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가 실질적 가치를 지닌다고 해도,
이것을 그냥 하나의 생필품이 아니라 돈으로 사용하도록 사람들에게 확신으 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상해보라, 만일 당신이 동네 쇼핑몰에 보리가 가득한 자루를 들고 가서 셔츠나 피자를 사려고 한다면 어떨까?
상인들은 아마도 경비를 부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리를 첫 번째 유형의 화폐로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쉬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보리에는 내재된 생물학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그것을 먹을 수 잇기 때문이었다.
한편 보리는 저장하건 운반하기는 어려웠다.
화폐의 역사에서 진정한 돌파구가 생긴 것은 그 자체로는 내재적 가치가 없는 돈,
그렇지만 저장과 운반이 쉬운 돈을 사람들이 신뢰하게 되었을 때다
그런 화폐는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의 중간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현했다.
은으로 된 세겔이었다.
세겔은 은화가 아니라 은 8.33그램을 말했다.
함무라비 법전은 귀족 남성이 노예 여성을 죽인 경우 그 소유자에게 은 20세겔을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은화 스무 개가 아니라 은 166그램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화폐 관련 용어는 대부분 동전이 아니라 은과 고나련된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이스마엘의 자손들에게 은 20세겔, 즉 은 166그램에 팔았다.
(노예 여성의 목숨값과 같다. 어쨌든 그는 젊은이였으니까)
보리 실라와 달리 은 세겔은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다.
은은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옷을 해 입을 수도 없다.
유용한 도구를 만들기에는 너무 무르다.
은으로 만든 보습이나 칼은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것처럼 금세 구겨져버릴 것이다.
금이나 은에 뭔가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장신구나 왕관을 비롯한 신분의 상징을 만드는 재료로서다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하는 사치품 말이다.
그 가치는 순전히 문화적이다.
정해진 무게의 귀금속은 결국 동전, 즉 주화를 탄생시켰다.
역사상 최초의 주화는 기권전 640년경 아나톨리아 서부에 있던 리디아의 왕 알뤼아테스가 만들었다.
이 주화는 표준화된 무게의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졋고, 식 별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표식은 두 가지를 증명했다.
첫째, 해당 주화에 귀금속의 양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려주엇다.
둘째, 주화를 발행하고 그 내용물을 보증한 당국이 누군지를 확인해주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거의 모든 주화는 리아아 주화의 후손들이다.
▲역사상 초기 동전 중의 하나, 기원전 7세기경 소아시아의 구대국가인 리디아의 것이다.
주화는 표식이 없는 금속덩어리에 비해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을 지녔다.
첫째, 금속덩어리는 거래할 때마다 무게를 재야만 했다.
둘째, 무게를 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앗다.
제화공이 신발의 대가로 주고 받은 은괴가 순수한 은으로 만든 것인지 납에 은을 도금한 것인지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주화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각인된 표식이 정확한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에, 제화공은 금전등록기 옆에 저울을 놔둘 필요가 없다.
더욱이 주화의 표식은 그 주화의 가치를 보장한 어느 정치 권력의 서명이었다.
표식의 행태와 크기는 역사를 통틀어 크게 달랐지만, 메시지는 늘 같았다.
"나, 위대한 왕 누구누구는 이 금속 원반에 정확히 5그램의 근ㅁ이 들어 있다는 점을 개인적으로 보증한다.
감히 이 주화를 위조하는 자가 잇다면 그는 나의 서명을 위조하는 것이고 이는 내 명성에 오점을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범죄를 최고로 엄중하게 처발할 것이다."
돈을 위조하는 행위가 다른 종류의 사기에 비해 항상 훠씨 더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는 단순한 사기가 아니다.
주권침해이고, 왕의 힘과 특권과 왕 개인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여기 해당하는 법률용어는 '왕권 침해'였으며, 그 처벌은 보통 고문과 죽음이었다.
사람들은 왕의 권력과 진실성을 신뢰하는 한 그의 주화도 신뢰했다.
완전한 이방인들 로마의 데나리우스 주화의 가치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는데,
주화에 그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로마 황제의 군력과 진실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 로마의 데나리우스 주화
한편 그 황제의 권력은 또한 데나리우스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주화가 없었다면 로마 제국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해보라.
황제가 보리와 밀로 세금을 거두고 이것으로 월급을 지급했다면 어땠을까?
시리아에서 세금으로 보리를 걷어 로마의 중앙금고로 수송한 뒤
다시 브리튼 주둔 군단에 월급으로 지급하기 위해서 수송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일 로마 주민들은 금화를 신뢰하지만 갈리아인, 그리스인, 이집트인, 시리아인은
그 신뢰를 거부하고 별보배고둥 껍데기나 상아 구슬 , 피륙 천을 신뢰했다면,
그런 경우에도 역시 제국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72-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