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낯선 것과의 마주침’이 공부라고 한다.
그 공부를 하러 지난 토요일에 서울로 올라갔다.
달개비님의 소개로 알게 된 카페의 정모가 있어 참석해 보기로 했다.
평소 책두레를 통해 책은 많이 접하지만 사실 일 년에 시집 한 번도 사지 않던 나에게
다양한 시와 시인을 알게 하고, 시집을 사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카페이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애인을 만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설레이지.’
독서모임이나 인라인동아리 카페는 오프에서 먼저 만나서 별로 낯설지 않지만
이번 정모는 순전히 온라인에서만 알게 된 사람들이라 더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얀 아사 개량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 책을 보는 그녀.
천사님이다. 이번에 등단한 시인이자 카페지기님이다.
시를 쓰듯 조근조근 천천히 말하는 모습에서 신중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얼인데도 피부는 얼마나 좋은지 부럽기만 하다.
원시시대에는 사냥을 하는 남자들은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이 많으면 그 소리를 듣고 사냥감이 달아나 버려 사냥에 실패하기 때문이란다. 반면 여자들은 열매나 나물을 채집했기 때문에 심심하기도 하고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수다를 떨게 되었단다. 그 진화된 유전자를 받은 두 여자가 수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할 때 쯤, 제주도에 계신다는 정군칠 시인님이 도착하셨다. ‘물집’과 ‘수목한계선’ 이라는 시집을 내셨고 제주도 문화해설사 활동과 도서관에서 주부대상으로 강의도 하신단다. 옳다구나, 제주도로 우리 문학기행가는 것 어떠냐고 즉석해서 제안했더니 정군칠 시인님은 어서 오라하시고, 천사님은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하신다. 하기야 정모에도 이렇게 참석률이 저조한 데 천사님 엄두가 나시겠어. ^^
특별출연하신 정군칠 시인의 친구인 사진작가 두 분과 셋이서 동태찌개와 소주 한 병과 밥을 먹었다. 강남 몰표로 강남에 사시는 두 분을 놀려주고, 더운 나라 이야기, 누가 더 사진을 잘 찍는지에 대한 실랑이도 듣고 찌개가 자작하게 졸아갈 무렵, 봄비님이 서울역부근이라며 곧 오신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봄비님을 기다리면서 두 시인은 누구나 치열하게 시를 쓴다는 이야기와 아마추어일 때와 달리 등단을 하게 되면 책임감이 생겨서 더 잘 써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나에게도 시를 써보라 하신다. 휴~ 시인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다. 난 그냥 시를 열심히 읽는 독자이고 싶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다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중 나중에 시가 내게로 오면 몰라도 지금은 그냥 엉덩이 뒤로 쭉 빼고 앉아 있어야지.
드디어 빨간 옷을 입은 정열적인 봄비님이 오시고 2차로 지난번 책두레 회원과 같이 갔던 ‘지대방’ 전통찻집에서 찐한 대추차와 세작을 마시며 또 다시 담소를 나누었다. 짐작대로 봄비님은 몸매는 여리지만 열정적인 것 같다. 시와 수필을 한꺼번에 배우는 중이란다. 곧 봄비님의 작품을 자주 볼 수 있었을 같아 기쁘다.
인사동 '어거리풍년'이라는 식당. 이층에 있는 배개들과 가야금.
열시 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언니네 집으로 갔다.
결혼하고 쭉 형님네 대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나이 들수록 어리광이 심해지고 병치레를 많이 하는 시부모를 대하는 언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이 높아져 있었다.
아무래도 언니가 병이 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런저런 밀린 수다 떨다가 밤 2시에 잠이 들었다.
사실 이번 한양 나들이는 1박2일 코스였다.
1차는 토요일, 광화문에서 친구도 만나고 시집을 산다.
2차 인사동에서 카페정모에 참석한다.
3차 일요일, 가족모임에서 ‘드로잉쇼’를 본다.
정모가 정해지자, 부랴부랴 약속을 만들어 상경이 불가피하다는 구실을 만들고 늦은 귀가로 인해 언니집에서 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남편을 설득했다. 이만하면 또기도 치밀한 구석이 있는 것 같지 아마.
아산에서 출발 한 남편과 아이들을 열두시 쯤 대학로에서 만나 퓨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이 좀 남아 ‘쇳대박물관’을 구경했다. 마침 어느 대학 금속공예과 작품전시회도 열려 일석이조였다. 다른 전시회는 작품을 만질 수 없지만 오르골을 직접 작동시켜 보거나 호두 까는 기계로 호두를 까서 먹을 수 있어 재미있었다. 세계 각 국에서 수집한 열쇠와 우리나라 전통 열쇠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법정 스님, 윤석화 등 유명인이 기증한 열쇠들도 전시되어 있어 작지만 의미 있는 곳이다.
시간이 되어 예약한 ‘드로잉쇼’를 보러갔다. 언니, 여동생네, 남동생네, 우리식구해서 참석인원이 12명이다. 다 모이면 민족대이동 수준이지만 오늘은 좀 빠져서 이 정도다.
‘드로잉쇼’는 한마디로 다양한 그리기를 보여주는 쇼다. 다 말해주면 재미없지만 한 가지 힌트를 주면, 대사는 ‘바나나’ 이 한마디만 들었지만 작은 손짓, 몸짓, 표정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임 포퍼먼스다. 다섯 살, 일곱 살 조카가 쉬지 않고 깔깔거릴 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내가 제안한 공연관람이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워서 기분이 좋았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자는 나와는 달리 평소 일중독에 빠져 있는 남편까지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번 이벤트는 대성공이다.
자주 공연 보러 갈 수준은 아니지만 비상시를 위해 식구끼리 삼만원씩 곗돈을 부어놓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식구끼리 만나면 먹고 마시고 배만 나왔는데 이제 공연관람으로 돌려볼까 생각중이다. 다음에는 ‘오페라의 유령’ 보러 가자고 벌써 성화다.
전철에서 조카랑 작은 딸이 둘리표정 만드는 모습. 귀엽죠?
첫댓글 와우 좋다. 나도 뭔가 꺼리를 만들어야 할까봐. 치밀한 또기 덕에 가족들까지 횡재를 하는 거 같아.
공부하는 아이들 꼬셔 다른 공부시키고 있지요. 어쩌면 이런 공부가 오래갈지도...
유월의 이틀이라 명명할만 하네 행복이 충만했던 또기님의 이틀^^ 지대방 대추차를 맛보고 집에 와서 따라해봤다는....대추와 생강을 넣고 뭉그러질때까지 푹 고와 고운 체에 내린다음 그 물에 꿀과 홍삼 액기스를 넣고 다시 한번 끓였더니 환상의 대추차가 되더라. 승희 너무 귀여워^^
대추차는 겨울에 나도 한번 만들어 보아야겠어요. 샘은 팔팔해지셨나요?
너무 좋은시간 멋진 추억...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아닐까 싶어요. 나는 기획자는 아닌가봐요. 누가 뭐하자 하면 따라는 잘하면서....ㅠㅠ 이제부턴 무엇을 해야할까를 더 고민하는 내가 되고싶네요.
더 좋은데 많이 가는 사월지기가 나도 부럽다 뭐. 다녀온 이야기,사진 올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