물 흘러 강물 보탤거니.
최고의 선물
전 민
이 순간만큼
일생의 나에게
소중한 선물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차지한
우리의 시간은
아무에게도
기다려주지 않는
무자비한 동행
내일은
어느 누구와도
같이할지 모르는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 타는 새.
어제는
흘러간 역사
오늘이야말로 진실로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
60에 大 발견
전 민
그릇은 누구이든
언젠가가 비운다는 전제로
그득그득 채워놓으려 하고
돈은 내가 쓰기 위해서
목숨 걸고 모으려 한다
돈 좀 덜 모았다 하여
그릇을 그득히 못 채웠다 해
뭐가 그리 큰 대수인가
어차피 쓰고, 비워놓을 사람
들어오고 나가는 문 따로 인데.
터키기행 1 - 이스탄불의 아침햇살
전 민
동, 서양이 하나로
현재보다 과거에서 미래로
옛 왕조의 흥망처럼 역사와 문화가
고대와 현대가, 유럽과 아시아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하나의 축으로
1600년으로 되돌려 숨고르기를 하고
대 오스만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불의 아침 햇살은
지상과 지하를 물처럼 스며들어
세월에 녹슬어 가는 문화유산을
보석으로 닦으며 역사를 갈고 있다
터키기행 20 - 보ㄱ스포러스 해협의 유람선에서
전 민
유럽과 아시아를
양쪽 어깨에 걸어놓고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향해
하나로 달려가는 해협
크루즈관광선에 탑승해
해안을 거슬러 따라가면
웅대한 건축물 숲 사이로
현대에 따라 단장한 찻집
호화스런 귀족의 저택들과
부호들의 무덤까지도 보인다
그림 같은 유명 건축물들
움직이는 소피아대사원
블루모스크의 경치를 보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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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지금쯤은 말해도 좋은 마음속 이야기
내가 태어난 고향은 충남 홍성,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신 곳과는 저울산을 경계로 하는 이웃 동네다. 어려서는 두 애국자에 대하여 잘 몰랐지만 자라나면서 나도 두 분처럼 양심에 불을 붙여 놓고 성실, 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김좌진 장군의 아드님인 김두한 두목이 국회이원에 나왔을 때 유세를 다니다 지프차에 나만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아준 일이 생각난다. 대 여섯 명의 쪼무래기들 중에서 유독 나만 차에 타라고 선택을 받았던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지금도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의 모든 것에 대하여 꽤나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문단의 한 선배가 어느날 자네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이냐고 묻길래 지금까지 나이를 따져보며 살아오지 않아 잘 모르겠다며 한참 만에 육십이 좀 넘었을 거라고 얼버무리며 정확한 나이 숫자를 대지 못했다가 여러 사람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다. 제 나이도 모르며 사는 멍청한 사람이라고. 하긴, 언젠가는 우리 집 전화번호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서 옆에 있는 친구의 옆구리를 쿡쿡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다가 만인의 웃음거리 소재를 제공해 주었던 적도 몇 번은 있으니….
용돈을 쓰듯 인생을 많이도 써버렸다. 반은 썼을까 그 이상을 썼을지도 모른다. 올해로 나는 42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게 된다. 이십대 초반에 작은 소망을 품고 교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지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문학의 길로 슬쩍 한 발을 걸쳐 놓은 것도 어쩌면 비슷한 시기였을 것 같다. 이십대 초 교직에 들어와서 오늘까지 직장생활을 함께한 상사, 동료, 후배, 제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해가 갈수록 희미해지거나 아예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으니 안타깝다. 42년 동안 교단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헤어져, 낙엽처럼 떨어져,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날, 나는 큰소리로 외치리라. 과거는 아름다웠고, 스쳐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마웠다고….
1971년부터 새여울시문학 동인활동을 시작하면서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지내온 김명수, 안홍렬, 구재기…동인과 친형님같이 생각하며 뜻을 함께해온 윤석산, 나태주…선배 시인등, 그리고 이외에도 많은 문인들을 글 안과 밖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박용래, 한성기 시인은 물론 문학교과서에서 이름을 들었을 법한 문인들, 오래 전에 고인이 되셨지만 젊은 문학도의 골상을 서슴없이 보아주시던 조연현 박사, 나태주 형 결혼식에 나는 사회보고 스포츠 머리, 박목월 시인은 주례를 해주셨고, 한 예식장에서 무명의 젊은 문학도의 시 한 구절을 줄줄 외우시며 사이다 잔을 권하시던 정한모 장관, 조병화, 박재삼 시인은 물론이고 원로 김윤성, 문덕수, 고은, 시인까지, 내가 문학의 길을 걸어오는 과정에 지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셨던 분들이 떠오른다.
시문학을 통해 등단이라는 절차를 다른 문인들에 비해 다소 늦게 1985년 마치게 되면서 지역문단에서 해야 할 일도, 필요로 하는 곳도 자꾸 늘어나 힘들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은 있었다. 이 지역에서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서배 문인은 미등단의 꽁지를 짤라주신 최원규 시인, 대전문협회장으로 모셨던 최송석, 김용재 시인 등과 괜찮은 사람들 축에도 끼어 살아 보라고 시문화상 등 수상으리 길로 내몰으신 故박명용 교수, 송백헌 평론가 등을 들을 수 있다. 나는 현직 교사로서 틈틈이 대전문협 실무를 맡아서 집행해야 했고 1993년 대전엑스포 문학행사를 성공리에 치러야 하는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자신감도 생겼다.
교육계에서 승진도 하지 못하고 백의종군 하다 전투를 마치게 되는 까닭도 이러한 이유에서라는 것을 결코 부인하진 못한다.
소박한 마음으로 매일같이 새 아침을 맞이해 하루해를 아쉽게 보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흩어짐 없이, 꼿꼿하게 소나무처럼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가려, 한 점 더 챙겨, 뱃살 돋구려 마음먹으며 살지 않았고 아부와 질시, 교만, 비굴한 마음으로 앞서가는 사람 뒤꽁무니 잡고 발 걸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들의 걸음은 나보다 훨씬 빨랐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내가 걷고 있는 앞으로 KTX처럼 바람만 휙휙 내면서 스쳐 지나가버리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쓰려고 저축해 남은 체력 다 소진하여 피붙이들과도 인연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최후의 날, 인생은 참 아름답고 행복했었다고 미소 지은 채 흙으로 조용히 돌아가리라. 지상 위에서의 화려한 불꽃놀이는 부질없는 욕망이었지만 새소리, 바람소리, 별과 달빛도 닿지 않는 땅속 깊이, 어두운 곳에서 혼불 줄기 따라 땅 위로 올라 푸른 하늘 좀 실컷 바라보고 싶었다.
2012년 정월 초하루
대덕테크노벨리 田玟文學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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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소박한 마음으로 매일같이 새 아침을 맞이해 하루해를 아쉽게 보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흩어짐 없이, 꼿꼿하게 소나무처럼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가려, 한 점 더 챙겨, 뱃살 돋구려 마음먹으며 살지 않았고 아부와 질시, 교만, 비굴한 마음으로 앞서가는 사람 뒤꽁무니 잡고 발 걸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들의 걸음은 나보다 훨씬 빨랐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내가 걷고 있는 앞으로 KTX처럼 바람만 휙휙 내면서 스쳐 지나가버리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쓰려고 저축해 남은 체력 다 소진하여 피붙이들과도 인연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최후의 날, 인생은 참 아름답고 행복했었다고 미소 지은 채 흙으로 조용히 돌아가리라. 지상 위에서의 화려한 불꽃놀이는 부질없는 욕망이었지만 새소리, 바람소리, 별과 달빛도 닿지 않는 땅속 깊이, 어두운 곳에서 혼불 줄기 따라 땅 위로 올라 푸른 하늘 좀 실컷 바라보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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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田玟 시인∥
∙본명 : 전병기(田炳基)
∙충남 홍성 은하 출생(1948)
∙홍성고등학교(’68) 공주교육대ㅑ학(’70) 충남대학교교육대학원(’89) 졸업
∙시문학 등단(1985)
∙시집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가을비 곱게 내리는 저녁나절에는』『그대 마음 훔쳐 싣고』『가슴꽃 이야기』『바람꽃 해후』『그리움에 타는 마음 밭』『불꽃놀이』
∙역임 : 한국문협대전지회 사무국장, 이사, 감사, 대전서구문화원 이사 등
∙현재 :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문학문인회 대전충남지회장. 호서문학회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 대전문인총연합회 이사, 심의위원. 대전시인협회 심의위원장. 새여울시문학 창립동인. 대일비호회 부회장
∙수상 : 대전문학상(1993). 대일비호대상문화부문(2000). 대전시인상(2003). 대전시문화상문학부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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