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기기에서 나오는 고출력의 굉음이 여지없이 나의 귓속을 유린하고 있었다.
새벽 4시. 오늘도 거의 날이 샌 후에나 퇴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장과 주방아줌마는 전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매상이 오르니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온종일 서있다시피 해서 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저 여자만 아니었으면 벌써 퇴근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에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얼굴이다. 몸매도 나이에 비하면 처녀같이 잘 빠졌다. 나는 그 여자의 정확한 나이조차 모른다. 다만 어림짐작으로 마흔은 족히 넘어 보였다.
아, 이 노래를 벌써 몇 번 듣는 건가?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부르는 노래.
제목도 가수도 모르겠지만 무심코 반주기기의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 멜로디가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그 여자는 거의 일본노래와 팝송만 불렀다. 나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들. 저 노래만은 멜로디라인이 워낙 감미로워서 나도 어느새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저런 노래도 있었구나 하는 정도지 그 노래에 매료됐다거나, 감동을 받았다거나 그 정도는 아니다.
그 여자가 내가 일하는 단란주점을 들락거린 지도 두 달 가까이....... 그 여자는 통상 네댓 명의 비슷한 연령대의 무리들을 데리고 왔다.
주점에 혼자 오는 손님은 극히 드물었고, 여자 혼자 오는 경우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거니와, 그녀 역시 친구, 또는 선후배 같은 손님들과 함께 놀러왔다. 어떤 때는 그 무리에 남자들이 껴 있을 때도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곧 노래방 기기의 화면에 점수가 나왔다.
100점. 손님들, 아니 사장과 주방아줌마와 아가씨도 ‘와아, 와아’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댔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박수를 쳤다.
곧 다른 여자가 마이크를 잡자 나오는 노래는 ‘유어 마이 애브리씽’
저 곡은 나도 많이 들어 봐서 알고 있기에 흥이 날 때도 있지만, 거의 근무시간 내내 노래를 듣다보니 아무리 감미로운 노래라도 그게 다 그거 같이 그저 소음으로만 들릴 뿐이다.
유어 마이 애브리씽
앤드 나씽 릴리 매터스
벗 더 러브 유 브링
유어 마이 애브리씽
투 씨이 유인 더 모닝
위드 도우스 딥 브라운 아이스
저 여자만 안 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노래방 기기 화면을 지루한 눈길로 바라보며 하루에 몇 번씩이나 마음속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또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노래방 기기 화면의 자연물을 촬영한 영상을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 생각이란 저 여자를 죽인다는 것이었다.
-아아, 이 무슨 얼토당토한 생각이냐. 고작 너의 안녕을 위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을 죽여?
-아니, 어째서 이해관계가 없냐? 저 여자만 없으면 이 시간까지 일에 부대낄 필요가 없지 않느냐?
마음속의 나와 또 다른 나가 서로 생각을 주고 받고 있었다.
나의 사고는 무서운 자아의 속삭임에 이미 절반 가까이까지 잠식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때 그녀가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는 나의 무서운 생각이 들킨 것 같아 애써 자연스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왠지 모르지만 그 여자의 표정이 사뭇 애달프게 보였다. 그 여자의 눈빛이 나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에 휩쓸린 듯한, 무언가를 함축하고 있는 듯 해 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돌려 노래방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치 나의 악마적인 생각을 그녀가 눈치 채지 않았나, 하는 불안함에 순간 심장이 가볍게 요동쳤다.
그날 퇴근을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 나의 의식에 생긴 작은 살의의 균열이 점차 걷잡을 수 없이 깊어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2>
내가 그 단란주점에 다닌 지도 벌써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생활정보지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발을 들여놓았거니와, 일에 비해 벌이가 제법 쏠쏠했다. 또한 가게가 나의 주거지인 고시원에서 무척 가깝다는 것도 큰 이점이었다.
가게는 40평정도 되는 공간으로 아주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직원이라고는 나하고 아가씨 한 명이 고용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아가씨하고도 그저 가벼운 대화만 나눌 뿐이고, 사장과 주방아줌마와는 어디까지나 공적인 선에서의 관계만 유지하고 있었다.
애로사항이 있다면 식사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애로사항은 얼마 전까지 만해도 모두 견딜 만 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요 두 달 가까운 무렵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식사야 대충 빵, 우유와 그밖에 간식거리로 때울 수 있어서 다소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지만, 그보다 퇴근시간이 세 네 시간씩 지연됐다는 것이다. 바로 그 여자 때문이다. 그 여자가 손님으로 오기 전에는 통상 6시에 출근해서 3시 이전에는 퇴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가 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퇴근시간이 보통 5시, 6시까지였다. 그 여자는 꼭 2시쯤에 와서 세 네 시간씩 놀다 가는 것이었다.
나의 스트레스는 그 시간만큼 축적되어 갔다.
나는 일분일초가 아쉬운 생활을 하고 있다. 내 나이 25살. 나의 꿈은 잘 나가는 건축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꿈을 키워나갈 기반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뒤늦게나마 대학에 들어가려고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록 이류대학이나마 대학을 나와야만 뭔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요즘 채 다섯 시간도 못 잘 때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후 6시부터 오전 3시까지 직장에서 일을 한다고 치고 고시원에서 대충 씻고 자면 오전 4시가 된다. 오전 4시에 잠을 자서 오전 9시에 일어난다. 그러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이 남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짧게만 여겨지는 시간이다.
일단 학원에서 3시간 정도 수업을 받는 시간과 왔다갔다 하는 시간까지 치면 5시간이 남는다. 이 5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자습을 하고 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익힌다.
결국 여가시간이라고는 거의 없다. 하다못해 좋아하는 건축디자인 계통의 책 한 권조차 여유롭게 볼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3시에 퇴근했을 때라는 전제하의 스케줄이다. 요즘같이 5시, 6시에 끝나면 그렇지 않아도 하루 일정이 포화상태인데, 그 세 네 시간의 차이가 내 인생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3>
내가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 여자가 일본인이라는 것과 집이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 근처라는 것뿐이다.
같이 오는 일행들도 전부 일본인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한국말도 능숙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몇 십 년은 산 것 같았다.
그들은 가게에 오면 노상 홀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일행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는 거의 90프로 이상 일본말을 사용했다.
조국애가 남달라서일까? 민족의 긍지심 같은 것이리라. 따라서 나는 그들 일행과 대화다운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다. 본래 웨이터라는 직업이 테이블에 술과 안주만 가져다주고 치우는 것이 하는 일의 90프로이기 때문에, 특히 손님들과는 대화를 나눌 일이 없다. 그저 손님들이 오면 주문을 받고 손님들이 가면 청소를 하면 끝인 것이다.
근무하면서 외국손님들은 몇 번 보았지만 일본손님들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처음 그 여자일행이 왔을 때, ‘아, 어쩌다가 우리 가게에 술을 마시러 왔군.’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 다음날에도 계속 오자 ‘허허, 이것 봐라. 우리 가게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군.’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근 두 달 동안 단 이틀만 빼 놓고 오고 있는 것이다. 그 단 이틀이란 바로 보름 전쯤으로 장마가 져서 서울에 호우경보가 내려졌던 날이다. 그 이틀간에는 그 여자일행뿐 아니라 가게에 손님이 아예 없어서 공치고 말았거니와, 한 번은 서울 어떤 지역에 물난리가 나서 지역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났는데도 옷이 비에 젖은 채로 우산을 들고 왔던 날도 있다.
그토록 국가적인 재난사태에도 매일 가게에 와서 놀다 가는 그 여자일행은 도대체 뭘 해 먹고 사는 사람들인지 그들의 대화 속에서 알아내려고 해도 일본말로만 서로 주고받으니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돈을 쓰듯 하는 걸로 보아 상당한 부유층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언젠가는 그들이 대화를 나누다가 무의식중에 한국말이 튀어 나왔는데 무슨 <출판>, <방송>,<칼럼> 이런 단어를 사용했었다.
그 외에도 간혹 가다가 한국말을 썼는데, 지식층들이 많이 쓰는 어려운 단어를 쓰는 걸로 보아 저널리즘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들은 가게 손님으로 봤을 때 지극히 일탈주의자였던 것이다. 사장이나 주방아주머니하고도 결코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가게에 찾아와서 그저 그들끼리 떠들고, 마시고, 노래 부르다가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사장이나 주방아주머니는 결코 싫은 기색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올 때마다 2,30만원 어치는 팔아주고 가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들에게서 팁으로 매번 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깟 만원으로 나의 뒤틀린 생활이 보상 받을 수는 없었다.
그 일행들 중에서 그녀가 단연 돋보이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떠받들려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는 것과, 술값을 그녀가 지불할 때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 차원 문제를 떠나 그녀가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그녀가 나머지 일행의 리더 격이라는 인식을 선동하고 있었다.
나는 예쁜 여자를 보면 막연한 적개심을 느낀다. 뭐 특별히 예쁜 여자와 관련된 사건을 겪은 건 아니지만, 내가 경제력이나 학력, 그리고 외모가 보잘것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예쁜 여자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어쩌면 그 여자가 그토록 외모가 아름답다는 것이 나의 살인에 강한 동기부여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밖에 또 나의 살의를 부채질한 것은 그녀의 사치였다. 말했듯이 그녀는 거의 올 때마다 10만원은 우습게 써 버리는 것이다.
그 시간에 어떤 사람은 배가 고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그 라면을 2백 개는 족히 살 수 있는 돈을 하룻밤 유흥비로 날려 버리는 것이다.
누구는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좁아빠진 고시원이 생활터전인데, 또 다른 누구는 놀고 마시는 것으로 몇 시간씩 주지육림 속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나 같은 소시민의 행복권을 그 여자 같은 특권계층이 약탈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어찌 범죄행위라고 말할 수 없겠는가?
물론 그런 사회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가진 자에 대한 불만이 그 여자에 대한 나의 살의의 근간은 아니다.
내가 그 여자를 죽이려고 하는 주동기는 내 인생의 방해자를 없애 버리자는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었을 뿐인 것이다.
<4>
마침내 거사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그 여자를 살해하고, 경찰의 수사권 밖에 있을 만한 별의별 공상을 다 떠올리고 지우기를 수십 번. 마침내 범행수법에 대한 구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가장 현실성 있고 손쉬운 방법이었다. 흔히 추리소설에 나오는 알리바이 조작이나 증거 조작 따위는 어디까지나 비현실적인 범행수법인 것이다. 공연히 그런 잔꾀를 부리는 것보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 좋다.
나는 그녀를 살해하고 강도로 위장하기로 했다. 물론 위험부담이 많았지만, 첫째 경찰은 살인사건에서 가장 중대시되는 범행동기를 찾지 못하는 이상 나에게 혐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 나는 멀리 수사권 밖에 있다.
범행일에는 어쩔 수 없이 나는 가게를 쉴 수밖에 없었다. 가게에서 6개월 가까이 일하는 동안 통상 한 달에 한 번 정도 쉬어왔는데- 휴일은 정해져 있지 않고 한 사나흘 전에 미리 사장한테 양해를 구해서 이제껏 쉬어왔다- 그날은 결근사유로 운전면허 적성검사로 인해 쉬어야겠다고 말해두었다.
나는 현재 운전면허 적성검사 기간 중에 있었다. 결국 범행일에 오후 5시 경까지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고 고시원으로 돌아와서 있다가, 그 여자 일행이 가게에서 노는 시간 중에 고시원을 나와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 여자 일행이 가게에서 나올 무렵- 보통 5시에서 6시 사이에- 뒤따르다가 그 여자가 일행과 헤어져 혼자 길을 걸을 때 칼로 찔러 살해한 후 노상강도로 위장을 하는 것이다.
만약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고 해도 경찰의 취조조차 받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와 나를 연결하는 선은 단지 내가 그녀가 자주 놀러가는 단란주점의 웨이터라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장과 주방아주머니, 아가씨, 아니 무엇보다 그녀와 같이 오는 일행들이 나와 그녀 사이에 어떠한 개인적인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기실 그녀와 나는 손님과 웨이터와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거사일이 사흘 남은 오늘도 그 여자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5시 30분경에 돌아갔다.
퇴근 후 고시원으로 걸어갈 때 서서히 먼동이 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사흘 후부터는 이 시간에 고시원에서 기분 좋게 수면을 취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고시원에 도착해서 간단히 씻은 다음 방바닥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탁자 위에 놓아 둔 반명함판 사진 봉투를 손으로 집어 무심코 사진을 꺼내 보았다. 운전면허 적성검사 때 제출하려고, 이틀 전에 근처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언제 보아도 볼품없이 못생긴 얼굴이 있었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서히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것보다 포기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기분이 울적할 때면 사진첩을 펼쳐 사진들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진 중에 특히 추하게 나오거나 웃기게 나온 사진을 보면 왠지 마음속의 우울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자조적이라고나 할까?
요번 사진도 다른 사진 못지않게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왔다.
앞으로 기분이 우울할 때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무심결에 사진을 꺼내 세어보니 한 장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봉투에는 분명히 여덟 장으로 적혀져 있고, 사진관 주인도 한 번 촬영하는 데 여덟 장이라고 말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사진관으로부터 한 장을 덜 받았거나, 부주의로 내가 분실한 것 같다. 하지만 사진 한 장 모자란 것이 무슨 큰 문제 거리도 아니었기에 나는 사진을 봉투에 넣어 본래 있던 탁자 위에 놓아두고 취침에 들어갔다.
6시 30분, 남들은 출근하려고 일어날 시각 즈음에 나는 잠자리에 든다.
선풍기조차 없는 고시원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창문조차 없어서 잠을 잘 때만 빼고 노상 형광등을 켜 놓는다.
언젠가는 이 열악하고 궁색한 처지에서 벗어나 보란 듯이 성공하고 말 것이다.
나는 사흘 후에 있을 거사에 대한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어서도 두 시간 이상이 흐른 뒤에야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5>
오전 5시 무렵. 나는 그 여자의 뒤를 쫓았다.
오늘은 비교적 일찍 귀로에 접어든 셈이다. 아직 거리는 어둠에 잠겨 있다.
오늘은 그 여자 일행이 네 명이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기에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일행의 뒤를 따랐다.
예상대로 그녀는 곧 나머지 일행 세 명과 헤어졌다. 나머지 일행 세 명은 택시를 잡아 탄 것이다. 이제 그녀는 혼자다. 그녀는 손가방을 들고 있을 뿐, 다른 물건은 들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집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예전에 집이 근처라서 가게에 자주 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따라서 그녀의 집이 가게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웬만한 기회라면 즉시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빨리 왔다.
그녀가 차도와 인접한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걷다가 주택가가 밀집해 있는 인적이 없는 곳으로 들어서고 나서 얼마 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자 그녀는 깜짝 놀라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가 소리를 지를 틈을 안 주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과도를 그녀의 가슴에 쑤셔 박았다.
그녀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켁켁거리다가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그녀를 또다시 찌르려고 자빠져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그녀가 손짓으로 곁에 떨어져 있는 손가방을 가리키며 야릇한 눈빛을 지어보이는 것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그 순간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강도범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손가방만 가져가고 더 이상 나를 칼로 찌르지 말아달라고 눈빛과 몸짓으로 애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행동을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까닭이 없었다.
나는 또다시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이윽고 신음소리도 못 내고 모든 신체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손가방을 뒤졌다. 손가방 안에는 지갑이 있었고, 나는 지갑을 뒤져 다른 물품은 그냥 놔두고 현금과 각종 카드를 있는 대로 꺼내 모조리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는 경찰이 사건현장을 접한 후 강도사건으로 오인하게끔 만들려는 속셈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범행 전에 면장갑을 끼웠기 때문에 과도에 지문이 남을 리는 없었다.
나는 면장갑을 벗어 과도에서 피를 닦아낸 후 면장갑과 함께 과도를 뒤 호주머니에 넣은 후 현장을 벗어났다.
불과 일 분도 안 되는 범행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사람들과 몇 번 마주쳤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길로 곧장 고시원으로 향했다.
과도와 면장갑은 고시원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하수구에 쑤셔 넣었다.
나는 고시원에 도착해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벽에 기대어 앉아 범행을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그 어떤 실수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의 침착을 되찾았다. 이제 내일부터는 늦은 새벽시간까지 시달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시원했다.
나는 방에 누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흥분감이 완전히 없지는 않아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꼬박 날을 새우고 정시에 가게에 출근했다.
<6>
가게에 출근하자 XX경찰서 강력계 형사라고 신분을 밝히 남자 두 명이 잠깐 조사할 게 있다며 임의동행을 요구해 왔다. 나는 순간 무언가 일이 뒤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범죄의 그늘 속에 몸을 숨기고 사태를 관망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를 향해 수사의 플래시가 거침없이 작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경찰서 형사계에 들어서서 형사의 첫마디를 듣고서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형사는 대뜸 말했다.
“네가 그 여자를 죽였지?”
나는 사력을 다해 가까스로 입술을 떼었다.
“그, 그게 무, 무슨 말입니까?”
“범행을 부인하는 건가?”
“버, 범행이요?”
“오늘 새벽 5시경에 네가 그 여자를 집 근처에서 칼로 찔러 죽인 거 아냐?”
“원, 어, 얼토당토 않은 마, 말씀 하지 마십시오.”
“네가 안 죽였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저, 전 무슨 마,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허허, 이 자식 봐라. 근데 왜 이 사진이 시체 곁에 있어?”
그러면서 형사는 반명함판 사진을 한 장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내 사진이었다.
넋 나간 듯이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형사는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바로 네가 웨이터로 일하는 술집의 단골손님이었잖아? 그 여자는 나흘 후에 일본으로 영구 귀국할 예정이었어. 그 전에 그 여자를 어떻게 해 볼 수작이었지? 그리고 거절하는 그녀를 칼로 찔러 죽인 거 아냐? 자아, 이걸 보라구. 그 여자의 일기장이야.”
나는 의식을 지탱하고 있는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혼미해진 의식 저 멀리 형사의 말소리가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형사가 내밀은 다이어리 북의 한 페이지를 읽어내려갔다. 글씨가 두 겹, 세 겹으로 보였지만 그 충격적인 내용은 나의 뇌리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제 그 웨이터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행운이 따른 날이었다. 단란주점에서 웨이터의 사진을 주웠던 것이다. 난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난 이제까지 남편 이외 그 어떤 남자의 손목 한 번 잡아 본 일이 없다. 스스로 정숙한 여자라는 믿음으로 남정네들의 유혹을 뿌리쳐 왔던 것이다. 그런 나의 소원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 웨이터와 차 한 잔 마시는 것이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던가? 그 잘 생기지도 않고 신분도 미천한 웨이터에게 나는 뜨거운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제 출국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고국에 있는 남동생의 권유도 있고, 남편과 자식들도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연유로 나는 14년이나 살았던 한국 땅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여인으로서의 절개를 굽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웨이터와 딱 한 번 만나서 차를 마시며 나의 애끓는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달 동안 그 단란주점에 드나들며 유흥비로 돈을 쓰며 웨이터를 만났던 것이다. 웨이터는 물론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나는 결코 애정표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만 웨이터를 사모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 순간에도 웨이터의 사진을 보며 며칠 있으면 가지게 될 웨이터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글을 다 읽었을 때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나에게 떠오르는 기억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 여자를 칼로 찔렀을 때 그녀가 손가방을 가리키던 표정과 동작이었다.
그것은 돈은 가져가도 좋으니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걸한 것이 아니라, 내 지갑 안에 있는 당신의 사진을 가져가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 여자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순간, 그만 내 사진을 떨어뜨렸던 것이다.(끝)
첫댓글칼로 가슴을 두번 찌르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검도 관련 서적에서 읽었는데, 갈비뼈는 칼이 안 들어가고 한번은 찔러도 다시 칼을 뺄때 갈비뼈에 칼이 걸려서 안빠진다던것 같던데요? 그래서 격검시에도 타격 부위는 관자놀이, 경동맥, 목, 손목, 허리, 발목 등은 있어도 가슴을 찌르는 것은 없는걸로 아는데... 게다가 과도로 뼈를 뚫고 가슴을 2번 찌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명치부분에 정확히 칼을 집어넣지 않는 이상은...
대게 소설은 문단 단위로 끊어지는데 최근 글들은 대게 문단이 아에 없거나 짧네요. 문장 단위로 되어있는데요. 살인자의 심리가 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까닭모를 적개심 때문에 살인을 하는 글들이 있는 것을 알지만 이 글은 그 적개심의 정체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심리묘사도 좀 불충분한 것 같고요.
합천또라이님, 부족한 글 읽고 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에 글 <다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감상평 한 줄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네이버에 카페를 하나 개설했는데 좀 제 독재적인 성향이 강한 카페지만 , 한 번 들러주세요^^ 카페명은 <angra777의 추리문학관>입니다. 그럼 이만~
첫댓글 칼로 가슴을 두번 찌르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검도 관련 서적에서 읽었는데, 갈비뼈는 칼이 안 들어가고 한번은 찔러도 다시 칼을 뺄때 갈비뼈에 칼이 걸려서 안빠진다던것 같던데요? 그래서 격검시에도 타격 부위는 관자놀이, 경동맥, 목, 손목, 허리, 발목 등은 있어도 가슴을 찌르는 것은 없는걸로 아는데... 게다가 과도로 뼈를 뚫고 가슴을 2번 찌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명치부분에 정확히 칼을 집어넣지 않는 이상은...
대게 소설은 문단 단위로 끊어지는데 최근 글들은 대게 문단이 아에 없거나 짧네요. 문장 단위로 되어있는데요. 살인자의 심리가 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까닭모를 적개심 때문에 살인을 하는 글들이 있는 것을 알지만 이 글은 그 적개심의 정체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심리묘사도 좀 불충분한 것 같고요.
합천또라이님, 부족한 글 읽고 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에 글 <다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감상평 한 줄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네이버에 카페를 하나 개설했는데 좀 제 독재적인 성향이 강한 카페지만 , 한 번 들러주세요^^ 카페명은 <angra777의 추리문학관>입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