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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
내용 |
시간 | |
기조연설 |
인간성 회복과 문학의 역할 정영자 위원장 |
10:10~10:30 (부경대 효림홀) | |
세션 |
효림홀 |
CEO실 |
10:30분 시작 |
제1발표 |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종교 사무엘박 콜럼비아시카고대 교수, 미국 |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정치 스톤햄 스텐포드대 교수, 영국 |
10:40~11:00 |
제2발표 |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자연 김영옥 북경제2외국어대 교수, 중국 |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동양사상 수글레그마 시인, 몽골 |
11:00~11:20 |
제3발표 |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모성 타지마야스에 시인, 일본 |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저널리즘 최혜실 경희대 교수, 한국 |
11:20~11:40 |
토론 |
좌장 박양근 부경대 교수 토론 유인실 전북대 교수 |
좌장 허상문 영남대 교수 토론 김미란 문학평론가 |
11:40~12;00 |
제1회국제문학제 기조발표문
인간성 회복과 문학의 역할
1. 불확실성의 시대와 단절
불확실성의 시대에 현대인은 섬처럼 서로 단절되어 홀로 떠 있기에 고독하고 소외감을 가진다. 자아보다 비대해진 외부의 세계, 정신보다 지나치게 거대화된 물질세계가 우리를 눌리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메마른 현실에서 인간성 회복과 함께 휴머니티를 다시 생성시켜야 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6·25와 같은 역사적 사건에서 우리 민족은 어떤 민족보다 아픈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여기에 21세기 문명의 충격은 인간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문명의 다양한 기술혁명에 인간은 왜소해지고 문명의 기계는 거대해지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신문화의 위촉과 불안감을 고조시켜온 모든 현대적 속성은 온갖 불행과 인간성 상실의 현상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물질가치를 추구하는 현대문명의 속성이 정신가치를 추구하는 문화현상을 함께 발전시키지 못한 필연적인 잘못을 만들었다. 문화의 핵인 문학의 위기는 값싼 대중문화와 상업자본의 무자비한 공세 속에 순수무구한 인간정신의 문학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2. 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너의 행복과 평화가 지켜져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너는 나와 함께하여야 되고, 나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하여 너도 행복할 수 있어야 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적 여건이 제기하고 있는 현실문제를 외면하고 작가가 어떻게 미래와 영원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은 물론 사회의 이상과 오늘의 행복된 삶의 확충과 내일의 비전을 위하여 글은 쓰여져야 한다.
문학의 궁극적 가치는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하는 삶의 가치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문학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총체적인 내용을 묘사하고, 그 총체적인 내용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보내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때문에 문학의 가치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추구에 있는 것이다.
문학은 폭력도 아니며, 거대한 힘을 가지지도 않는다. 한꺼번에 일어나서 소멸하는 기본적이고 모방적이며, 일시적이고 한계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정서적 감정을 순화시키며 때로는 뜨겁게 타오르기도 하고 넘치게도 하는 신비의 묘약이요, 환상의 힘이다.
3. 인간성 회복 - 사람과 자연과의 대화, 사람끼리의 소통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깨우침이요, 뒤흔들림이요, 내일에 빛을, 혼돈에 질서를, 순간을 영원하게 하고, 무너진 자를 일으키게 하는 영혼의 울림이어야 한다.
무감동, 무표정의 무감각 시대에 감격의 재생이란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숫자가 난무하고, 계산이 존중되고, 이론과 증명이 우선되고, 대중이 영웅이 되는 시대이다.
어느 하루, 나무 밑에 서서 바람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이 현실을 사는 현명한 일이 되지 못할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들의 하루에 바람의 맛, 별빛과 달빛, 물의 흐름과 그 빛깔, 구름의 모양, 나무 잎새의 변화 등을 확인하여 꽃과 새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우리들의 삶에는 비생산적이고 비계산적인 것이 환영받을 때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문학은 즐거운 인생과 현실의 진실을 보여 주어야 하면서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통한 인간성의 회복과 그것으로부터 완성되는 사랑의 의미를 문학 속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주지주의, 기계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등으로 인하여 지성과 본능이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삶을 위하여 자유롭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의 창작행위도 인간의 본성적인 영역을 확보하면서 문명에 잠식된 인간을 구원해 주고 회복시켜주는 구원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4. 인간성 회복과 문학의 역할
현대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남남의 소외지대에서 지향할 비전과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방황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문학은 정신적인 밑받침이 되며 새로운 모랄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세계의 고전문학 파우스트와 신곡(新曲)은 인간 구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한국의 고대소설 심청전과 구운몽(九雲夢),옥루몽(玉樓夢)은 인간의 영원적인 삶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위대한 고전문학은 인간성 상실의 혼돈에서 인간성 회복이란 영원적인 것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인간성 회복인 동시에 독자의 인간성 회복이다.
위대한 문학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위대한 삶을 구체화시키는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때문에 문학은 즐거운 인생과 현실의 진실을 보여주어야 하면서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인간애의 길, 생명사랑의 길, 생명존중, 생명탐구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의 역할에 바탕이 될 것이며 진정한 인간성 회복의 문학이야말로 문명의 위기,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의 정신은 인간을 위한 삶이어야 하고, 인간의 사랑이 넘치고, 최후로는 그 사랑 때문에 영원적인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넘어진 자를 일으키고, 무너진 자를 붙잡고, 꺼져가는 목숨에 생명의 불을 당기게 하고, 마른 땅 위에 한 줄기 강물로 흐르는 영원적인 정신 속에, 다시금 인간임을 감사할 수 있는 인간성 회복에서, 인간정신 구원의 문학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제4발표문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정치
- 인간성 회복: 한 번에 한 언어
“인간 지혜의 합은 어떤 한 언어에 담아질 수 없고, 어떤 단일의 언어도
인간 이해력의 형식들과 정도들을 표현할 수 없다.”
- 에즈라 파운드, 독서의 기초
“문학과 정치를 통한 인간성 회복”에 관한 글을 요청받았을 때, “언어학자가 문학과 정치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인간성 회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자문했다. 나는 즉각 지난 십 년간 내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했던 이슈를 하나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세계에서 일어나는 꾸준한 언어의 소실이다.
가디언(Guardian)에 실린 한 글이 21세기 중반까지 세계 언어의 90퍼센트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Woodward, 2002). 현재 약 5천 개에서 6천 개 정도의 언어가 있고, 놀랍게도 4천5백 개에서 5천4백 개의 언어가 오십 년 내에, 혹은 매년 거의 백 개의 언어가, 즉 매주 2개씩,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된다. 이런 사라지는 언어들에 대해 유의해야 할 중요한 점은 그들 중 많은 수가 문서화되어지지 않는 언어이고, 아이들의 놀이터 리듬처럼 세대에서 세대로 구어로만 전해진다는 점이다. 언어의 죽음의 문제는 사람들이 구전 전통만을 가진 언어를 말하는 것을 멈출 때 가장 심각하게 발생한다. 문서의 기록 없이 우리는 언어에 대한 정보를 알기 힘들고 그래서 그것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언어학자들은 그러한 언의 소실에 슬퍼하지만, 그들은 자주 마지막 언어 가능자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한 언어만이 아니라 문학을 포함한 그 언어와 관계된 모든 문화적 지식임을 간과한다.
우리는 왜 언어의 죽음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가? 아마도 어떤 동물 또는 식물 종이 사라질 때 우리가 말하는 이유와 비슷한 이유들 때문에 언어의 죽음은 세상의 다양성을 소멸시킨다. 언어에 관한 한 언어의 소실은 문화적, 문학적 다양성과 관계된다.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가 말하듯이 <모든 언어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모셔진 사원이다.>(Holmes, 1860). 이 논문의 앞의 말한 에즈라 파운드의 글과 마찬가지로, 이 인용문은 인간성의 유지와 회복에 대한 모든 언어의 특별하고도 개별적 기여를 강조한다. 그것은 또한 인간이 이러한 중요한 지적 자산을 보호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언어학자들이 죽어가는 언어의 어휘들을 기록하지만, 언어의 글, 특히 시를 만들어내는 감성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번역은 시의 일반 사상을 전할 수 있지만 작품이 수반하는 시인의 영혼에서 나오는 격한 감정을 반영할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말하고 있는 바의 한 예를 주고 싶다. 여러분이 들어 본 적은 없겠지만, 모든 세상의 다른 언어들처럼 자신만의 오랜 역사, 문화, 그리고 문학을 가진 한 언어가 있다. 내가 언급하게 될 언어는 사람들이 부르는 전통적 이름이 “진실을 말하기”라는 의미를 지닌 따따끄사파(t'aat'aqsapa)이지만 자주 누카널스(Nuuchahnulth)라고 불린다. 따따끄사파라는 어휘는 언어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들에게 전달한다는 뜻이다. 현재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100명도 채 되지 않는 노인들뿐이다. 그들 역시 그 언어를 완벽히 구사하지 못하고 매일 그 수는 더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십 년간 그 언어가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아래는 그 언어를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표현한 매우 환기적 감정을 담은 시의 한 예이다. 이 시는 누카널스의 치샤(Tsishaa) 족의 한 사람이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쓴 것이다. 그 사람은 밴쿠버 섬의 서부 해안에 있는 한 섬인 이아샤이스(Yasaayis)에 있는 해변에 앉아서 그 시를 썼다.
봄에
원문 참조 |
새들이 봄에 즐거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새들이 봄에 즐거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다이버 오리들이 합세한다. 자라나는 사물들이 밀어 올라올 때, 굴뚝새가 이중음으로 노래한다. 알다시피 만조가 차오를 때, 헴락-바위에 그 표식을 남기며, 기다려! 나는 이야샤이스를 말하는 거야. |
나는 여기서 그 언어의 언어학적 특성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에서의 어떤 소리의 변화와 시적 효과에 대한 암송의 다른 형식을 언급하려 한다. 그런 언급 전에, 이 시의 형식이 새와 다른 생명체의 증가된 활동으로 알 수 있는 봄의 도래에 대한 기쁨이라는 일반적 감정에 대한 환기임을 말하고 싶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 유명 시의 공통 주제일 것이다. 전 세계 바닷가 거주자들에게 익숙한, 그러나 바다와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공유될 수 없는 썰물, 조류와 같은 시의 다른 요소들. 그 시가 지어진 지역에 대해 언급하는 다른 인유들은 더욱 구체적이다. 확실히 그것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문화와 언어군의 일원들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특성들이 있다. 이 요소들은 특별한 문법적 표식들, 어휘구조, 시의 운율을 생성하는 음절과 음보의 리듬 패턴을 포함한다. 또한 작가의 감정을 반영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말의 변용이 있다. 특히 “다이버 오리”와 “굴뚝새” 같은 것들에서. 그것들은 대개 원본필요와 원본필요로 쓰여지지만 이 시에서는 원본필요와 원본필요로 쓰여진다. 추가된 원본필요는 (영어에서의 sh처럼) 신비로운 인물들로서의 이러한 새들과 연관된 특정 감정을 전달하지만(Sapir 1915), 이 특정 삽입사는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추가된 소리들은 신화적 인물들, 동물들, 그리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 사람들(난쟁이나 식충이 등의)을 말할 때 사용된다.
이 시가 가지는 의미의 깊이를 설명할 수 있는 누군가가 현재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내 번역은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단순히 어휘들을 설명하고 그것들을 원본 시의 형식적 스타일에 맞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예에서 그리고 많은 다른 언어들에서 오는 그러한 예들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언어의 소실과 함께 인간성의 일부를 잃어버렸고 그것은 결코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성 회복에 어떻게 관련되는가? 이것은 문학과 정치 둘 다가 역할 해야 하는 지점이다. 최근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세계 언어들과 그에 관계된 문화적 자산들의 소실에 대한 큰 이유들 중에 하나가 바로 세계화, 즉 세계적 문화, 기술, 경제의 세계 지역들로의 팽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세계화가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이라는 많은 이익을 가져오고 우리 모두가 이런 식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성 소실이라는 의미에서 바로 인간 비용이다. 즉 본 글의 앞에서 인용한 에즈라 파운드가 언급한 것들이다.
우리가 인간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면 사상과 기술들을 전 세계적으로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교환하는 것을 촉진하는 한편, 위험에 처한 것들을 보호하는 방법들을 개발하기 위해 다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의 입장에서, 우리는 정전 문학의 전통적 견해를 확장해서 구전문학의 중요한 역할과 가능한 동안만이라도 덜 알려진 언어와 문화의 문학에 대한 비교문학을 포함해야 한다.
정치학적 견지에서, 인문학자로서 우리는 이 세계적 발전이 경제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언어와 문화에 대한 여지를 담보할 수 있는 세계화의 인문학적 견지를 제안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적 문제이고, 세계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제5발표문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동양사상
- 고대경전 속의 국가역사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세계 곳곳 각 나라의 중요한 장소는 보호를 받고, 또 그와 관련된 국가문화유산과 지적인 문화에 관한 연구도 더불어 행해지고 있다. 몽골인들은 오랜 전통의 국가관과 신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연구과정에서 몽골 문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세기 이후부터 몽골의 문학 작품은 원수(元首)와 여왕, 주행정관, 승려,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이용되었다. 예를 들어 13세기의 몽골 교훈 문 지식의 핵심, 300명의 타이추드 전쟁 전설 등이 그 연구범위에 포함된다.
이 논문에서는 총 6권의 몽골 문학 작품을 연구하였으며, Holy Bogdo Zanabazar가 쓴 얻고 잃음에 관한 4행시, 앵무새의 가르침과 어머니의 축복 기도, Zay Pandit Luvsanprinle이 지은 황금빛 핀, Sumbe Khambo Ishbaljir이 저술한 꽃 화환 그리고 인간 가르침에 대한 경전과 Tsakhar Gebshi Luvsanchultem이 지은 도움과 해를 분석하기 위한 노래 등 책으로 쓰여진 연구자료를 통해 국가 통솔력을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경전들은 고대 인도나 다른 동양 국가에서 승계되어 온 것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타인을 가르치고자 하는 인간관계를 선호하듯, 그들은 스스로의 과오를 평가하고 내재된 생각을 정화시키고자 하며, 나아가 개인과 가정 단위로 행해지는 교육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후손이나 자녀, 학생 등 위대한 지도자, 일반인, 하인, 고위직 직원 등에게 고대 수트라에 나타나는 혼합된 내면감각에 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논문을 통해 우리는 문학적으로 자료가 충분한 설화와 문학적인 전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았다. 중세기의 한 역사책으로부터 전수한 13세기 경전 중의 하나인 마음의 열쇠에는 딸, 아들, 승려, 공무원, 여왕과 왕의 내면을 비교하고 있으며, 또한 위대한 승려와 왕 사이의 교훈적 내레이션이 쓰여 있는 Legend of destroying 300 Thais, 정신적 방황을 하는 아들과 여왕의 신하와 왕들에 대한 책인 Legend of Great Huurch에는 신하와 백성, 왕과 신하, 왕과 백성들에 관한 연결고리가 왕의 고결한 지위와 섬세한 마음에 대해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몽골 중세기에 얻고 잃음에 관한 4행시, 앵무새의 가르침에 있는 몇 개의 관습을 가르치는 것, Bandita Luvsanperenei가 지은 믿는 사람의 대모: 위대한 전하 자나바자르, 황금빛 핀, Tsahar Gevsh Luvsanchultem이 지은 도움과 해에 대한 비평을 다른 사람에게나 스스로에게 가르치는 것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19세기의 현자 V.Injinnashi의 자유시, Danzanravjaa의 연 이야기, 수치 그리고 수치, Nomun Han Agvaanluvsankhaidav의 Strike paper of long hair Tserenpil, 위대한 Zuu의 Ishdanzanvanjil이 쓴 황금빛 가르침 Lawer Sandag의 Complement for Lord in old age, 행정관과 하인을 위한 말 등 위대한 가르침들은 왕, 왕자, 행정관, 평민, 하인 들을 위해서 쓰여 졌다. 한 예로 “더 나은 스스로가 된 후 더 나은 가정을 만들어라. 더 나은 가정을 만든 후에 더 나은 국가를 만들려고 노력하라.”가 있다.
옛 몽골의 유명한 문학작품이나 혹은 전설에서 보여지는 몽골 고대 왕족일가와 그 친척들이 공유한 현명한 가치관의 상호 관계들을 살펴보면, 현대 시민과 국가의 행정관들이 나누어야 할 정신적 공헌을 살펴볼 수 있다 하겠다.
제6발표문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과 저널리즘
- 디지털 시대에 문학의 존재 가치
1. 지구화, 디지털 매체, 그리고 문학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 신문, 그리고 소설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근대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였고 ‘한 민족, 한 국가’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유지시키기 위해 건국신화와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강조되었다. 국민들은 매일 아침 근대국가의 동력인 인쇄매체의 산물, 신문을 통하여 밤새 국내․외에 일어난 사건들을 접했으며 이 글읽기를 통해 한 국민, 한 국가임을 느꼈다. 그리고 신문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연재소설이 근대국가의 정신을 재현했다.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무정에는 당시 한국의 근대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선진국가의 근대문물을 배움으로써 국가의 부국강병을 이룩하자는 근대 시민계층의 정신과 그들의 결혼제도인 “자유연애에 입각한 일부일처제”를 재현함으로써 근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근대문학은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첨단적인 담론으로 위력을 확보해왔다. 문학은 저널리즘에 편승해서 호기심, 애정 등 통속적인 흥미에 혹하면서도 이런 강점 때문에 20세기의 대표적인 이야기 장르로서 군림해왔다.
그런데 소통 구조가 인쇄매체에서 디지털 매체로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일 먼저, 증기기관, 자동차와 전화 정도의 통신기관으로는 국가 단위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광케이블을 통해 서울과 뉴욕에 있는 두 사람이 실시간으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인들은 동시에 같은 화면을 접하고 같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금융권에서 문제가 일어난다. 이제 동시대인들은 세계 단위로 사유하면서 각 지역이 서로 소통하는 글로컬리즘이 발현되게 되었다.
2. 글쓰기의 대중화와 집단창작
글쓰기의 대중화, 보편화 또한 문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대량생산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습득하는 지식의 민주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책을 만드는 사람은 소수로 지식인, 작가들이 일종의 지식 권력을 행사하던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디지털 매체의 양방향적 속성 때문에 대중들은 저마다 자유로운 견해를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SNS, 카톡 등에 나타나는 수많은 담론들이 현재 한국의 여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팬픽을 쓰기도 하고 이런 글쓰기들이 인터넷 소설로 발전하기도 한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소설이 방송 드라마가 된다. 물론 기존 문학계에서는 아직 평가받지 못하지만 이들의 사회적 파급력은 대단하다.
전문작가들이 위협을 느낄만한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물론 문학장르는 아니지만 다른 스토리텔링 장르에서 집단창작의 장점이 최근 부각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많은 작가들이 모여서 쓰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영화나 방송드라마에서는 아직 작가주의가 우세하지만 미국에서 집단 창작은 보편화되고 있다. 이 방식은 스토리 전개의 치밀한, 전문성 등을 확보하는데 유용하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가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최근에는 재미있고 탄탄한 플롯을 골라주는 전자 프로그램까지 등장하여 곧 전자지능 작가가 등장할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또 문학의 현실 고발 기능은 최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더욱 축소되고 있는 형편이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눈앞에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건들을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방송 다큐멘터리물이 사람들을 훨씬 감동시키고 있다.
3. 대중매체의 스크립트(script)로서의 문학
전에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스토리텔링 장르가 문학에 영향을 받았으나 최근 문학은 글쓰기 방식에까지 다른 매체의 영향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인쇄매체 시대의 소설의 문장은 매우 길었다.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우선시되며 그를 위해 문장은 무한히 팽창된다. ‘그’에서 ‘용감한 그’로, 다시 ‘용감하고 정직하며 미남인 그’로,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수식어는 무한히 연결되어 문장의 길이를 팽창시킨다. 꿈틀거리며 한없이 이어지는 문장 사이에 감칠맛 나는 단어들이 삽입되어 글맛이 더해진다.
그런데 최근 문장은 더 이상 확고하게 종이 위에 아로새겨지지 않게 되었다. 이미 시청각 미디어의 입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길게 놓여진 복잡한 문장들의 뜻을 되새김질하며 의미를 파악하는 방식보다는 구어의 리듬감과 억양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젊은 작가들은 그 이점을 잘 파악하여 작품에 재기발랄하고 짧으며 감각적인 문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최근 좋은 문학작품들이 영상을 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소설에서 대작으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이 인정되어 영상매체로 각색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영상을 타면서 유명해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이 빈번해지면서 작가들은 은연중에 문장의 세심한 디테일보다는 작품의 이야기로서의 가능성에 더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소설은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원 소스로서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작가들도 이 사실을 자각하면서 문장은 더욱 간략하게 변모하고 있다.
4. 다매체 시대, 문학의 소중함
이렇게 보면 현재 문학은 위기에 처해 있는 듯하다. 독자수가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학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담론으로 작동했던 70∼80년대의 가능성을 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다른 다매체 이야기 장르의 수준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종래 자본과 기술은 작품성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해 왔다. 대중이 천박한 흥미와 저속한 취미에만 영합하여 대중문화란 개념이 아주 부정적인 의미를 띄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본과 인력의 투입이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힘으로 작용하여 대중을 감동시키면서 흥미와 교훈이란 문학의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고 있다. 문자에 비해 천박하고 표피적이며 자극적인 영상의 단점이 많이 가려지면서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감성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제 문학은 어떤 장점으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대중매체가 아직도 하지 못하는 부분을 세심하게 파고들어갈 힘이 아직 문학에 남아있다고 본다. 영상물이 집단 지성의 힘으로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플롯 하나하나에 세심한 기교를 넣을 수 있으나 그런 범박함을 넘어서는 재능 있는 개인의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야기의 재미를 넘어서는 진정성은 개인의 체험과 고뇌를 통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전체를 통찰하고 미래의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이기에 작은 삶의 편린들에서 순간적으로 찾아지는 진리의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이 시대에 작가의 성찰과 고뇌가 더욱 값질 수 있는 이유이다. 이것은 너무나 빨리 변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사는 미덕이 더욱 돋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쩌면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와 같은 감시와 통제의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숨 쉴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줄 존재는 문학밖에 없는지 모른다. 쉴 새 없이 울리는 모바일폰, 항상 확인해야 하는 전자메일,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대형 전광판의 영향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이 시대에는 책읽기를 통한 지식의 습득이기 때문이다.
최근 재미있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현대인들이 미디어에 강한 자극을 받고 무한경쟁에 지쳐 있기 때문에 뇌가 음식물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 해서 폭식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산책이나 가벼운 독서 같은 약한 자극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읽고 싶을 때 읽고 피곤할 때 책장을 덮는 그 느림의 미학 속에서 개인의 자발성과 의지가 확보된다. 독서행위 자체가 이 시대의 모순에 저항하는 방법이 된 것이다. 속도와 강한 자극에 지친 독자는 이 느림과 자발성의 독서행위에서 위로받고 휴식을 취하게 된다. 당연히 문학의 내용 또한 잃어버린 인간의 자발성을 되찾아줄 방향을 제시하거나 독자를 위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첫댓글 이 많은 사람 중에도 역시 울 회장님이 제일이시네요.
횡무진 늘 바쁘신 회장님 건강을 지켜야 가로등도 있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산행 다니시고부터 정말 의상엔 편안함이 그대로 묻어있네요.
열심히 바쁘게 다니시는 회장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화이트데이지님과..건강이 최고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산으로 바다로...
이렇게 바쁘시게 다니시니 늙으실 틈도없이 항상 청춘이시네요
무한의 열정 앞에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에너지의 원천,
마르지 샘물이 있음을 믿습니다. 화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