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인협회 6월 넷째 주-詩로 행복하자(이무열)
마른 봄날
대구미술광장 잔디밭에 시집 출판기념회 열렸다
개다리소반에 달랑 물 한 그릇
따끈따근한 시집 북북 찢어 씹어가며
시(詩)국에 시(詩)밥 말아 후루룩 쩝쩝 퍼포먼스할 때
검은 뿔테 안경 오늘의 주인공 홍승우 시인
괜스레 허둥지둥 마음만 바쁘다
이형, 저 누꼬? 빨간 조끼 저쩌게는 이름이 거 뭣꼬?
첫 시집 『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
ㅇㅇㅇ 선생님께, ㅇㅇㅇ 님 혜존, ㅇㅇㅇ 형께
제 호주머니 털어 책 내고 신바람 나 공짜로 돌리면서
야, 오늘 장사 잘된다 기분 참 조타!
목 매단 30년 시업 춥고 외로웠던 모양이다
이날 입때껏 책 한 권 펴내지도 못하고
명색이 신춘문예 출신 동화작가인 나는
갑자기 똥 마려워 전전긍긍
마른 하늘 별이라도 따고 싶은 봄날이다
춘자싸롱 가고 싶다
박곤걸 시인 돌아가셨을 때다
뒤늦게 문상 온 문무학 시인이 말문을 열었다
-박진형 씨 안 보이네?
-구석에서 울면서 조시 쓰고 있을 깁니더
소설가 엄 씨가 냉큼 그 말 받았다
-상가에 와가 좆이 서가 되는교?
-허허, 인간이 다 그 좆심으로 사는 거 아이겄나
-하긴 뿌려야 거두는 거 맞기는 맞제!
뒷말 툭 툭 주거니 받거니 반죽 맞추고는 했다
살아생전 여러 후배와 제자들 중
박진형 시인 뒤집어 쓴 그늘이 유독 크고 짙었던가
당신과 가곤 했던 춘자 아지매 국시집
먹다 남긴 국숫발마냥
맥짜가리 하나 없는 등신 어바리가 되어
모두들 한세상 개개풀린 낯빛이었다
어떤 농담
시인 되면 나라에서 봉급 주는 줄 알았다는 김동원 시인
텃밭시인학교 학생들 앞에 게거품 물며
시는 하늘이요 우주요 일인 제국이란다
금강산 상팔담에서 만난 명승지종합개발국 김 동무 생각난다
-남조선에서 무슨 일 하십네까?
-시인입니다
-능력이 참 탁월하십네다 통일 되면 내 고향 대동강 소주에 숭어술국 꼭 대접하고 싶습네다!
나 화장품회사 신입사원 때 딴전 피우다
-문학이 너 밥 먹여 주냐?
핀잔먹은 것 오늘 같고
-김 양아 나 외로워 죽것따아 뽀뽀나 함 하자!
통사정하며 술주정 한 일 어제 같은데
시라는 당신에게 세든 탓에
아파트 부금 매달 칠십만 원씩 평생 갚아야 한다며
살아온 날 기적 같다던 말 그예 알겠다
시인 장하빈
알고 보면 서로 백 번 만나기 힘든 세상
오늘은 고료 받았다고 석류나무집으로 나오란다
백만 원 넘게 버는 보충수업도 마다하고
이번 방학에는 구십 노모 자기 집에 모셨다며
시 한 편 보여주는데,
막내아들 가슴에서 가랑가랑 잠들었다가
미내미댁 관향의 논두렁밭두렁 찾아가는 길 멀고도 따뜻하다
이 형! 삼만 원짜리는 되겄제?
스무 해 근무력증 앓던 첫 아들 떠나보내고
암으로 밥통 들어내고도
뒤늦게 시 쓰는 일 행복하고 고마운 모양이다
왼쪽 주머닛돈 꺼내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는
고료 받은 것 기어이 밥 사겠단다
묵국수를 먹다
강원도에 백 년 만의 폭설 내린 날
질척거리는 불로시장을 어슬렁거렸다
식욕에도 무장 눈발 어룽진 얼룩 같은 것이 있다면
더러는 위로 받고 싶은 허기진 시간도 있어
묵밥, 묵국수 팝니다 허름한 현수막 펄럭이던 묵집에는
마지막 끼닛거리처럼 식탁이 달랑 두 개 뿐
주인 할아버지는 끓는 메밀 솥을 주걱으로 연신 휘젓고
묵 치는 할머니의 등은 해거리 비탈밭처럼 꾸부정한데
답답하고도 설운 심사 달래듯
묵국수 사발에 꾸역꾸역 고개를 처박았다
십 년 넘게 꾸려온 화장품 점포를
무조건 비우라는 집주인의 건물인도 청구소송에
오늘은 어쩔 수 없는 답변서를 작성해야겠다
애꿎은 송사에 변호사도 사지 못한 자에게
때로 산다는 건 쓸쓸한 식탐처럼 자꾸 목이 메는 것이라서
귀때기 파랗게 질리는 난전 시장통을 돌아
지지눌러온 분노와 용서 사이
봉두난발로 분분한 눈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반 평
행복공감
대한민국 국민 뉘귀라도
행복하기를 원함니다
福
덤뿍
411-××876549
30억 주인을 찾읍니다
빛바랜 포스터 아래, 가판대 신문 보는데
돈 내고 사 봐야지!
때 잔뜩 낀, 어눌한 목소리 튀어나왔다
삐딱한 고개와, 돌아간 입을 하고
제대로 몸 가누지 못하는 사내
오줌 똥 마려우면 어찌하는 걸까
종일 통속에 갇혀
한숨 쉬거나 요강에 침 뱉는
0.6평, 대경교통충전소엔
오늘도
로또복권 팝니다
널
저 작것 오사랄 놈아
워짜까이 이 염병허니 써글 놈아
장난도 정녕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
니 엄니 혼자 이제 어찌 살라구
이것이 다 무신 짓거리여
애비 얼굴도 모른 채 징그러운 세월
죽은드키 기어서라도 바지락 캐어 잘 키우고 싶었드만
사방을 가둔 뻘 매크로 폭폭한 가심
세상 낯짝, 바닥 깊은 수렁 아닌 곳 있다더냐
눈 뜨면 널 타야 하는 지상의 열명길
날이 날마다 휘청, 아득하게 발목을 빠트리면서
하루를 백 년 보드키
산 목심 그 어찌 널 위에 몸 눕힐 것이여
생의 끄나풀 간당간당
고향 바다에서 칼질로 마감되는
설경구 주연의 조폭영화를 보는
그리 어둑어둑하도록
막막한 새벽
연풍리 가는 길
저벅저벅 코 큰 양코백이 쏼라 솰라 걸어오는 거 자알 보인다 솜틀집 기계는 숨죽인 솜을 터느라 연신 툴툴 털털, 바께쓰 숯불에 달구어진 양철집 인두는 납땜을 하느라 푸시시식, 도르래 고장 난 왕대포집 판자 문짝은 삐딱하게 열리다 말다 덜컹 덜커더덩, 순댓국집 조선 솥뚜껑은 뿌연 수증기를 뱉어내며 연락부절로 스르렁 스렁, 불콰해진 강냉이 김 씨와 조선팔도 칼갈이 강 씨거나 운전수 털보의 따따부따 언성은 높아만 가고 오리궁둥이 주모는 뒤뚱뒤뚱 혼자 바빴다 아슴푸레하여라 이음매마다 총총 도려낸 깡통 뚜껑을 박아둔 루핑지붕에는 자글자글 햇살 녹아내리고 문득 끝 간 데 없이 장대비가 내렸다 부인상회 우리양행 파주목욕탕 나무 간판은 반나마 페인트칠이 벗겨진 채 건들거리고, 신영균 최무룡 황정순이 얼굴이 주름잡던 문화극장 옆 낡은 앰프는 신 프로가 들어올 때마다 진종일 왱왱거렸다 무채색 물감처럼 번져 내려 세상모르게 까무룩 잠이 든 모습이어라 오종종하거나 꼭 고만고만한 모습의 얼굴들 땅딸막한 지붕 처마들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지고 비켜서는구나 때로 교회당 첨탑에 걸리던 소싯적 종소리도 숭얼숭얼 낮은 목소리로 깔리는구나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치달려 한 됫박의 그리움과 설렘과 신열이 덕지덕지 껴묻은 그곳, 여직도 키 큰 플라타너스 차렷, 열중 쉬엇, 앞으로 나란히 거슴츠레한 신작로엔 먼지 풀풀 날릴 것인가 검둥이 찝차 꽁무니를 따라 내달리며 헬로우 기브 미 챱챱 초콜렛도! 외치고 싶은, 철조망 녹물 흘러내린 미군부대 담벼락 마다 ‘접근금지!!! 접근하면 발포함’ 양철조각 붉은 글씨 무섭던 경기도 파주군 주내면 연풍리 214번지
등짝
지천명 훌쩍 넘어 시 전문지 ‘유심’에 추천 받았다고
초저녁부터 시인 몇몇 판을 벌였다
-축하해, 기념으로 광 팔아 난 고야! 이 형 덕분 우 떼몰려 백담사 만해축전 가겠네
탑리 약사여래 김 형 목소리가 유달리 신명났는데
갑자기 딸꾹질 나자, 패 돌리다말고 벌떡 일어나 처방을 알려준다
바닥으로 쿡 고개 처박고 히프는 하늘로 잔뜩 치켜든 채 시범을 보이는 그 꼴이 자못 볼만하다
-자, 자 모두들 자아알 보시라고 컵에 물 따라 이렇게 거꾸로 빨아 마시면 대번에 딸꾹질 멎잖아 이건 약국에서 돈 받기 힘든 게 단점이거든 봐라, 우리 신인 밥 사니까 돈 따잖아 또 고!
그때 한 통의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었다
-아이가 아프다 카네 뒤에 오소……
김 시인 목소리가 낮고 조용하게 문지방을 넘어갔다
문득 대구에서 의성, 베이징, 스좌장 거쳐
우루무치, 돈황, 트루판, 천산북로 떠헤매어도
화타나 편작은 세상 그 어디에 꼭꼭 숨은 것이랴
근무력증(筋無力症)이 끌고 온 굽은 길*
신발을 구겨 신으며 허둥거리는 등짝 뒤로
딸깍, 두꺼비집 내려간 듯 먹먹한 밤이 왔다
*김호진 시 「스좌장 가는 길」에서 빌려 옴.
다황을 긋다
마지막 다황공장 경상북도 의성의 ‘성광’을 아는가
한때, 전국에 공장이 삼백 곳 넘었고
최초로 세워진 곳은 인천의 ‘대한’으로
일제 땐 한 곽에 쌀이 한 되였다는데
몰래 훔쳐가곤 했던 탓일까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치마 밑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
치마 밑에 불이 붙어~
그런 얼치기 군가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 젖히곤 했다
인천의 ‘대한’이나 부산의 ‘UN’도 어느덧 문을 닫고
먼 바다 나가는 뱃사람 부적이나
곰방대 끼고 살던 외할머니 신주단지 같던
다황, 까맣거나 빨간 두약(頭藥) 알맹이
푸르른 불꽃으로 일렁거리던 고등학교 시절
만홧가게 골방을 들명날명 뻐끔담배 배우곤 했다
오지 않을 누군가 그리워 죽치던 맹물다방
사이먼&카펑클이나 에니멀스를 신청하고는
3층, 5층, 7층…무너지면 다시 성냥개비 탑을 쌓곤 하던
한 집 건너 성냥갑 부업을 했다는
저 ‘성광’의 1970년대
나도 왕년에 한가락 놀았다면 논 것 아니었을까
담배 끊은 지 십수 년도 지났건만
오늘은 유황냄새 피어오르던 그때처럼
따닥 따닥, 다황이든 당황이든
다시 못 올 낭만의 마찰판을 그어보고 싶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박○걸 박○형 김○진 홍○우 김○원 이○열 장○빈...재미와 웃음을 선사하는 詩人列傳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
축하 드립니다. 폭염속 시원한 시 읽고 더위 식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