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6장
5. 유일한 응답
1
성령은
유일한 응답이지,
질문이
아님을 기억하라.
에고는
항상 먼저 말한다.
왜냐하면
에고는 변덕스러우며,
자기를 만든 자에게, 호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에고는
자신을 만든 자가
언제라도,
자신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고가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이다.
만약 에고가, 그대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면,
에고는
그것을 기뻐할 것이다.
마치 성령이 마침내,
그대를 집으로 데려가
그대가 더 이상
성령의 안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기뻐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에고는 자신을
그대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 에고의
주된 지각적 오류,
에고 사고체계
전체의 토대가 있다.
2
신께서는
그대를 창조하실 때,
그대를
당신의 일부로
만드셨다.
이것이 바로 왕국 안에서는
공격이 불가능한 이유이다.
그대는
사랑 없이 에고를 만들었고,
따라서 에고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대는
사랑 없이는
왕국 안에
머물 수 없었다.
그리고
왕국은 사랑이기에,
그대는 그대에게
사랑이 없다고 믿는다.
이것은
에고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을
만든 자와 분리되어,
그의 바깥에 있어서,
그대가
신의 마음과 분리되어
바깥에 있다고 믿는
그대의 마음 부분을,
대변한다고
여길 수 있게 하였다.
그런 다음
에고는 제기된
첫 번째 질문이지만,
스스로는
결코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의심의 시작이었다.
3
그 이후 에고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제기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한 적이 없다.
에고의 가장
창의적인 활동조차도,
단지 그 질문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으며,
에고는 그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알지 못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는,
그대는 그 갈등을
이해할 수 없다.
성령은 먼저 말하지는
않지만, 항상 응답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떤 식으로든,
성령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고,
또한 응답받았다.
성령은 참으로 응답하므로,
성령은 항상 응답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지금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에고는
성령의 말을
들을 수 없지만,
자신을 만든
바로 그 마음의 일부가,
자신을 반대한다고
확실히 믿는다.
에고는 이것을,
<자신을 만든 자>를 공격할,
정당한 이유로 해석한다.
에고는
최선의 방어는 공격
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대도 그것을
믿기를 원한다.
그대가 정말로
그것을 믿지 않는 한,
그대는 에고와 한 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에고는
형제는 필요 없어도
동맹자는 아주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낀다.
에고는
그대 마음 안에서,
에고 자신에게
이질적인 무언가를
지각하고는,
몸은
그대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아닌
<몸>을, 자신의
동맹자로서 의지한다.
이것은
<몸을 에고의 친구>로
만들어준다.
이것은 명백히
<분리에 기초한 동맹>이다.
만약 그대가,
이런 동맹과 한 편이 된다면,
그대는
두려움의 동맹에 가담했기에,
반드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5
<에고와 몸>은,
<너희의 마음>을
상대로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에고는,
자신의 ‘적’이
단지 에고와 몸이
그 자신의 일부가
아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둘 다를
종식시킬 수 있음을
깨닫고 있기에,
몸과 합세하여
함께 공격한다.
너희가 이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아마도
가장 이상한 지각일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에고가,
실재하는 마음에게,
마음은
에고 자신의
학습 도구라고
설득하려고 하며,
또한 학습 도구가
마음보다 실재라고
설득하려 한다.
바른 마음 상태에 있는 자라면
아무도 도저히 이것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바른 마음 상태에 있는
자라면,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는다.
6
그렇다면,
에고가 제기하는 모든 질문에 대한
성령의 유일한 응답을 들어라.
그대는 신의 아이로서, 그분
왕국의 너무도 귀중한 부분이다.
그 왕국은, 신께서
당신의 일부로 창조하셨다.
그 밖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그것만이 실재이다.
그대는
<잠>을 선택해서 그 안에서
<나쁜 꿈들>을 꾸어 왔지만,
그 잠은 실재하지 않으며, 신께서
그대를 깨어나라고 부르신다.
그대가
그분의 부름을 들을 때,
그대의
꿈들에 남아 있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니,
그대는 확실히
깨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꿈들>은
<수많은 에고의 상징들>을
담고 있었고,
그것들은 그대를
혼란에 빠뜨려 왔다.
그렇지만
그 이유는 다만,
그대가 잠들어 있어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깨어날 때, 그대는
그대를 둘러싸고 있으며,
또한 그대 안에 있는
진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더 이상 꿈들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대에게 더 이상,
아무런 실재성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
그렇지만 왕국, 그리고 그대가
그곳에서 창조한 모든 것은,
그대에게
거대한 실재성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름답고 참되기 때문이다.
왕국에서는,
그대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대가 무엇인지가
아주 확실하다.
그곳에는
의심이란 전혀 없으니,
첫 번째 질문이 결코
제기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최종적으로 완전히 답해졌기에,
그 질문은 결코 제기된 적이 없다.
오직
존재(being)만이
왕국에 산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아무런 질문 없이
신 안에서 산다.
꿈속에서 질문하느라
보냈던 시간은
창조와 창조의 영원함에
길을 내어주었다.
8
너희는
신만큼 참되므로
신만큼 확실하다.
그러나 한때,
너희 마음 안에서
아주 확실했던 것이,
이제는 단지
확실성을 얻기 위한
능력이 되고 말았다.
존재 안에
<능력>을 도입한 것이
불확실성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능력은, <잠재력>일 뿐
<성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의 능력은,
신께서 성취하신 것과,
그대가 성취한 것 앞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성취는
이루어진 결과다.
성취가 완전하면
능력은 의미가 없다.
이미 완벽한 자가, 이제
완벽해져야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사실 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대가 자신을
불가능한 상황에 둘 때,
그대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9
능력은
개발되어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이것은
신께서 창조하신 것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지만,
그대가 만든 것에는,
가능한 원만한 해결책이다.
그대는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능력을 개발하여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그대에게는 그 능력들을
어떻게 개발할 것이지
안내해 주는
안내자가 있지만,
지휘자는
그대밖에 없다.
따라서
그대는 왕국을 책임지며,
왕국으로 이끄는 안내자와
왕국을 유지하는 수단이
그대에게 주어졌다.
그대에게는,
그대의 명령권을
강화시킬 뿐,
절대로
훼손시키지 않을
모범이 있다.
그러므로
그대가 상상해낸
노예 상태에서도
주도권은
여전히 그대에게 있고,
그 자체가
그대가 노예가 아님을
보여준다.
10
그대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이유는 단지,
그대가
그런 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신께서 그대에게
그대의 완벽함을 보여주시면서
그대가
틀렸음을 증명하실지라도
그대는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에 있으려 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완벽한 자가
자신의 완전성을 자각하기에는
부족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가
오히려 도움이 필요하고,
따라서
무기력하다는 믿음에,
동조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고가
사용하는 ‘논리’이다.
그러나 당신의 창조물의
완벽함을 아시는 신께서는,
그들을 모욕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자신이
신을 모욕했다는,
에고의 말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11
이것이 바로 성령이 절대로
명령하지 않는 이유이다.
명령하는 것은,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불평등이야말로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제들(premises)에 충실함은
마음의 법칙이며, 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그분의 법칙에 충실하다.
그렇지만
다른 법칙에의 충실함도 가능한데,
그 법칙이 참된 것이라서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께서, 그대가 정신 나간 생각을 했다고 그대에게 증명하신다 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신께서
당신의 확실성을
잃으실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주 그대는 정녕
그대가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대는 신께서,
그대가 죄를 지었다고
가르치시게 하려는가?
만약 신께서,
그대가 만든 자아를,
그분께서
그대를 위해 창조하신
진리와 대면시키시면,
그대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이
제정신인지 의심할 테지만,
그런 의심이야말로, 그대가
신께서 주신, 온전한 정신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12
신께서는
가르치지 않으신다.
가르친다는 것은,
신께서 없다고 아시는
어떤 부족한 것이
있음을 의미한다.
신께서는
갈등상태에 있지
않으시다.
가르치기는 변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신께서는 오직
변함없는 것만을
창조하셨다.
분리는
완벽함의 상실이 아니라
소통의 실패였다.
가혹하고 거친 소통 형태가
에고의 음성으로 일어났다.
그것은
신의 평화는 깨뜨리지 못했지만,
그대의 평화는 깨뜨릴 수 있었다.
신께서는 에고의 음성을
없애버리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것을 근절하는 것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께서는
질문을 받으셨지만,
묻지 않으셨다.
그분은
단지 참된 응답을
주셨을 뿐이다.
그분의 응답이 바로
그대의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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