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못참겠다'는 영국, 황당한 표정의 러시아. 유럽의 자존심을 걸고 두 나라가 충돌했다.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부녀에 대한 독살 시도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한 영국은 러 외교관 23명을 추방했다. 격앙된 영국 의회의 모습은 일전불퇴 의지를 보는 듯하다 http://bit.ly/2FVexdp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에 대한 독살 시도 사건을 놓고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4일 의회에 출석해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하겠다고 발표했고, 러시아도 맞추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메이 영국 총리는 "영국 영토에서 (러시아가) 불법적인 물리력을 행사한 데 대한 대가이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신고되지 않은 정보 요원'으로 간주하고 일주일 안에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적으로 이런 표현은 런던주재 러시아대사관에 외교관 자격으로 와 있는 정보 요원들을 뜻한다.
러시아는 즉각 맞추방 조치를 시사했다.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관에 와 있는 정보요원들을 추방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냉전 종식후 최근 30년 간 이런 정도의 외교관 추방는 처음이다. 그만큼 영국 정부는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본다는 뜻이다.
영국 외무부로 초치돼 외교관 추방 결정을 통보받은 알렉산드로 야코벤코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는 “적대적이고, 수용할 수 없는(hostile and unacceptable” 조처라고 강력 반발했다. 앞서 메이 총리는 지난 12일 러시아 측에 13일 자정까지 스크리팔 암살 시도에 사용된 신경작용제에 대해 해명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러시아가 범행과 무관하다며 해명하지 않자, 12시간 만에 '외교관 추방'이라는 보복 카드를 신속하게 꺼낸 것이다.
이날 영국 하원은 러시아에 대한 성토로 들끓었다. 의원들은 "러시아는 원래 힘을 숭배하고 약한 존재는 짓밟곤 한다" "더 강력한 보복으로 본때를 보이지 않으면 우릴 깔아뭉갤 것" "만일의 충돌에 대비해 우리도 국방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이 총리는 또 양국 간 모든 고위급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장관급 정부 인사와 왕실 인사를 보내지 않고, 영국 공항에서 러시아 부호들의 전용기에 대한 출입국, 세관, 화물 심사도 강화하기로 했다. 영국에 위협 요소가 되는 러시아 정부 소유 자산에 대한 동결 조치도 취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반 푸틴 성향의 망명 러시아인에 대한 암살 및 의문사 사건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푸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계획이다. 2006년 러시아 스파이 출신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방사능 물질에 중독돼 사망한 사건, 2013년 런던에서 숨진 채 발견된 러시아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사건 등 영국에서 벌어진 러시아인 의문사 14건에 대해 전면 재조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부는 메이 총리의 발표 후 성명을 내고 "스크리팔 부녀의 독살 시도에 개입했다는 거짓 명분 하에 메이 총리가 내놓은 대러시아 제재 조치에 관한 성명은 유례없는 심한 도발로 간주한다"면서 "이는 양국 간의 정상적인 대화 기반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영국 정부는 자체 조사를 마무리하거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틀과 같은 정립된 국제적 형식과 기구를 가동하지 않고 러시아와의 대결이란 선택을 했다"며 외교관 추방 결정에 대해 러시아의 대응 조치가 곧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