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절은 극도로 어려운 시기를 지내며 하나님이 인도함을 묘사한다. 길 은유를 이어가면서, 시편 기자는 가장 어두운 골짜기나, 다른 번역에 따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이끄는 길을 상상한다. 더 전통적인 후자의 번역은 히브리어 단어 짤마베트(ṣalmāwet, “깊은 어둠”)를 두 단어, 즉 쨀 마베트(ṣēl māwet; “사망의 그림자”)로 나눈 것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같은 어족어 단어(cognate word)가 우가릿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전자 번역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시편은 종종 죽음이 가까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번역이 계속되어 왔다. 물론 “가장 어둔 골짜기”라는 번역은 단순히 그 적용을 넓힌 것으로, 분명히 죽음을 맞이하는 어려운 시기를 배제하지 않는다(Futato 2009: 101).
6a절은 선하심(토브[ṭôb])과 인자하심(헤세드[ḥesed])이라는 하나님의 언약 속성을 인격화하면서, 이 속성들이 시편 기자를 따른다고 묘사한다. 동사에 대한 더 좋은 번역은 “추구한다”일 것이며,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목자 은유가 둘째 연까지 확대된다면,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목자가 양이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지키는 것을 도우면서, 목자의 양치기 개처럼 행동한다.
NIV는 이 시편의 마지막 콜론을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번역한다. 물론 여호와의 집은 성전이며, 어느 누구도 실제로 거기에 살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자신의 임재를 알리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의 빛에서 살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영원히라는 번역은 최소한 이 시편을 이 시편의 구약의 원 문맥에서 읽을 때 잘못된 인상을 준다.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날들의 길이 동안”으로 번역된다.
즉 시편 기자의 생애의 지속되는 기간을 가리킨다. 결국 내세에 대한 가르침은 후대 구약 시기에서(단 12:1–3) 중간기까지 발전하고, 신약에서 무르익는다.
시편 23편을 신약에 비춰 읽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편 기자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이 사실임을 가리킨다. [1]
WBC
6.a. וְשַׁבְתִּי: literally, “and I shall return in the house of the Lord.” The construction is pregnant, implying “and I shall return and I shall dwell (וְיָשַׁבְתִּי) in the house of the Lord” (cf. Delitzsch, Biblical Commentary on the Psalms, I, 40).
6.b. Literally, “length of days.”[2]
[1] 트렘퍼 롱맨 3세, 시편 I–II, eds. 퍼스데이빗 G. with 백승현,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초판.,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15–16:187–188.
[2] Peter C. Craigie, Psalms 1–50, vol. 19, Word Biblical Commentary (Dallas: Word, Incorporated, 1983),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