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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12월 서울 왕십리 철공소 백열등이 졸린 눈을 게슴츠레 뜨는 시각 미친개는 마음이 바쁘다. 선반 가공 크랭크-샤프트 베어링 자리 끝 로크-너트 나사 자리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인치 나사 변환 기어가 속을 썩인다. 기어 박스를 살살 달래 절삭 치수를 끼워 넣고 구동 레버와 브레이크 페달에 전신의 혼을 불어넣어 공작물과 혼연일치 자세로 엉겨 붙는다. 숨소리마저 간섭되는 정밀가공의 진행은 때로 등줄기의 식은땀을 요구한다. 머리칼이 수직으로 일어서는 긴장감으로 부릅뜬 두 눈은 미처 감을 여유가 없다. 전기에 감전되듯이 전율이 흐르고 초정밀 공차 범위는 조금이라도 더하고 빼는 것을 용서치 않는다. 청사진 도면과 함께 주어진 시간에 온전한 부품으로 나서기만 고집하며 육신의 피를 말린다.
어렵게 작업을 마치고 퇴근을 서두르는데 을지로 6가 계림 극장 맞은편 룸살롱 영업부장 퉁가리가 허겁지겁 공장 문을 열고 달려 들어온다. 다짜고짜 미친개 손을 붙잡고 어서 급히 가자고 다그치니 영문도 모르고 주섬주섬 옷을 걸치며 황급히 골목을 빠져나간다. 대로변으로 나와 룸살롱 사계절 앞에 도착하니 건장한 체구의 청년 서넛이 입구에서 난장을 벌리고 있다. 퉁가리는 미친개한테 “오늘 신세 좀 지자 뒤를 부탁한다.” 짧은소리와 함께 서너 명의 사내들 틈으로 쏜살같이 뛰어든다. 복판의 한 명을 이단 무릎 차기로 턱을 찍어 쓰러트리고 몽둥이를 빼앗아 곁에 있던 사람의 정수리를 도끼 찍기로 가늠하여 수직으로 내려친다. 졸지에 기습당한 무리는 순간 당황하여 주춤거리는데 네온 불빛에 번뜩이며 눈가에 스치는 물건은 분명 칼이다.
순간 미친개는 뛰어오르며 칼을 쥔 사내의 사타구니를 걷어찬 후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틈을 이용하여 수도로 울대(목덜미)를 바람같이 가른다. 비틀거리는 상대가 균형을 잡기 전에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어 차니 맥없이 엎어진다. 땅에 떨어진 생선회칼을 주워 들고 널브러진 사람들을 향해 “도대체 무슨 일인데 장사 하는데 시비를 하느냐”고 호통치며 퉁가리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본다. 퉁가리는 “저놈들이 가게의 아가씨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고 며칠 전부터 작업을 시작했으며 상황이 수월치 않으니 이제 가게 문 앞에 와서 지겟다리를 괴고 있다. 그래도 안 되니 가게 안으로 들어와 술, 안주를 주문한 후 아가씨를 불러 옆에 앉혀 놓고 공갈을 치며 영업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소란을 피우니 참고 참다 오늘 전쟁이 난 것이다.”라고 한다.
기선을 제압하고 조금 여유가 생긴 퉁가리는 빌빌대는 상대를 향해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라고 엄포를 놓는다. 곁에 있던 마담 흑진주 누나는 미친개를 보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옷매무새를 고쳐 준다. “여기 일은 이제 진정되었고 우리가 적당히 마무리할 테니 어서 집으로 가라며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 택시를 타라”고 지폐 몇 장을 준다. 괜찮다고 해도 자꾸만 채근 대는 성의를 마지못해 쑥스럽게 받아 들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골목에서 두 명이 칼을 휘두르며 다 죽여! 하면서 돌진해 온다. 뒤섞인 서로의 몸짓에 치고받으며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두 놈은 쭉 뻗은 개구리가 되었다. 퉁가리는 허벅지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미친개는 등과 어깨 밑 날개 죽지가 자꾸만 뜨끔거린다. 그런데 널브러진 화상 중에서 한 명의 상태가 이상하여 자세히 들춰보니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호흡이 곤란한 상태다.
“야, 퉁가리 이 건 큰일이다, 어쩌자고 사람한테 날림이(칼) 을 먹였냐? 암만해도 사건 될 것 같으니 각자 알아서 찢어지자. 그리고 급히 병원에 보내야 할 것 같으니 진주 누나가 경찰에 신고하십시오. 저는 막차 끊어지기 전에 자리 뜨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공장 사장님한테 당분간 출근 못 한다고 연락해 주십시오. 뒷일 부탁드리고 저는 그만 가겠습니다”. 진주 누나는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서 서둘러 약간의 돈과 쪽지를 미친개에게 주며 “지금 성북역으로 가라. 아직 춘천 가는 열차 시간이 남아있으니 경춘선을 타고 강촌이나 남춘천에서 내렸다가 시간 맞춰 홍천으로 가거라. 홍천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가서 내가 쪽지에 적어준 사람하고 연락하면 당분간 지낼 수 있을 테니 서둘러 움직이도록 해라. 여기는 내가 알아서 수습할 테니 염려 말고 퉁가리하고도 연락하지 말고 당분간 쥐 죽은 듯이 지내고 있어라. 내가 나중에 연락하던지 큰형님을 보낼 테니까.”
미친개는 서둘러 성북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막차는 떠나지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주위를 대충 훑어보고 근처 식당에서 김밥 두 덩어리와 사이다 한 병을 산 후 일부러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기차에 올랐다. 열차가 대성리를 지날 때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디까지 갈 것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춘천은 아무래도 도시라 사람이 많은 것이 안 좋아 고생되더라도 강촌에서 내리기로 하였다. 강촌에서 내려 근처 산에서 밤을 새우고 홍천으로 넘어가던지 밤길을 이용해 팔봉산을 끼고 흐르는 홍천강을 따라 산 몇 개만 넘으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일은 홍천에 도착한 후에 생각하기로 하고 잠시 안정을 취하려니 어깨 뒤가 욱신거리며 거동하기가 갈수록 불편해지는 느낌이고 눈꺼풀은 한참 무거워졌다.
강촌역에 내려 먹다 남은 김밥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잰걸음으로 개찰구를 빠져나온 후 우측으로 꺾어진 길을 향하여 부지런히 걷기 시작하였다. 아마 보름이 가까운지 하늘에는 절반을 넘어선 하얀 달이 풍만한 자태로 흐르고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밤바람이 초겨울 날씨답지 않게 매운맛을 보인다. 듬성듬성 어둠을 밝히는 민가의 불빛을 뒤로 하고 야트막한 산등성이 하나를 넘으니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위의 모든 것이 칠흑으로 변하여 잠시 소름 끼치게 만든다.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 보고 큰기침을 두,세 번 한 후 호흡을 정돈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알 수 없는 공포가 가끔 눈앞에 섰다가 사라지고 바람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바짝 마른 나무와 풀잎을 건드려 신경 거스르는 소리로 걸음을 쫓아다닌다.
조급한 마음이니 주위의 사물을 관찰할 여유도 없으며 엄습하는 추위 때문에 머릿속은 점점 하얗게 변해만 간다. 아랫배에 힘을 주어 보지만 이내 수렁에서 허우적거릴 뿐 꺼져가는 배 고래는 부풀어 오를 기미가 없고 다리도 욱신거리니 움직이기 힘들다. 문득 산 옆에 희미하게 들어선 원두막이 보이니 별안간 반갑고 주위에 과일나무가 없는 것을 보니 아마 참외나 수박밭이었는가보다. 한쪽으로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겨울바람과 맞짱 까는 자세로 뱉어내니 속이 한결 후련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검은 천막이 너덜거리고 듬성듬성 비닐과 노끈이 달랑거리며 제멋대로 춤사위를 벌린다. 얼굴과 머리를 보온하려는 마음을 먹고 비닐을 뜯어 머리에서부터 얼굴 전체를 뒤집어쓰듯 감고 눈과 콧구멍만 살짝 뚫으니 추위가 훨씬 덜하다. 내친김에 천막을 뜯어 얼기설기 고깔모자 형태로 접어 뒤집어쓰고 노끈으로 엮어 턱에 걸어 잡아당기니 훌륭한 보온 덮개가 만들어진다.
일단의 모자를 대충 만들어 쓰니 절로 기운이 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라 기분도 한결 흥겨움에 고조되어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원두막 사다리를 풀어 지팡이 대용으로 손에 쥔 작대기를 휘휘 내두르며 곁에 간섭되는 것들을 툭툭 쳐내니 외로운 밤이나마 제법 나름대로 운치가 배어난다. 큰 산에 올라 정상 근처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닌 밤중 홀로 신선 된 기분이다. 적막한 산속에 어수룩한 채비 갖춰 산행하는 것도 인생의 고행이라 생각하니 별반 외로움이 없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 외로운 길로 하염없이 드나드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고 고독한 처지에서도 기쁨의 희열이 출렁거림을 맛볼 수 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계곡 옆으로 숲을 헤치고 들어서니 야트막한 개울과 돌을 쌓아서 조금의 물을 가두어 둔 웅덩이가 달빛에 맑게 비친다.
아무래도 열차에서 사이다 한 병을 다 마신 뒤라 입 안이 달았었는데 맑은 물을 보니 갈증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조심스레 웅덩이 근처로 다가서니 물속에 잠긴 달은 점잖은 모습 흐트러짐 없으나 천막 모자에 비닐을 덮어쓴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마귀가 내려온 모습이요 지상에서 뒤바뀐 걸뱅이 다름없으니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넋 나간 사람처럼 웃다가 자세를 바꿔 가만히 물가에 앉아 살며시 손바닥을 모아 움켜쥐고 입에 갖다 대니 온몸에 경련이 일고 오장이 다 얼어붙는 듯 차가워 몸서리를 친다. 자연의 힘은 위대한 것이라 조금의 물로도 이렇듯 사람이 순식간 자지러질 수 있으며 육신에 정기를 불어 넣는 오묘한 힘에 그만 정신을 빼앗겨 털썩 주저앉고 만다. 마저 몇 모금을 손바닥에 모아 마신 뒤 담배 연기 빌려 시린 하늘에 그림을 그리니 알 수 없는 형상 피어나는데 퍼져가는 그림자는 천사인가 사람 넋인가 자못 궁금하다.
잠시 다른 생각에 도취 되었음을 자각하고 서서히 몸을 추슬러 개울을 빠져나온다. 가파른 길을 굽이굽이 돌아내려 오니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군데군데 둔덕이 있으며 수숫대를 쌓아둔 것과 밭머리 가장자리에 돌을 쌓아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천천히 풍경을 더듬어 익히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밭 가운데 있는 것이 보이고 옆으로 조그마한 헛간 비슷한 게 눈에 띄니 느닷없이 반갑다.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이고 발뒤꿈치를 세워 서서히 접근하여 기척의 낌새를 살펴보니 모두는 잠들은 듯하다. 담장 없이 조그맣게 지은 것을 보니 전형적인 농가주택이고 식구가 단출하며 뒤 켠 장독대에 항아리가 많은 것을 보니 어려운 살림은 아닌듯하다. 봉긋하고 작은 둔덕에 짚으로 조그만 입구를 막아놓은 것은 무 구덩이가 분명하며 다닥다닥 붙은 몇 개의 항아리 뚜껑은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을 서둘러 한 것 같다. 대충 풍기는 여운으로 미루어 인심이 사나운 사람들은 아닌듯하니 다행한 마음에 안도의 숨을 쉬어 본다.
헛간의 문은 닫혀 있으나 가마니를 넓게 펼쳐 비료 포대를 덧씌우고 싸리나무에 지탱하여 엮어 늘어트려 놓았으니 살며시 젖히고 들어가면 쉬울듯하다. 바짝 엎드려 자세를 낮춘 후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네발짐승 자세를 취하여 머리를 들이밀고 기어드니 온기가 충만하여 천국에 들어선 기분이다. 문득 기척이 있어 자세히 보니 파란 광채가 얕은 허공에 점점이 박히고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리니 강아지가 있음을 알겠다. 태연히 라이터 불을 켜고 살펴보니 커다란 황구와 강아지 3마리가 올망졸망 붙어있다. “누렁아, 부탁이니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해라” 운을 띄우고 먹다 남은 김밥을 하나 던져주니 한입에 덥석 받아먹는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더 내놓으라고 보채니 긴박한 상황에 몽땅 꺼내어 발 앞에 놓으니 꼬리를 살랑거리며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운다. 강아지 뒤편으로 짚을 켜켜이 쌓아두었고 누렁이가 가장자리를 움푹 파서 보금자리 만들고 새끼들을 키우는 아담한 장소는 하룻밤 지새우기는 더없이 훌륭한 곳이다.
짚 더미 속에 누우니 구름 위에 뜬 기분이고 긴장이 풀려 늘어지는 몸은 가깝고 아득한 꿈나라를 찾아 여정을 챙긴다. 누렁이 목을 살며시 끌어안고 잠을 청하니 따스한 온기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고맙다 누렁아, 오늘 신세 좀 지자 나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지금 내 처지가 너만 못하니 어떡하겠니? 알고 보면 나도 너와 같은 짐승이고 창피한 이야기지만 온전한 구실 못하여 명칭 앞에 미친 것으로 표시하고 산다. 욕으로 따지면 너무 불쌍한 꼴이 되니 피차 깊이 들어갈 것 없이 대충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자. 고마운 은혜는 반드시 갚아 줄 테니 나중에 웃으며 보자”. 정신없이 꿈나라 헤매다 한기가 느껴져 눈을 뜨니 헛간 문이 살짝 열려있고 눈 부신 빛이 들어오며 누렁이가 보이지 않는다. 천근 무게로 가라앉은 몸을 일으켜 밖의 동정을 살피니 누렁이가 아침밥을 먹고 있다. 순간 뱃속에서 시장기가 요동치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게걸스레 밥을 먹는 누렁이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니 으르렁거리며 눈을 흘긴다. 이런 치사하고 얄궂은 경우를 봤나 비록 낡은 헛간이었지만 서로 몸을 의지하고 하룻밤 동침한 사이인데 그까짓 누룽지 조금 나눠 먹는다고 탈 날 것 없다, 가만히 작대기로 밥그릇을 둘러 엎으니 순간 의아해서 쳐다본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시침 뚝 떼고 쏟아진 먹거리를 반으로 갈라놓고 한쪽으로 비켜서서 주워 먹으니 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내 수긍하고 제 앞에 있는 것을 먹기 바쁘다. 일단 부족한 대로 요기를 하니 다시 졸리는 기운이 엄습하여 조용히 헛간으로 들어와 짚 더미 큰 것을 풀어 제대로 이불을 만들어 덮고 잠을 청한다. 자고 나서 피로가 풀리면 다음 일을 결정하도록 하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하여 눈을 감는다.
한참 자고 일어나니 날이 활짝 개어 밖의 따스한 기운이 들어와 한결 몸이 가뿐해지고 기분도 덩달아 상쾌해진다. 등 쪽 어깻죽지가 아픈 것 빼고는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다. 시장기가 느껴지니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몸을 털고 일어나 살며시 바깥의 동정을 살펴보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고 집안이 고요하다. 거적문을 가만히 열고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기어 나온 후 사방을 둘러보니 어제 걸어 들어왔던 길 뒤로 울창한 숲이 있으며 조그만 골짜기가 있는 것이 보인다. 다시 한번 세심히 주위 환경을 훑어보고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다. 달리기 선수처럼 팔과 작대기를 휘두르며 발이 보이지 않게 숲을 향하여 혼이 달아나도록 질주한다. 숨이 턱에 찰 즈음 개울이 보이니 달리던 가속으로 날아 개울을 건너뛰고 이내 숲속으로 들어서 재빠르게 상체를 숙인 후 서둘러 자취를 숨긴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머리를 살짝 들어 집 쪽을 향하여 상황을 재차 확인해본다.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라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개울가로 조심조심 들어선다.
천막 모자와 비닐 포장을 벗어 한쪽에 가지런히 놓고 세수를 한 다음 입을 가시고 몇 모금 물을 떠서 마시니 제대로 정신이 찾아 들어온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런 허허벌판에 먹을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음식점이나 가게가 어디에 있을 것인지 가늠하니 생각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고 뒤죽박죽 섞여 필름이 안 돌아간다. 순간 느닷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소리 나는 곳을 살피니 숲속에서 으르렁거리며 짖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렁이가 맞는 것 같다. 예감이 심상치 않아 작대기를 꼬나들고 숲을 헤쳐 들어가니 누렁이가 반기며 달려와 꼬리를 바짝 세우고 머리를 흔들며 앞발로 땅을 훔치며 호들갑 떤다. “누렁아 뭔 얘기인지 알았으니 그만하고 안내해라 도대체 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러냐?”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고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며 달래고 뒤를 따라가니 토끼와 매가 함께 덫에 걸려 요지부동으로 있다가 사나운 몸짓으로 발버둥 친다.
나무 사이에 올무를 걸고 주위에 덫을 놓아 꼼짝없이 걸려들게 만든 것이 있다. 올무에 걸린 토끼가 궁금하여 매가 구경하며 건들다 자칫 실수하여 옆의 덫에 다리가 묶여 마치 우화 책에 나오는 모양과 비슷한 형상이다. 조심스레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니 매는 살기가 희박하고 다행히 토끼는 허리 쪽에 감긴 삐삐선 을 풀어주면 생명에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나무 둥지에 엮은 삐삐선 을 풀어 올무를 제거하고 토끼를 풀어준다. 버둥거리는 매를 작대기로 내리쳐 단번에 목숨을 끊은 뒤 누렁이를 데리고 조금 더 깊은 계곡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무래도 불을 피우면 연기가 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황이 꼬일 수도 있으니 섣불리 행동을 취하기가 몹시 망설여지는 순간이다. 머릿속으로 매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을 그리며 이리저리 배회하였으나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먹긴 먹어야 하는데.
첫댓글 역시 이 작가님답게 상황 전개가 빠르고 스릴 있군요.
미친개가 매를 어떻게 잡아 먹을까 궁금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매는 누렁이에게 구워오라면 되겠네요.
누렁이가 다 먹어치우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