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길 고운걸음 12월 9일 화요도보는 대모산 둘레길을 따라 헌릉과 인릉을 찾아가는 코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헌인릉(사실 헌릉과 인릉 두 왕릉이자 개별적임에도 불구하고 연칭해 쓰는 바람에 헌인릉 고유명사화 된)은 가보지 못한 곳이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난 11월 11일 화요도보로 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을 다녀온 후 신덕왕후와 악연을 쌓은 태종의 능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덕왕후와 태종.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이 큰 사람들. 고려의 멸망까지는 이해가 일치했지만 조선의 개국 이후 권력을 둘러싼 신덕왕후와 태종의 대립은 결국 1차 왕자의 난으로 귀결되고 태종의 승리와 신덕왕후 두 아들 방번과 방석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참고] 비운의 왕비 정릉, 북악스카이웨이를 거닐다 (2014. 11. 12) 클릭◀
그 결과로 신덕왕후는 살아 잠깐의 영화를 누리고 죽어 수백년을 곤욕을 치룹니다. 처음 장지 역시 경복궁 가까운 광화문 정동 일대에 묻혔다가 당시 양주땅 지금의 정릉 일대에 옮겨지고 푸대접을 받았죠.
근 한달만에 이번에는 태종과 순조가 묻혀있는 헌릉과 인릉을 가게 됐으니 나름 감회도 생기더군요.
헌릉과 인릉을 가기 위해 매봉역에 내려 구룡산과 대모산을 따라 험하지 않은 둘레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그런데 구룡산은 가지 않고 대모산 정상에서 바로 헌인릉으로 빠지는 길을 간셈입니다. 대모산 혹은 구룡산은 수서역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일반적이라 매봉역 쪽에서 가는 길 또한 처음입니다.

대모산 일대 조감도
대모산(大母山)은 그 이름 유래가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바로 옆 서쪽에 있는 구룡산과 함께 두 산 봉우리가 어머니 젖가슴을 닮아 대모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산 모양이 늙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의 헌릉이 산 남쪽에 조성되면서 왕명에 의해 대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대모산 북쪽에 세종대왕의 5번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가족 묘역이 자리하고, 후에 또 인릉이 들어선 것을 함께 떠올리면, 구룡산과 대모산이 일찍부터 명당으로 지목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초기 풍수지리가들에게 명당인 이곳은 21세기 강남공화국에서도 최고의 명당이더군요. 매봉역 일대가 예전 말죽거리라고 불린 지역입니다. 말을 풀어놓고 방목한 지역인 이곳은 1980년대 이후 강남개발 붐을 타고 밀리고 밀려서 양재동톨게이트 시대를 마치고 분당신도시 개발로 정점을 찍습니다. 그 직전 1987년 삼성은 헌인릉 일대, 수서지역에 지금의 삼성서울병원 부지를 확보하고 최고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는 이문동 시대를 마치고 이름도 국가정보원으로 바꾸면서 헌인릉 일대로 이전을 계획합니다.
이 지역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이른바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신화를 이룬 한보그룹 정태수 일당이 수서택지개발로 한몫 챙길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이 일로 고건이라는 사람의 명성이 높아진 것이죠.
왕 한사람의 안녕과 그 왕족의 천년왕국을 위해 마련한 명당자리가 지금은 몇몇 사람의 권력과 부를 위해 존재하는 곳. 대모산에 올라 강남일대를 내려다보니 대모산 보다 더 높은 타워팰리스와 멀리 잠실벌에 있는 제2롯데월드가 위풍당당하게 서있더군요.
그래도 대모산 길은 초겨울 걷기에 딱 좋은 길이었습니다. 그나마 개발의 마수를 피해간 곳, 울창한 숲길이 반겨주지만 군데군데 허리가 짤리고 철책으로 가로막혀 약간은 답답하더군요.
대모산을 내려와 헌인릉에 들어서니 왕릉에 어울리지 않게 입구 인릉 옆으로 초현대식 건물이 부조화를 이루면서 위압적으로 서있더군요. 바로 국가정보원입니다. 그러다보니 헌인릉 입구도 약간은 어색하더군요.

헌인릉 입구 나무에 가려져서 잘 안보이는 부분이 국가정보원 건물입니다.
입구에는 순조의 인릉을 보고 나중에 태종 헌릉을 보게 됩니다. 역사적 선후가 바뀐 셈이죠. 헌릉을 보고 인릉을 보고 나오는 코스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길 고운걸음은 단순한 왕릉순례, 보고만 오는게 아니라 현지해설사를 초청해서 강의도 듣고 공부도 하는 모입니다. 그날도 현지해설사가 1시간에 걸쳐 자세하게 왕릉구조 및 왕릉의 역사를 알려주었는데 그중에 한가지 대목이 귀에 들리더군요.
“태종 헌릉과 순조 인릉 사이의 역사적 간격은 400여 년. 따라서 두 왕릉만 봐도 조선초기 왕릉 제작의 특성과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순서를 뒤바꿔 놓으면 혼란스러울 텐데 헌인릉이 그런 구조가 된 것은 헌릉과 인릉의 왕릉 중심 구조가 아닌 국가정보원이 들어온 관계로 국가정보원 위주의 공간배치가 된 것 같더군요.

대모산에서 내려오다 마주친 헌릉 입구. 사실 이곳이 주 출입구로 이곳 먼저 관람하고 인릉으로 빠지는 동선을 만들었으면 왕릉 구경이 좀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생각. 그런데 국가정보원 건물 위주로 헌인릉을 재편하면서 인릉 먼저 보고 헌릉을 뒤에보는 순서가 됐네요.
헌릉은 조선 4대 왕으로서, 제도 정비와 개혁을 통해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다졌던 태종 이방원(李芳遠)과 그 비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를 나란히 모신 쌍릉(雙陵)입니다.
헌릉을 보면서 원경왕후 민씨를 생각합니다. 태종을 도와 조선건국과 1차 왕자의 난 때 최대 라이벌 정도전 제거에 공이 많은 여인. 신덕왕후 만큼이나 여걸이었지만 태종의 권력욕으로 두 남동생까지 잃고 맏아들 양녕 대신 셋째 충녕이 등극하는 걸 지켜 본 비운의 왕비, 그래도 원비랍시고 남편 태종 옆에 합장(당)해야만 했던 상황을 어찌 받아 들였는지 궁금합니다.

태종과 나란히 누워있는 원경왕후 민씨. 행복했을까요?
원경왕후 민씨의 집안은 영흥대원군 민제로부터 시작합니다. 태종의 사부이자 장인인 민제는 겸손한 사람으로 딸이 왕비가 되자마자 벼슬을 사직하고 은둔하며, 두 아들의 이름을 민무질(無疾) 민무구(無咎)라 지을 만큼 왕실 외척으로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고 또 조심할 것을 당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태종은 충녕에게 양위하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외척을 약화시키기 위해 두 처남을 제주에 유배시키고 나중에는 사약을 내릴만큼 비정한 왕입니다.
인릉은 조선 23대 왕 순조(純祖)와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를 모신 합장릉(合葬陵)입니다. 순조는 처음에 파주 장릉(長陵) 안에 모셨는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이곳으로 옮겨 모신 것입니다.
순조는 11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 왕대비 정순왕후-안동김씨 김조순의 딸로 이른바 세도정치 60년의 시작-가 정치를 돌봄으로써 외척(外戚)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하였고, 홍경래의 난 등 잦은 민란 발생으로 나라가 매우 혼란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외척이라 할 수 있는 국자정보원이 순조 임금 옆에 나란히 있는 것을 보니 조금 흥미롭더군요.
대모산을 넘어 헌인릉 가는 길은 강남 ‘명당’을 지나 400여 년 역사를 사이에 둔 태종 헌릉과 순조 인릉으로 인해 역사적 상상력이 풍부한 곳이 됐습니다. 지난달 신덕왕후 정릉과의 연속성도 좋았고, 무엇보다 개발의 마수를 피해 간신히 남은 강남의 진짜 명당을 봤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길을 열어주신 그린비님과 수고해주신 정든길님 등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 좋은 길에서 뵙겠습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대모산 정상에서 단체기념으로...

나무숲 사이로 괴물같이 타워팰리스가 보입니다. 요즘은 땅값이 하늘을 찌르는 곳이 명당 아니던가요? 명당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나 봅니다.

강남 요지인데 아직도 명품 숲길이 간신히 남아 있습니다.


1차 휴식지 개암약수터.

잔설이 있어 한겨울 숲길 같습니다.

양지바른 곳은 만추의 숲길 같은 곳.

대모산을 가로 질러 넘어 간 코스

대모산 정상(?)을 밟은 영광의 신발들~~

여기 갈림길에서 약간의 해프닝. 그린비님은 오른쪽으로 헌인릉 바로 내려가려다 코스가 짧아서 아쉬웠는지 직진 코스로 산을 한바퀴 돌고 다시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갔네요.

헌인릉 조감도. 사진에서 보면 왼쪽 울창한 숲 대신 국가정보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순조임금을 모신 인릉입니다.

해설사님의 열강으로 모범생들 답게 한쪽 길로 조심조심 걸어갑니다.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를 모신 쌍릉입니다.
<단체/개인사진>

처음 나오신 분들과 기념으로



(일라님) 모자이크 한 것 아닙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셔서..
















화요도보의 달인, 그린비님
* 사진이 마음에 안드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조치하겠습니다.
첫댓글 오랜만에 낙화유수님의 후기를 접합니다.
옛날이야기 듣듯 역사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세월따라 길따라 듣는 역사스토리 참 좋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인생도 바람처럼 흘러가나요 메마른 가지 사이로 살짝보이는 햇살에 걸음을 멈추고 찍은 모습들이 일품들이 일품이래요 수고마니마니 했어용
'아싸~ 관둬' 노래가 좋군요!!!ㅋㅋㅋ
도보 나오시는것도 후기 올리시는 것도 무쟈게 바쁘신데 이렇게 함께 해주시니 넘 좋네요.
횐님들 자연스러운 모습이 참 이쁘네요.
그린비님 무쟈게 잘 나오셨구요...
다음길에도 또 다음길에도 자주 만나요~^^
역사공부도 재미있네요 사진 감사합니다~
엄청나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후기!
후기 부담에 자주 못 나오실까봐 걱정되네요
수고 많았습니다~
정성스럽게 멋진 후기글과 사진 잘보고 갑니다.
낙화님
수고 하셨어요
좋은 사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