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평빌라 이야기 2> - 시설 사회사업 사례집, 밑줄.
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직원들이 입주인이 자기 삶을 살고 둘레 사람과 어울려 살게 거든 이야기.
입주인 당사자가 여느 사람처럼, 평범한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이야기,
이를 거드는 사회사업가들의 고뇌와 성찰을 담았습니다.
직원들이 쓴 일지를 바탕으로 박시현 소장님이 엮고 다듬었습니다.
*<월평빌라 이야기 2>를 출판하기 전에 PDF파일로 내려받아 제본해 읽었습니다.
반쯤 읽었을 때 책이 나왔습니다. 나머지 반은 출판한 책으로 읽었습니다.
그 몇 주 사이, 원고가 달라진 곳이 있습니다.
상관없이, 두 책에서 밑줄 친 대목을 옮겼습니다.
월평빌라에 이사 오면 한 달쯤 지나서 회의를 합니다.
‘월평빌라에서, 거창에서 어떻게 살기 바라는가’ 의논합니다.
당사자, 부모형제, 직원, 상관있는 사람이 모여
월평빌라에서 잘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각자 의견을 냅니다.
(...)
어머니 말씀 듣고 시설 직원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우영이가 어머니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도와야지.' 했는데,
'우영이가 어머니 품속 그리워하고 어머니도 우영이 품으며 지내게 해야지' 하고 바뀌었습니다.
어머니 빈자리 어머니가 채우시기를.
(...)
학교에서 가 정 통신문을 받으면 부모님에게 가져다 드리고 전화로 읽어드리고 사진 찍어서 보냅니다.
학부모 설문 조사는 부모님이 답하고 시설 직원이 일부 보탭니다.
'시설에 가면 시설에 맡기고 더 이상 엄마라고 이래저래 간섭하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아니요! 부모자식으로 지내기 바랍니다. 그렇 게 돕고 싶습니다. 어머니 품에 있을 때처럼 가족 틈에 머물 때처럼.
- '어머니 품속에 있을 때처럼' 가운데
가족여행 계획을 당사자와 의논했습니다. 어머니와도 의논했습니 다.
준석 씨를 놀라게 할 요량으로 어머니와 공모했습니다. 준비부 터 참 정겹습니다.
이렇게 신나게 일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들과 의 논하니 당신들의 일로 여겨 신나서 합니다.
당사자와 가족, 직원이 의논하며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의논한 내용 으로 공문을 작성하고, 공문을 보며 다시 당사자와 의논했습니다.
귀합니다. 이렇게 해야 당사자의 나들이가 될 겁니다.
사업으로 한다 하더라도 여쭈어가며 진행하면 당사자가 주체가 돼 니, 당사자의 일로 여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사업 에 동원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
가족여행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도타워지기를 바랐습니다. 바람대로 되었습니다.
상담, 사업, 프로그램으로 이룬 게 아닙니다.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로 이룬 게 아닙니다.
여행이라는 평범한 일 로, 묻고 의논하여 이루었습니다.
- '박진석 씨 가족여행' 가운데
시설에 살아도 자식 노릇 하며 살기 바랍니다. 시설에 살아도 여느 부녀처럼 삽니다.
(...) 평소 시설 입주자와 시설 바깥 부모형제들이 어떻게 관계하게 도왔 느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부모형제로 관계하게 했는가? 시설 입소 자와 보호자로 관계하게 했느냐? 그에 따라 다를 겁니다.
- '시설행사일까요? 가족행사일까요?' 가운데
2015년 여름 백 씨 아저씨가 자취한 후로 나가 살겠다는 말을 자주 했거든요.
백 씨 아저씨가 동기였지만 자취의 발판은 아주머니 둘레 사람입니다.
(...) 아주머니 곁에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취의 발판입니다.
직업 신앙 취미 미용… 아주머니 일상을 함께하고 돕는 사람들, 이 사람들과 아주머니 자취를 의논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취를 거들고 돕게 할 겁니다. 자취 후의 삶도 그럴 겁니다.
- '자취, 집보다 사람' 가운데
밥하고 요리하고 샤워하고 청소할 줄 알면 독립한다는데,
생존훈련 은 독립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못 됩니다.
‘자취, 집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죠. ‘자취, 밥보다도 사람이 먼저’입니다.
- '자취, 밥보다 사람' 가운데
계약이 성사되자 주인 할머니는 아저씨를 벌써 이웃으로 품습니다.
꽃 키우는 걸 좋아한다니 공간을 내주겠다, 폐지를 모아 판다니 다 른 사람 주지 않고 아저씨에게 주겠다 했습니다.
한 사람이면 족합 니다. 집주인과 셋방 사는 이웃으로 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자취의 핵심은 사람' 가운데
자취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저녁 6시 전에 반드시 집에 옵니다.
시간 맞춰 퇴근하고, 다른 볼일 보더라도 시간 맞춰 집에 옵니다.
자취하 면 누구 기다리게 하지 않고 누구 찾아 나서게 하지 않으니
집에 오 는 시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집에 오 는 시간이 일정합니다.
짐작하기는 저녁밥 하려면 늦어도 6시에는 집에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취하면서 변수가 생긴 겁니다. 시설 안에 살 때는 언제든 저녁 챙 겨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취하니 손수 밥해 먹습니다.
그러니 저녁 준비할 시간에는 집에 가야 했던 겁니다. 대신 저녁 먹고 볼일 보러 갑니다.
시설 입주자가 물건을 자꾸 숨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나쁜 습관, 장애의 특성, 시설 입주자의 특성… 그래서 그 당사자를 지도·학습·훈련·치료한다? 아저씨는 스스로 자물쇠를 걷었습니다. 이제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직원을 멀리하면서 ‘나’를 가까이합니다. 직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나’의 의지와 힘을 키웁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공간을 이제 ‘나’의 공간으로 지킵니다.
- '자취 일 년' 가운데
입주자의 삶을 거들며 흘리는 땀과 눈물이 사회사업가의 복이라면,
입주자의 삶을 거들다가 겪을 고난과 아픔도 복으로 여기자고 했습니다.
자리 내놓고 일하는 그 자리가 복이다, 사회사업가에게 시설 에게 그만한 자리는 복으로 여기자고 했습니다.
요즘 시절에 어느 자리가 그러하며 어느 누가 그런 자리에 앉겠습니까. 자랑이요 긍지로 삼자고 했습니다.
- '자취 지원하는 직원의 결의' 가운데
2015년 1월 한 달, 사회복지 전공 여대생 두 명이 고1 여고생 지선 이를 도왔습니다. 이력서 쓰고, 둘레 사람과 두루 의논하고, 사업장 51곳을 다닌 결과 미용실에 취업했습니다. 한 달 만에요.
지선이와 대학생들이 51곳을 다녔습니다. 발바닥 닳도록 다니며
사회사업은 이웃과 인정을 살리는 일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런 이웃과 인정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 '아르바이트 구직' 가운데
시설 입주자에게 직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일하는 곳입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근로시간이 얼마냐, 월급이 얼마냐에 앞 서 ‘직장이 있다’가 중요해 보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어디 갈 곳이 있고, 가면 반기고 함께 일할 사람이 있다는,
소속이 있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시설 입주자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여느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 '시설 입주자의 직장 생활' 가운데
(수영장 회원) 네 명이 왔습니다.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며 아주머니 사는 모습 보고 갔습니다.
당신 집이나 당신 가게 혹은 수영장에서 볼 때와는 다른 감정이 있었을 겁니다. 누구 집에 가서 사는 거 보면 그렇죠.
더 이 해하고 가깝게 느끼죠. 삶의 일부를 공유한 느낌, 이런 게 있잖아요. 이때가 참 중요합니다.
아주머니를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라고 확 신할 수도 있으니까요.
월평빌라 203호는 아주머니 집이고, 아주머니가 그 집 주인이며, 삶의 주인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장 보고 음식 장만하고 상 차리고 커피 내고 과일 내며 손님 맞는 주인으로, 당신 집 소개하고
당신 모습 그리는 당신 삶의 주인이게 했습니다. 그래야 아주머니의 집, 아주머니의 삶, 아주머니를 인정할 테니까요.
오랜만에 손님 맞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화사했습니다. 생기 있었습니다.
- '허락 받았어요?' 가운데
절망하는 사람에게 시설은 어떤 곳일까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시설의 위치가 좋지 않아,
구조와 평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혹은, 시설은 누군가에게 잊힌 존재가 되는 어떤 낯선 곳이야,
통제되는 어떤 두려운 곳이야, 그곳의 ‘삶’은 뭔가 달라….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가 결국에 이루려는 일은 무엇인 가? 해배입니다.
자기 일상과 삶에서 유배된 자를 다시 자기 일상과 삶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시설에서 시설 사회사업가가 할 일입니다.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자기 일상과 삶을 만날 것입니다. 한쪽 다리 싸매어 창공으로, 덫을 풀어 산속으로,
한때 목마름을 채웠으면 다 시 광야로, 상처 입었을지언정 야생으로, 본디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시설에서 시설 사회사업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일상과 삶으로부터 유배되는 배경에는 가난, 질병, 장애 같은 약자의 처지와 상황이 있습니다.
또 다른 상황이 있는데, 동료들을 생각하면 이런 주장이 미안하지만,
일상과 삶을 통제하는 복지시설과 사회복지사로부터의 해배도 필요합니다.
- '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가운데
시설 안에 사는 어떤 입주자가 물건을 자꾸 숨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아저씨의 나쁜 습관, 지적 약자의 특성, 시설 입주자의 특성…,
그래서 사례회의하고 지도․학습․훈련․치료한다? 아저씨는 스스로 자물쇠를 걷어치웠습니다.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 '물건을 숨기던 아저씨' 가운데
입주 초기부터 아저씨의 알코올중독이 문제였지만 한 번도 ‘문제’로 다룬 적은 없습니다.
소란을 피우고 돈 때문에 어려울 때마다 어떻게 도울지 궁리했습니다. 아저씨가 잘하는 것으로 도우려 했고,
아저씨도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마침 그림과 사진에 몰두했고, 입주자 대표라는 좋은 구실이 생겼습니다.
직원이 그렇게 유도했는지 하늘이 돕는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술 때문에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 '알코올중독자에서 입주자 대표로' 가운데
나를 돕는 사람이 전지전능하면, 그보다 큰 불행도 없겠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모르는 것이 없고, 그의 선택은 항상 올바르며 최선인, 그런 전지전능한 사람이 나를 돕겠다면 어쩌나.
그 앞에서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그는 나에게 선택하고 답하라 하지만,
그의 전지전능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라 하는데, 나는 그 앞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주저한다.
그는 전지전능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다 안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만 골라서 해 보라 하는데 그마저 하지 못할까 두렵다.
어떤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해 볼 만한 것마저 그가 한다. 그의 전지전능함으로.
(...) 나를 돕는 사람이 좀 만만하면, 그보다 큰 행운도 없겠다. ‘나라도 챙 겨야겠다.’ 할 만큼 연약하면 좋겠다.
그의 물음이 진짜 물음이고 나의 답변이 진짜 답변이고, 나의 물음이 진짜 물음이고 그의 답변이 진짜 답변인,
그런 연약한 자가 나를 도우면 좋겠다.
- '진작 말 좀 하지 그래' 가운데
“시설은 입주자 그 사람의 집입니다.” 그렇다면 노크는 기본입니다.
(...) 직원회의를 하는데 의자가 모자랐습니다. 한 직원이 입주자의 집에 서 의자를 가져왔습니다.
노크도 하지 않았고 허락도 구하지 않고 요.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괜찮다?
아무도 없을 때 가져오면 절도인데? 입주자의 물건을 쓸 때는 반드시 허락을 구해 야 합니다. 빈집은 출입을 삼갑니다.
- '쫓아가지 마라' 가운데
아들이 시설에 살아서 어머니가 아들 옷 치수를 모른다면, 아들 신 발을 사서 보내고 싶은데 정작 신발 치수를 모른다면…. 시설에서 잘 돕는다며 어머니 몫을 빼앗는 건 아닌지, 두렵습니다.
- '아들 옷 가져가는 어머니' 가운데
전임자의 계획서, 동료의 계획서, 다른 입주자의 계획서, 내가 쓴 지난 계획서, 한집 사는 입주자와 동료의 계획서…
다른 계획서에서 참고할 만한 것을 찾습니다. 전임자의 계획서나 해당 입주자의 지난 계획서는 반드시 참고합니다.
두루 다니며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동료의 계획서를 참고합니다.
그 동료를 찾아가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요령, 계획서 작성하는 요령을 배웁니다.
평범한 언어, 일상의 언어로 의논하고 작성합니다. 가능하면 사회복지 전문 용어,
보통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말은 삼갑니다. 평소 어떤 말이 전문용어인지 일지 쓰며 살핍니다.
- '시설에 살아도 꿈꾸어야' 가운데
기대한다면 더 많은 기회를 주라고 합니다. 어떤 기회요?
컵의 물을 쏟고 컵을 놓치고 심지어 컵을 깨뜨려 물을 엎지르는 기회, 자기 삶을 살 기회,
실패·실수할 권리를 주라고 합니다.
(...) 시설에 사는 아주머니가 라면 끓이는 물을 맞추지 못할 권리,
시설에 사는 아저씨가 천 원짜리 머리핀을 살 권리, 그럴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실수·실패할 권리가 삶을 살게 하고 여유를 주며 갈 길을 밝힙니다.
- '실수·실패할 권리' 가운데
직원이 경황없는 바람에 준석 씨가 30년 생애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한 끼 식사를 마쳤습니다.
너무 아프면 웃음이 나고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는데, 지금이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게 어제오늘 일이야.’ 하듯 태연하고 무덤덤합니다. 기적 같은 순간에 말이죠.
좌충우돌하며 오래 기다렸습니다. 넉 달 보름 만입니다.
그 후, 1년쯤 드문드문하다가 멈췄습니다.
지금은 시를 쓰고, 보치아 동아리 활동과 대회에 힘쓰느라 식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 '30년 만에 내 손으로 식사' 가운데
집과 학교에서 꾸준히 물리치료하고, 재활을 위해 승마를 합니다.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가족과 여행 가고 친구와 영화 보기 위해 서입니다.
그러니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는 그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재활을 살피면 어떨까요?
다리 힘 생기고 계단 오를 수 있으면 그때 학교 가고 학원 가는 게 아니고요. 인성이 물리치료실은 학원 계단입니다.
시설 물리치료사의 현장도 학원 계단입니다.
- '재활, 일상에서 하죠' 가운데
2010년 1월 시작해서 2011년 1월까지, 일 년 만에 엄청 발전했습니다.
3년 정도 지원하니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 '위험에 처할 권리' 가운데
지금까지 프리그룹홈에서 가르치고 배운 밥 하는 기술은 무엇인가요?
‘프리그룹홈’에서 ‘밥 짓기 프로그램’으로 배운 건 ‘가상’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친절한 내비게이션을 따라간 운전자라고나 할까요. 당사자에게는 ‘실제’가 아니었던 거죠.
남편에게 밥 해주는 건 실제고요.
- '6년 못 뗀 한글 6개월 만에 정복' 가운데
“그러니 더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많이 사랑받으면 나아지지 않겠어요?
제가 보니까, 민경이는 늘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요.”
다 알고 계셨구나,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셨구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위로였고 희망이었습니다. 먹먹했습니다.
(...) 한 사람으로 족할 때가 있습니다. 머리 하는 데에 한 곳이면 충분하고, 일하는 데에 한 곳이면 충분하고,
밥 먹는 데에 한 곳이면 충분합니다. 한 사람 한 곳으로 족할 때가 있습니다.
월평빌라는, 지역사회가 시설 입주자를 얼마나 이해하고 배려하는지 분석하여 개선·개발하는 데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함께할 ‘한 사람 한 곳’을 찾는 데 집중합니다. 찾는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를 만났고 아이를 만났고, 동료와 친구를 만나듯이 말이죠.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여기 클렌첸이 있습니다.
- '울고 떼써도 함께 갈 거야' 가운데
시 설에 갔다더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잊히는 존재,
꺼내지도 끄지도 못한 채 가슴 한구석 불덩이로 남은 존재, 그런 존재로 여기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 '할머니는 이번 여행을 잊지 않겠다' 가운데
단체 나들이 가더라도 입주자와 잘 의논하여 진행하면 당사자의 나들이가 될 겁니다. 그렇게 위안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잘 여쭙고 의논해도 단체 나들이에서 받는 낯설고 불편한 시선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소그룹이나 개별로 갔을 때의 인격적인 도움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첫 단체 나들이, 그 후로는 가구별로 혹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가능하면 다섯 명 넘지 않게 갔습니다.
이제는 가구별로 가는 경우도 드뭅니다. 부모형제와 가족 나들이, 친척 집 방문, 학교 수학여행과 체험학습,
교회 수련회와 나들이, 직장 동료와 여행, 친구들과 여행 같은 입주자 저마다의 일로 다녀옵니다.
- '처음이자 마지막 단체 나들이' 가운데
백 씨 아저씨가 직장 생활하는 데는 한 사람 한 곳이면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 사장님 같은 한 분만 있어도 아저씨는 일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이런 한 분을 찾는 데 집중하면 되는 겁니다.
-'시설에서 왜 미안하다 하나' 가운데
첫댓글 '장애인 가족 돌봄 휴가 제도.'
이런 제도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월평빌라 이야기 2>는 밑줄 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밑줄 노트를 쓰려면 한 권을 그대로 필사해야 합니다.
김세진 선생님께서 읽고 밑줄 그은 곳은 어디일까? 궁금해서, 밑줄 그었다는 곳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잠시 머뭅니다. 읽고 밑줄 그으며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들른 선생님 카페, 독서노트<사람>을 다듬으셨군요. 역시! 자극받습니다. 힘을 내겠습니다. <월평빌라 이야기 3>를 이어가겠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자취' 이야기는 그 전체가 혁명입니다.
시설의 혁명입니다. 혁명 운동입니다.
'월평빌라'는 저에게 길잡이자 스승입니다. 입주자의 자취 지원을 위해 박시현소장님께 여쭈었습니다. 월평빌라를 펼치며 잘 알려 주셨습니다. 십 여 분의 답변에 지원방법이 보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박시현소장님이 입주자의 자취 지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침과 법률, 지원방안을 공부하고 연구했는지... 또한 관계 공무원과 얼마나 많은 만남과 이야기를 했는지..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좋아하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처음 시도하고 실천하는 사람의 노력과 지혜를 덥석 받아 챙기 것 같았습니다. '월평빌라'가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제주도 총회, 어느 홀, 그 엄숙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소녀같은 미소로 간절하게 방법을 찾으시던 원장님의 선한 눈빛이 생생합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은 제가 있는 곳에 살고 있는 입주자를 월평빌라의 가치를 가지고, 개별 입주자와 우리 사정에 따라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도 선배 사회사업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원장님, 월평빌라 뜻 헤아리고 살펴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장님께서 함께하시니 고맙고 힘이 납니다. 원장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