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황자등은 강희에게 당했고, 폐태자 윤잉은 다시 태자로 복귀한 상황. 강희에게 있어 가장 좋은 그림은 이대로 아무 문제없이, 자신이 사망하고 윤잉이 황제를 이어받는 일입니다. 이 사이 미래의 황제 윤진은 "앞에 나는 새가 총 맞는다." "질 좋은 서까래가 먼저 썩는다." 는 말처럼 치열한 권력 싸움에서 마치 무릉도원의 신선마냥 한 걸음 떨어져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로 이 시기에 승려들과 어울렸습니다.
강희가 아직 젊고 힘이 넘치던 시절, 윤진의 측근 중에 한명인 대탁(戴鐸)이라는 사람은, 강희에게 총애를 받을 수 있는 몇가지 책략을 밀지에 적어서 윤진에게 보냈습니다. 윤진은 이를 보고 마음 속으로는 동감하는 바가 없진 않았겠으나 겉으로 하는 말은 지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대의 말이 모두 옳지만, 나와는 무관하다. 만약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실행할 것이다. 그런 힘든 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인데 감히 도모할 수 있겠는가? 현재 군신의 이해득실이 평생의 영욕과 관계되었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고, 화도 복도 없이 평탄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대가 나의 평안을 바란다면, 그런 언사를 행동화할 생각은 하지도 말 것이며, 자중, 또 자중하기를 바라오."
'나와는 무관하다.' 라고 말한 윤진이지만 이 말은 물론 겉으로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이미 그는 늑대와 같은 예리함으로 자기 주변에 일종의 측근 그룹을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그 숫자는 적은 편이 아니지만, 대표적인 인물 세명을 거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갱요(年羹尧)
한족 출신의 기인(旗人)으로, 스물 한 살에 진사가 되었으며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사천 순무로 나섰다가, 강희 57년에 사천 총독으로까지 승진했습니다. 강희 60년에는 사천과 산시성 총독으로 임명되면서 입지를 굳혔는데, 그 집안의 대대로 윤진의 속지에서 살아 윤진에게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게다가 연갱요의 누이동생이 윤진의 측실이어서 둘은 처남 매부 사이였습니다. 윤진의 인척에다, 주군과 신하의 정이 두텁다는 평이었고, 군권까지 가지고 있어 최대 심복이라 할만 합니다. 실제로 능력도 대단하여, 서북에서 빛나는 공을 여러차례 세웠습니다.
융과다(隆科多)
윤진의 외삼촌뻘이 되는 사람이고 나중에 보군통령 직을 겸임했습니다. 보군통령은 북경성 내외 구문을 관리하고 팔기의 보병을 통수했는데, 직급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중요한 직책이었으므로, 윤진에게 있어 이용가치가 상당히 큰 인물이었습니다.
윤상(胤祥)
강희제의 열셋째 왕자로, 태자의 폐위 사건때 말려들어 타격을 입긴 했지만 윤진과 사이가 매우 좋았습니다. 나중에 윤진이 황제가 된 후에 형제들이 많이 수난을 당했지만, 윤상은 최측근으로서 윤진을 보좌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을 보자면 이미 윤진은 속으로 음흉한 꿍꿍이를 품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윤진은 대단히 교활하여 영리한 행동을 취했는데, 태자나 팔황자가 당한 까닭은, 강희가 가장 용납하지 못할 파당을 이루어 무리를 짓고 다니는 행동을 한 까닭이라고 보고, 자신의 세력이 있음에도 드러내놓고 싸움에 참여하거나 위세를 과시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풍월이나 외우며 도사처럼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기만 했습니다.
한편, 늙은 강희의 온갖 바램과, 이제 안심해도 되겠지 하는 마음에도 불구, 복귀한 태자는 다시 악행을 저질렀고, 무엇보다 자신의 파당을 다시 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자의 재기를 알게 된 야심가들이 태양이 다시 떠오를 절호의 기회라고 좋아하며, 끊어졌던 끈을 다시 잇고 태자의 신변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중상모략도 섞여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나오는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강희는 두번째 재앙은 피하기 위해 참고, 꾹 참았습니다. 윤잉의 음식과 의복, 장식등은 강희보다 배나 많았고, 윤잉이 처벌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나서서 처벌하였으며, 윤잉을 쫒아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나서서 쫒아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다다랗습니다. 강희의 가슴은 이미 재가 되어버렸고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강희 51년, 그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목소리로 마침내 선언했습니다.
"이제 짐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마음을 풀라고 해도 소용 없는 일이다. 이전에 윤잉을 처음 폐위하였을 때, 짐은 참으로 분하고 슬펐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담소를 나누며 일을 처리한다."
그러면서 태자를 다시 폐위해버렸습니다. 입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으나, 마음속 고뇌는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두번째 받은 정신적 타격으로 황제의 건강은 눈에 뛰게 나빠졌습니다. 예순을 넘기자 왠지 병치레가 잦아졌고, 방안에 칩거해 있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강희는 전쟁터에서 무찌르지 않은 적이 없었고, 그 권세는 아시아의 제왕이라 할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늙고 상처받은 외로운 노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강희는 의식적으로 태자 책봉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강희 57년, 황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의전담당관을 불러 황태자에 관한 의식을 조사하도록 하였는데, 조정은 이때문에 술렁거려습니다. 그런데 주톈바오라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선두를 빼앗길까 급히 서둘러서, 다시 폐태자를 책립하라는 청원을 올렸습니다. 이는 그릇된 판단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폐태자가 근신에 근신을 거듭하여, 타고난 미덕이 다시 발휘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런 정보는 어디서 입수하였는가?"
근신 중인 폐태자의 주위에는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기에, 주톈바오는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불어야 했습니다.
"실은 아비인 주더우나가 사위 다이바오와 의논해서, 안을 만들어 제 이름으로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이 자는 불충한 자일 뿐 아니라, 용서할 수 없는 불효자이기도 하구나!"
강희는 격분했고, 아버지인 주더우나도 불려왔습니다. 주더우나는 손이 닳도록 빌면서 애원했습니다.
"모두가 소인의 잘못입니다. 소인은 능지처사형에 처해져도 좋습니다만은, 외아들인 주톈바오만은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이미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강희는 자비심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중대한 생사의 고비에서 아비의 잘못을 불어 버리는 불효자를 살려 두어서 무엇하겠느냐? 능지처사형을 당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겠으나, 그 전에 불효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네 눈으로 똑똑히 다 보고 나서 죽도록 하라!"
그리하여 주톈바오와 사위 다이바오는 형장에 끌려가 목이 잘렸습니다. 주더우나는 마지막 순간에 노령을 감안하여 사형은 면제되었지만, 억지로 형장에 끌려와 아들과 사위가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한편, 팔황자 윤사는 태자가 다시 폐위되자 이번에는 몸을 사리는 동시에, 병부를 관장하며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야심만만한 십사황자 윤제를 견제했습니다. 그의 계산으로는 강희가 곧 대신들에게 태자 책봉에 관한 설문을 할텐데, 그렇다면야 대신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자신이 태자가 될 것은 자명했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그는 윤제를 감시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애가 탄 팔황자는 황제의 문안을 여쭌다는 핑계로 알현하여 사정을 살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마침 윤진과 십사황자 윤제가 있었습니다. 윤사는 우선 황제에게 큰 절을 하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아 아버님께 문안을 여쭙지 못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둘째 형의 일로 마음이 편치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르다 생각한 것인데, 만약 세금을 거두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거나 군사를 다스리는 일을 맡겨 달라 청하면 황상께서 제가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고, 출가하여 도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대신들의 뒷말을 들어 심기가 불편해질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해 보아도 도무지 제가 가야 할 길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청컨대 저에게 살 길을 제시해 주시거나, 아니면 집에서 요양을 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늙은 강희는 이렇게 조소했습니다.
"지난번이 짐이 윤잉을 폐했을 때 백관들이 모두 너를 추천했으나 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시 폐위시킴으로서 당연히 네가 그 자리에 올라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마음이 불편한 게냐? 보아하니 오늘 짐의 속내를 살피려는 것 같으니 확실히 언급해 주마. 네가 진정으로 사심 없이 분수를 지키며 왕자 노릇을 하거나, 세금을 걷으러 내려가거나 병사를 다스리려 한다면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중이 되는 것도, 몸이 아파 요양을 하겠다는 것도 모두 윤허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내 의중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십사황자 윤제가 갑자기 발언했습니다.
"저의 직언을 용서소하소서. 황상의 말씀은 지나치십니다. 형님의 인망은 스스로 얻었을 뿐, 황상께서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인망이 있고 덕성스런 성품이 죄가 된다면, 어지 하늘의 뜻이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시 말해 형님께서 황사으이 분부를 청하였는데 중이 되는 것도, 집에서 요양을 하는것도 모두 허락하지 않으시니, 이 또한 죄가 아니온지요? 제가 보기에 황상의 심기가 편하시려면 단칼에 형을 죽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셔야 할 듯 합니다."
터무니 없을 정도의 직언에 강희는 격분했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신하들이 말리자 팔황자와 십사황자를 쫒아낸 강희는 옹정과 대학사 장정옥(張廷玉)에게 분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여덞째 저 놈은 윤잉보다 백배는 음험하다! 이제 그는 날카로운 이빨과 날 수 있는 날개도 있고, 머리도 클 만큼 큰데다 호응할 세력까지 갖추었다. 저 놈은 음험하기가 짝이 없으니, 짐이 경계할 수 밖에 없는데 내 건강이 점점 더 나빠져 모든 일을 다 챙길 수가 없다. 요즘들어 짐이 생각컨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나를 제위에서 물러나게 압박할 것이다. 짐작컨데 그들이 옹립하려는 새 황제는 틀림없이 여덞째일 것이다. 그 아이가 사악한 마음을 먹고 있으니 두렵기 짝이 없다! 넷째(윤진)는 성실하고 효성스러워 짐이 그 점을 매우 어여삐 여기고 있다. 하지만 너는 너무 강직하여 원성을 들으니 이 점은 여덞째만 못하다."
강희는 팔황자를 비난하면서, 윤진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윤진의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이는" 책략은 성공적임이 드러났습니다. 드러내 놓고 움직인 팔황자가 욕을 먹은 반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점잔을 빼고만 있는 자신은 효성스럽다는 평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십사황자 윤제는 왜 갑자기 팔황자를 비호하여, 황제의 노여움을 일으켰을까?
윤제도 범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일찌감치 황제의 성격과 취향을 파악했습니다. 강희는 무능력하고 줏대없는 사람도 싫어했지만,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표리부동하게 음모를 꾸미는 타입은 질색했습니다. 반면에 용감하고 대담한 성품의 대장부는 조항했는데, 윤제는 그야말로 호방하고 전쟁터를 누비는 열혈남아입니다.
윤사가 위기 상황에 빠졌을때 윤제가 이를 변호한 것은, 자신이 천하에 두려워하는것이 없는 성격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형제간의 우의가 극진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고, 동시에 강희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어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했습니다. 지금 사태를 가만히 보면, 다른 황자들은 모두 나가떨어지거나 싸움에 끼어들 수준이 못되었고, 팔황자는 강희가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고 있으니, 결국 남은것은 사황자 윤진과 십사황자 윤제뿐입니다. 결국 황자 싸움은 이 두명의 싸움으로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이때, 윤진은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 홍력(弘歷) ─ 다름 아닌 훗날의 건륭제(乾隆帝)가 비장의 무기였던 것입니다.
홍력은 강희 50년에 태어나 여섯 살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총명함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우수한 두뇌에다 용맹함과 지혜, 그리고 준수한 용모를 갖추고 있기에 사랑받는 소년이었으며, 이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나중에 이를 수록 친자식들보다도 손자인 어린애를 좋아하는 면모가 있습니다.
강희의 아들은 30명이 넘고, 그들이 만들어낸 자식들은 100여명에 가까우니, 손자들 중에 강희가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드물었습니다. 1722년 4월, 윤진은 연로한 부친을 원명원 내에 있는 자신의 교외별장에 초빙하여 한창 만개한 모란꽃을 감상하게 하였고, 바로 여기서 11살의 홍력과 그의 형 홍시(弘時)를 강희에게 소개했습니다.
윤진의 입에서 "큰 아이는 홍시이고……"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홍력은 무릎을 꿇고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습니다.
"부왕(父王)께서 수고롭게 말씀드리게 할 수는 없고, 제 이름은 홍력이라고 하옵니다."
강희는 손자가 어린 나이에 예의를 잘 아는 데다 말솜씨까지 뛰어나자 기뻐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일어나거라. 이리 와서 할아버지에게 얼굴 좀 보여 다오. 백성의 집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얼굴을 본 적이 없고, 할아버지가 손자를 못 알아본다면 비웃음거리가 되겠지만, 짐이 하루 종일 국가 대사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어 천륜의 즐거움 마저 잊었다."
그러자 홍력이 강희제의 옆에서 이렇게 거들었습니다.
"황상의 은혜는 감로와 같아 천하를 적시니, 그것 또한 천륜이옵니다. 또한 황상은 만방을 다스리시니, 사사로운 정에 구애받아서는 아니 되옵니다."
강희는 깜짝 놀라 면서, 그동안의 골치 아픈 일들을 잊은듯이 박장대소했습니다.
"이 조그만 아이가 이렇게 큰 도리를 말한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구나. 하지만 홍력아. 짐의 은혜가 감로와 같고 그것이 천하에 미치는 좋은 황제라 하더라도, 자신의 혈육을 돌보지 못했으니 좋은 할아버지는 아니구나."
이 와중에서도 자식들의 권력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강희였습니다. 여하튼 간에 이 일이 있고 나서, 강희는 이 영민하고 준수하며 잘생긴 소년을 총애하게 되었습니다. 강희와 홍력은 반백년도 넘는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아주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습니다. 강희는 직접 꼬맹이 홍력과 학문을 이야기하고, 경서를 암송하였으며, 칭찬을 해주며 맛있는 음식도 주었습니다.
한번은 강희가 대신들과 경치를 보면서 즉흥시를 짓는 놀이를 하기 위해 원명원으로 가면서 홍력도 데리고 갔습니다. 일행이 호숫가에 이르자 흐드러지게 핀 모란꽃의 경치가 아주 좋았는데, 홍력은 즉석에서 모란에 관한 시를 지었습니다.
활짝 핀 모란꽃 봄 물결 무색케 하고
그 꽃들 다투듯 아름다움을 자랑하네
별 나비 너울너울 태평성세를 즐기다
누각 앞에 날아드니 황상도 웃으시네
강희는 홍력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었습니다.
"어디서 배운 시더냐?"
"방금 읊은 시는 제가 즉석에서 지은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할아버지께서 지적해 주십시오."
강희는 이 말이 의심스러워 시험을 해보기 위해, '날아드는 나비'를 넣어 시를 지어보게 했습니다.
모란은 누각 아래 흐드러지게 피었고
그 향기 바람타고 봄 옷자락 파고든다
아롱나비 봄 찾으며 사람과 노닐다가
봄 자락 내게 주고 함께 꿈나라 가네
강희는 '봄 자락 내게 주고 함께 꿈나라 가네' 라는 구절을 듣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강희는 재미가 들려 이번에는 모란 주위의 투명한 유리창을 가리키며 이것으로 시를 지어보게 했습니다. 그 당시 유리는 귀한데다 소재로 쓰인 경우도 거의 없었으므로, 이는 좀 난해한 시제였습니다. 그러나 홍력은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서양의 신기한 물건 없는 바 아니지만
유리는 맑고 깨끗한데 두껍기도 하다
정자의 창마다 유리가 끼워져 있는데
처마로 날아든 바람 유리를 간지르네
안팎으로 꿰뚫은 것은 마음이 아닌가
거짓을 밝히고 사물은 유리에 비치네
바람, 안개, 태양이 유리를 흐려놓지만
잔치 끝나면 먼지는 모두가 사라지네
강희는 놀라서 입을 담지 못할 지경이었고, 모르긴 몰라도 옆에 있었을 윤진도 기뻐서 속으로 두근두근했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피로가 씻은듯이 날아간듯한 강희는 홍력의 손을 잡았습니다.
"내 이런 후손을 보게 된 것은, 진실로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 짐이 오늘 원명원에 놀러 온 것이 헛되지 않았다. 이런 황손을 발견 한 것은,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이로다."
강희가 윤진과 식사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강희는 건륭의 모친인 니오후루 씨를 직접 꼭 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강희는 결국 그녀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강희는 정말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대는 유복지인(有福之人 : 복이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영특한 아들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는 대단히 커다란 의미의 말이 될 것입니다.
황제가 사냥터로 가자, 열 한살의 홍력도 말을 타고 이를 따라갔습니다. 홍력은 말을 탄 채 활을 쏘아 다섯발을 명중시켜 강희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끔찍한 비극이 될뻔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강히는 총을 곰을 쏘았고, 홍력에게 화살로 마무리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홍력을 추켜세워주려는 연출이었는데, 홍력이 곰에 가까이 접근하자 느닷없이 곰이 그에게 달려드는것입니다. 황제는 놀라 총을 쏘아 곰을 완전히 처치했고, 서둘로 홍력을 바라보았습니다.
11살의 홍력은, 여전히 말안장 위에 앉아 침착하게 고삐를 쥔 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보인 소년의 침착함은 강희가 연출 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더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강희는 자신을 수행하던 한 비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참으로 귀중한 운명을 타고 났구려!"
윤진은 상상밖의 패를 꺼내 들어 대단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에 윤제도 무엇인가를 해야했고, 단시간에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전쟁이었습니다. 준가르가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아들 잘 낳아 황제됐...
옹정은 능구렁이? 표현이 이상한데 참고 인내할줄 알아서 복받은거라 봅니다.
옹정제가 아들 건륭제 덕을 보았군요...
애가 저렇게 똑똑할 수도... 강희제의 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