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도시에서 핵산업의 메카가 된 경주
*6월21일 탈핵 아시아 평화 한일 시민투어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경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다. 고대국가 중 하나인 신라가 태동된 곳으로 서기 57년 건국에서 935년 폐망까지 약 천 년 간 수도였고, 신라 패망 이후에도 고려와 조선의 중요 도시로서 기능을 했다. 조선시대에 정비되어 아직까지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되는 경상도의 ‘경’은 경주를 가리킨다. 이를 증명하듯 경주에는 세계문화유산이 많은데 석굴암과 불국사가 대표적이며 시내에 위치한 고분군과 남산자락의 유적지구가 등재되어 있다. 또한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초기에 형성되어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민속마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렇듯 경주시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로서 시민들은 경주를 가리켜 ‘역사문화 도시’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역대 한국정부는 경주의 가치를 잘 살리지 못한 채,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1978년 경주 앞바다에 핵발전소 건설을 시작했다. 월성원전이 들어선 그곳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있는 곳으로 인근에는 문무대왕과 관련된 감은사지 등 유서 깊은 유적지가 있다. 대대로 어업이 생업인 이곳 주민들은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여 싸웠으나 1978년은 박정희 군사정부 시대였으며 이후로도 한국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이 1992년까지 계속 되었고 핵발전소는 폭력적으로 들어섰다. 경주 앞바다는 월성1호기가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캐나다에서 가져온 중수로형 원전 4기(월성1,2,3,4)가 가동 중이며 최근 경수로형 원전인 신월성 1,2호기가 준공됐다. 신월성 1호기는 상업운전을 시작했고, 2호기는 준비 중이다.
그리고 2005년 주민투표를 통해 중저준위 핵폐기물처분장이 경주로 결정됐다. 당시 주민투표는 금권, 관권이 판치는 부정선거였다. 그렇지만 핵폐기장을 유치하려는 커다란 흐름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당시 정부와 유치찬성 측은 핵폐기장을 유치하면 '3천억원 +a'의 지역발전 기금과 (주)한국수력원자력 본사 및 양성자가속기를 유치지역에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또한 정부는 중저준위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지역에는 고준위 핵폐기장을 건설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경주는 중수로형 핵발전의 특성으로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 중저준위를 유치하면 고준위를 내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핵폐기장을 유치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경주시민들이 ‘3천억원+a' 등의 경제적 지원에 약했던 이유는 산업화시대의 고도발전에서 탈락했다는 박탈감이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 본 대로 경주는 천 년 간 고대국가의 수도였으며 또다시 천 년 간 중세 및 근세국가의 주요도시였다. 그러나 최근 40년 경제개발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에 인근의 울산과 포항은 인구 200만과 70만의 공업도시로 성장했으나 이들 도시보다 훨씬 규모가 컸던 경주시는 지난 40년간 인구가 26만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도심은 문화유적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로 묶였고, 일부 개발이 허용되는 지역도 기형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박탈감이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쉽게 회유되면서 핵산업에 더욱 의존하는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주변지역의 산업화 못지않게 대한민국의 대표적 역사유적 도시로 잘 개발되고 시민들의
긍지를 살려왔다면 지금처럼 핵산업으로 만신창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도 경제 만능주의에서 삶의 질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정부와 경주시도 경주의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이를 잘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으로 망가진 경주가 역사문화도시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현재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시민사회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론화의 본질이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후보 부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이 경주라고 한다. 아마도 경주시민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경주가 일본의 로카쇼무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경주의 핵시설을 정리하면, 캐나다에서 건설한 중수로형 원전 4기, 한국에서 개발한 경수로형 원전 2기, 중저준위 핵폐기장 건설 중이며 이제 막 부지선정 작업에 들어가는 고준위 핵폐기장의 유력한 후보부지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핵시설을 둘러싼 주요 쟁점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월성1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해서 2012년 11월 20일 설계수명 30년을 모두 채우고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한수원은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해서 2009년 4월부터 2년 3개월에 걸쳐 5000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자해 압력관 등 핵심부품을 교체했고, 2009년 12월 정부에 수명연장을 신청했다. 수명연장 심사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수명연장 심사기간은 18개월인데 월성1호기는 2013년 6월 현재 42개월을 넘기며 심사를 계속하고 있다. 심사가 오랫동안 진행되는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졌고 심사과정에서 안전상의 문제들이 발견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현재 한국정부는 적당한 재가동 시점을 찾고 있으며 시민사회는 재가동 반대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저준위 핵폐기장은 2008년 8월 공사를 시작해서 2010년 6월 준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사 준공은 2012년 12월로 연기됐다가 2014년 6월로 또다시 연기됐다. 한국에서 제일 큰 건설기업인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 함께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준공이 계속 연기되는 이유는 이곳의 암반이 매우 부실하고 지하수가 다량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경주는 핵폐기장 부지로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정부는 계속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시민사회는 지속적으로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공사는 1단계 핵폐기장으로 10만 드럼의 폐기물이 저장될 공간을 땅 속 동굴 형태로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 2단계, 3단계 공사를 거쳐 총 80만 드럼의 핵폐기물을 처리할 계획이다. 참고로 지난 30년간 핵발전에서 생성된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약 12만 드럼이다. 80만 드럼 목표는 한국정부가 앞으로 얼마나 더 핵발전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서 설명한 2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주지역에선 경주환경운동연합이 중심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 11월 19일 경주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2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경주핵안전연대를 새롭게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