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50> 서장 (書狀)
단지 본분의 일이 드러날 뿐
빛 밝히면 어둠 절로 사라진다
“만약 제가 애초부터 뱃길을 안내하면서 진창으로 잡아끄는 것과 같은 노파선(老婆禪)을 설했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뒤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스승께서 말씀해주신 은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스승께서 나를 위하여 말씀해주시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만약 나를 위하여 말씀해주셨다면 어찌 오늘 같은 날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도리입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가르친다면, 3승12분교를 가지고 그들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단지 본분의 일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칠 뿐이다. 만약 가르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본래 배우는 사람의 근성이 느리고 둔한 때문이지,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
세간법을 분별하고 불법을 구별하려는
그러한 생각 때문에 법 제대로 못보는것
마음공부란 익숙한 것에는 생소해지고 생소한 것에는 익숙해지는 것이다. 익숙한 것은 무엇인가? 익숙한 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익혀온 세간법이다. 세간법은 모두 눈·귀·코·혀·몸·의식 등 여섯 가지 통로와 인연이 되어 나타나는 색·소리·냄새·맛·촉감·생각 등의 경계로서 서로 구별되는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 쉽게 익힐 수가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가 익혀온 일상생활의 모든 일들이 바로 이 세간법이다.
생소한 것은 무엇인가? 자성이니 도니 불성이니 불법이니 본래면목이니 하고 이름 붙인 것으로서,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의 본바탕으로서 변함없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의식하거나 확인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늘 한 몸으로서 떨어져 본 적이 없으면서도 확인하거나 의식한 적이 없으니 생소한 것이다.
마음공부란 익숙한 세간법에는 생소해지는 것이고, 생소한 불법에는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것을 흔히 ‘삿됨을 부수고 바름을 드러낸다’-파사현정(破邪顯正)-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삿됨을 부수고 바름을 드러낼 수가 있을까? 삿됨이란 본래 허망한 것으로서 부술 것이 없다. 다만 바름을 드러내기만 하면 삿됨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다. 마치 어둠은 본래 몰아낼 것이 없고, 빛을 밝히기만 하면 어둠은 저절로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세간법을 버려서 불법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밝힘으로써 세간법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다.
생소한 불법에 익숙해짐으로써 익숙한 세간법에는 저절로 생소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공부란 항상 불법을 밝히는 것이 요점이지, 세간법의 허물을 이러쿵저러쿵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지식은 늘 본분사(本分事)를 밝힐 뿐이고, 인정(人情)과 타협하여 본분사를 어그러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본분사를 밝히는 일은 어떤 것인가? ‘어떤 것인가’하고 말함에 이미 본분사가 다 드러나 있다. ‘어-’에서 ‘떤-’에서 ‘것-’에서 ‘인-’에서 ‘가-’에서 한 순간도 끊어짐이 없이 본분사가 움직여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어떤 것인가’하는 말이 불러 일으키는 어떤 허상(虛相)에 머물고 막혀서 드러난 본분사를 보지 못하는 병폐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항시 눈을 뜨고 감고하며 보는 것이 본래 자재하면서도, ‘무엇 무엇을 본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에 그 ‘무엇 무엇’을 보는 것에 막혀서, 보는 것이 자재하지 못한 것과 같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어릴 때부터 익혀온 잘못된 의식의 습관 때문에 일어난다.
세간법이 어디 있고 불법이 어디 있는가? 세간법이 바로 불법이니, 불법을 떠난 세간법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세간법을 분별하고 불법을 분별하는 그 생각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법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분별에 머물지 않으면, 모든 분별과 말과 보고 듣는 모든 경험들이 그대로 불법이니, 이 때에는 분별 속에서 분별이 없다거나 말 속에서 말이 없다거나 보고 듣는 속에서 보고 들음이 없다는 말도 모두 허물이요, 병일 뿐이다. 그러니 무슨 알 수 없는 비밀이 따로 있으리요.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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