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상징주의 시,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문학과 음악이 결국 한 어머니 밑에서 나온 자식들이라는 추정은 19세기를 통과하며 이미 공고해 질대로 공고해졌다. 이 ‘정신적 혈연’설을 넘어서서 ‘이란성 쌍둥이’ 이론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는 일련의 현상 및 논의들이 19세기의 끝자락 쯤 프랑스에서는 펼쳐지게 된다. 이 경우에는 시각예술, 즉 회화繪畵와의 끈끈한 연관성도 간과할 수 없겠으나 바로 인상주의 음악과 상징주의 시문학이 갖는 관계의 양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음악과 시는 이제 한 영혼을 공유할 뿐 아니라 동일한 사고의 경로를 통해 흡사한 형태로 얘기하는 다른 매체일 뿐이었다. 드뷔시와 라벨의 이름아래 등장하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은 비슷한 시기, 문학사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상징주의 시편들에서 음악이 취해야 할 새로운 태도를 벤치마킹했다. 동시에 말라르메, 베를렌느, 랭보와 같은 상징파 시인들은 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상태는 바로 음악의 본질인 ‘순수성’임을 분명히 했다. 과거에는 그 둘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쳤었다면 이제는 표현 방식까지 서로 나누는 ‘예술적 쌍둥이’의 시절을 맞는다. ‘모호함이 정밀함과 섞여있는 회색빛 노래(grey song)처럼 고귀한 건 또 없다.’ 라고 말한 이는 베를렌느(Paul Verlaine: 1844-1896)이다.
음악에서도 시에서도 일테면 ‘모호한 잿빛’에 비견될 수 있는 어법 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애매성과 내부적 세밀함이라는 상반된 요소는 바로 세계와 삶의 모순된 실체이고 이제 문학과 음악은 사물의 표피를 뚫고 마침내 원하던 진실의 속살에 성큼 다가섰다. 상징주의Symbolism는 19세기 중•후반 프랑스의 시인들 사이에 퍼진 일종의 ‘문학적 인상주의Impressionism’이다. 형식에 얽매이고 서술적이었던 고답파(진실에서 동떨어진 낡은 세계인식 방법을 따르는)의 시작詩作 태도를 일거에 내던진 보들레르, 랭보를 비롯하여 말라르메, 베를렌느 들을 거쳐 20세기의 폴 발레리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언어 예술로서의 시를 추구했던 일대 혁신의 시정신이다.
그들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환기력’을 활용하여 일상의 표피적 세계에선 파악 가능하지 않았던 느낌, 감정, 심리상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일찍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사용했던 열려있는(즉 애매한) 상징 언어들을 통해 보이는 것 속의 안 보이는 것들을 보게 하며 그것들이 연상시키는 냄새와 소리까지도 느끼게 만드는 그런 복합적인 발상에 근거한다. 이 ‘공감각共感覺Synesthesia’의 개념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도 추구했었던 것이고 생리 의학적 근거를 지니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것을 추구할 때의 시인들은 현실보다는 내면의 풍경에 더 끌리고 익숙한 것들보다는 이국적이고 신기한 것들에 눈을 돌린다. 그렇게 채택된 소재object들은 실체를 잡을 수 없고 정의하기 힘든 부류의 언어들을 통해 얼핏 막연한 듯하지만 내부의 질서가 뚜렷한 순수한 음악의 상태를 지향하는 모습을 띄게 된다.
그런데 그 상징주의를 낳은 것은 결국 문학적 낭만주의이다. 따라서 음악의 인상주의를 가능케 한 것도 낭만음악이 되는 셈이다.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것에의 탐구를 지치도록 경험한 모든 예술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하게 되었고 그것은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거나 기존의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기 즉, 시각의 혁명으로 나타난다. 그와 더불어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절실했던 것은 ‘표현의 방식’과 ‘언어의 선택 및 배열’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었다.
상징주의의 대부代父격이라 할 수 있는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1842-1898)는 시어詩語를 고를 때 내면의 느낌을 연상시키기 좋은 단어 혹은 그것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가 아직 제대로 탐구되지 못한 그런 언어들을 선택했다. 말라르메는 문장 구성방식도 재정비했다. 전통적인 각운이나 연聯배열하기 등은 자유로워지거나 느슨해졌다. 단어들은 과거의 사용관행, 사회적 연관, 고정된 의미 범위 등으로부터 빠르게 분리 되었다.
결국 상징주의 시인들이 열망했던 것은 언어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내면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사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화합 내지는 일치였다. 이렇듯 상징주의 시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곡절을 음악적 인상주의의 교주敎主격인 드뷔시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드뷔시가 맨 먼저 매료되었던 작가는 미국의 추리작가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en Poe: 1809-1849)였다. 불발로 끝났지만 드뷔시는 젊은 날 포우의 ‘어셔 가家의 몰락’을 오페라로 만들려 했었다. (이 엽기적이고도 음산한 추리 극이 오페라 화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라!)
포우의 주관심사는 ‘모든 감각의 혼합과 혼돈’으로 표현되는 심리, 생리적 현상의 총체적 포용이었다. ‘꿈’이나 무의식은 그 좋은 대상이었고 포우는 그것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오히려 더 생생한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는 나아가 음악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야말로 음악의 본질이다. 풍부한 암시가 들어있는 불확실성은 확실성에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영적 방식이다’ 라고 단언한다. 다분히 역설적인paradoxical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쯤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일군의 시인들이 추구했던 작품의 전반적인 효과는 불확실 혹은 애매모호함이지만 그것의 내용을 구성하는 실제적인 디테일들은 철저하게 계획되고 건축되었다는 점이다. 포우를 추종하는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과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 사이에 공통분모, 혹은 발상의 공감대가 형성 되는 부분이다.
상징주의의 수장首長 말라르메의 시에 곡을 붙인 ‘목신의 오후’ 만큼 음악이 시를 흡수하고 용해시켜 텍스트가 갖는 효과와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낸 예도 일찍이 없었다. 일차적으로 말라르메가 의도한 것은 환상이나 꿈의 세계를 탐지할 때 사용될 수밖에 없는 몽롱한 언어들의 선택이다. 그 면에 있어서 드뷔시도 결코 뒤지는 법은 없었다. 인상주의 음악의 효시嚆矢답게 ‘목신의 오후’의 작곡기법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짐짓 몽롱하고 신비한 효과를 위해 채택한 새로운 이디엄이었지만 악보의 내부는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시인 말라르메가 시도한 것도 목적을 위해 철저히 추려지고 계획된 단어 선택과 배열이었으며 드뷔시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한 사항 역시도 악보에 나타난 모든 기호와 지시를 꼼꼼히 준수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베를렌느의 ‘모호함이 정확함과 만나야 성립하는 완전함’이라는 명제의 음악적 실현이다.
‘음악계의 말라르메’라는 별칭을 얻어 갖기도 한 드뷔시가 악절이나 주제를 사용하는 방식도 시인의 그것과 흡사하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결코 단번에 문장을 마치거나 완결 짓는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서는 주제나 그 전개가 조금씩 진전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마지막에 가서야 그 형태를 완성한다. 드뷔시의 조성이 애매모호하고 불안정한 것도 상징주의 시의 베일에 싸인 언어의 의미구사와 관련이 없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사물이나 이미지로부터 예의 ‘공감각’에 가까운 다중적 효과를 추구하는 기법에 있어서 드뷔시는 결정적으로 시인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의 인상주의적인 작품들로부터 우리는 색감과 향기와 청각적 반향, 그리고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유발하는 전감각적인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단어의 이미지가 갖는 환기성에 있어서도 드뷔시는 역시 시인들을 닮아있다. 그가 즐겨 사용한 ‘물’과 ‘바람’의 이미지는 그대로 상징주의가 사랑한 시어詩語들이고 ‘불’은 격렬함과 열정의 표상임이 역시 양쪽 분야 공통이다. 후배인 뒤카스(Paul Dukas)가 말 한대로 드뷔시를 가르친 것은 ‘9할’이 음악가 아닌 작가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상징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깊게 받은 벨기에 출신의 극작가인 모리스 메테를링크(1862-1949)의 희곡을 오페라로 만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ias and Melisande 역시 드뷔시의 문학에의 경도를 뚜렷이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메테를링크의 희곡이 그러했던 것처럼 드뷔시의 오페라 역시 뚜렷한 플롯이나 액션을 드러내주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 전개도 서술을 피하고 어떤 이미지를 통해 표출될 뿐이다. 하지만 원작의 상징주의적 성격과 드뷔시의 인상주의적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한 실험적인 위치에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ias and Melisande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된 대로 발상의 동일 이외에 상징주의와 드뷔시의 합일점은 언어적 짜임새의 유사성에도 있다. ‘프레이즈’와 ‘피리어드(프레이즈들의 모임)’의 구성이나 세부요소들의 조합과 배치에 있어서 상징주의가 갖는 시와 산문의 복합성을 드뷔시는 음악으로써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의 언어 구조적 측면이 음조직의 어법에 결정적으로 침투하는 획기적인 사건이 인상주의 음악을 통해 일어나게 되었다. 향후 세대에 이어질 ‘음악의 언어학적 측면’의 본격적인 원인제공자로 인상주의는 자리하고 있다.
사실 음악에서의 ‘인상주의’라는 말은 출처가 따로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미 미술계에서 널리 유통되던 용어인 것이다. 문학에서는 상징주의, 미술에서는 인상주의 그리고 음악에서는 ‘드뷔시즘’이라 일컬을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조에서 그러나 제외되면 억울한 인물이 바로 모리스 라벨이다. 그 또한 젊은 날에 문학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반면 1차 대전 후 그의 원숙기에는 점점 작품들이 추상적 신고전으로 변해가고 있긴 하다.
라벨의 작품 중에서 인상주의 혹은 상징주의의 빛깔을 띤 작품들로 평가되는 ‘밤의 가스파르’와 ‘거울’ 등은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작곡가의 일면 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많지 않은 분량의 그 작품들에서 라벨이 보여준 품위 있는 인상주의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비중으로 음악사에 자리한다. 우리가 상징주의 시인으로 흔히 이해하고 있는 ‘밤의 가스파르’의 원작자인 베르트랑(Louis Bertrand: 1809-1841)은 실은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환상적 낭만주의계열에 속하는 시인이다. 시인으로서의 그는 분명 사실은 사실인데 어딘가 증발할 것 같고 변하고 도망갈 듯한 사물과 현상에 지대한 매력을 느꼈다. 낭만주의의 2차원적 세계에 미지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첨가한 사고의 입체적 영역에 그의 입지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보거나 듣거나, 혹은 놓친 모든 이미지와 영상들로부터 시는 추출된다, 라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상징주의자들을 부추겼던 결정적 발언인 셈이다. 보들레르나 포우는 기본적으로 낭만시인이었던 베르트랑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라벨의 ‘가스파르…’는 환상적 낭만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빼어난 인상주의 풍 작품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기본적으로 낭만에 속하는 판타지 장르의 시를 라벨의 유려하고 절도 있는 기법이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 경우라 하겠다.
라벨 역시 포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작곡에 들어가기 전 머릿속에서 모든 기법과 효과를 연상하고 준비하는 것과 같은 ‘작법의 철학philosophy of composition’은 포우에게서 따온 것이다. 이 이론은 라벨뿐 아니라 드뷔시에게도 많은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나아가서 음악과 시의 작품 길이로써 적절한 것은 30분이다 라는 포우의 이론까지 수용하게 되는 라벨이다. ‘거울’이나 ‘밤의 가스파르’ 들의 30분 단위 연주 시간이 이 같은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말라르메는 말한다. “모든 것은 그 실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잡을 수 없는 듯한 것들 가운데 완전한 형식은 자리하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그 핵심까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 이는 전적으로 시인의 책임이다.” 드뷔시와 라벨은 이 신념을 그대로 음악에 적용시킨 것이다.
사물의 표피를 뚫고 제3의 영역을 발견하는 일은 아마도 상상력 풍부한 프랑스인들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때까지의 음악사를 주도해 온 독일어권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가 조성한 상징파적 풍토는 기본적으로는 지적知的이되 동시에 감성적이고 나아가서 감각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은 모두들 빼어나게 지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이었다. 음악이 그것으로부터 자양분을 받지 않았더라면 섭섭할 정도로. 프랑스의 예술적 분위기는 서로 다른 분야끼리의 자유로운 소통을 당연하게 여겼다.
상징주의 시에 드뷔시와 라벨이 영향을 받은 것도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상징주의 시가 그러 했듯 인상주의 음악도 그 대표자들 이후 추종자들이 양산되었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향후 세대는 문학과 음악을 막론하고 이들의 존재로부터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비록 유파를 이루거나 뚜렷한 계보를 남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후대의 시인과 작가 그리고 작곡가들은 이들의 영향을 음으로 양으로 깊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음악도 문학도 결코 이들이 나타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좀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일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
◤ 牧神의 午後 ◥
스테판 말라르메
아, 이 요정들의 모습이 영원하였으면.
그녀들의 엷은 장밋빛 살결이,
숲속같이 깊은 잠에 빠진 대기 속에 하늘하늘 떠오른다.
나는 꿈을 사랑하였던가?
내 의혹, 저 끝이 없는 고대의 밤의 성단이 쌓이고 쌓여
생시의 무성한 숲이 돼 내게 일깨우니,
오! 끝에 남은 것은 나 혼자 애타게 그린 장미꽃빛 과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자.
혹시 그대가 생각하는 여인女人들은그대 엉뚱한 감각이 갈망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지를.
목신牧神이여, 환각은 한결 순결한 처녀의
푸르고 차가운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처럼 솟아난다.
그러나 한숨에 젖은 저쪽 여인은 그대 털가슴에 깃드는 한낮의 산들바람처럼
대조적이라 할 것인가?
아, 그만! 움직이지도 않고 나른하여 정신이 혼미昏迷하니
안간힘을 쓰는 신선한 아침도 열기熱氣로 목이 조이네.
화음으로 추겨주었을 뿐, 내 피리도 이제는 물방울 소리를 낼 따름.
메마른 빗속에 그 소리가 흩어지기 전에
이제, 막 대롱 밖으로 터져 나가려는 것은 오직 바람風일 뿐이어라.
그 바람은, 주름살 하나 없는 지평에서 하늘로 되돌아가는 영감靈感의 가시적이고
맑은 인공의 숨결일 뿐.
태양에게 질세라 내 들뜬 허영虛榮이 휩쓰는 늪,
햇빛 반짝여 튀기는 불꽃들의 꽃 밑에 입술 봉하고
말없는 늪, 그 늪의 시칠리아 기슭이여 오오 이야기해보라.
재능으로 길들인 속빈 갈대를 내 여기서 꺾고 있었노라.
머나먼 초원에는 청록의 황금, 푸른 포도밭은 그네들 잎사귀를
샘물들에게 바치고, 그 위로 휴식하는 짐승 같은 흰 빛이 물결칠 때
목동의 피리소리 천천히 서곡으로 울려 퍼지자 백조 떼들이, 아니!
요정의 떼들이 날아올라 도망치던가, 아니면 물에 잠기든가….
죽은 듯이 모두가 야수의 시간 속에서 불탈 때,
<라>음을 찾는 자가 그리도 염원念願하던 결혼은 모두 그 무슨 재주로 다 사라져 버렸는가.
문득 소스라쳐 깨어나면, 첫 번째의 타는 그리움을 위하여 나는,
해묵은 빛 물결 속에서, 오 백합꽃들이여, 그대들 중 어느 순진한 한 떨기처럼
홀로 우뚝 서 있을 뿐이리.
그네 입술이 들릴까 말까 내뱉은 부드러운 그 무엇과는 달리,
불성실한 이들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심시키는 입맞춤, 흔적도 남지 않은
나의 순결한 젖가슴은 그 무슨 장엄한 이빨이 깨문 신비스런 자취를 보여주는가.
하지만 아서라! 은밀한 사람에게 들려주는 비밀 얘기처럼
푸른 하늘 아래서 쌍피리를 부노라.
피리는 두 뺨의 경련을 잊게 하고 긴 독주에 잠겨 꿈을 꾸니,
우리는 아름다운 꿈과 생시의 노랫소리를 슬쩍 뒤섞어 그 둘레의 아름다움을
즐겁게 하였던가,
내 감은 두 눈으로 더듬던 등이나 순결한 허리의 몽상이랑 지워버리고
한줄기 낭랑하고 헛되고 단조로운 가락을
사랑이 조調를 바꾸는 그만한 높이로
피리는 불어내려고 꿈을 꾼다.
도피의 악기여, 오 깜찍한 피리여,
그러거든, 그대 한 송이 꽃으로나 다시 피어나,
호숫가에서 나를 기다려라!
나는 내 나직한 속삭임에 취해서
오래오래 여신들 얘기를 하리라,
열애에 찬 그림을 그려
여신의 그림자에 걸린 허리띠를 벗겨 내리라.
하여, 내 모른 체하며 회환을 지워버리려고,
맑은 포도 알을 빨아먹고 웃으며 빈 포도껍질을
여름하늘에 비쳐들고 투명한 살 껍질에 숨을 불어 넣으며
취기에 잠겨 저녁토록 비춰 보리라.
오, 요정들이여, 다채로운 추억에 바람을 넣어
다시 가득 채우자.
내 눈은 피리에 구멍을 뚫고 불후의 목구멍을 찌르고,
목의 타는 듯한 아픔이 물결에 실려 숲 위의 하늘로
광란하듯 절규한다.
감은 머리털은 빛과 오열 속에 사라진다.
오, 보석들아!
내닫는 내 발 아래
잠자는 미녀들 이리저리 팔을 뻗어
저희끼리 부둥켜안는다. 나는, 서로 안은 팔 풀지도 않은 채, 이 미녀들을 호려내어,
경박한 그늘도 들지 않는 이 산등성이에 날듯이 뛰어 오르니
태양열에 장미향기 모두 닳고 엎치락뒤치락 우리들의 열전은
불태워 버린 대낮같다.
그대를 찬미하노라, 처녀處女들의 분노여,
오, 성스러운 전라全裸의 짐이 주는 미칠 듯한 감미로움이여,
번갯불이 몸을 떨 듯, 불타는 내 입술의 목마름을 피하려 그대는
미끄럽게 달아난다.
살의 저 은밀한 몸서리침이여,
무정한 여자의 발끝에서부터 수줍은
여자의 가슴에까지,
광란의 눈물에, 혹은 보다 덜 슬픈
한숨에 젖은 순진함은 벌써 옛날 얘기.
이 간악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좋아서,
머리칼 뒤엉킨 깊은 숲속 같은 포옹을,
신들이 그리 잘 맺어 준 포옹을 떼어놓은 것이 나의 죄.
한쪽 여자의 행복한 주름 속에 내 불타는 기쁨의
웃음을 감추려 하자마자,
(온몸에 불을 켜는 작은 동생, 순진하고 얼굴도 붉히지 않는
저쪽 여자의 흥분에, 정숙한 그네 흰 깃털이 물들도록,
한손가락만 꼭 잡고 있는 동생),
어렴풋한 죽음으로 풀리는 내 팔에서 나의 포로는
끝내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내 아직도 그로 하여
취해 있었던 가엾음의 눈물도 남기지 않은 채.
할 수 없지! 다른 여자들이 내 머리에 난 뿔에 머리채를 감고 행복으로 이끌어 주리라.
정열情熱이여, 너는 알리라.
빨갛게 벌써 익은 저마다의 석류 알은
터져서 벌떼들로 지저귀고,
때맞게 잡는 자에게 쉬 반하는
우리들의 피는 욕망의 영원한 모든 벌떼들을 위하여 흐름을.
이 숲이 황금빛과 잿빛으로 물드는 시각,
불 꺼졌던 잎사귀 속에서 축제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에트나 화산이여, 비너스가 그대를 찾아와
그의 순박한 발길을 그대의 용암위에 옮겨놓을 때
한숨의 슬픈 잠이 벼락 치듯 오고, 불꽃은 차츰 일그러진다.
나는 여왕女王을 보듬어 안는다!
오, 반드시 오고야 말 징벌….
아니다, 하지만, 언어가 부재하는 나의 영혼,
무거워진 육체는 정오의 씩씩한 침묵 앞에 결국은 쓰러진다.
이제 그만 불경한 생각을 잊은 채,
목마른 모래위에 잠들어야 한다.
아, 포도주의 효험 좋은 별들에게
입술을 여는 것은 이리도 좋은가!
한 쌍의 요정들이여 안녕!
나는 그대가 둔갑한 그림자를 보리라
■■ 음성학적 은유로 짜여진 섬세한 피륙
● [네버모어]―베를렌느
추억이여 추억이여 어쩌자는 거냐 가을은
느른한 대기 속을 지빠귀새가 날게 하고
태양은 북풍이 울부짖는 단풍 숲 위에
단조로운 햇빛을 던지는데
그때 우리들은 단둘이서 꿈꾸듯 걸어갔었지
그녀와 나, 머리털과 생각을 바람에 휘날리며,
갑자기 그녀는 감동스런 눈초리를 나를 향해 던지더니
어떤 날이 가장 좋아요, 그녀의 생생한 금빛 목소리
신선한 미소가 그녀에게 대답했지
오! 나는 헌신적으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네.
오! 처음 피는 꽃들이라 향내가 어떠했던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처음의 예스
정말 매혹적인 울림으로 소리를 내네.
● [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감정의 절제가 낳은 회화적 이미지
● [비둘기]―고티에
저기 무덤 흩어진 언덕 위에는
푸른 깃털처럼
머리를 쳐든 종려 한 그루.
해거름이면 몰려 온 비둘기 떼
보금자릴 틀고 몸을 숨기지.
하지만, 아침이면 그들은 가지를 떠난다.
알알이 떨어지는 목걸이인가.
푸른 하늘로 하얗게 흩어지는 비둘기 떼
보다 먼 어느 지붕 위에 나랠 접는다.
내 영혼靈魂은 한 그루 나무,
밤마다 비둘기 떼처럼 무릴 지어
하이얀 꿈의 영상映像이 하늘에서 내린다.
나래를 파닥이며
아침 햇살에 날아가는 꿈의 영상이…….
● [외인촌]―김광균
하이얀 모색募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少女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다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時計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관능과 우수
● [고양이]―보들레르
<1>내 머리 속을 걸어 다닌다, 예쁜 고양이
제 방안 거닐 듯,
힘세고 온순하고 매혹적인 잘 생긴 고양이.
야웅 하고 우는 소리 들릴까말까,
그토록 그 울림 부드럽고 은근하지만;
차분할 때나 으르렁거릴 때나
그 목소리 언제나 풍요하고 그윽하다.
바로 그게 그의 매력, 그의 비밀.
내 마음 가장 어두운 밑바닥까지
구슬처럼 스미는 그 목소리,
조화로운 시구처럼 나를 채우고,
미약처럼 나를 즐겁게 한다.
그 목소리는 지독한 고통도 가라앉히고
갖가지 황홀을 간직하고 있어:
긴긴 사연을 말할 때도
한 마디의 말도 필요가 없다.
그렇다, 이 완벽한 악기, 내 마음 파고들어.
이보다 더 완전하게
내 마음의 가장 잘 울리는 줄을
노래하게 할 활이 이밖에 없다,
네 목소리밖엔,
신비한 고양이여,
천사 같은 고양이, 신기한 고양이여,
네 속에선, 천사처럼,
모든 것이 미묘하고 조화롭구나!
<2>
금빛과 갈색이 섞인 그의 털에서
풍기는 냄새 그토록 달콤해,
어느 날 저녁 한 번, 꼭 한 번
어루만졌는데, 그 냄새 내 몸에 배어들었다.
이거야말로 이곳을 지켜주는 수호신:
제 왕국에 있는 모든 것을
판결하고 다스리고 영감을 준다;
그것은 요정일까, 신일까?
사랑하는 내 고양이 쪽으로
자석이 끌리듯 끌린 내 눈이,
순순히 내 몸으로 되돌아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나는 그만 깜짝 놀란다,
창백한 눈동자의 빛나는 불,
밝은 신호등, 살아 있는 오팔,
지그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눈.
● [봄은 고양이로다]―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언어의 음악을 통해 들려주는 우수 깃든 서정
● [가을 노래]―베를렌느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이
쓸쓸하고
우울한
내 가슴에 스며드네
종소리 울리면
숨이 막혀
창백해지고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 짓네
하여 나는 가리라
거센 바람이
나를 몰아치는 데로
이 곳 저 곳
정처 없이 뒹구는
낙엽처럼…
●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김영랑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환상적 서정의 시각화
● [눈]―구르몽
시몬, 눈은 그대 목처럼 하얗고
시몬, 눈은 그대 무릎처럼 하얗다
시몬, 그대 손은 눈처럼 차갑고
시몬, 그대 마음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불꽃의 입맞춤에 녹고
그대 마음은 이별의 입맞춤에 녹는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서 슬프고
그대 이마는 갈색 머리칼 아래에서 슬프다
시몬, 그대 동생인 눈은 안뜰에서 잠자고
시몬, 그대는 나의 눈, 나의 사랑이다
● [달 • 포도 • 잎사귀]―장만영
순이順伊 버레 우는 고풍古風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東海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葡萄는 달빛이 스며 곱다.
포도葡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順伊 포도葡萄 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 암시와 여백으로 그려낸 이상 세계
● [축배]―말라르메
허무虛無, 이 거품, 순결한 시
그건 오직 술잔을 가리킬 뿐
저 멀리 아득히 인어 떼들
몸을 뒤집어 물속에 잠겨드네.
이제 배를 띄우세, 오 여러 친구들이여,
난 이미 고물에 섰고
그대들은 겨울의 노도怒濤를 헤치는
호화로운 뱃머리에 있네.
취흥醉興이 무르익어 내 스스로
흔들리는 뱃전조차 두려워 않고
이렇게 일어서서 축배를 올리리.
고독, 암초, 별
우리의 돛 그 하얀 시름에
비길만한 그 어떤 것에라도.
● [청노루]―박목월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 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젊은 날, 그러니까 60년 중반기 대학에서 시를 공부하면서 프랑스의 상징주의에 한 마디로 미쳤었다.
그 기억을 8월의 오렌지 글사랑 모임에 오신 이환 교수님이 일깨워주었다.
어쨌든 한국의 모더니즘 시는 프랑스의 상징주의를 피해 갈 수 없었던
그 시대의 운명적인 탄생을 지녀야 했다.
혹, 위의 글들이 이 카페의 글 성격에 부적합하다고 지적이되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또한 위의 글은 내가 읽은 프랑스 상징주의에 관계된 책에서 발췌된 것임을 아울러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