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면 초 저녁인데 배터리가 가물가물 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져 일찌감치 마감을 쳤어요. 기 빨릴 일이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요? “나는 이미 모든 병은 기에서 생기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기뻐하면 기가 조화되어 마음이 편해지고 영위의 기가 순조롭게 되지만, 만약 화를 내면 기가 위로 오르고, 슬퍼하면 기가 흩어지며, 두려워하면 기가 가라앉게 된다. 차가운 기운은 기를 뭉치게 하고, 뜨거운 기운은 기를 새어나가게 하며, 놀라면 기가 어지럽게 되고, 과로하면 기가 소모되며, 생각이 지나치면 기가 뭉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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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거통통제'에 의하면 기가 흩어지고(슬픔)-가라앉고(두려움) 뭉치고 흩어지고 염병당창 가다마이 속병을 한 모양입니다. 인간의 생로병사란 필연이고 죽는 건 원상 복귀(해체) 되는 건데 뭐가 그리 무섭다고 몸을 사리는지 노환을 인정하기 싫다면 침투한 부르주아를 당장 처단해야겠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보다 ‘즐기니까 청춘’이란 말이 더 낫지 않나요? 보수 꼴통 지인(56)이 와서 새로 들어간 직장이 너무 좋다고 싱글벙글해서 나도 직장 생활이 하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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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에서 장어 집을 하는 곳에 주방장 겸 실장으로 취업을 했었거든요 첫 월급으로 360을 받았는데 월급을 주면서 사장님이 수고했다며 꼭 보답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서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암 걸린 아내를 위해 병수발을 하고 딸아이 한 명을 키우면서 열심히 살아서 신이 네게 복을 주는 것이라고 덕담을 해줬더니 입이 해벌 쭉 해가지고 돌아갔어요. 언필칭 정치 초짜인 윤 정부가 엉터리 탄핵에 삼일(년) 야화로 무너져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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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료-'최저'임금-한전 적자-'일본 외교'-'국민연금'까지 정부마다 미룬 정책인데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공약을 실천하는 모습은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으로 봅니다. 24장 분량의 누가복음을 끝냈어요. 누가복음만 6번 넘게 묵상을 했지만 자료 정리하는 공부는 이제 끝이 될 것 같아요. 성금요일입니다. 과거 The Passion of the Christ ', 이번 넷플릭스의 '부활'이란 영화를 보면서 조국의 신학 못지않게 영미권 신학이 참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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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서는 부활의 의미를 뺀 채 십자가의 리얼리티를 영상만으로 강조해서 아쉬웠는데 이번 ‘부활' 편에서는 텍스트도 영망이고 아예 신학은 실종돼버린 느낌입니다. 예수의 주검을 군병들이 지킨다고 지켰는데 술을 마셔서 미스터리가 되는 것으로 플롯이 전개돼요. 아니 이렇게 어설프고 설득력 제로인 영화를 누가 보며, 만약 이 영화를 미국인이 만들었다면 이런 샤머니즘 신학에 누가 설득 당합니까? 염병, 이래저래 내 40년 신앙은 드라이해져 가고 있습니다. 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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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꽂힌 인물들의 공통분모는 '열정(Passion)'입니다. 파시스트 중 이탈리아 무솔리니를 스탈린-히틀러-무솔리니 3인 방에 넣고 비교 분석하고 있습니다. '추앙'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요? 그래서 역대 독재자들은 "내가 제일 잘나가"와 그럴듯하게 너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르게 했다고 봅니다. 히틀러(1889)의 롤 모델이었던 무솔리니(1883)는 여자 잘 만나서 권력의 구조권으로 캐스팅된 인물입니다. 현송월-김건희- '좁은 문'(지드)의 줄리어스-'적과 흙'(스탕달)의 마틸드가 함께 오버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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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독재자는 민중이 광장에 모이는 것을 꺼려 했는데 뭇 솔리 니와 히틀러는 광장에 열광하는 민중을 토대로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킨 인물입니다. 김대중-문재인-윤석열-이재명 모두 장외 정치를 좋아했어요. 해서 누구도 파시즘에 자유로울 수 없고 '파시스트=극우'로 단정 지으면 안 될 것입니다. 파시케스-파쇼-파시즘으로 변형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나무로 된 몽둥이 다발에 묶인 도끼로, 본래 고대 로마의 집정관의 경호원(릭 토르)들이 들고 다니던 의장용 무기에서 유래되었으며 집정관의 권력과 권위와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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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무솔리니는 젊은 시절 포악한 성정과 달리, 특유의 달변과 우람한 육체미로 귀족·지식인 여성들을 사로잡았어요. 그의 첫 직업은 마을 교사였는데, 낭인·폭력배나 다름없이 생활하며 다수의 여성을 유혹했어요. 주말마다 무도회장에서 여자를 찾았고 경쟁자에게 시비를 걸어 주먹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생활패턴이 말 그대로 ‘동네 건달’ 수준이었어요. 그는 군인 남편을 두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스무 살의 줄리아를 유혹해 밀통한 일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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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는 그녀가 곁을 떠나자 길거리에서 폭행하며 팔을 물어뜯는 등 만행에 젖어 살았고 집권 후에도 “여자들처럼 대중은 결국 유린의 대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일평생 광기 어린 욕망으로 뭇 여성들을 유린하던 그도 ‘꼼짝 못 하는’ 상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연상의 여인’ 안젤리카 발라 파노프(1878~1965)입니다. 무솔리니는 1904년 3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파리코뮌(1871년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에 의해 수립된 혁명 자치 정부) 33주년 행사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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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머리에 마른 체형인 안젤리카는 연단에 올라 사회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었어요. 당시 36세였던 그녀는 벨기에의 브뤼셀 자유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뇌섹녀로 당대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그녀는 훗날 공산주의 국제연합 ‘코민테른’ 서기, 이탈리아 사회주의 자당 당수에까지 오릅니다. 운명이었을까. 그녀는 몰려든 인파 중에서 유독 무솔리니에게 마음이 갔답니다. 뒷날 안젤리카는 “그때 그처럼 비루한 인상의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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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무솔리니는 노숙자나 다름없는 무일푼으로 스위스에 와서 건축·하역 잡부로 전전하고, 정육점·포도주 가게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가 일감이 없는 날이면 다리 밑에서 잠을 잤는데 안젤리카는 오히려 행색이 남루한 그에게 묘한 동정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안젤리카의 전폭 지원으로 무솔리니는 이민노동자 조합에 가입하게 되고 초청받은 조합 강연회에서 명연설을 펼쳐 이탈리아 사회 당에 이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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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는 사회주의 이론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신랄한 어조로 민중의 마음을 샀니다. 이후 당 서기관에 임명, 당 기관지에서 기사 작성 업무를 맡게 됩니다. 안젤리카는 일개 빈민에 불과했던 무솔리니를 번듯한 당내 언론인으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멘토로서 그의 학문적 토대를 닦아줬어요. 그녀는 여자에 대한 그의 욕망까지도 노련하게 간파했고, 이를 역이용해 ‘들개 같은’ 남자의 청춘을 쥐락펴락합니다. 안젤리카의 지적 컨트롤에 혈기 방장한 무솔리니도 온순히 젖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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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가 평생토록 찬사를 거듭한 여성은 오직 안젤리카뿐이었어요. 훗날 그는 “내가 만약 스위스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당원으로 일요일 아침 시장에 나와 기관지를 파는 것에 만족하는 ‘소심한 혁명가’에 그쳤을 것이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 무솔리니가 1912년 사회당 기관지 '아반티'편집장직을 수락한 이유도 안젤리카가 부편집장으로 그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무솔리니는 스승 같은, 어머니같은 안젤리카를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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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는 연상(5살)의 여인에게서 인내의 미학, 파시즘 이론, 독서와 공부법 등을 배웠습니다. 다른 독재자들의 여인과 달리 안젤리카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무솔리니를 지원했습니다. 무솔리니도 그녀에게 질펀한 성욕을 느끼기보다는 간간이 존경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들의 특별한 관계는 10년 동안 이어졌고 1918년 안젤리카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떠나 러시아의 레닌 곁으로 가자, 무솔리니는 물론 그녀 뒤를 이은 또 다른 정부들까지 아쉬워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산정호수에 숨어버린 나의 마틸드는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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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끝 무렵(1945년 4월 29)에 무솔리니와 페타치가 처형됐고 이때 안젤리카는 스스로 처형을 되기를 자청했다는 것 아닙니까?파시스트들의 시체는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새벽 3시에 보내졌습니다. 그곳은 일전에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가 처형된 곳으로 수많은 군중에 의해 차이고 짓밟힌 그들의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려졌어요. 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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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28회입니다. 조조가 원소와 관도에서 전쟁을 벌인다는 소식을 접한 강동의 손책은 허창을 기습해서 빼앗을 궁리를 합니다. “장군! 조심하세요. 조조는 보통내기가 아닙니다(대교)“ 화친을 청하는 것처럼 시간을 지연시킨 조조의 계략에 넘어간 원소는 무려 10배나 많은 군사를 보유하고도 속수무책 추풍낙엽입니다. 당시 공성대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무기는 철기 병이었어요. 지금으로 친다면 장갑차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6.25 때 조국은 탱크 한 대가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더 볼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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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vs 조조 전쟁은 원소의 참패입니다. “70만 대군으로 패했다고? 장난한 거야(장비)” 유비가 이제 조조는 내가 상대한다 말하자 원소는 유비 군사가 5천인 걸 알고는 비웃습니다. “모두 내 잘못이다(원소)” “주공! 한번 실패는 병가지상사입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바로 옥살이하고 있는 전풍입니다.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단순한 원소가 뒤늦게 후회를 하고 전풍을 데려오라고 하자 허유는 석방만 하고 등용은 하지 말라고 제안합니다. 허유가 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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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변덕쟁이 원소는 즉결 처형을 명하고 전풍은 옥에서 자결합니다. “하늘이 조조를 돕는구나. 하늘이 원망스러워(전풍)” “거병 이후 이런 대승은 처음이야. 하지만 지금 손책이 허창을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하게 돼(조조)” 조조가 식량이 10일 치 밖에 없다며 철군을 고려하던 중 순욱의 만류로 주저합니다. “순 선생 퇴각해야 합니까? 공격해야 합니까?(조비)“ ”당장 다음 전투를 준비하라(조조)“ 한편 전열을 가다듬은 원소의 병력이 아직 43만 이나 남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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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풍이 유언을 남겼는데 허유와 조조는 어릴 적 친구였으며 현재도 조조와 내통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을 안 원소는 크게 노하며 허유 때문에 전풍이 죽었고 지금은 전시라서 처벌을 보류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처벌하겠다며 허유를 문책합니다. 허유는 허유대로 아둔한 주공을 탄식하며 조조를 찾아갑니다.
2025.4.18.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