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오후 8시, 수원의 한 식당에서 주민대표들과 식사를 하던 수원시의회 새정치연합 대표의원 백정선(여. 55)은
‘박근혜 이 씨발년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며 대통령에게 잇달아 욕을 내뱉었다.
식당주인 홍모(60) 씨가 항의하자 그에게도 욕을 퍼부은 백정선은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모는 개쉐이. 그 식당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올렸다.
이에 식당주인은 백정선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여자도 일단 새정치연합에만 들어가면 주둥이가 개차반이 된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에 계속 표를 찍어주는 이 나라 유권자들, 참 위대(胃大)하다. -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전국 어느 도시, 어느 지방에 가더라도 거리에 나가면 한 집 건너 노래방이고 TV나 라디오마다 음악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신이 날 때나, 일할 때나 쉴 때나, 언제나 노래로 흥을 돋우고 심기를 다스린다.
죽음 앞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상여가 나갈 때 선소리꾼의 선창에 이어 상여꾼들이 이어 부르는 상여노래는 서양의 어떤 진혼곡보다 애달프고 구성지다.
우리의 상여노래가 일찍이 서구에 전파되었더라면,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한결 경건하게 영혼을 위로했을 터이다.
우리의 노래사랑은 각 지방마다 전래의 아리랑이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9년~1990년, 처형(妻兄) 심부름으로 전남 영암‧해남‧강진 일대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땅을 사들일 때의 일이었다.
일행 다섯 명은 대개 오후 5시쯤이면 전을 걷고 현지 공인중개사의 안내에 따라 맛집 순례를 시작했다.
일행 중에 강원도 정선 출신이 한 명 있었는데, 첫날 술자리에서부터 그의 정선아리랑 가락이 모두의 심중을 휘어잡았다.
그는 용갑이처럼 심성이 넉넉하여 식당에서든 룸살롱에서든 요청만 하면 사양하지 않고 정선아리랑을 구성지게 뽑아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가사가 달라 따로 조용히 까닭을 물어봤더니, 그의 설명은 내 부실한 고정관념을 훼까닥 뒤집는 것이었다.
정선아리랑은 면마다, 리마다, 수통배기 같은 단위마을마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가사가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같은 가족 간이라도 저마다 다른 가사로 부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누구나 생각나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가사를 지어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정선아리랑과 쌍벽을 이루는 밀양아리랑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되는 가사뿐이겠으며,
진도아리랑은 ‘문경 새재가 웬 고개냐,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로 시작되는 가사뿐이겠는가.
우리의 구전 민요는 이처럼 다양한 내력과 풍성한 음악성을 간직한 채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경지를 열어가고 있을 터이다.
게을러서 가사와 곡을 익혀 직접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적어서 그렇지 나도 노래 듣기는 엄청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죽 그래왔다.
한 가지 변한 게 있다면, 나이가 들수록 남자가수보다는 여자가수를 점점 더 선호하게 된다는 점.
그래서 걸스데이 소녀시대 아이유 에일리 손담비 씨스타 등이 나오는 프로는 넋 놓고 시청하다가 아내의 지청구를 듣기 일쑤다.
“식사 안 해요? 국 다 식는다니까. 으이구 또 저놈의 계집애들, 턱에 침이나 닦고 봐요!”
아내의 잔소리가 이보다 훠~~~얼씬 심하더라도 오직 꾹꾹 눌러 참는 자만이 무사히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
다행인 것은, 여지껏 여자가수 좋아한다고 강용석이나 박희태처럼 고발당한 적은 없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요즘 아이돌 노래는 곡도 가사도 따라 부르기엔 어딘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오는 프로를 볼 때도 예쁜 춤동작이나 매력적인 가창력에 빠져들 뿐 가사는 대부분 흘려듣는다.
트로트 역시 점점 자취를 감춰 아쉬운 가운데 장윤정 박현빈 이승기 같은 젊은 트로터들이 뒤를 이어 반갑기는 하지만,
빠른 템포의 멜로디나 가사가 우리또래의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선뜻 다가가기에는 거부감이 앞선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를 따라 부를 것인가
‘오빠 한 번 믿어봐. 너만 바라보리라’를 따라 부를 것인가
‘누난 내 여자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를 따라 부를 것인가.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우리또래 가수들이 부르던 포크송에 대한 향수가 점점 짙어가는 가운데
‘통기타 군단의 담임선생님’ 이백천 선생이 「이백천의 음악여행」을 펴냈다.
쎄시봉※에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등을 길러냈고 한국 포크송의 산실인 미8군 무대를 개척함으로써
우리의 젊은 시절을 풍요롭게 해준 걸로도 모자라 노년까지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이백천.
그 음악에 미친 82세의 노대가가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고 죽는 날까지 음악을 계속할 것이라는 옴팡진 각오로 펴낸 책이다.
※ 쎄시봉은 프랑스어로서 원어는 C'est Si Bon이며 따봉처럼 ‘억수로 좋다’는 뜻이다.
‘C'est’의 원어 발음은 ㅅ과 ㅆ의 중간쯤인데, 우리 외래어 표준은 ‘세’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인들과 함께 언어의 고집통 조영남은 단연 ‘쎄’를 주장하여 쎄시봉이라고 부른다.
신간안내를 보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냉큼 「이백천의 음악여행」을 사왔다.
읽어볼 생각과 문중 카페에 공유할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평소에는 신간서적을 읽거나 별난 경험을 할 때 우리 카페를 먼저 염두에 두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우리 동기 가운데 나보다 노래를 더 좋아하고 잘 부르는 친구들이 많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따금 점촌의 어느 노래방에서 희구가 부르던 <천년바위>가 떠오르면 가슴이 애잔해지곤 한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평온하게 부르는 가락에 어찌 그리 진한 恨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사랑방에 소개했던 조영남의 「쎄시봉시대」「그녀, 패티김」과 일부 중복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요령껏 피해서 쓸 참이다.
이백천의 간단한 개인사에 이어 그가 주도해온 포크송의 세계, 우리와 함께 늙어가는 포크 가수들 얘기에 치중하려 한다.
이백천은 「이백천의 음악여행」에 쎄시봉을 거쳐 가요계로 진출한 가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해놓았다.
대부분 내게도 아련한 추억을 보태준 정겨운 이름들이라 저자의 뜻을 받들어 순서대로 소개한다.
나이가 들면 치매에 걸리지 않더라도 기억력이 서서히 감퇴한다는데,
가장 먼저 잊혀지는 게 사람이름을 필두로 한 고유명사라니 더 이상 기억세포가 사멸하기 전에 한번씩 되새겨보자.
<조영남 김도향 손창철 이필원 송창식 윤형주 이동원 김민기 박상규 장영기 홍민 이장희
이경우 한대수 윤여정(왜 올려놨을까?) 최영희 전인권 김종철 장은아 김희진 박윤초 추은열
한영애 김현동 김선봉 이지민 김영진>,
그리고 쎄시봉 식구들과 불가분의 인연을 가지고 후원했던 <조용호 구자홍 피세영 이선권.> (계속)
<노조가 없는 회사> <노조가 해마다 파업을 벌이는 회사>
첫댓글 나도 인터넷 주문으로 그 책을 샀는데...독서클럽에서 발표하려고...
근데, 성원이 친구가 미리 시작을 했으니,
내 그 덕 좀 보겠네...
좋아,
내 술 한 잔 사지 뭐~~
나는, 글이나 읽음세!
두 친구들이 수고하는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