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화랑, 가운데 채약노인이 보인다
이것이 장가계다. 설사 세상 사람들이 모든 찬미를 다 준다 해도 그는 여전히 나한함(羅漢岩)을 흔
들흔들(搖搖晃晃)하게 하고 보봉호(寶峰湖)를 이리저리 숨기고(遮遮掩掩) 천하제일교를 구름사이
에 있게 하고 신당만(神堂灣)은 살기를 품게 하는 등 천진한 유희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 周懷立,「절미장가계 천세대산혼(絶美張家界 千歲大山魂)」에서
▶ 제1일, 2011년 2월 26일(토) 흐림, 무릉원(武陵源) 도착,
무릇 여행은 출발하기 전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날 밤잠 설치도록 즐거운 법. 요 며칠 새벽
잠 없었던 것은 비단 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리라. 중국 장가계를 가는 것이다. 비행기 출발시간
이 12시 20분인데 새벽부터 부산떤다. 혹 길이 막힐 줄 몰라 일찌감치 차 몰고 집 나선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한 주차대행사가 마중한다. 1일 주차요금 8천원. 5일간 주차할 예
정이다. 짐 얼른 부치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다리 아프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한다. 우리나라 날씨는 전국이 흐리다. 금수강산을 자세히 조감하려고 창가에 바짝 앉았으나
흐릿한 안개속이다. 한라산 산정 덮은 눈이 희미하다.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 황화(黃花)국제공항. 국제공항답지 않게 아담하다.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다. 4명 1조, 가이드 1명, 기사 1명, 차량은 11인승 봉고차다. 장사 날씨도 흐리다. 가이
드에게 황사인가 물었더니 이맘때는 으레 습한 연무가 잔뜩 낀다고 한다.
공항에서 장가계까지 고속도로 370㎞ 남짓이다.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장사시 외곽도로로 고
속도로 톨게이트에 진입한다. 고속도로는 일직선으로 쭉쭉 뻗었다. 제한속도 소객차 120㎞, 기타
차 100㎞. 차량통행이 한산하지만 과속하는 차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불쾌한 점 몇 가지. 우리
가 탄 봉고차는 창유리에 썬팅을 너무 짙게 하여 창밖 이국풍경을 내다볼 수가 없다. 답답하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자마자 도로노면 상태가 매우 불량하다. 콘크리트 포장한 도로는 얼룩덜룩
보수하였는데 그래도 곳곳이 깨져있어 대단한 운전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 운전기사와 가이드는
버릇으로 수시로 가래침을 차창 열고 내뱉는다. 그럴 때마다 그 가래침이 자칫 내 얼굴에 튀길까봐
조마조마하다. 그들의 꺼억 꺼억 가래 모으는 소리에 없던 내 가래가 끓는 착각이 들어 괜히 목구
멍이 간지럽고 헛기침한다.
서동정호(西洞庭湖) 방향표지판을 지난다. 호남성은 양자강 하류에 있는 동정호남쪽에 있어서고
호북성은 그 북쪽에 있어서라고 한다. 우리나라 호남은 금강 남쪽이다(일설에는 제천 의림지 남쪽
이라고도 한다). 또한 상강(湘江)은 이곳 장사(長沙)를 지나 동정호 남쪽에서 소수(瀟水)와 합류하
는데 이 일대의 경승 8가지를 ‘소상8경(瀟湘八景)’ 이라고 하여 이후로 소위 팔경이 유행하였다. 특
히 우리나라에서.
2시간 달려 상덕(常德)에 도착한다. 저녁밥을 먹으러 사해찬청(四海餐廳)으로 간다. 상덕은 호남성
에서 알아주는 문명도시(文明都市)라고 한다. 뻑 하면 문명을 들먹이니 작금 중국에서는 문명이 절
대과업이다. 비행기 함께 탔던 우리나라 여행객들을 이 음식점에서 다시 만난다. 음식점은 여행객
들로 꽉 찼다. 우리나라 말과 중국말이 마구 뒤섞이니 우리나라 말은 알아듣지 못하겠고 오히려 중
국말은 알아들을 듯하다.
밤으로 달린다. 평원을 가는지 산속을 가는지 모르게 앞뒤 캄캄하다. 가이드는 골아 떨어졌고, 우
리나라 말 모르는 운전기사는 이따금 혼자서 고개 끄덕이기에 조는가 싶어 불안하다. 내 잠이 다
달아난다. 전장 4㎞가 넘는다는 이자평(梨子坪)터널을 지나자 공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공
기가 차고 맑다.
교통안전 표어. 山好水好 最好安全. ‘산도 좋고 물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안전이다.’ 산자수명(山
紫水明)하다는 자랑이 은근하다. 장가계 황룡동(黃龍洞)을 지나 대처로 불빛 환한 무릉원(武陵源)
으로 들어간다. 무릉원도 흐리다. 안개비가 내린다. 숙소는 개천국제호텔(凱天國際酒店). 객실번호
맨 앞에 8자를 기본으로 덧붙였다. 중국 사람들은 숫자 ‘8’ 자를 무척 좋아한다. 그 이유는 ‘발재(發
財, 돈을 벌다)’ 에서 ‘發’ 자 발음 ‘파’ 가 ‘8’ 자와 같다고 해서다.
1. 보봉호 가는 길
2. 보봉호
3. 보봉호
▶ 제2일, 2011년 2월 27일(일) 흐림 : 보봉호(寶峰湖), 황룡동굴(黃龍洞窟)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장가계 무릉원은 우리나라 설악동과 같다. 무릉원에
서 이곳저곳 들락날락하며 백장협(百丈峽), 보봉호(寶峰湖), 황룡동굴(黃龍洞窟), 십리화랑(十里畵
廊), 금편계곡(金鞭溪谷), 천자산 원가계(天子山 袁家界) 등등을 둘러본다. 장가계는 한고조 유방의
책사(策士)였던 장량(張良, ? ~ BC 186)이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할 것을 염려하여 이곳으로 숨어
들었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장가계는 별칭이나 상찬하는 말이 많다. 대자연의 미궁이라느니, 중국 산수화의 원산지라느니, 지
구기념관이라느니, 절미(絶美), 산혼수운(山魂水韻, 산은 혼이 깃들어 있고 물이 노래한다) 등등 조
어(造語)는 계속 이어진다. 흔히 중국 사람들은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 ‘백발삼천장(白髮三千
丈, 1丈은 한 자(尺)의 열 배로 약 3미터에 해당한다)’ 에서 보듯 물상을 과장하기 일쑤인데 장가계
에서 만큼은 참았다.
날이 흐려 산정유람을 피하고 ‘인간요지(人間瑤池)’ 라는 보봉호 보러 간다. 입구부터 인파가 넘친
다. 우선 입구에 늘어 선 침봉들의 장대함에 움찔한다. 눈은 침봉의 끝을 쫓고 발걸음은 인파에 떼
밀려 옮긴다. 고개 넘으면 호수 선착장이다. 배 타고 호수를 도는 것이다. 호수 길이 2.5㎞, 평균 수
심 72m, 최대 수심 120m. 40분 정도 배 탄다.
저렇듯 암봉마다 수목이 청청한 것은 이렇듯 안개비 내려 습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공은 일장연설로 보봉호를 소개하더니 산수가무(山水歌舞)가 썩 어울린다며 노래 부
르게 한다. 천미고협(千米高峽), 심산고사(深山古寺), 십리요지(十里瑤池)를 보고 절벽잔도(絶壁棧
道)로 내려 기봉비폭(奇峰飛瀑)을 다시 본다.
4. 보봉호 주변
5. 보봉호 화과산, 절벽비폭으로 유명하다. 사람 모이는 데는 이 풍경의 사진이 걸려있다
점심 먹고 지심지문(地心之門, 땅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황룡동굴로 이동한다. 가이드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동굴전문안내원이 안내한다. 전장 15㎞ 중 800m를 들어간단다. 동굴 4층을 오르내리는
계단 수는 1,000개. 산속이 텅 비게 만들어진 동굴이다. 처음에는 석주와 공간이 시시하더니만 이
내 점입가경이다. 금과은창(金戈銀槍) 석주 지나 향수하(響水河, 낙수소리 나는 호수다) 건너는 배
탄다. 향수하 전장 2,820m, 평균수심 6m. 수온은 일 년 내내 섭씨 16도 정도. 배 타는 시간 8분.
석주는 100년에 겨우 1cm 자란다고 한다. 수수만년 용궁으로 가는 길은 무수한 석순(石筍), 석주
(石柱), 석만(石幔, 휘장), 석천(石川), 석폭(石瀑), 석화(石花)의 전시장이다. 천구전(千丘田) 또한 기
이하다. 석금산(石琴山) 너머 용궁은 크고 작은 석주의 경염장. 특히 설송(雪松)과 그 위 높이
19.2m에 달하는 정해신침(定海神針)의 기상은 여타 석주를 압도한다. 가관이다. 정해신침은 도괴
(倒壞)를 염려하여 100년 기한의 1억 위안 보험을 들었다고 한다.
6. 황룡동굴, 석금산
7. 황룡동굴, 굴 속에 또 굴이 있어 15명은 들어간다고 한다
8. 정해신침
▶ 제3일, 2011년 2월 28일(일) 흐림 : 십리화랑(十里畵廊), 금편계(金鞭溪), 천자산(天子山)
눈 뜨자마자 호텔 창밖으로 바라보는 야산이 안개로 흐릿하다. 밤에는 비까지 내렸다. 그래도 오늘
도 열심히 돌아다닐 일. 아침 식사하는 뷔페식 식당은 여전히 소란하고 어수선하다. 매번 나오는
삶은 옥수수가 제법 맛 난다. 그래서인지 맛있다고 싸가지고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십리화랑(十里畵廊)으로 간다. 안개비 내린다. 호텔 뒤 매표소에서 버스로 갈아탄다. 버스는 굽이
굽이 산허리 절벽잔도를 평지처럼 달린다. 먼 데 침봉 감상할 겨를 없이 겁이 더럭 난다. 15분 달려
십리화랑 입구. 곡심(谷深) 5.8㎞. 십리가 넘는다. 계곡 양쪽 능선에 겹겹이 도열한 침봉이 원근 농
담의 수묵화다. 안개는 꿈속 가위 눌린 것처럼 갑갑하다.
걸어가는 길도 있는데 5.8㎞는 너무 멀다. 중간에 정류장이 없다. 모노레일로 간다. 주마간산이 아
니라 주차간산(走車看山)이다. 편도 7분 파노라마. 금세 종점이다. 종점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모노
레일 타고 나온다. 숱한 침봉 중 낙타암과 약초 캐는 노인(菜藥老人)은 십리화랑의 명물이라고 한
다. 과연 기봉(奇峰)이다. 장가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근년에 어느 무명화가가 이곳을
그려 출품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9. 십리화랑
10. 십리화랑
11. 십리화랑
12. 십리화랑, 낙타암, 낙타 머리가 보인다
13. 십리화랑,
14. 십리화랑
15. 십리화랑
16. 십리화랑
금편계는 십리화랑 입구에서 버스 타고 더 들어간다. 금편계 입구 수요사문(水繞四門)부터 장관이
다. 광장 가장자리에 ‘장량묘(張良墓)’ 라는 표지판만 보이고 묘는 보이지 않는다. 협곡길이 5.7㎞.
차는 들어갈 수 없다. 40분 들어갔다 나오기로 한다. 길을 잘 다듬었다. 군봉(群峰)이 가까이 있어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야 그 전모를 감상할 수 있다. 모조리 하늘벽이다. 고개 몸살하게 생겼다.
계류 건너는 다리 옆 물고기가 뛰어 오른다는 도어담(跳魚潭)은 보잘 것 없다. 얕고 좁아 담이랄 수
도 없고 피라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천리상회(千里相會) 못미처 발걸음을 멈춘다. 아쉽다. 저
산모롱이 돌면 또 어떤 경치일까 두 눈이 충혈되도록 욕심은 끝이 없는데 돌아서야 한다.
17. 금편계곡
18. 금편계곡
19. 금편계곡, 금편암
첫댓글 이세진 선배님 해외 원정 산행 다녀 오셨어요? 사진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