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룡(姜德龍): 자(字)는 여중(汝中)이요, 호(號)는 매촌(梅村)이며,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무과(武科)에 올라 임진란(任辰亂) 때에 수사(水使) 원균(元均)의 막(幕)에 달려가서 왜(倭)로 더불어 연전(連戰)하여 열두번을 크게 이기니 초유사(招諭使) 김공성일(金公誠一)이 조정에 아뢰어 함창현령(咸昌縣令)에 제수되었다. 갑오년(甲午)에 간을 만났다가 상(喪)이 끝나니 이공원익(李公元翼)이 불러서 체부영장(體府營將)을 삼았다. 그리하여 병사(兵使) 정기룡(鄭起龍)으로 더불어 적(賊)을 성주(星州)와 고령(高靈) 땅에서 파하고 장기현으로 옮겼다가 예빈주부(禮賓主簿)에 옮아갔더니 어머니가 늙었으므로 사직(辭職)하고 돌아와서 봉양하매 효성의 감동으로 고기가 들어오는 이변(異變)이 있었다. 수연(壽宴)을 베풀 때에 하죽헌 성(河竹軒 惺)이 서문(序文)을 만들었고 선조조(宣祖朝)에서 선무원종일등훈(宣武原從一等勳)을 기록하였으며 숙종조(肅宗朝)에서 효행으로써 복호(復戶)를 명령하였으며 철종조(哲宗朝)에서는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추증하였다.
강학준(姜學濬): 자(字)는 성익(聖翊)이니 판서(判書) 원양(元亮)의 후예다. 정묘(正廟) 임자년(壬子: 정조 16년: 1792)에 문과(文科)에 올라 내외(內外)에 벼슬을 역임하니 청검(淸儉)으로써 일컬었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 반드시 정성을 다하였고 상(喪)을 만나서는 역척(易戚)함을 갖추고 지극하니 후인(後人)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리고 사모하고 있다.
강만주(姜晩周): 자(字)는 위수(渭 ), 호는 만락재(晩樂齋)다. 매촌(梅村) 강덕룡의 증손이다. 성품이 고결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구(求)하지 아니하였고 동약(洞約)을 수정(修正)하여 무너져가는 풍속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느즈막에 월배(月拜)의 도원동(道源洞)에 땅을 가려서 집을 짓고 못에 연꽃을 심어 늙음을 마쳤다.
문과(文科) 급제
강용리(姜用鯉): 부사(府使)를 지냈다. 강원량(姜元亮): 병진년(세종 18년. 1436)에 합격하였고 판서(判書)를 지냈다. 강맹경(姜孟卿): 생원(生員)으로 선덕(宣德) 기유년(세종 11년. 1429)의 식년시에서 동진과에 합격하고 영의정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경공(文景公)인데 반동산(斑東山)에 살았다. 강희안(姜希顔): 제학(提學)을 지냈다. 강희맹(姜希孟): 진사(進士)로 정통(正統) 정묘년(세종 29년. 1447)의 친시(親試)에서 장원으로 급제하고 성화(成化) 병술년(세조 12년. 1466)에 발영시에서 1등의 2인(人)으로 뽑혔으며 좌찬성(左贊成)을 지냈는데 시호는 문량공(文良公)이다. 강희려(姜希呂): 진사로 정통 신유년(세종 23년. 1441)의 식년시에 정과(丁科)에 올랐다. 강대규(姜大珪): 부사(府使)를 지냈다. 강흘(姜 ): 생원으로 정유년(태종 17년. 1417) 식년시에서 합격하고 한림(翰林)을 지냈는데 대여촌에서 살았다. 강윤범(姜允範): 감사를 지냈다. 강안중(姜安重): 도사(都事)를 지냈고 대여촌에 살았다. 강문회(姜文會): 기축년(예종 1년. 1469)에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합격하였다. 강귀손(姜龜孫): 기해년에 합격하고 우의정을 지냈으며 시호는 숙헌공(肅憲公)이다. 강자어(姜子魚): 진사로 계묘년 식년시에서 합격하고 현감을 지냈다. 주내(州內)에 살았다. 강혼(姜渾): 계묘년에 생원을 장원으로 합격하고 병오년 식년시에서 병과에 합격하여 좌찬성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간공(文簡公)이다. 반동산에 살았다. 강천(姜闡): 목사를 지냈다. 강관(姜琯): 생원으로 정덕(正德) 경오년(중종 5년. 1510) 식년시에서 병과에 합격하고 한림을 지냈으며 금산에 살았다. 강현(姜顯): 진사가 된 뒤 기축년(중종 12년. 1517)의 별시에서 3등으로 합격하고 판서를 지냈으며 시호는 혜평공(惠平公)이다. 강전(姜銓): 생원으로 가정(嘉靖) 임오년(중종 17년. 1522)에 장원(壯元)으로 합격하여 지평(持平)을 지냈으며 평거리(平居里)에 살았다. 강응태(姜應台): 임자년에 별시에서 병과에 합격하여 수찬(修撰)을 지냈으며 상사리(上寺里)에 살았다. 강원(姜源): 계묘년에 생원이 되고 병진년에 을과(乙科)에 올라 목사(牧使)를 지냈으며 원당리에 살았다. 강희(姜僖): 문과에 올라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진양인(晋陽人)이다. 강예필(姜禮弼): 진양인이니 좌윤(左尹)을 지냈다. 강삼(姜渗): 진양인이니 정랑(正郞)을 지냈다. 강상주(姜相周): 자(字)는 문경(文卿)이요. 숙종 을묘년에 문과에 올라 군수(郡守)를 지냈고 신묘년에 났으며 진주인이다. 강재후(姜載後): 자는 성수(聖 )요. 기축년에 나서 숙종 임진년에 문과에 올라 좌랑(佐郞)을 지냈으며 진주인이다. 강학준(姜學濬): 자는 성익(聖翊)이요. 경인년에 나서 정묘(正廟) 임자년에 문과에 올라 장령(掌令)을 지냈으며 진주인이다. 강재면(姜在勉): 자는 보여(輔璵)이요. 신축년에 나서 순묘(純廟) 갑술년에 문과에 올라 현감을 지냈다. 진주인이다. 강영규(姜永奎): 자는 찬오(粲五). 계미에 나서 철종(哲宗) 임자년에 문과에 올라 정언(正言)을 지냈으니 진주인이다. 강성희(姜聖喜): 자는 자진(子眞)이요. 정해년에 나서 고종(高宗) 계유년에 과(科)에 올라 정언(正言)을 지냈으니 진주인이다.
무과(武科)
강승안(姜承顔): 경진년에 합격하였다. 강숙량(姜淑良): 이하 기록(記錄)이 없음. 강세호(姜世豪): 부사(府使)를 지냈다. 강상문(姜尙文): 부사(府使)를 지냈고 동곡(桐谷)에 살았다. 강덕룡(姜德龍): 계미년에 합격하여 현감을 지냈다. 강로(姜潞): 거제현령(巨濟縣令)을 지냈고 상사리(上寺里)에 살았다. 강학안(姜學顔): 갑오년에 방에 들었다. 강웅일(姜雄一): 임인년에 합격하여 만호를 지냈다. 강경훈(姜景勳): 해과에 올라 사과(司果)를 지냈다. 강대생(姜大生): 이하에 살았다. 강술(姜述): 축곡에 살았다. 강학증(姜學曾): 반성에 살았다. 강원립(姜元立): 주내(州內)에 살았다. 강영립(姜榮立): 북방(北坊)에 살았다. 강효발(姜孝發): 소촌(召村)에 살았다. 강응립(姜應立): 대안에 살았다. 강인성(姜仁成): 용봉(龍奉)에 살았다. 강몽택(姜夢擇): 소촌에 살았다. 강선윤(姜善胤): 금산에 살았다. 강홍일(姜弘一): 설매곡에 살았다. 강득춘(姜得春): 수곡에 살았다. 강인호(姜仁虎): 대천(大川)에 살았다. 강수달(姜遂達): 종화에 살았다. 강신(姜愼): 첨지를 지냈고 내평(內坪)에 살았다. 강영일(姜英一): 신묘년에 합격하였고 생공(生貢)을 지냈다. 강득로(姜得潞): 송곡에 살았다. 강승(姜昇): 송곡에 살았다. 강득룡(姜得龍): 봉사(奉事)를 지냈으니 진양인이다. 강석명(姜碩明): 주내(州內)에 살았다. 강충달(姜忠達): 만호(萬戶)를 지냈고 가수개(可樹介)에 살았다. 강국방(姜國芳):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강원지(姜元之): 주내에 살았다. 강숙(姜塾): 성을산(省乙山)에 살았다. 강중래(姜重來): 첨정(僉正)을 지냈고 진주인이다. 강순린(姜舜隣): 기록없음. 강사운(姜師運): 첨추(僉樞)를 지냈고 설매곡(雪梅谷)에 살았다. 강경환(姜景煥): 수문장을 지냈고 영현(永縣)에 살았다. 강봉팔(姜鳳八): 사과(司果)를 지냈고 금산(琴山)에 살았다. 강성준(姜成俊):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봉동(鳳洞)에 살았다.
사마(司馬)
강맹경(姜孟卿): 병오년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강희여(姜希呂): 진사였다. 강흘(姜 ): 생원이다. 강기: 진사가 되어 차몽을 지냈고 기자촌에 살았다. 강조수(姜兆壽): 진사였고 송곡에 살았다. 강말손(姜末飡): 진사였고 북방(北方)에 살았다. 강극손(姜克孫): 생원이었고 명진에 살았다. 강계성(姜繼誠): 생원이었고 성태에 살았다. 강진(姜眞): 생원이니 금산에 살았다. 강원범(姜元範): 갑오년에 생원, 진사를 함께하였고 별좌(別坐)를 지냈으며 동산(東山)에 살았다. 강예범(姜禮範): 생원이니 반동산(班東山)에 살았다. 강신범(姜信範): 생원이다. 강원발(姜原發): 생원이다. 강수굉(姜壽宏): 생원이니 금산에 살았다. 강공우(姜公佑): 진사이며 가차례에 살았다. 강여평(姜汝平): 평자(平字)를 혹 천(千)으로도 쓴다. 진사니 평거에 살았다. 강응서(姜應瑞): 생원이니 동산에 살았다. 강수위(姜壽渭): 진사다. 강공저(姜公箸): 생원이니 가좌촌에 살았다. 강혼(姜渾): 계묘년에 생원이 되었다. 강말인(姜末仁): 진사니 백곡에 살았다. 강응신(姜應信): 가정(嘉靖) 경오년에 생원이 되었고 금산에 살았다. 강임(姜任): 병오년에 생원에 올랐고 가좌촌에 살았다. 강급(姜汲): 병오년에 생원이 되었고 금산에 살았다. 강유: 기유년에 생원에 올랐고 가좌촌에 살았다. 강호(姜灝): 기유년에 생원에 올랐고 모곡에 살았다. 강황(姜滉): 기유년에 생원에 살았고 금산에 살았다. 강응규(姜應奎): 진사다. 강문서(姜文瑞): 갑자년에 진사에 올랐다. 강석령(姜碩齡): 효종(孝宗) 임진년에 생원에 올랐고 진주인이다. 강금순(姜琴舜): 생원이다. 강성관(姜聖 ): 자(字)는 여진(汝眞)이요. 갑신년에 나서 고종(高宗) 경오년에 생원에 올랐으니 진주인이다. 강갑수(姜甲秀): 자는 원직(源直)이요. 갑술년에 나서 고종 갑오년에 진사에 올라 참봉을 지냈으니 진주인이다. 강휘옥(姜彙鈺): 자는 구문(久文)이요, 갑술년에 나서 고종 갑오년에 진사에 올랐으니 진주인이다. 강영석(姜英燮): 진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