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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구니산
*산행일자:2010. 2. 6일(토)
*소재지 :경기양평/가평
*산높이 :소구니산800m, 유명산862m
*산행코스:농다치고개-소구니산-유명산-가일계곡-가일리버스종점
*산행시간:11시15분-16시(4시간4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16명
(27회송기훈,이수룡,이여사, 28회정기섭,허우평,김범열,김영본,29회유한준,
정병기/김의정,김정호,오창환,이석태, 43회서석범,김동희 및 24회우명길)
근래 보기 드문 한파를 불러왔던 이번 겨울이 봄에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입춘을 맞은 것이 이틀 전이었으니 수은주를 영하10도 가까이 끌어내린 이번 추위는 봄을 시샘하는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일 것입니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겨울을 박절하게 그냥 보낼 수 없어 고교동문들과 함께 겨울보내기 산행에 나섰습니다.
이번에 나선 산행지는 경기도의 양평과 가평을 가르는 소구니산입니다.
농다치고개에서 소구니산을 오른 다음 유명산으로 옮겨 용문산의 장대한 산줄기를 조망한 후 유명산과 건너편 어비산이 합작해 빚어낸 가일계곡을 거쳐 가일리버스정류장으로 하산하는 이번 산행코스는 상당부분 서너치고개에서 되살아난 선어(鮮魚)의 비행코스와 겹칩니다.
옛날 한 신선이 남한강에서 고기를 잡아 설악의 장락으로 가던 길에 하늘이 서너 뺨 밖에 보이지 않는다하여 이름을 얻은 서너치고개를 넘는데, 갑자기 잡은 고기가 되살아나 선어(鮮魚)가 되었고 이 선어가 이번에 오르는 소구니산과 유명산을 날아 넘어 어비산(魚飛山)에 내려앉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옛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이 전설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숨어 있습니다.
남한강에서 고기를 잡은 신선이 서너치고개에 올라선 것은 이 고개를 넘어 설악으로 내려간 다음 장락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일 텐데 별안간 고기가 선어가 되어 방향을 90도 확 튼 것입니다. 선어가 된 고기는 서너치고개에서 소구니산과 유명산을 차례로 날아오른 다음 건너편 어비산으로 내려앉았으니 이 고기야말로 산줄기를 이어서 오르내리는 오늘날의 종주산행을 새롭게 시도해 보인 것입니다. 아쉽게도 전설이 어비산에서 끝나 선어의 그 후 향방을 알 수는 없으나, 이 선어가 내친 김에 산줄기 위를 날며 장락산까지 갔다가 그 아래 장락으로 하산해 잡은 고기를 잃고 속상해 하는 신선을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선어의 비행코스는 이러했을 것입니다. 어비산에서 동쪽으로 날아가 용문산북쪽의 된봉고개에 이른 다음 방향을 북쪽으로 선회해 한강장락단맥의 산줄기를 따라 비행했을 것입니다. 봉미산과 보리산을 차례로 넘어 장락산 고스락에 내려앉아 한 숨 돌린 후 장락마을로 내려가 신선과 재회하는 것으로 전설을 끝맺어도 좋았을 것이, 이 고기가 선어가 된 본뜻이 탈출에 있지 않고 종주산행을 여는데 있었기에 산 위를 날며 그 뜻을 이룬 고기가 신선을 다시 만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선어가 열어준 길을 따라 걷는 이번 산행이 “전설의 고향"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자주 걷는 길을 택한 신선 역할보다 산줄기를 이어가 종주산행의 기원을 연(?) 선어 역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저도 어쩔 수 없는 산 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전11시15분 농다치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이촌역에서 중앙선전철로 갈아타 작년 12월에 개통된 양평역에서 하차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정기산행에 참여한 28회 동문들과 인사를 나눈 후 20분가량 걸어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겼습니다. 10시40분에 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설악으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고가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농다치고개에서 내린 시각이 11시가 조금 못되어서였습니다. 시집가는 딸의 농을 지고 가다 길이 하도 좁아 여기저기 농이 부딪혔다하여 농다치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 고개에서 간단히 산행계획을 설명한 후 소구니산으로 향했습니다. 아이젠을 차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들머리에서부터 길이 미끄러워 산행이 빠르지는 못했지만, 선후배동문 16명이 한 줄로 서서 산을 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 도착한 헬기장에서 후미를 기다려 기념사진을 찍으며 5-6분가량 숨을 돌린 후 산 오름을 이어갔습니다.
12시24분 해발800m의 소구니산에 올랐습니다.
헬기장에서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능선은 한강기맥 산줄기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양수리의 한강에서 그 맥이 다할 때까지 남한강과 북한강을 가릅니다. 산행시작 40분 후 삼각점이 세워진 660봉에 올라 잠깐 숨을 고른 후 산 오름을 계속해 선어치고개에서 올라오는 능선 길과 만났고, 오른 쪽 봉우리 하나를 넘어 소구니산에 이르자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이 불지 않아 쉬어가기에 딱 좋았습니다. 이 산 정상에서 몇 걸음 아래에 세워진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다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24회 김주홍동문이 빠져 겨울산행의 진미인 오뎅국을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못했는데 29회 정병기동문이 준비해와 맛있게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 길어져 13시12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13시55분 해발862m의 유명산에 올랐습니다.
소구니산에서 깊숙한 안부로 내려가는 길이 가팔랐습니다. 이 길이 눈이 다 녹은 동사면을 지나기에 망정이지 잔설이 남아 있는 북사면을 지났다면 몇 명은 엉덩방아를 찧었을 것입니다. 안부에서 유명산으로 오르는 길에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더들을 보았습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제게는 패러글라이딩입니다. 12년 전 집사람의 암이 재발되어 막 시작한 패러글라이딩을 그만둔 후로는 한 번도 하늘을 날아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 있어서입니다. 평원지대를 지나 유명산에 오르자 용문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선명하게 잡혔습니다. 농다치에서 발을 들여 소구니산을 거쳐 유명산 바로 밑에 까지 밟아온 한강기맥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용문산으로 이어지는데 유명산 정상에서 대부산 사이에 펼쳐진 넓은 초원을 지납니다.
14시31분 유명산과 어비산 사이에 자리한 가일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유명산 정상에서 동진해 어비산 쪽으로 향하는 길은 계곡에 내려서기 직전까지 눈이 다 녹고 그간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먼지가 풀풀 났습니다. 하늘을 날아 이동하는 선어야 이 길에서 먼지가 난들 괘념할 일이 아니겠지만 두 발을 땅에서 떼지 못하는 산 꾼들에는 참으로 짜증나는 길인 것입니다. 산행의 자연스런 흐름을 막는 계단을 멀쩡한 곳에다 마구 만들어놓으면서 정작 필요한 이곳은 그대로 방치해 산을 버려놓지 않을 까 적지 않게 걱정이 됐습니다. 농다치고개에서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진 길이 합수곡에 이르러 비로소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16시 정각에 가일리버스정류장에 도착해 겨울환송 산행을 매듭졌습니다.
오른 쪽으로 조금 올라가 왼쪽으로 산등성을 오르면 하늘을 나는 선어가 내려앉은 어비산(魚飛山)으로 이어지는 길이 갈리는 합수곡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서 이 겨울이 숨겨놓은 가일계곡을 만났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계곡물과 계곡에 내려앉은 빙설이 좀처럼 이 겨울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만, 조금 더 내려가자 한 가운데가 녹아 물이 찰랑대는 소(沼)를 보고나서 한 풀 꺾인 동장군이 기승을 멈출 날도 멀지 않았다 했습니다. 볕이 들지 않아 한 여름에도 서늘한 이 계곡을 지나는 길이 빙판이 져 많이 미끄러웠습니다. 동행한 한 분이 넘어져 얼마간 일어나지를 못해 걱정을 했는데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가운데가 녹아 얼음이 뻥 뚫린 박쥐소를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유명산자연휴양림 종합안내판이 세워진 넓은 길에 다다르자 이 계곡 어디엔가 깊숙이 숨어 막 꽃망울을 터드렸을지도 모를 복수초를 만나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주차장을 거쳐 가일리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이번 산행이 끝났다 했는데 양평으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려면 삼거리로 나가야한다 해 또 다시 차도를 따라 십 분가량 걸었습니다.
16시 반이 조금 못되어 삼거리에서 15시50분에 청평을 출발한 버스에 올라 양평으로 옮겼습니다.
해장국 집에서 뒤풀이를 즐긴 후 양평역으로 나가 용산 가는 전철을 탔습니다. 회비를 면제받은 막내 김동희/서석범 두 후배가 고맙다며 맥주 한 캔씩을 사서 돌렸습니다. 전철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 뭣해 조금 주뼛거리다 승객들이 모두 산객들임을 확인하고 마음 놓고 마셨습니다. 주말이면 양평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 엄청 막혀 용문산 일원의 산들을 산행지로 정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산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운 것을 보고 전철이 이 시대의 교통총아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전철 안에서 어비산에 내려앉은 선어의 행로를 추적한 것은 맥주 한잔에 도움 받아서입니다.
장락마을로 돌아온 선어를 보고 신선은 감격해 가까운 홍천강에다 놓아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생의 의미를 새겨보았을 것입니다. 홍천강에 방류된 선어는 북한강을 따라 양수리로 이동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류해 남한강의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한 번 맛들인 종주산행을 끝내 잊지 못해 일 년에 한 두 번은 서너치고개에 올라 산줄기 위로 비행을 즐겼고 또 즐길 것입니다. 제가 다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소구니산 상공에서 선어를 만나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산줄기를 따라 마루금을 이어가는 종주산행을 열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런 것이 요즈음의 화두인 소통의 참모습이겠다 싶습니다. 용왕과 산신령이 가슴을 열고 진정으로 소통하지 않고서는 물속에서 사는 고기가 뭍에서 되살아나 하늘을 날다가 산으로 내려앉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첫댓글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조심스레 내려오시는 형님 ...항상 안산 하십시요..
우대장님~ 저두염^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