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三 章 女便의 心理
여성 벗님께서는 지루하셨겠네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설명하느라고 시간이 다 흘러가버리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예? 그래서 남자들에 대한 것은 뛰어넘어서 바로 이곳으로 왔다고요? 그러셨군요. 참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시는 편이로군요. 하하
이번에는 여성의 입장에서 남편에 대한 여러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여성심리라고 하면 미혼여성도 포함이 되겠어서, 일단 결혼을 한 여성이라는 의미에서 여편이라고 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어쩌면 남자에게 있어서의 아내의 역할보다도 아내에게 있어서의 남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오죽하면 ‘여자팔자는 뒤웅박팔자’ 라는 말이 생겼겠어요? 뒤웅박이란 것이 누구의 허리에 매달리느냐에 따라서 길흉이 결정나버린다는 이야긴가 본데, 참으로 여성의 운명을 따분하게 만드는 속담이로군요.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서 여성의 권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모든 일에 대해서 주장을 하는데는 남편의 힘이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여성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가정과 사회라는 두가지의 일을 앞에 두고서 갈등하는 것은 여자분들의 몫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아직은 ‘여필종부(女必從夫)’ 라는 말이 유효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더라도 역시 한 남자의 아내라는 것은 면하기가 어려우니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굴레가 싫어서 독신을 주장하는 여성분도 많습니다. 자유롭게 연애도 하고, 자신의 일을 남자의 간섭이 없이 꾸려나가는 당당한 여성분들은 참으로 용기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쪽 귀퉁이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할적에는 역시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더군요. ‘병든 서방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 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영향력이 크다면 클 수밖에 없는 남자를 자신의 팔자에서 읽어낼 수가 있다면 일평생의 설계를 하는데 있어서 분명히 영양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하나 남자에게 있어서의 아내작용처럼 똑같이 여자에게 있어서의 남편작용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男便星과 男便宮
■男便星 - 사주 중에서 正官을 남편성으로 본다. 다만 정관이 한자도 없고 편관이 있다면 편관을 남편으로 본다. 그리고 흔하지는 않지만, 정관도 편관도 없는 경우에는 용신을 남편으로 본다. 그러니까 사주에 관살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남편이 없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男便宮 - 月支를 일러서 남편의 궁이라고 한다. 남편은 월지에 머무른다. 여자에게 있어서 남편은 모든 환경의 열쇠이기 때문에 사주에서 환경을 나타내는 월지를 남편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을 갖고서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의 경우에는 직업을 남편대신의 환경으로 정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의를 해봅니다. 옛말에 ‘홀아비는 이가 서말이요 과부는 은이 서말’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혼자사는 여성은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갑니다. 그러나 여자가 없는 남자는 가정이 엉망이지요. 아내의 자리인 일지가 비어있으므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에 여자도 남자처럼 일지를 남편궁으로 정한다면 남편이 없는 여자도 주변이 엉망이라야 하는데 반드시 그런것만은 않은 것을 보면서 남편궁을 월지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편성의 글자수에 대해서도 아내성의 글자와 마찬가지로 많으면 여성의 남편에 대한 집착력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남자 저남자 넘어다니면서 저울질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기본적인 이야기라고 봐야 하는데 사주 전체의 격국 상황에 따라서 남편성이 많아도 정숙한 여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부록 비슷하게 고래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설을 덧붙입니다. 정관이 무조건 용신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 사정을 좀 살펴보고 다시 검토를 해보도록 하고요. 또 한가지는 용신이 무조건 남편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러한 이야기도 한 번 생각을 해보고 넘어가는 것이 좋들 듯 합니다.
※正官이 무조건 용신이라는 설
이러한 이야기는 좀더 오래된 이야기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왜냐면 편견이 강한 이론이거든요. 이러한 이론은 진작에 없어졌어야 하겠습니다만, 책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서 한 번 나온 이야기는 두고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배경은 있습니다. 여성의 모든 일이 오로지 남편에게 달렸다는 조건이 전제한다면 이 이론도 전혀 아니라고 주장을 할 성질의 것이 못됩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실제상황은 얼마든지 있었거든요.
옛날의 사회에서는 아내가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 간여를 하면 그대로 친정행이었다지요? 남편이 두 번째의 부인을 데리고 와도 그냥 웃으면서 반겨야지 질투의 눈길을 보냈다가는 역시 친정행이었던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히 ‘칠거지악(七去之惡)’ 의 죄목에 해당하였기 때문이랍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라면 남편이 주인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편이 용신이라는 말을 해도 타당하다는 견해가 나오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남편에게 매여사는 봉건사회에서도 여자에게 있어서 남편이 전부가 아닌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다만 사회분위기가 그렇게 오로지 남편만 쳐다보면서 삶을 살도록 강요한 것은 있습니다만, 아내를 노예 정도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남편성을 무조건 용신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노예의 신분이라면 오로지 주인이 용신이겠지요? 그래서 이 이론은 합리적인 내용이 되지를 못합니다. 다만 용신은 아니더라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길수는 있겠습니다. 어쩌면 예전에 태어난 사주들은 모두 남편이 용신이 되도록 타고 났을까요? 만약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치에는 맞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사용하지 않는 이론으로 접어둡니다.
요즘은 남편이 오히려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간큰남자 시리즈’ 라는 것이 다 생겨났겠어요? 자다가 물을 달라고 하는 것도 간이 큰 남자라는군요. 남편이 하는 짓거리가 변변치 않으면 마구 두들겨 패는 아내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남편이 시원치 않으면 갈아치워버리는 용감한 여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편이 용신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시대에 어울리는 않는 발상이라고 생각이 되는군요.
어쨌던 지금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론입니다. 생각해보고서 이치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대로 덮어두면 상책입니다. 괜스리 꺼내 놓고서 고민을 할 필요는 없지요. 다만 그러한 정황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용신이 남편이라는 설
이렇게 주장을 하는 설이 있습니다. 용신이 남편이라는 설은 적천수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통보감에서는 희신이 남편이라고 매우 강경한 말로 주장을 합니다. 이러한 설을 보면서 벗님들은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용신이 남편이라는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사주에서 만약에 남편을 나타내는 正官이나 偏官이 한자도 없을 경우에는 용신을 남편으로 봐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분명히 이 이론이 대입되는 장면이군요. 그렇지만 무조건 용신을 남편으로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그래서 이 주장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서 그렇다는 부제를 달아야 하겠군요. 이렇게만 한다면 훌륭한 이론으로써 자신의 몫을 다 할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관살이 엄연하게 있는데도 오직 용신이 남편이라고 하는 것은 확대해석을 한듯한 감이 있군요.
용신이 남편이라는 말은 아직도 남편이 여인에게 있어서 소중하다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만약에 남편이 소중하지 않고 자식이 더욱 소중한 사람에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는지 모르겠군요. 자식이 전부인 여인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한 여자에게 남편이 용신이라는 말은 또 어떻게 답이 나올는지 궁금하군요. 자식이 아니라 사회의 일이 전부인 여자도 없다고는 못하지요. 과연 용신이 남편이라는 설이 언제까지 유지를 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분간은 용신이 남편이라는 설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또 언젠가 남편이 용신이라는 말이 쓸모가 없어지듯이 용신이 남편이라는 말도 없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아직은 전체를 부정할 단계는 아니로군요.
만약에 사주에 관살이 전혀 없는 여자를 만난다면 용신이 남편이라고 보고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되겠습니다. 남편의 길흉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고요? 그야 물론 용신의 상황에따라서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요. 일단 남편이 용신이라는 말도 되니까 아무래도 좋은 말이 나오기 쉽겠군요. 나중에 사주의 예를 보일적에 남편성이 전혀 없는 사주를 찾아보겠습니다.
※滴天髓徵義에서 보는 남편성
이번에는 적천수징의에서 여명장(女命章)에 나오는 남편을 보는 방법에 대한 글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설명드립니다. 부분적으로는 이치에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용신이 남편이다.’ 하는 의미가 강하다고 보겠습니다.
“... 만약 관성이 지나치게 왕한데 견겁이 없다면 인성이 남편이 된다. 비겁이 있고 인수가 없다면 이번에는 식상이 남편이 된다.
관성이 지나치게 약한데 상관이 있다면 재성이 남편이 되는데, 재성이 없고 견겁이 왕하다면 또한 식상이 남편이 된다.
사주에 견겁이 가득하고 官印이 없다면 또한 식상이 남편이 되고, 인수가 가득하고 관도 상관도 없다면 재성으로 남편을 삼는다.
상관이 지나치게 왕하고 일주도 약하다면 인성이 남편이 되고, 일주가 왕하고 식상도 많다면 재성이 남편이 된다.
관성이 약하고 인수가 많으면 또한 재성이 남편이 된다.
이렇게 몇 개의 항목을 만들어서 상황에 따라서 남편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잘 음미해보면 모두 용신을 남편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만 사주내에서 관살이 있고 없고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이 특이하군요. 낭월이가 임상을 해본바로는 대체로 원국의 남편성이 있다면 상황의 용신을 고려하지 않고서 그 남편성이 그대로 남편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적천수징의에서 임철초 선생님은 어째서 이렇게 용신을 남편으로 삼았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그 이유는 아무래도 당시(청나라 시대)에는 여성이 운이 좋아지고 말고는 남편이 출세를 하는가 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의 용신운에 남편이 발전을 하는 것으로 본다면 당연히 용신이 남편이라는 결론을 유도해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내용과 지금시대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엇갈리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낭월이의 이 생각이 타당하다면 앞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을 하는 확실한 여성상위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남편을 용신으로 볼게 아니라 남편사주에서 재성을 용신으로 봐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군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