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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제13차 산행
냉정고개-황새봉-쇠금산-나밭고개
거리:18.2km
시간:5시간 40분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하고 이별을 체험하면서 환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생의 여백을 느끼게된다. 아픔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처음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고통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난 2년간의 산행을 통해 나는 무엇을 고통과 맞바꾸었을까?
신열을 앓고 난 뒤의 뜻밖의 가벼움처럼 모처럼 한적한 산행의 기회가 주어진 오늘 나비처럼 산길을 날아가고 싶었다.
들머리 냉정고개에서 국악 연수소로 가는 굴다리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봄밭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포장길을 막 들어서려는데 일행들은 뜻밖에 옆에 있는 야트막한 139.9봉의 야산 쪽으로 들머리를 잡고 있었다.
인근 롯데 골프장 쪽으로 우회해 돌아오는 길이 원 정맥길이긴 하지만 지금은 길이 막혀 통행이 제한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 일행은 두말없이 굴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
국악연수원이라고 씌여진 표지글 아래 무속 전수소란 글이 함께 쓰여져 자칫 국악과 무속을 함께 배워주고 전수하는 곳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보인다. 암튼 후미조에 여성 두분이 우리를 따라가는것이 과연 옳은지 긴가민가해하며 함께 서 있다.
봄의 전령 매화꽃 아래에서
다시 만날 이 봄은 없다. 우리가 시간과 더불어 늙어가듯 이 한장의 봄 사진과 함께 낡아갈것이다.
매화타령
"인간 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이 상사난(相思難)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 두견아 울어라 좋구나 매화로다."
바야흐로 봄이다 봄 향기가 코끝을 콕 하고 찔렀다. 세상 풍경은 여전히 삭막한데 상사의 꽃향기가 춘정을 부추긴다. 春情이라! 생각만해도 참 좋다.
국악 연수원 우측을 따라 오르다 황새봉 표지판을 만난다. 그후 계속 야트막한 산길과 임도를 번갈아 만나면서 별 특징도 없는 이름 그대로 야산을 지나간다.
한참 길을 걸었지만 당연히 우리를 따라잡아야할 선두가 보이지 않는다.
곧이 곧대로 산행을 하다 알바를 했을거라 생각하며 생전 처음 느껴보는 선두 산행을 계속한다
내가 태어난 1957년 오월의 빌보드 차트1위곡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All shook up 이란 노래였다. 전형적인 엘비스의 노래다.
언덕위의 앙상한 나무들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all shook up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22세 청년의 육감적인 몸짓을 그대로 닮았다. 들머리에서 만난 매화향의 탓일까 뭔가 뻐근한 힘따위가 몸에 차오르는 듯했다
뻐꾸기 둥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의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을 나타내는 은어다 뻐꾸기는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이름 없는 무수한 봉우리를 넘어가며 마치 나는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가는 한마리 무심한 뻐꾸기란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걷는다 검은 폐장 속에 살고 있던 뻐꾸기 한마리 날아 나온다.
남이 될 사랑을 제 사랑인 양 품고 살아 온 첫사랑의 추억.
몸 곳곳에서 노란 상처를 키워내는 생강나무처럼 피터지게 뻐꾸기를 날려보는 아침이다.
황새봉에서
살다보면 이런 날이 다 있다 선두와 나란히 걷다 함께 증명사진을 찍게 될 줄이야! 가문의 영광이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다.
추모공원 입구에서
추모공원에서 BMW를 몰고 온 한 졸부를 만났다 카오디오로 큰 소리로 노래를 틀어놓고 차 주위를 의기양양 돌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섹시한 샴 고양이 한마리가 햇살을 피해 자동차 그늘에 쪼구리고 있었다
추모를 하러 온것인지 영령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하러 온것인지는 몰라도 머리에 든것이 없는 인간들이 잘못을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치고는 영 꼴불견이었다.
한계란 그 시점에서의 한계이지 영원한 한계는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내가 오른 모든 산들은 한계였지만 나는 그 한계를 다 이겨내었다 그렇다고하여 다음 산에대한 근심이 사라진것은 아니다 산은 여전히 한계이며 풀어야할 숙제이다.
한계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고지서가 아니다 삶의 현장에 던져진 문제집과 같은거다. 한계를 받아들인다는것이 곧 체념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때로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용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산행을 하다보면 특히 이런 경우가 많다.
낙남 정맥길도 이제 끝이 보인다 나는 또 어떤 도전에 놓이게될까? 이번 정맥길이 내 삶에 놓인 한계가 아닌 숙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유독 공동묘지가 많은 산행길
황새봉에서 한시간 15분가량 걸어 쇠금산에 도착하였다.
금음산이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해발고도는 제각각이다. 여전히 선두와 함께다.
낙원묘지까지 한적한 산길이 이어진다. 공동묘지와 공동묘지 사잇길을 누가 걸어 이렇게 탄탄하게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원묘지 장인 장모님의 산소를 찾아뵈었다 정맥길이 아니었으면 찾아 뵐 엄두도 못내었을것이다 함께 산길을 걷는 동료들이 따라와 절을 해 주었다 나그네님이 준비해 온 한라봉을 올렸다 못 마시는 술이지만 음복으로 마신 막걸리 한잔으로도 기분이 알딸딸하게 좋았다.
망천고개에서 392봉에 이르는 길은 워낙 공사중인 구간이 많고 우회로가 많아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산행을 끝내고 GPS거리를 비교해보니 19.2km에서 16.2km까지 차이가 났다.
성원 ENT,신일 화공등 폐처리 공장을 지나 임도로 들어선다 무심코 임도를 따라갔다가는 자칫 알바하기 십상인 길이었다 임도 옆에 붙어있는 시그날을 따라 급히 비탈을 올랐다. 비탈을 올라서도 길이 옳은지 긴가민가하였지만 곧 정로를 발견하고 길을 이어갔다.
노란 생강나무꽃이우리를 반긴다.
봄은 봄을 모방하는가 어김없이 꼭같은 봄이 찾아온다.
사람의 어린 시절은 봄이다. 그래서 누구를 모방할것을 가르친다. 하지만 나이를 먹다보니 내가 왜 누구를 모방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이다. 나는 이순신도 아니고 아인슈타인도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처럼 되어야한다고 아이들을 채근해서도 안될 일이다.
누구를 닮아야한다는것은 고작 그 사람의 아류가 되어야한다는 말과 같다. 아류란 한마디로 말해 가짜다. 누가 가짜의 삶을 살고 싶겠는가?
봄이 봄으로 싱그러운것은 봄 속에있는 지울수 없는 신선함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신선함이란 자기 존중으로부터 나오는것이 아닐까? 내가 누군지 아는 여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망천고개
아슬한 급경사를 내려 망천고개에 도달한다 망천 고개에 내려서니 차가 싱싱달리는 6차선 국도가 가로놓여있었다. 달리 돌아갈 건널목도 없고해서 깨름직한 무단횡단을 감행하였다
상리고개
망천고개에서 35분쯤 지나 상리고개에 도착하였다 임도 나무계단,임도 나무계단을 지나 진절머리 나는 송전탑 아래를 또 지난다
경부공영 채석장의 을씨년스러운 모습
우측 끝에 김해 천문대와 만장대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넘어야할 399봉이 보이고 먼지가 풀풀 이는 터벅길을 길어간다 소나무 하나가 힘든 여정을 위로하듯 서 있다
나그네님도 소나무가 마음에 드는지 한참을 소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다. 산길을 지나가다 어떤 사물에 끌리는것은 그 사물 속에 잠든 영혼을 깨우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을 통해 사람은 자연과 교감하게되며 자연을 살아있는 신령한 대상으로 여기게된다
그래도 봄산이라고 노루귀가 피어있다
삼계고개
392봉으로 가는 마지막 오름길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금남정맥의 후미조를 자임하는 신샘팀과 합류하여 함께 산행하였다. 쉼없이 오르니 17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산을 오르는데도 어지간히 이력이 난 모양이다 두려움이 없이 산을 올라야 산꾼이다 산과 대좌하여 기가 꺽여서는 안된다 여지껏 넘지 못한 산은 없었으므로.
마지막 하산길
마지막 하산길을 앞두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늘 꼴찌로 따라 다니다 그들과 함께 걷는다는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생각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할것 같았다 산대장님이 주신 시간보다 앞서 도착하기는 처음이다. 나전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빗물의 흐름이 만든 계곡길처럼 돌이 많았다 늘 시간에 쫒겨 뛰다시피 내려간 하산길이 오늘 모처럼 여유가 있었다
나밭고개 입구
-여호아의 증인 김해 수련장 입구를 지키는 흰둥이-
나밭고개에 도착하니 아직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 일행들이 길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미가 일찍 도착하니 평소 없던 일이 다 생겼다. 들머리에서 우리와 함께했던 여성 동지들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염려했던 구간에서 알바를 한 모양이었다 막걸리에 두부를 안주삼아 후미를 기다렸지만 나는 콜라 한잔 마시는 여유로 대신했다.
나밭고개는 김해시삼계동과 진례면 나전리를 잇는 고개로 나밭이란 지명은 이곳이 선녀나대하강전형(仙女羅帶下降田形)의 명당이란것에서 나왔다. 선녀가 비단옷을 입고 내려오는 지형이란 뜻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몰라도 주위에 여호와의 증인이니 천리교니 하는 종교단체의 건물이 눈에 띈다.
- 후 기 -
13번째의 정맥길 단 한차례 남은 정맥길을 두고 내 마음에 작은 흔들림이 인다.
갈것인가? 멈추어 설것인가?
선택은 출석부에 그으진 사선처럼 결코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의미이자 부호이다.
하지만 그러한 흔들림을 무수히 견디고 나아왔기에 나는 세상의 어느 제도적 규격이나 문자로도 제한 할 수없는 확고한 생의 부름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부름마저 외면한 채 그저 졸고만 싶어진다.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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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혹한 겨울에 시련을 격고 핀 매화는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수많은 갈등과 어러움을 이겨 나가면서 끝나가는 낙남정맥길
좋은 추억과 함께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눈 속에서 더욱 고고한 설중매처럼 정맥길이 피워낸 싸나이 우정이 더 값진것이겠지요.
똑같은 산길을 걷지만 늘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갖게되는것은 그런 영감을 줄수 있는 소중한 벗들이 곁에 있기때문입니다.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 하십니다.
백두대간에 이어 드디어 낙남정맥도 이제 한고개 남은...
한걸음 한걸음 완성했네요.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