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 속에 겨우내 움츠린 풀씨들이
촉촉히 스며드는 빗물소리에 세상에 나오려고
연거푸 기지개를 폅니다.
잣나무에 올라선 청설모가
산들바람 흥얼대는 노래소리에
잣방울을 입에 물고 쫑긋이 귀기울입니다.
돌자갈 거친 물살 속 송사리들이
징검다리 건너는 아이들의 발자욱 소리에
은빛비늘을 치켜 세웁니다.
연잎 위에 떨어진 꼬마 빗물 한방울이
왕눈이 개구리의 꽁무늬를 좇아
작은 연못속으로 유유히 헤엄쳐 따라갑니다.
[ 광화문 광장에 서서 ]
2.
나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 산다.
물 맛 좋은 옹달샘이 깊은 가뭄에 먼저 마르듯,
임진강 DMZ 구역을 빼고 한반도 지역에서
거의 멸종단계에 이르렀다.
복숭아 꽃 질 무렵에,
내가 좋아하는 갯지렁이 영양분이 베인
하돈란(황복의 알)을 품는다.
나는 테트로톡신(신경독)으로 나의 알을 지킨다. 청산가리보다 10배 독하고 쥐 몇천마리도
죽일 수 있다. 나는 진통제로, 국소 마취제로
쓰이고 보톡스 대용으로도 쓰인다.
나는 공기를 힘껏 불어 4배까지 몸통을
불릴 수 있지만, 배불뚝이나 바다의 카멜레온
이라 부르지 마라.
나는 맹독을 가지고 나의 하돈란을 지킬 것이다. 나는 한국의 4대강 및 시골고향 하구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 황복어의 시국선언 ]
3.
눈은 살아서 푸른 집을 응시하고 있다.
수수한 무명저고리 단정히 여미고,
짧은 단발머리에 감아 쥔 두 손,
무엇을 향한 침묵의 외침인가?
글렌데일 아르메니아 이주민의
눈물이 흥건하게 고인다.
사우스필드 인디언과 흑인들의
두 손이 경건히 모인다.
서울 중학동 일본 대사관의
붉은 노을은 시리도록 찬란하다.
눈은 살아서 광화문 광장을 응시하고 있다.
시린 목 위로 하얀 털 목도리가 순결하다.
[ 소녀상의 응시 ]
4.
시골고향 정읍 이평초등학교
작은 대나무 숲 교정에는
이순신 장군이 긴 칼을 차고 서 있다.
한적한 말목장터 읍내
기왓장 으스러진 정자 옆
풋풋한 꽃망울 오롯이 안은
감나무가 지긋이 서 있다.
무명저고리 차려 입고
사발통문 고이 접어
뙤기밭 능선 넘어
파랑새의 날개짓이 힘차다.
만석보 터진 물길 따라
초록모 겹겹이 감싸안은
황토재의 봄길이 싱그럽다.
[ 이순신장군과 사발통문 ]
5.
온화한 미소를 간직한 작은 체구의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그이는 말합니다.
권력은 국민에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밤을 지새우는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에게
최저시급 10,000원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히고 있는
서로 기대어 사는 이가 되자고
오늘은 하야하기에 좋은 날이라고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초등생,중학생,고교생,
주방 아줌마,가덕도 할머니,신혼 부부,유모차
부부는 말합니다.
"햐야 말하려고 초등학생으로 글을 배웠나?
자괴감이 든다"는 8살 어린이와
"구의원에 속고, 시의원에 속고, 구청장에 속고,
시장에 속고, 국회의원에 속고, 정치인에 속고"
부산 가덕도에서 달려 온 속고 할머니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대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야 새벽이 온다"고 하는
피켓을 번쩍 든 동네 아저씨와
"밧데리도 5% 남으면 바꾸는데...
하물며 푸른집은?" 이라며 "지지율도 실력이야...네 부모를 탓해..."라는 젊은 부부와
"한 시민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나왔다"는
쓰레기 봉투를 든 세종로의 아주머니와
시골에서 올라온 한 시민으로 광화문 광장에
서서, 그들과 비스듬히 기대어 푸른집을 바라보며, 작은 손수건과 촛불을 들어 봅니다.
[ 김제동과 만민공동회 ]
첫댓글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광화문 광장과
전국 주요도시의 촛불모임은 이제 국민의
주권회복선언을 넘어 "자녀에게 말은 못
사 주지만, 좋은 나라를 물려 줄 수 있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정의와 희망이 살아
숨쉬는 우리나라 만들기"로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한실문예 문우님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