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체 접촉으로 인한 부정(11-13)
부정함이 쉽게 전염되듯이, 죄를 방치하면 영적 상태가 악화됩니다.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즉시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정결 의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적인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한 사람의 죄와 부정함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권면하며 거룩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교회와 사회의 영적 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11○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11-13)
사체와 접촉한 사람이 정결케 되기 위해 앞서 제조법이 설명된 재가 사용됩니다. 그 재는 물에 타서 잿물로 만들어 오염된 사람에게 뿌립니다.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잿물을 뿌려야 합니다(12). 12절의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는 진술과 관련하여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잿물’이 없이 단순히 ‘스스로 정결케 하라’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3절에서 그 물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여기에는 잿물을 뿌리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13절은 죄와 성전의 오염과 관련한 중요한 구절이며, 그것은 20절에서 반복됩니다. 만일 송장과 접촉한 사람이 잿물을 사용하는 정결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힌 결과를 낳고 그에 따른 대가로 ‘제명’(끊어짐)의 형벌을 당할 것입니다(이형벌에 대해서는 9:13을 보라). 기우치(Kiuchi)는 사람이 송장과 접촉해서 더럽혀질 때 성막도 더럽혀진 것이며 그것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로 그가 형벌을 받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사람이 송장과 접촉하여 더럽혀진 순간 성막도 오염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막은 이미 선취적으로 씻어놓은 상태이므로 오염된 사람에게만 잿물을 뿌리면 그는 정결성을 회복하여 정상이 됩니다. 하지만 그가 잿물 정결례 절차를 밟지 않으면(13), 우선 그를 위한 ‘선취적 성막 정화’는 무효가 될 것입니다. 그는 규정을 알면서도 어긴 매우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악행을 범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이런 범죄는 ‘페샤’라 하는데 악질적인 반역죄를 지칭합니다. 요컨대, 사체 부정을 입은 자가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리지 않는다면 그는 깨끗함을 입지 못한 채 부정한 상태로 지내야 하며, 동시에 그는 규정을 위반하여 심각하게 성막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제명의 벌을 받게 됩니다.
사체 접촉의 사례들과 정결 절차(14-22)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우리는 영적 정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죄와 부정함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서로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며 격려해야 합니다. 구약의 정결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온전한 정결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14○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16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7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20○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1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2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14-22)
본문에서는 죽은 자와 접촉한 사람이 부정해지며, 정결례를 통해 깨끗하게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정결 의식에는 정결한 자가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물에 타서 뿌리는 과정이 포함되며, 이를 소홀히 하면 공동체가 부정해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규례로, 정결함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유지에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1) 집이나 들에서 사체와 접촉했을 때(14-16)
사체 오염과 그에 대한 원론적인 정결 절차를 설명한 뒤 구체적인 사례들이 제시됩니다. 우선 집에서 사람이 죽어 장례가 발생했을 때 그 집에 있던 사람과 그 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부정하게 됩니다(14). 광야의 배경으로 이 법이 주어지므로 집이 ‘장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용기들과 그릇들을 덮어놓지 않으면 그것들이 모두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송장으로 오염된 집안의 실내 공기가 뚜껑이 열려있는 그릇들을 더럽힌다는 개념입니다. 아마 이 용기들은 흡수력이 강한 진흙 제품이었을 것입니다(Milgrom). 이 질그릇들은 부정을 흡수하여 더럽게 되었을 때 깨트리지만(레 11:33-35), 여기서는 정결수인 잿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고 재사용합니다(18).
보통은 장례가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오게됩니다. 그러므로 송장과 더불어 백성의 집단적 오염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집단적 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잿물 제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송장으로 인한 집단 부정결한 사태는 전쟁터에 나간 군사들도 피할 수 없으며, 묘지를 이장하는 등 송장의 뼈나 무덤과 접촉하는 사례도 있습니다(16). 물론 개인적으로 송장을 만지거나 묘지에 들어가기도 하고 무의식중에 사람의 시체나 뼈와 접촉하기도 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사체 부정은 집단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모두칠일 동안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2) 사체 부정을 입은 자를 위한 정결례(17-22)
이 심각한 송장 오염을 씻는 수단은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그릇에 담아 ‘흐르는 물’을 부어 섞은 잿물입니다(17). 이 흐르는 물은 고인 물이 아닌 ‘살아있는 물’, 즉 샘물 같은 신선한 생수를 의미합니다. 17절의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는 ‘속죄제물(하타트)을 태운 재’를 의미합니다. 즉, 그 붉은 암송아지는 일종의 특수한 유형의 속죄제였습니다. 어떤 정결한 사람이 우슬초를 들고 그 잿물이 담긴 그릇에 담가 그 집 곧 장막에 뿌리고 그 안의 모든 그릇들(기구)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뿌립니다. 아마도 이 잿물 뿌리기는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장례식을 위해 그사체를 들고 진영 밖으로 나간 후일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구약과 유대 전통에서 사체의 강한 부정결의 전염력 때문에 매장은 당일에 이루어졌다고 알려집니다(그러나 애곡은 오랜 기간 계속될 수 있었다. 창 50:10; 민20:29; 신 34:8). 매장 의례를 위해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진영 밖으로 나갔을 것입니다. 아마 그 후에 남은 사람들과 집, 그리고 그 집의 그릇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그 잿물을 우슬초로 뿌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장 의례를 위해 진영 밖으로 나간 사람들의 복귀의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18). 이 사람들은 이어지는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로 별도로 분류되며 추가로 전쟁터에 나갔다 돌아온 병사들도 이 범주에 속합니다(민 31:19-20). 31장에서 전쟁터에서 살육전을 벌인 병사들은 송장으로 오염되었기에 진영 밖에서 잿물을 뿌리는 정결 절차를 거쳐 진영에 복귀합니다. 마찬가지로 진영 밖에 장례를 치르러 나간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위치가 사망자가 발생한 집(장막)이 아닌 진영 밖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기간과 잿물을 통한 정결례는 같습니다. 어떤 정결한 자가 그들에게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을 뿌려야 합니다(민 31:19). 이어서 그들은 목욕을 하고 옷을 빤 뒤에 진영으로 들어왔으며(31:24), 아마도 저녁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20절에서 잿물의 정결례 규정이 마무리되면서 다시금 13절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반복은 이 정결 절차의 위반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 행위인지를 강조하고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21-22절은 그 정결수, 즉 잿물을 뿌린 사람을 깨끗하게 하려는 정결 의례입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엘르아살과 그 재를 진영밖 정결한 곳으로 운반한 사람이 진영에 복귀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옷을 빨고 (목욕을 한 후) 진영에 복귀하여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로 지냅니다(21). 만일 그 부정을 탄 사람이 다른 물건을 만지면 부정이 옮고 사람과 접촉하면 더러움이 전염되므로 늘 주의해야 합니다(22)
이 잿물은 ‘부정을 씻는 물’(9)이며 8:7에서는 그것이 ‘속죄의 물’(메 하타트)로 표현됩니다. 이 ‘속죄의 물’의 정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물두멍에서 취한 성수로 보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반면에 레빈(Levine)은 이것이 ‘부정을 씻어내는 물’과는 별개로 임직식을 위해 준비된 ‘정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속죄제의 물’은 사용법이 현재의 잿물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며, 무엇보다도 19:9에서 ‘그것은 속죄제니라’라고 명확하게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9절의 ‘그것은 속죄제니라’(하타트 히)라는 이 짧은 문장을 두고 여러 학자들과 영어 성경들은 복잡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왜냐하면 속죄제물은 제단에 바치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극빈층을 위한 소제의 속죄제를 포함하여)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잿물은 특수한 유형의 속죄제물로 보아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자신으로 인해 더럽혀진 성막을 깨끗하게 하려면, 송장과 접촉된 모든 사람들은 어떤 희생 짐승을 잡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염은 흔히 집단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각 사람 모두를 위한 속죄제의 비용은 값이 비싸고, 성막에서의 집단적 절차도 매우 복잡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속죄제의 물’이라는 특수한 방식의 약식 속죄제가 제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와 부정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므로, 우리는 회개를 통해 정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결 의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성되었으며, 우리는 그분을 통해 깨끗함을 얻습니다. 개인의 죄는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서로 권면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정결함을 힘쓰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