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타임스>
<김진수의 들꽃에세이 101>
마음바다에 피어난 한 떨기 장미 - 해당화(枚槐花)
학명: Rosa rugosa Thunb. var. rugosa
쌍떡잎식물강 장미목 장미과 장미속의 낙엽활엽관목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봄은 벌써 늦었습니다./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합니다.//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디다 그려.//시름없이 꽃을 주워 입술에 대이고,/"너는 언제 피었나"하고 물었습니다./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해당화>
『해당화』의 속명 로사(Rosa)는 ‘장미’를 뜻하는 로돈(rhodon) 또는 ‘붉음’을 뜻하는 로드(rhodd)에서 유래하였다. 속명이 장미처럼 붉고 화려한 꽃을 묘사하였다면 종소명 루고사(rugosa)는 ‘주름이 있다’는 뜻으로 꽃과 잎을 주목한 표현이다. 영명 역시 Rugose rose(주름진 장미)이다. 유사종으로 가시가 거의 없고 잎이 작으며 주름이 적은 것을 민해당화라 하고 흰 꽃이 피는 것을 흰해당화, 꽃과 열매가 적은 것을 개해당화, 겹꽃인 것을 겹해당화(만첩해당화)라 한다. 키는 1.5m 정도며 5∼7월에 지름 6~9cm 크기의 화려한 분홍 꽃을 피운다. 줄기에는 갈색의 거친 가시가 털처럼 돋으며 열매는 피보다 붉게 익어 겨울 가시투성이 속에서 빛난다. 노지에서 월동하고 16∼25℃에서 잘 생육하며 염해에 강하다.
해당화의 꽃말에 ‘미인의 잠결’이 있다. 《냉재야화(冷齋夜話)》에 의하면, 어느 날 당나라의 현종이 취한 양귀비를 보고 “그대는 아직도 술에 취해 있느냐” 묻자 양귀비가 “해당은 잠이 부족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수화(睡花, 잠자는 꽃)’는 해당화의 다른 이름으로 양귀비가 스스로를 해당화에 비유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해당화(海棠花)는 산사, 팥배, 이스라지들 같은 장미과 나무들을 지칭하는 ‘棠’을 쓰고 있다. 즉 ‘바닷가에서 자라는 장미 같은 꽃’인 것.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로 시작하는 장수철 작사 이계석 작곡의 동요 《바닷가에서》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로 시작하는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은 1960년대에 나온 노래들이다. 아이들에게는 ‘바닷가에서’로, 어른들에게는 ‘섬마을 선생님’으로 동시대를 합창하게 하였으니 가위 해당화의 장밋빛시대라 할까, 이 시절 해당화에 깃든 정서는 필시 순수 내지 순정으로 채색된 회화성에 있을 것이다. 동요에 나오는 화자의 곁엔 갈매기가 가물거리고 가요에 등장한 화자의 곁에는 철새가 따라온다. 물결 잔잔한 바닷가에서 갈매기를 벗 삼아 걷던 섬 아이가 어언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을 연모하는 그림으로 콜라주 되기도 하는데 배경에는 고운 모래톱이 깔리고 맑은 파도소리가 뛰놀며 수평선 멀리 창랑의 바다가 펼쳐지는 외롭고도 꿈같은 수채화였다. 우리 삶이 척박한 모래땅에 뿌리를 박고 멀리 바다를 향해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라면, 그리고 저 60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생의 후미에 단 한번 맺고 싶은 열매가 있다면 필자는 단연 그 철 지난 바닷가며 그 한여름 밤의 꿈이 뒤섞인 해당화를 꼽을 것이다.
한용운 시 <해당화>의 시제는 식민지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꽃그림자에 어리는 눈물로 해당화가 피기 전에 오신다던 님을 그려 예의 민족의 독립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형상화하였다고 평한다. 승려요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던 광복을 한 해 앞두고 1944년 6월 29일 해당화 꽃 다 지는 만춘의 길을 따라 입적하였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된다더니 만해가 그렸던 해당화 바다 야속한 봄바람과 떨어진 꽃잎의 알레고리는 마침내 그의 ‘마음바다(卍海, 한용운의 법호)’의 영원을 향해 뭇별처럼 형형하게 산화(散花)한 것이다.
흰해당화
겹해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