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로의 산야초 이야기] 개망초
시골 묵정밭이 개망초로 뒤덮였습니다.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는,쇠락의 한 풍경으로 비쳐집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의 패망을 한탄하는 길재의 신음소리가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습니다.
‘춘망(春望)’에서 드러난 두보의 속마음도 헛헛하긴 마찬가지.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그냥 있어/성에는 봄이 오고 초목이 우거지는구나”.
개망초 묵정밭에서 전해지는 ‘존재의 덧없음’입니다.
묵정밭과 쇠락,그리고 개망초!
망(亡)자가 주는 느낌이 참으로 고약합니다.하필이면 이름이 망초(亡草)일까요.
이 식물의 귀화시기를 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고개가 끄덕여지지요.
개망초는 1910년 한일합방 무렵,미국에서 수입된 철도 침목에 붙어 귀화한 식물입니다.
당시 조선인들은 철도를 따라 무리지어 꽃을 피우는 식물을 보고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려고 씨앗을 퍼트리고 있다”며 망국초(亡國草)라 불렀습니다.
결국 식물의 이름은 망초(亡草)로 굳어졌고,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면 어디서나 무리지어 번성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귀화,억지스러운(?) 이름을 얻긴 했지만 민초들과는 금방 친숙해졌습니다.
춘궁기에는 허기를 달래는 나물과 국거리로,아플 때는 약재로 사용됐습니다.한방에서는 비봉(飛蓬)으로
명명돼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리며,가려움증을 멎게 하는’ 용도로,민간에서는 해독과 소화를 돕는다
하여 장염과 설사,감기치료제로 쓰였지요.현대에 이르러서는 개망초에서 추출한 폴리페놀 성분으로
기능성화장품을 만들고,지난 2018년엔 국내 연구진이 에센셜 오일을 분리해 보톡스의 내성과 신경독성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을 텄습니다.
북미에서 건너와 들불처럼 번진 개망초는 더 이상 ‘망할 놈의 잡초’가 아닙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인간사회에 유용한 식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비록 태초부터 이 땅에서 자란
식물은 아니지만 망국초,왜풀,돌잔꽃,계란꽃으로 이름을 달리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농부가 떠난 묵정밭을 이렇게 쉽게 내어 주다니….개망초가 아무리 유용
하고 꽃이 예뻐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