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기법은 세계와 그 구성요소들의 존재의 유무와 생멸을 서술하는데, 네 개의 명제로 되어 있다. 이것들은 가각 유와 무, 생과 멸이 인연에 따라 이루어짐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것’과 ‘저것’은 세계의 구성요소이다. 그러면 세계는 <이것, 저것>들의 짝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12연기법을 구성하는 12요소는 세계의 구성요소이다. 이 구성요소들은 기본적으로 18계와 5음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 그것들을 인연으로 하여 생겨난 것들이다.
아함경에서는 12연기법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12연기법의 구성요소는 <무명, 행, 식, 명색, 6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의 순서로 되어 있다.
그리고 12연기법은 <무영, 행>, <행, 식>, ... <생, 노사> 등과 같이 바로 인접한 요소들의 순서로 구성요소들의 생멸을 서술하고 있다.
인연법의 네 가지 명제와 12연기법의 관계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2연기법[인연법]의 각 요소들의관계를는 인연법의 네 가지 명제의 ‘이것’과 ‘저것’의 관계로 설명된다. 예컨대 <무명, 행>의 경우에는 무명이 이것이고 행이 저것이며, <행, 식>의 경우에는 행이 이것이고 식이 저것이다.
2.
그런데 인연법의 네 명제의 이것과 저것의 관계와 12연기법의 요소들의 관계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연법의 이것과 저것은 순서가 없다. 따라서 <이것, 저것>이거나 <저것, 이것>이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예컨대 눈과 빛깔의 관계, 눈과 눈의 인식의 관계가 그러하다.
“눈이 있으므로 빛깔이 있고, 눈이 사라지면 빛깔도 사라진다.”
눈으로 보니까[인식하니까] 그런 빛깔로 보이는 것이며,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빛깔의 모습을 알 수가 없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빛깔이 있으므로 눈이 있고 빛깔이 사라지먼 눈도 없다.”
빛깔이 없으면 눈이 전혀 필요하지 않고 또 눈으로 볼 대상도 없다. 따라서 눈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며, 결국은 눈이 없는 것과 같다.
[‘잡아함경_288. 노경(蘆經)’의 세 개의 갈대의 비유를 참고하시오.]
그런데 12연기법의 구성요소들은 순서가 있다. 예컨대 <무명, 행>이나 <행, 식>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행, 무명>의 순서도 아니고 <식, 행>의 순서도 아니다.
인연과과 12연기법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인연법의 네 명제는 이것과 저것이 인과관계로 묶인 것을 나타내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인과관계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이것과 저것이 함께 동시에 존재하고 함께 동시에 사라진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런 관계를 인과관계로 나타낸다면, 이것과 저것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또 결과이다.
그런데 12연기법에서는 이것과 저것이 인과관계로 묶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곧 <무명, 행>의 짝에서 무명은 원인/조건을 나타내고 행은 결과를 나타낸다. <행, 식>의 작에서는 행이 원인/조건을 나타내고 식은 결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요소들의 순서로 뒤바뀌면 전혀 다른 인과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불경에서는 이것과 저것이 뒤바뀐 순서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식, 명색>과 <명색, 식>의 경우에는 뒤바뀐 순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3.
그런데 아함경에서는 어찌하여 인연법의 네 명제로서 12연기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
연기법의 네 가지 명제를 곧이곧대로 해석한다면, <이것, 저것>의 짝에서 ‘이것’과 ‘저것’이 가리키는 사물이나 그것들의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12연기법의 구성요소들의 짝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두 개의 구성요소를 임의로 선택하고 또 어떤 순서로 짝을 지우더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예컨대, <무영, 유>, <6입, 유> 등과 같이, 바로 인접한 요소들의 짝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요소로 짝을 지우더라도 연기법은 성립될 것이다.
또 <유, 생>, <생, 노사> 등과 같이, 12연기법의 순서와 비교하여 거꾸로 된 순서로 하여 <생, 유>, <노사, 생> 등으로 하더라도 여전히 연기법은 성립될 것이다.
그런데 아함경의 <무명, 행> 등의 짝들의 순서와 <여기, 저기>의 짝들의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간략히 살피고자 한다.
첫째, <무명, 유>, <6입, 유> 등과 같이 멀리 떨어진 요소들의 짝들에 관한 순서의 문제이다.
아함경에서는 이 12 구성요소에서 <바로 앞의 것, 바로 뒤의 것>의 짝을 이루는데, 바로 앞의 것은 바로 뒤의 것의 원인이고, 바로 뒤의 것은 바로 앞의 것의 결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바로 앞의 것을 포함한 그 앞의 것들은 모두 그 뒤의 것들의 원인이 된다. 곧 <앞의 것, 뒤의 것>의 짝에서 앞의 것은 원인이고, 뒤의 것은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이 때 바로 앞의 것들은 가까운 원인이 되고, 그보다 더 앞의 것들은 먼 원인이 된다.
만일 이렇게 본다면 <무명, 행, 식>의 순서에서 ‘행’은 ‘식’의 가까운 원인이고, ‘무명’은 ‘식’의 먼 원인이 된다. 사실 ‘식’은 ‘행’이 사라지면 사라지지만, ‘무명’이 없어도 사라진다. 그러면 12연기법의 짝에서 <무명, 식>의 짝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간추려 말한다면, 예컨대 <무명, 행, 식, 명색, 6입>의 순서에서 맨 앞의 ‘무명’과 맨 뒤의 ‘6입’의 순서를 <무명, 6입>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생, 유>, <노사, 생> 등과 같이 거꾸로 된 순서의 짝들의 문제이다.
윤회를 고려한다면, 12연기법은 한 존재의 한 생애에 단 한 번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윤회하는 여러 생에서 하나이면서 여럿인 어떤 준재에 끊임없이 반복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면 12연기법도 그때마다 매번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명, 행, 식, .... 생, 노사>가 두 번 되출이되면, <무명⓵, 행⓵, 식⓵, .... 생⓵, 노사⓵, 무명⓶, 행⓶, 식⓶, .... 생⓶, 노사⓶>가 될 것이다. 예컨대 ‘무명’과 ‘노사’의 짝을 보면, <무명⓵, 노사⓵>의 짝과 <노사⓵, 무명⓶>의 짝이 있게 된다. 이 두 개의 짝을 하나로 합해보면 <무명, 노사, 무명>의 순서가 되어, ‘무명’과 ‘노사’가 서로서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 두 가지 문제의 설명에 대하여 열 두 개의 살이 있는 바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바퀴와 살의 접점의 어느 하나를 ‘무명’이라 하고, 그 뒤의 접점들을 차례로 ‘행’에서 ‘노사’라고 하자.
그러면 ‘무명’을 기준으로 보면 <무명, 행, 식, .... 생, 노사>의 순서를 정할 수 있겠지만, 한 바퀴를 더 돌면 ‘노사’가 ‘무명’을 앞서게 되고, 그런 방식으로 계속 생각하면 결국에는 12연기법의 모든 구성요소들의 순서의 앞뒤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구성요소에서 두 구성요소를 임의로 선택하여 순서 있는 짝을 지울 수 있게 된다.
만일 12연기법을 이렇게 본다면, 아함경에 제시된 12연기법의 구성요소의 짝과 순서는 수많은 순서 있는 짝들 가운데 특정한 하나의 경우를 예시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무명, 행> 등의 순서인가 <행, 무명> 등의 순서인가 하는 문제는 닭과 달걀 가운데 어느 것이 먼지인가 하는 문제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있다/없다’와 ‘같다/다르다’의 관계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존재의 바퀴, 청정도론에서
https://cafe.daum.net/sutta-nipata/RTpW/83
(2024.07.04.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