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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벽 재건
느헤미야 2:17-3:5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 마음은 급하더라도 하나님의 감동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성령 안에서 확신이 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삼일 후에 하나님의 감동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느헤미야가 당장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성벽을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이미 예루살렘에는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을 막으려는 반대 세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기도로 지혜를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밀한 지시를 받아 그 지시를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귀중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사람도 의지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오직 주께서 시키는 데로 하나씩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영적 재건은 먼저 내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어서 개인적인 영적인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영적 재건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함께 수고할 동료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공동체의 영적 재건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영적 재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그 성물들은 모두 불 타 버렸습니다”(의역, 17절).
그리고 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줍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읍시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죄로 인하여 사탄에게 조롱당하지 말도록 합시다.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고 영광스러운 주의 백성이 됩시다.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시다.”(의역, 17절).
느헤미야는 주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선포하여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영적으로 제대로 서서 이 시대의 영적 재건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시다.
“지금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영적으로 강하게 서야 합니다. 한국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불신과 거짓으로 무너진 한국 교회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죄를 이기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도록 합시다.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 부서진 성벽을 세우며 잃었던 복음의 영광을 되찾도록 합시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함께 영적으로 강력하게 설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놀랍게도 영적 재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의 손길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합니다. 이 부분이 우리 신자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 2:18).
곧, 영적 재건을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말해야 합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기억나게 해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더욱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서로 나누며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제가 한국에 들어온 이유 역시 주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의 영적 재건을 이루라고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만나게 하사 이렇게 복된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네. 함께 이 시대를 향해 영적 재건이라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간증을 하자 모든 백성들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건축하자.”
그러면서 모두 힘을 내어 이 귀하고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귀한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격려되는 순간입니다. 영적 재건이 공동체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영적 재건의 일은 시작부터 반대에 부딪힙니다.
본문 19절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19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 재건의 뜻을 모으기가 무섭게 갑자기 대적들이 나타나 본색을 드러내며 영적 재건을 방해하려고 최선의
노력들을 시작합니다. 그들의 처음 반응은 노골적인 업신 여김과 비웃음입니다.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19절)
사람을 업신 여김과 비웃음은 그것이 어떠한 종류이든 마귀로부터 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적자들은 영적 재건에 힘쓰는 자들을 향하여 미쳤느니, 바보니, 이상한 사람들이니 라며 업신여기며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적 재건을 방해하기 위하여 비방과 중상모략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에스라 4장을 보면 과거에도 예루살렘 성전 건축 당시에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인하여 성전 건축이 중단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들의 비방 내용 역시 성전을 재건하려는 것은 왕을 향한 반역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중상 모략하였습니다. 이번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의 경우도 곧바로 비방과 중상 모략으로 공격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경우는 아닥사스다 왕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고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협박은 통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심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면 어디선가 대적들이 나타나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공격은 두 가지로 발생합니다. 첫째는 노골적인 업신여김과 비웃음입니다.
“네가 진실한 믿음을 갖겠다구.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가 한국 교회의 재건을 감당하겠다구. 교만의 극치를 달리는구먼. 혹시 그 교회 이단 아니야?”
이러한 원수들의 조롱과 업신여김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게 만들고, 추진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지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이 쓸데없이 시간과 힘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기쁨과 담대함으로 감당해야 할 일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계략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우리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담대하게 믿는 이들의 기도와 협력으로 대적들의 조롱을 무시하고 영적 재건의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터무니없는 비방과 중상모략입니다. 특별히 세상 조직 및 권력을 이용한 협박입니다. 계속 교회에 열심을 내면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협박은 언제나 사탄이 써 먹는 치사한 방법입니다. 심지어 거짓으로 법정에 고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떳떳하게 행한다면 주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로 그들을 대처하면 그들의 비방 및 중상 모략은 성사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법을 따지며 법정에 재판을 걸고 협박을 하고 모함한다고 할지라도 성도들과 교회가 주를 의지하며 담대할 때 그들의 공격은 반드시 허사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으로든 공동체로든 영적인 재건을 시도하려고 하면 반드시 원수가 나타나 방해를 합니다. 출애굽기를 보아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고 할 때 바로 황제가 끝까지 방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자 유대인들의 방해가 얼마나 지독하게 강한지 사도행전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린도에서는 방해가 너무 심하여 바울은 큰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때 주께서 나타나셔서 힘을 더하십니다.
[
1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
5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고전 18:1, 4-6, 9).
그러므로 바울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영적 재건을 이룩하려는 자들에게 권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
느헤미야는 느닷없는 대적자들의 조롱과 협박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느 2:20).
느헤미야의 답변과 처신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예절을 갖춘 ‘무시’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 일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답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어나서 영적 재건의 건축을 할 것이지만, 너희들은 이 일에 간섭하거나 동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협상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선을 분명히 긋고 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 그들을 성벽 재건 사역에 끌어들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근본적으로 영적 재건을 파괴하려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위협적인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협력할 부분이 있고, 절대 협력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협력할 사람이 있고 오래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고 절대로 협력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이를 분별하는 것은 대단한 지혜입니다. 우리가 그 선을 분명하게 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과 교회는 방향을 상실하고 혼탁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선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는 오직 복음 안에서 기도와 순종의 훈련을 받아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복음에 집중하여 영적인 분별력과 실력을 지니고 있을 때만이 참된 교회의 성벽 재건이 가능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방해하며 죄악을 합리화할 때, 그리고 다른 신을 따르자고 할 때 우리는 그들과 선을 그어야 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그러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4-18).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이곳 송도에 거하는 기간은 우리 모두가 각 개인의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세우면서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공동체를 함께 세워야 하는 기간입니다. 그 이후 단계는 한국 교회를 재건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각 개인이 영적인 성장에 분투해야 합니다. 복음을 알기에 힘쓰며, 기도에 힘쓰며, 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수시로 기도하고 오래 기도하고 깊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의 말씀을 소화해내고 철저하게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특히 어려움이 올 때 서로 인내와 격려로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만한 자가 있어서는 안 되며 서로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주 하나님께서는 순결한 복음에 서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와 여러분의 삶을 위대하게 세우시며 강건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이 시대와 기독교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함과 진리와 능력이 무엇인지 여러분의 삶과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를 통해 크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제 느헤미야 3장으로 건너가면 드디어 성벽 재건 작업을 구체적으로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동참한 모든 동역자들의 명단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이름들이 나열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협조와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요, 또한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될 때 동참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들 이름이 기억된다는 사실입니다.
느헤미야 3장의 구성은 북쪽 성벽을 기점으로 하여, 서쪽으로, 그리고 남쪽으로, 마지막으로 동쪽으로 성벽이 차례차례 이어지면서 재건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먼저 오늘 본문 느헤미야 3장 1-5절까지의 말씀은 북쪽 성벽을 재건하는 내용입니다.
가장 먼저 영적 재건에 앞장 선 사람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이었습니다. 본문은 그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았다”고 기록합니다.
양문이라는 것은 영어로 “Sheep Gate”<동물 양의 문>이란 뜻으로 제사에 쓰일 양을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문은 성전과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성별된 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과 관련된 문이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양문을 재건하는 데 특별하게 헌신하였습니다.
이는 신약의 교회 입장에서 볼 때, 예배의 회복을 말합니다. 예배가 바르게 회복됨으로 영적 재건이 시작됩니다. 예배가 바르게 회복된다는 것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영원한 희생 제물인 십자가의 구속을 기반으로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는 오직 주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며, 그분께만 충성을 다짐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어린양의 보혈을 통해 나아가야 참된 예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철저하게 복음을 회복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양문이 있는 북쪽 지역은 사마리아와 인접한 지역으로서 원수들의 공격이 가장 빈번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아십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성벽 재건에 가장 먼저 일어났던 것입니다. 원수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이기에 위험하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제사장들이 담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이 시대의 영적 재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전할 자격을 부여받는 목사들이 마귀들이 가장 싫어하는 복음의 영광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제사장들 무리는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함께 양문을 세우고 문짝을 달았습니다. 그들은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벽을 쌓았습니다.
하나넬 망대를 이어서는 여리고 사람들이 쌓았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쌓았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제사장이 쌓은 양 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계속 이어서 재건하는 그림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예배가 올바를 때, 교회의 여러 분야가 하나씩 제대로 세워지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있어서 우리 각자가 할 일이 있습니다. 마치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통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어떤 사람은 눈이며, 어떤 사람은 귀이고, 어떤 사람은 이빨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발이고 어떤 사람은 코이며, 어떤 사람은 손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입이고 또 어떤 사람은 혀입니다. 각 지체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아 순종할 때는 지체들 간에 분열이나 다툼이 없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느헤미야가 불어넣은 재건의 영에 의해 예루살렘에 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발견하고 그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이 땅에서 승리하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하는 일로 교회를 위해 섬기기 바랍니다. 잘하는 것이 없으면 모든 모임에 참여라도 해서 서로 격려하는 일을 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15-27).
3절에서 5절까지는 하스나아, 므레못, 므술람, 사독, 드고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위하여 마음과 삶을 다 드렸지만 드고아의 귀족들은 주의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드고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약 18km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찾아와서 함께 동역했던 것입니다. 27절을 보면 그 사람들의 열심은 더욱 뛰어나서 재건이 필요한 또 다른 부분까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열정과는 달리 드고아 귀족들은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개역 개정은 5절 번역을 틀리게 하였는데, 원어 히브리어 <아도네이헴>은 “그들의 주인들”로 번역하기보다 흠정역, 즉 킹제임스의 역처럼 “그들의 ‘주’”라고 해야 맞습니다. 즉, 드고아 귀족들은 그들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백성의 지도자들로 있으면서도 성벽 재건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또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재건과 관련해서 어떠한 수고와 희생을 치르지 았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공동체 내에도 세 부류가 있게 마련입니다. 산발랏, 도비야, 게셈 같은 영적인 원수들이 있고 또는 드고아 사람들과 같이 주 하나님을 향해 열심이 있는 자들이 있고 또한 드고아의 귀족들처럼 방관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방관자들은 공동체에 대해 좋으니 나쁘니 여러 평을 하지만 정작 공동체를 세우는데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고 오직 개인의 편의와 위치와 유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종 예루살렘의 영적 재건이 진행되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자들로 변합니다. 즉, 그들은 영적 재건에 대한 구경꾼 또는 비평가일 뿐 자신을 희생하여 영적 재건에 동참하는 자들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 부류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구원하셔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몸을 성경은 교회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세움이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영적 재건을 위하여 공동체의 일꾼들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공동체를 재건한 자들을 절대로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공동체의 영적 재건을 하려고 하지 말고 주를 위해 주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을 주의 이름으로 섬기기 바랍니다. 그 일이 어떤 때는 비록 힘들고 지루하고 심지어 큰 손해를 보는 위험한 일일지라도 열정을 품고 끈기있게 섬기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주신 재능과 은사를 힘써 사용할 수 있는 일들을 맡기실 것입니다.
느헤미야 3장을 읽고 있다보면 성벽을 재건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 저곳 흩어져 자신들에게 할당된 일들을 각각 충성하며 수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나라를 위한 그들의 모든 수고가 하나님의 마음에 영원토록 기록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적 공동체의 재건이라는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재능과 직업과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각각 영적인 공동체인 교회를 위하여 수고할 때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영적으로 건강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귀한 일을 감당함으로 주의 나라의 기념책에 영원토록 기록되는 신실한 일군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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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
말씀 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