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326) 숯가마
나무꾼 고 총각과 오 서방은 앞뒷집에 사는 불알친구다.
어느 날 밤, 오 서방이 고 총각을 데리고 주막에 갔다.
탁배기잔이 몇 순배 돌고 나서 오 서방이 넌지시 말했다.
“너한테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돈 오백냥, 두달만 빌려다오.
저잣거리에 목 좋은 가게가 나왔어. 이걸 놓치면….”
여동생 혼수자금 감춰놓은 것을 오 서방이 냄새를 맡은 것이다.
혼기가 꽉 찬 여동생이 포목점에서 바느질거리를 받아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고
어미는 남의 집 큰일 뒤치다꺼리로, 고 총각과 막냇동생은 나무를 해서 장작을
팔아 몇년 동안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강 건너 중농 집안의 맏아들과 이듬해 춘삼월 날짜까지 잡아놓았다.
오 서방이 고 총각을 데리고 제집으로 가 사랑방에 밀어 넣었다.
오 서방 아버지 오 생원이 장죽을 물고 헛기침을 해댔다.
“살다보면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여.”
오 생원이 뭐라고 우물거리더니 지필묵을 꺼내 한참 글을 쓴다.
그러고서 고 총각의 엄지에 인주를 박더니 종이에 지장을 찍고 또 한장에도 지장을 찍어
한장 접은 다음 고 총각에게 줬다.
그리고 소죽 솥에 삶은 것 같은 누런 종이를 고 총각에게 건넸다.
까막눈 고 총각이 뭐가 뭔지 알 턱이 없었다.
사랑방 문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오 서방이
“우리 아버지가 보증 선 거야. 오백냥만 빌려줘. 딱 두달.”
꺼림칙했지만 혼례날짜가 아직도 다섯달이 남아 있어 고 총각은
꼭꼭 숨겨둔 혼수자금을 꺼내서 오 서방에게 건네줬다.
시월상달이 지나 집집이 겨울준비를 할 때라 고 총각과 남동생은 정신없이 바빴다.
동짓달이 되어서 두달이 지났음을 알았다.
오 서방을 찾았지만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보름이 넘었다는 대답만 들었다.
하여 오 생원을 찾았다.
“아버님, 두달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빌려드린 오백냥, 돌려주십사 하고요.”
“무슨 소리야? 돈을 빌리다니? 야, 이놈아. 산을 팔고 산값을 받았지 언제 돈을 빌렸어?
이 매매계약서를 한번 봐!”
옥신각신했지만, 평행선이었다.
고 총각은 울부짖었지만 소용없었다.
이튿날, 그때 손도장을 찍었던 종이를 들고 저잣거리로 나가 대서방(代書房)을 찾아 영감님께
보였더니 하는 말씀이
“쯧쯧~ 세상에. 단돈 백냥에도 살 사람이 없는 그 악산을 오백냥에 팔아넘기다니~”
관가에 찾아가 하소연을 해도 오 생원으로부터 백냥을 받아먹은 이방한테 호통만 맞았다.
한달 두달 설이 지나자 매파가 울상이 되어 찾아왔다.
강 건너 신랑감하고는 그렇게 파혼이 되었다.
열아홉살 고 총각 여동생은 파혼을 당했음에도 오히려 생글생글 웃으며
“오빠, 그 산이 악산이지만 참나무가 들어찼다고요.
힘들게 나무해서 내다 팔지 말고 숯을 구워냅시다.”
술독에 빠져서 지내던 고 총각은 여동생이 자신의 파혼을 대수롭잖게 여기고
웃는 통에 술이 확 깼다.
숯!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띄었다.
마음을 다잡은 고 총각은 사기 당해 떠안은 그 산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을 데리고 가 숯가마를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 살아 있을 때 숯가마를 했었다.
삼년 동안 앓아누웠다가 돌아가시며 숯가마도 남의 손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삼남매는 움막을 짓고 거기서 자며 숯가마 짓는 데 매달렸다.
힘든 줄도 몰랐다.
어머니는 밥을 해서 날랐다.
숯가마가 마무리되자 참나무를 빼곡히 채우고 고 총각과 남동생이 돼지머리를 놓고 제를 올렸다.
남동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불을 댕기고 입구를 싸 발랐다.
이레 동안 아궁이에 시뻘건 불길을 넣었다.
모래를 덮어 보석 같은 백탄이 나왔다.
온 식구들이 백탄을 쓰다듬으며 들떠 있는데 고 총각이 숯가마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바닥만 한 번쩍이는 붉은빛 물체! 여기저기! 가마 천정에도!
당나귀 한마리가 자루 두개를 등에 걸쳐서 싣고 저잣거리에 나타났다.
고삐를 잡은 고 총각 막냇동생은 싱글벙글 웃고 나귀 뒤엔 두손을 뒷짐 진 고 총각이 따라갔다.
그들은 유기공방으로 들어갔다가 돈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구리였다.
장마만 지면 떠내려가는 나무다리 대신 이 고을 숙원사업인 돌다리를 놓다가
자금이 떨어져 공사도 중단한 채 시름에 젖은 사또에게 고 총각이 찾아가
삼천냥을 내놓아 사또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자기 볼을 꼬집어봤다.
고 총각은 열두칸 기와집을 짓기 시작했다.
오 생원이 드러누웠다.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백약을 써도 차도가 없었다.
고 총각은 사흘이 멀다 하고 오 생원 문병을 갔다.
첫댓글 10일 목요일 전국에 구름이 다소 끼는
가운데 서쪽 지방을 중심으로는 비가
조금 내리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