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 소회
새해의 태양을 맞고자 천성암으로 향했다. 소복이 내린 눈에 발목이 푹푹 빠진다. 여명이 채 열리지 않은 새벽녘 별빛과 암자에서 흘러나온 영롱한 불빛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팔공산 갓바위冠峰에서 발원한 능선은 동쪽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고즈넉한 곳에 천성암이 엎드렸다. 의상대사·원효대사가 불법을 강론한 자리로 유명하다. 보통 암자는 골짜기에 숨었지만, 천성암은 동으로 활짝 열려 지평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암자 앞에는 수십 명이 기도할 수 있는 널찍한 바위가 위용을 자랑하고, 그 뒤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대나무가 날을 세워 서걱서걱 울고 있다.
천성암은 해맞이 장소로 제격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찾는 사람이 늘어 교실만 한 너럭바위를 꽉 메운다. 정월 초하루면 동해안의 도로는 북새통을 이루지만, 대구에서 멀지 않아 오가기에 알맞은 편이다. 우뚝 선 바위에 올라서면 앞마을 저수지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탁 트인 동녘은 막힌 가슴까지 뻥 뚫린다. 말간 해가 구름을 헤집고 앵두 같은 입술을 살며시 내미는가 했더니 연방 날일 자, 때론 가로 왈짜로 일렁인다. 나도 모르게 해를 향해 합장한다. 찬란한 태양이 불꼬리를 떨쳐내고 두 둥실 제 모습을 보일 때,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주지 스님의 선창에 따라 우렁찬 만세 삼창이 고요한 산사를 뒤흔든다. 보살님이 준비한 따뜻한 떡국은 얼어붙은 심신을 스르르 녹여준다.
천성암은 아들을 바라는 기도처로 유명하다. 치성을 드린 후, 의상대사가 심은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영험을 본다는 설이 있다.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은 위로는 줄줄이 딸만 생산했다. 시부모님의 따가운 시선에 서러움을 삼키면서 아들을 낳고자 기도에 들어갔다. 매월 음력 보름에는 정갈한 몸으로 땅거미 깔린 한적한 길을 올랐다. 지게꾼이 겨우 다니는 길이기에 돌부리·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녔단다. 어머니의 해돋이도 이곳이었다. 보름달을 향하여 흡월정吸月精 하듯, 묵은 때를 씻어내고 솟아오르는 불덩이의 기운도 한껏 빨아들였으리라. 정성의 결정結晶으로 핏빛 산고를 겪으면서 아들을 보았으니 어머니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 모양이다.
계사년, 새로운 한해가 열렸다. 새 천 년이 열리던 해, 많은 사람이 해맞이로 들썩했다. 동해의 호미골을 비롯하여 전국에 명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도로는 주차장이었다. 새벽같이 떠났지만,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새 천 년을 맞아도 태양은 꼭 같은 모양으로 그 자리에 오르건만 군상은 하릴없이 분주하다. 해돋이 장소가 어디면 어쩌랴!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이웃이 많다. 조촐한 해돋이도 괜찮을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