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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9월 16일 월요일
[(홍)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고르넬리오 성인은 251년에 로마의 주교로 서품되었다. 그는 박해 시기에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공동체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로마의 사제 노바티아누스 이단에 맞서 투쟁하였고,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였다. 갈루스 황제가 252년 6월 다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면서 그에게 유배형을 내렸고, 253년 6월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성 갈리스토 카타콤에 묻혔다.
치프리아노 성인은 210년 무렵 카르타고(현재 튀니지 일대)의 이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246년 무렵 체칠리아노 사제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례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품을 받고, 249년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어 어렵고 힘든 시대에 모범적인 덕행과 저술로써 교회를 훌륭히 다스렸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유배당하고, 신임 총독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재판받다가,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자신의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다고 하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면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17-26.33
형제 여러분,
17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18 우선,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20 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21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22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23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33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코린 4,7-15)와 복음(요한 17,11ㄷ-19)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의 성찬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1코린 11,20)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들의 성찬이 공동체의 사랑과 일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부의 차이를 드러내고 다른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신 사람들이라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찬은 교회의 신자들이 하나임을 드러내야 하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 사람은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내줄 수 있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공동체가 성찬을 거행하기에,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기에 합당할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백인대장이,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영성체를 앞두고 하는 말입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개인들만이 아니라 성찬을 거행하는 공동체들도 주님 앞에서 바쳐야 하는 고백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도 상처는 있고, 우리가 그 일치를 거슬러 저지르는 잘못들도 있습니다. 영성체를 앞두고 공동체의 양심을 성찰한다면, 혼자서 양심을 성찰할 때 못지않은 부당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인대장과 같이 치유를 청하며,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고 간청하여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우리 교회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부당함에도 주님께서 당신의 한 말씀으로 우리를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여야 하는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더 너그럽고 관대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봐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신앙인이 아님에도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을 보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 뵐 때마다 밀려오는 큰 부끄러움에 가슴을 치게 됩니다.
반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늘 부담이요 민폐로 각인된 사람도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듣고, 규칙적인 성사 생활과 기도 안에 살아가는 저희 같은 사제나 수도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뒷골이 당겨옵니다. 이걸 지금 받아야 해, 말아야 해, 망설입니다. 혹시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한 백인대장은 정통 신앙을 자랑하는 유다인들로부터 멸시받고 무시당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행동, 언어와 믿음은 얼마나 탁월한 것이었던지 예수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습니다. 열두 사도들도 받지 못하던 칭찬을 그가 받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든 이유가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그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의 치유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물건처럼 매매가 되고 있던 노예의 치유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백인 대장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품성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욱 예수님을 감탄하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백인대장의 겸손한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를 위해 걸어가고 계실 때, 그는 친구들을 보내어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백인대장이 얼마나 말을 예쁘게 하는지?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뿐만 아니라 지극히 겸손한 태도까지 겸비했으니, 극찬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보아하니 백인 대장은 이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완벽한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 죽어가는 자신의 노예를 반드시 치유시켜주실 능력을 지닌 분임을 확신한 강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세례받은 세월이 길다 해서 절대 신앙의 깊이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의 옷이 결코 예수님의 칭찬을 불러오는 표시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청이 나를 위한 것보다는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청이 되어야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의 건설 같은 큰 것이어야겠습니다. 더 너그럽고 관대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봐야겠습니다.
가톨릭이 살길은 최대한 많이 베푸는 일인 이유.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그는 자신이 지배하던 민족을 사랑해서 회당까지 지어주고 자기 하인을 위해 그 민족의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치유를 청합니다. 그가 종교는 다를지라도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고 하신 이유를 잘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하늘로 오르는 한 마리의 새라면, 믿음과 희망은 사랑이라는 몸통을 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이 위로 오르려는 의지가 있을수록 믿음과 희망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한탄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사랑의 의지를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뜻도 됩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은 왕비로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질투를 느낀 이들은 남편 루트비히를 설득하여 그녀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기는 하였지만, 어느 날 관료들과 함께 그녀가 옷에 무언가 숨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루트비히는 국고를 탕진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엘리사벳에게 옷에 무엇을 숨기고 나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옷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는 한겨울이었음에도 장미가 한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은 이렇게 기적을 부르고 기적은 그 당사자와 주위에 있는 이들의 믿음을 증가시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성녀가 하루는 문둥병자를 궁궐에 들였습니다. 이것을 본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며느리가 궁궐을 병으로 물들게 만들려고 한다고 일러바쳤습니다. 루트비히는 또 어쩔 수 없이 침대를 뒤져야 했습니다. 아내 엘리사벳이 간병하는 침대를 열어젖히자 그 안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인간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루트비히도 이제 가난한 이들을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제 둘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병원도 세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과연 사랑에 대한 의지엔 언제나 희망과 믿음의 두 날개가 달립니다.
알렉시스 카렐은 혈관을 꿰매는 기술로 노벨 의학상을 받은 저명한 의사입니다. 그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통에 신앙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02년, 카렐 박사의 친구인 한 의사가 리옹에서 루르드로 가는 기차로 이송되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돕도록 그를 초대했습니다. 그는 우정과 아픈 사람을 돕는 일을 거부할 수 없어서 기차에 탑승합니다.
그는 기차에서 급성 결핵성 복막염과 큰 딱딱한 덩어리가 있는 상당한 복부 팽창을 앓고 있는 마리 바이를 만납니다. 마리 바이는 반쯤 의식이 있었지만, 카렐은 루르드에 도착한 후, 아니면 그 전에 그녀가 매우 빨리 죽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기차에 탄 다른 의사들도 이 진단에 동의했습니다.
기차가 루르드에 도착했을 때, 마리는 동굴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세 개의 물병이 그녀의 팽창한 복부에 쏟아졌습니다. 첫 번째 부은 후, 그녀는 뜨거운 통증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 부은 후, 통증이 완화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은 후, 그녀는 기분 좋은 감각을 경험했습니다. 그녀의 배가 평평해지기 시작했고,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캐럴은 마리(다른 의사들과 함께) 뒤에 서서, 그녀의 복부에 물이 부어지는 동안 메모를 적었습니다.
“엄청나게 팽창하고 딱딱한 복부가 평평해지기 시작했고, 30분 이내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몸에서 분비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리는 침대에 앉아 저녁을 먹고(토하지 않고),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나 다음 날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기차를 타고, 딱딱한 벤치에 앉아, 상쾌한 기분으로 리옹에 도착했습니다.
캐럴은 여전히 그녀의 심리적, 신체적 상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4개월 동안 정신과 의사와 의사의 모니터링을 요청했습니다. 병이 나은 후 마리는 자선 자매회에 입회하여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았고, 약 35년을 더 살아 1937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카렐 박사는 노벨 의학상 수상자임에도 종교와 과학이 상반되지 않고 보완한다고 말해 의학과 과학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은 아픈 사람을 돕겠다는 작은 봉사의 마음에서 다시 불붙여졌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려고 합시다. 믿음과 희망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사랑의 의지가 전부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88년 5월에 저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복학하기 전까지 예비자 교리를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중, 고등학생 반을 맡아서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12월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학생 중의 한 명은 취직이 되었고, 첫 월급을 타는 날 제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5시에 ‘대학다방’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저는 약속을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천마산으로 등산을 갔습니다. 오후에 약속이 생각난 저는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10시가 넘었고, 다방 문도 닫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기에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고, 다방 문을 열었습니다. 다방 한구석에 저를 기다리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학생은 제가 올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저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학생에게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4년 뒤에 저는 그 친구가 근무하던 자동차 대리점에서 승용차를 샀습니다. 저를 믿고 끝까지 기다려주었던 친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값싼 믿음과 진정한 믿음입니다. 값싼 믿음은 하느님과 거래하려는 믿음입니다. 마치 하느님을 자판기처럼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에 따라서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믿음마저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의 뜻대로 하느님이 변하기를 원하는 믿음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바라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성공과 권력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믿음입니다. 신앙이 본래 지닌 깊이와 진지함을 잃어버린 형태의 믿음이 값싼 믿음입니다. 이는 은혜를 값싸게 만들고, 회개나 변화 없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으려 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값싼 믿음은 죄의 진정한 회개 없이 쉽게 용서받으려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값싼 믿음은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의 고난을 가볍게 여기고, 희생 없이 은혜만을 바라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값싼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무시하고,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은전 서른 닢에 스승을 배반한 유다의 믿음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주어지는 상황까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는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니 그리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아이를 갖게 될 상황까지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마리아가 받아들였던 상황은 약혼한 요셉에게 파혼당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받아들였던 상황은 어쩌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3번이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예수님의 얼굴에는 피와 땀이 흘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고난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외롭게 죽어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었던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고난과 십자가를 받아들였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삶을 변화시키는 깊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참된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픈 종을 보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미 이런 모습만으로도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주님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그렇습니다. 참된 믿음은 신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든 이들에게서 오늘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연도 : +253년
같은이름 : 고르넬리우스, 꼬르넬리오, 꼬르넬리우스, 코르넬리오, 코르넬리우스
로마(Roma)의 평범한 사제이던 성 코르넬리우스(또는 고르넬리오)는 성 파비아누스(Fabianus, 1월 20일) 교황이 순교한 후 여러 사정으로 14개월 동안 지연되었던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황 선출이 지연된 것은 데키우스 황제의 극심한 그리스도교 박해 때문이었다.
그가 재임 기간 중 이룬 주요 업적은 박해 기간 중에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과의 화해 정책이었다. 그는 배교자들에게 합당한 통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한편, 배교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단죄하며 교회가 그런 죄를 용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일파를 공격하던 카르타고(Carthago)의 주교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를 끝까지 옹호하였다.
그리고 그는 배교자를 용서하는 권한이 교회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교황으로 선언했던 로마의 사제 노바티아누스와 그를 정점으로 모인 엄격파들을 단죄하여 교회의 평온을 회복하였다. 노바티아누스는 소수의 지지자들과 함께 새 교회를 세운 대립 교황이었다. 노바티아누스의 극단주의를 옹호하던 무리들은 재차 힘을 규합하여 동방에서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에 성 코르넬리우스 교황은 교회가 통회하는 배교자들을 용서할 권한이 있음을 재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성 코르넬리우스 교황의 제의로 251년 10월에 개최된 서방 주교들의 교회회의는 노바티아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파문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단죄하여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
갈루스 황제가 252년 6월에 다시 그리스도교 박해를 재개하자, 그는 체포되어 첸툼첼레(Centumcellae, 현재 로마의 항구도시 치비타베키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이듬해 6월 순교자로서 삶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신은 후에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의 루치나(Lucina)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명은 라틴어로 새겨진 최초의 교황 비문이다.
성녀 둘치시마(Dulcissima)
활동년도 : +연대미상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수트리(Sutri)
같은 이름 : 돌치시마, 돌치씨마, 돌키시마, 돌키씨마, 둘치씨마, 둘키시마, 둘키씨마
성녀 둘치시마에 대해 알려진 것은 오로지 그녀가 옛 교황령이었던 이탈리아 수트리의 수호성인이라는 것뿐이다. 그녀는 돌치시마(Dolcissima)로도 불린다.
성녀 루드밀라 (Ludmila)
활동년도 : 860-921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보헤미아(Bohemia)
같은 이름 : 루트밀라
성녀 루드밀라는 슬라브 왕자의 딸로 태어나 보헤미아의 공작 보리보이(Borivoy)와 결혼하였는데, 남편도 자신이 다니던 성당의 성 메토디우스(Methodius, 2월 14일)로부터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들은 보헤미아에 첫 번째 성당을 세웠다. 그러나 왕가에서는 이 신흥종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반대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남편마저 운명하였다. 그녀는 덕스럽고 배움이 많은 부인이었다. 그녀는 늘 주민들을 돕고 있었기에 백성들은 그녀의 높은 덕을 늘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싫어하던 왕가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체코에서 더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에우페미아 (Euphemia)
활동년도 : +307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에우뻬미아, 유뻬미아, 유페미아
고대 저술가들과 교회는 성녀 에우페미아에 대하여 큰 소리로 찬양하고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451년에 공의회가 열린 칼케돈(Chalcedon)을 포함하여 수많은 지역에서 그녀를 높이 공경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녀는 아마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에 순교한 듯하다. 당국이 그녀에게 온갖 고문을 다하였어도 죽지 않자, 마침내 야생 동물에게 던져 죽게 하였다고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