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이트보다 먼저 온 사람들
그린란드에 정착한 바이킹 사회의 붕괴에서 이누이트도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의 존재가 이이슬란드 이야기와 그린란드 이야기에서 가장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는 그린란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기후도 더낫고 노르웨이 본국까지의 거리도 가까웠다.
게다가 아이슬란드에는 이누이트와 같은 위협적인 존재가 없었다.
그러나 이누이트의 존재는 그린란드에 정착한 바이킹들에게 기회일 수 있었다.
바이킹이 이누이트에게 배우고 이누이트와 교역을 했더라면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그럻게하지 않았다.
한편 이누이트의 공격과 위협이 바이킹 사회를 붕괴시킨 직적적인 원인일 수도 있다.
이누이트는 그린란드처럼 가혹한 환경에서도 인간 사회가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누이트는 성공한 땅에서 바이킹은 실패한 이육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는 이누이트를 그린란드와 캐나다 북극권의 '유일한' 원주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증거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바이킹이 그린란드로 들어가기 4,000년 전부터 캐나다를 동쪽으로 가로질러
그린란드 북서 지역으로 들어간 종족이 적이도 넷이나 있었다.
그들은 그린란드에서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수세기를 그곳에서 머물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따라서 그린란드의 노르웨이 사람들 , 아나사지 사람들, 이스터 섬 사람들처험
그들의 시회가 붕괴된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이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수는 없지만
바이킹의 운명을 이해하는 배경은 될 수 있는 듯하다.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유물이 발견된 곳, 그리고 완전히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들이 사용한 언어와 그들이 지칭한 이름 등을 기준으로 그들의 문화군을
'독립점 I(poin Independence I)', '독립점 II(Point Independence II)', '사카크(Saqqaq)'라 칭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누이트보다 한 발 앞서 그린란드에 들어온 종족은 도싯족이었다.
캐나다 배핀 섬의 도싯 곶에서도 그들의 주거지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캐나다 북극권의 대부분을 점령한 후 그들은 기원전800년 경에
그린란드로 들어와 거의 1,000년 동안 그 섬의 곳곳에서 살았다.
훗날 바이킹이 정착지로 삼은 남서쪽 일대도 그들의 거주지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은 기원후 300년경에
그린란드 전체와 캐나다 북극권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캐나다의 일부 지역으로 결집했다.
그러나 700년경 그들은 다시 세력권을 확장해서 래브라도와 그린란드의 북서 지역을 다시 점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쪽까지, 즉 훗날 바이킹의 정착지까지 세력을 확대하지 않았다.
바이킹들은 서쪽 정착지와 동쪽 정착에서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 가죽배조각, 돌연장 등을 발견했을 때,
자신들이 빅랜드를 탐사하는 동안 북아메리카에서 만났던 원주민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남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고학적 유적에서 발견된 뼈에서, 우리는 도싯족이 해마, 바다표범, 순록, 북극곰, 여우, 오리, 거위, 바닷새 등
다양한 짐승들을 사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싯족은 캐나다 북극권, 래브라도, 그린란드 등에 분포해 살았지만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서로 교역했다.
이런 추측은 한 지역에서 채석된 돌로 만든 연장들이
1,000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그들의 계승자인 이누이트나 그들보다 먼저 북극권을 차지햇던 선배들과 달리,
도싯족에게는 개가 없었다. 따라서 개썰매도 없었다. 활과 화살도 사용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누이트와 달리, 그들에게는 가죽으로 얼개를 씌운 배가 없어 바다로 나가 고래를 사냥하지 못했다.
개썰매가 없어 이동성이 떨어졌고, 고래 사냥을 하지 못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도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한두 가구씩 소규모 단위로 모여 살았다.
한 마을의 주민 수가 10을 넘지 않았고, 어른은 서너 명에 불과 했다.
따라서 노르웨이인들이 만난 세 종족의 아메리카 인디언,
즉 도싯족, 이누이트족, 캐나다 인디언 중에서 도싯족이 가장 덜 위협적이었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인들은 캐나다에서 훨씬 남쪽에 있는빈랜드를 포기한 후
래브라도 해안지대로 목재를 구하러 가서 도싯족을 만나도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킹과 도싯족이 그린란드 북서 지역에서도 서로 만났을까?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바이킹이 그린란드의 남서 지역에 정착한 후에도
도싯족이 약 300년 가량 북서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또한 도싯족의 땅에서 남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노르드르세타 사냥터로 바이킹이 매년 사냥을 다녔고,
때로는 더 북쪽까지 탐사를 했기 때문에 두 종족이 북서지역에서 만났을 가능성은 크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바이킹이 도싯족으로 추정되는 원주민들과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바이킹의 물건들, 특히 제련된 금속조각들이 그린란드의 북서 지역과
캐나다 북극권에 산재한 도싯족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도 한 증거일 수 있다.
물론 도싯족이 평화적으로 , 하여간 어떤 형태로든 바이킹과 직접 접촉해서
그 물건들을 얻었는지, 아니면 버려진 바이킹의 유적에서 우연히 주웠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어떤 경우이든 바이킹과 이누이트의 관계가
도싯족과의 관계보다 훨씬 위험했다는 사실은 확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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