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염쟁이와 로망쟁이
글/은이
나는 금년에 칠십에 나는 로친네웨다. 전에 젊었을때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께서 아이처럼 자주 노염을 내신다고 로망이라고 질색을 했더니만 내가 그나이에 이르고 보니 노여운 일이 비일비재로 생기면서 그이들의 마음이 헤아려 질때가 많구먼유.
그날은 입맛이 떨어져서 아침부터 굶었어유. 괴기 썰썰이가 난거지유.
“야, 내가 썰썰하니께루 돼지괴기 둬근 사다가 삶아다구.”라고 하기는 차마 안됐고 그래서 몇끼 굶으면 배고파서라두 입맛이 당기겠지 생각했어유. 그렇게 저녁까지 굶고 있으려니까 배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한테 밥먹을 생각은 없고 대문만 자꾸 내다 보이지 않겠수? 말은 입밖애 안냈지만 눈치빠른 며느리가 혹 고기근이라두 사가지고 들어 올것 같아서 말이웨다. 과연 며느린 돼지고기 사들고 왔수다.
“어머님께서 입맛이 떨어져 하시기에 물만두나 빚으려구요.”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물만두라는 말에 섭섭한 생각이 확 들었어유. 내생각 같아선 시래기 장국을 끓여 고깃점을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국그릇에 둥둥 띄워 이밥을 푹푹 말아서, 배추김치를 쭉쭉 찢어 얹어 먹었으면 간단하고도 맛있을것 같은데 지금은 쩍하면 물만두요 초채(볶음채)요 하니 원 시끄럽고 복잡해서. 속으로는 그리 생각 되면서도 며느리가 기어이 물만두를 빚겠다기에 막지는 않았수다. 또 잔소리를 한달까봐서유.
고기를 탕치구 밀가루를 이겨서 만두를 다 빚고 나니 저녁 여덟시가 다 되였어유. 이제야 먹게 됐나부다 여겼더니 삶겠다구 주방에 나간 물만두가 들어와야 어쩌지유? 기다리다 못해 나가보니 어이쿠 기가차서 죄꼬만 냄비에다 물끓이면서 만두를 삶는데 그것마저 삶아내는 족족 손주놈들이 다 주어먹구 다시 물끓기를 기다리는 참이였어유. 쯧쯧, 전에 우린 윗어른 먼저 아이들이 숟가락을 들면 큰일 난다고 손을 쳐서 꾸짖었건만 아무리 세상이 바뀌였기루 아침부터 굶은 늙은이를 제쳐놓고 제 새끼 배부터 불리다니?
먼저 한그릇 담아서 애들에게
“얘들아 할머니께서 시장해 하신다. 먼저 갖다 드리구 너들이 먹으렴.”라고 하면 얼마나 좋수? 그따위로 본데 없이 키워놓구 저들은 늙지두 않을라우? 어찌두 노여웠던지 난 웃방에 들어오자 자리펴구 누워 버렸수다.
(음, 원래는 제 새끼들을 위해 기어이 물만두를 빚자구 한게로구나. 흥, 그래두 듣기는 좋다 어머닐 위해 어쩌구 저쩌구….)
한참 지나서 며느리가 들어 왔수다.
“안 먹는다 안 먹어! 너들끼리 마저 다 처 먹어라!”
웬 벼락이냐 며느린 깜짝 놀라 멍해 지더니 훌쩍 거리는 것이였어유. 사실 그만하면 지금 사람들치고 나무릴데 없이 착한 며느리지유. 하루가 멀다하게 노염내는 이 늙은걸 모시면서 억울한 일두 많겠지만 언제 한번 말대꾸 하는 일두 없다우. 그래서 성을 한바탕 낸후에 내가 왜 착한 며느리한테 그리 난감하게 굴었을까 후회두 많이 했지만 그날은 도저히 용서할수 없으리만치 노엽더란 말이우다.
또 한번은 개학준비 한답시고 아들 며느린 애들을 데리고 시내에 갔수다. 한데 늦은 아침쯤해서 나간 것들이 정심때가 썩 지나두룩 돌아오지 않더란 말이유. 난 늙은것이 공연히 괴벽을 자주 부리면서 너무 오래 살아서 무슨 살이라두(사고) 치는 것 같이 생각되면서 못된 궁리만 들지 않겠수?
(어느때 시내에 나가 보니까 차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다 어리뻥뻥하던데 이것들 대체 웬일이누?)난 당금 무슨 끔찍한 소리라두 들릴것 같아 안절부절 못하구 대문밖에서 오락가락 했다우.
해가 서쪽에 기울때에야 저만치에서 작은 손주놈이 쪼르르 앞장서 달려오고 그뒤로 다섯 식구가 아무탈 없이 웃고 떠들면서 돌아오는 것이였수다. 한시름 놓이면서도 입으론 또 잔사설이 나갑디다.
“허이구. 이것들아 어쩌면 그리두 사람속을 태워주냐?”
“할머니, 우린 오늘 아주 재밌게 놀았어요. 공원에 가서 놀이 기차도 타고 비행기도 탔구요. 또 동물원에 가서 범이랑 곰이랑 원숭이두 봤습니다. .정심은 식당에서 먹었고요, 또 시장을 돌땐 양고기 뀀이랑 탕후루랑 사먹었어요. 이봐요. 배가 이렇게 불러서 전 저녁두 안 먹을래요.” 작은 손주놈은 외투깃을 벌리고 배까지 두드려 보입디다. 그리고는 날 이끌고 방에 들어 오더니 물건 꾸러미를 헤쳐놓구 새로산 물건들을 자랑하는 거였어유. 연필, 책, 샤쯔, 런닝그……애들 개학 준비한다구 나가더니 공원놀이, 식당놀이에 어른들의 신발 양말따위까지 온식구의 물건을 골고루 다 사면서 글쎄 이 늙은이한테만은 손수건 하나 사탕 한알 사오지 않았어유.(인젠 쓸모없는 인간이라구 영 헴에서두 빼놓는구나) 싶어 지면서 설음이 납디다요. 저들끼리 별일같아 실컷 돌아 다니면서 잘놀구 있은건데 멍청스레 몹쓸 궁리까지 하면서 진종일 속태운 걸 생각하니 더구나 기막히더란 말이우. 내가 먹지 못하구 입지 못해서 그런다구 생각지들 마시우. 하다못해 사탕 한알이라두 거천만 해주문 만족이겠는데유. 며느린 남의 자식이니 그만하문 무던한 셈이라 제 아들 일이 더 노여웠어유. 늙은 에밀 집에 혼자 두구 식당놀이 공원놀이 맘편히 했다는것두 그렇지만,
“우리끼리 맛있는걸 먹구 빈손에 어찌 어머닐 보겠나? 어머니 즐기시는 쇠고기라두 둬근 떠가지구 들어 갑시다.”한다문 남편말을 감히 받대할 며느리두 아닐거구 애들께두 좋은 본을 보여 줄게 아니우?
그렇다구 저절루 주착없이 “어째 나한테는 아무것두 사오지 않았느냐?” 그렇게 야단칠수도 없는일이였수. 그런다문 아마두 진짜 로망쟁이루 몰릴것 같으니까 말이여유. 뻔한 일인데 말할수 없으니 서러움이 더해 지면서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수다.
그통에 금방까지두 기뻐하던 식구들의 얼굴에서 화기가 싹 사라지구 저마다 내 눈치를 살피는게 아니겠수? 그러니까 또(이제 내가 집식구들의 부담거리로 되였구나) 하는 생각으루 더구나 괴로워 났어유.
“에구 이늙은게 쓸모두 없이 왜 이리 오래는 사는지 날래 없어져야 너들두 시름놓고 살겠는데.”전에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께서 “로망” 나셨을때 그처럼 귀에 거슬리던 말이 내입에서 저절루 나왔어유.
오랜만에 큰딸집에 놀러 가게 됐수다. 사위가 일보러 왔다가 자꾸 가자기에 따라 간거유. 전에 내가 젊었을 적에 장가와서 내 사랑을 무던히 받았던 사위였수. 그래서 장모한테두 퍼그나 끔찍히 굴던 사위웨다. 한때는 내가 아들을 제쳐놓구 사위를 믿겠다구까지 했었으니까 더 말해 뭘 하겠수?
한데 딸집에 와보니까 사위가 날 괄시한다구 여겨져서 못견디겠더란 말이우다.
원래 믿으려구까지 했던 사위라구 전에 내가 목숨처럼 아끼던 대부분 세간 기물들을 아들도 아닌 큰 딸한테 많이 줬었는데 이번에 와보니 글쎄 그것들이 기막힌 천대를 받구 있더란 말이우다.
멀쩡한 벽시계를 석탄 창고안에 처박아 두고 쓰잉중인지 사용중인지 한걸 사걸어 놓구 그고운 오지독들은 몽땅 밑굽에 구멍내서 화분을 심구 나무 궤짝이나마 내가 시집올때 가지고 온 것이라 보배처럼 건사해서 반들반들 했었는데 모두 바깥에 들어내 놓고 비바람을 맞혀놔서 시꺼멓게 썩었습디다요. 광복나던 해에 백미 다섯말을 주고 샀던 미국제 재봉침은 작은 고장이 난걸 수리하지 않구 내버려 둬서 돌리지 못한지 몇년 됐다누만유. 아무렴 전에 못살던 때와 달라 그것들이 쓸모 없어지니 귀중할리 없겠지만 나에겐 목숨같이 귀중했던 물건들이여서 내가 비맞고 버림 받는것 같아 가슴이 몹시 쓰려났어유.
(내가 죽기두 전에 저것들을 저렇게 굴다니 이런 괄시가 어디있누?) 기분이 많이 안 좋았지유. 그래서 저두 모르게 또 잔소리 했어유.
“에이구 희구해두 않는걸 주기는 왜 줬던고? 저 물건들 꼴보기 싫다. 두드려 마사서 불질러 버려라.”
“참, 어머이두.희구해 하문 내내 안고 있겠습니까? 그깟 물건들이 몇푼어치 된다구……….”
전에는 그렇게 곱던 사위가 이렇게 날 기채웁니다. 그것이 지금은 몇푼 안가는 것이라두 전에는 굉장히 훌륭한 것들이 아니였겠수? 그래서 그것들을 사위한테 줄때까지만 해두 좋은 물건들이라구 줬구 사위도 기뻐하며 가진건데 지금 잘 산다구 근본을 잊구 그렇게 말하니 더 이상 괄시가 없을 것같이 여겨지더라구요.
(전에 귀중하던 물건두 다 귀찮아 하는 사람이 사랑 받던때와 달라서 잔싸기 자꾸하는 헌 로친네가 고울리 있을까?) 그래두 아직은 분수가 똑똑한 관계루( 그것두 내생각이지유. 남들은 진작에 로망났다구 보는지두 모르는데 말이유.)간곳마다 자꾸 노염내기두 뭣해서 겉으루는 내색을 안냈수다. 해두 속이 괴로우니까 며칠 입맛이 다 떨어 집디다요. 맘 같아선 당장 떠나버리구 싶지만 그런대루 한달은 채워야 겠다구 여긴거쥬. 늙은이들의 행동은 (더구나 내 나이의)쩍하면 로망으로 취급되기 쉬우니까 듬직하게 보이려는 것이였어유.
한데 낮이면 다들 일보러 가구 혼자 빈집을 지키구 앉았자니 답답하더란 말이우다. 그래서 마실돌이나 나가려구 전에 사위네 이웃에 있던 동갑로친네 안부를 물었지요.
“이사람 사위. 그 쌍가매 할미는 접때 풍 맞았다더니 아직 살아 있는가?”
헌데 사위의 대답이 굉장 했어유.
“예 아직두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왜 그리두 오래 사는지?”
실루 들었던 정이 뚝 떨어지는 대답이였수다. “자네 그게 무슨 대답인가? 자네를 애먹이지 않는 남의 로친네가 죽지 않는게 그리두 답답한가? 아니면 이 장모가 너무 오래 사는게 역증이 나서 하는 소린가?”이런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 온걸 참느라니 막 고기가 떨립디다유. 그래서
“늙으문 그저 일찌감치 죽어사. 오래사는 것두 죄야 죄지. 암 죄구말구. 온 이런 괄시가 어디 있누?” 하고 혼자 소리로 궁시렁거렸수다.
다음날 나는 극구 말리는 사위딸을 뿌리치구 떠나 버렸수. 떠난담에야 로망이라든 말든 다시 사위 얼굴 마주하기가 딱 싫어졌던거예유.
결국 마음만은 낡지 않아서 로망소리를 듣지 말자구 퍼그나 애쓰는 나지만두 간곳마다 노염을 잘내니까 로망소리를 면치 못할줄 알고 있수다. 로망났다 해두 믿을 나이가 됐으니 안타까워두 별수 없지유.
그래두 나절로는 기어이 분수가 똑똑한것 같아서 젊은이들께 한마디 권고하구 싶구먼유.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구 어른이 다시 늙은이루 되는 법이니까 당신들두 조만간에 늙어 질게 아니겠수? 그런즉 늙은이가 노염낸다구 무턱대구 다 로망이라구만 말구 처지를 바꾸어 놓구 일마다 곰곰히 생각해 보시우. 그러면 “노염”속에서 꼭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거우다.
물론 허다한 노염쟁이 로인들 가운데 진짜 로망쟁이도 더러 섞여 있을수 있을거지만(자연법칙이니까유)당신들이 로망쟁이루 보구있는 대부분은 늙은이의 자존심은 좀 과하더라도, 아직까지 분수가 있는 억울한 이들이라는 것을 말하구 싶어유.
#“연변녀성” 1993년 12기 21페지에 실렸음#
첫댓글 로인의 입을 통하여 전달하는법으로 로인들의 맘을 반영하였네요.젊은이들도 그나이들면 다 같은 맘이란것을 잘 읽고 늙은부모말을 로망이라보지 말고 위치를 바꾸어서 생각하고 일들을 처사하면 로인들 좋아 하겠습니다, 잼있는글 잘 읽었습니다,생활토장맛나는 글입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어머니들의 마음을 너무 잘 꼬집어낸 글입니다. 어찌 이리두 신통한 글을 쓰실수가 있는지 참말로 탄복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좋은 글 많이 기대됩니다.
저의 글에 공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은이님의 글솜씨가 좋네요. 부러워요. 많이 배우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님의 글 솜씨도 이만저만 아니신데 뭘 그러십니까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안늙죠.실감나는 좋은글 즐감하였습니다.
지기님 너무 감사합니다. 글마다 다 댓글을 주시고. 늘 즐거우시고 건강하십시오.
부모님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찌 이리 신통한글이 나올수가 있을지 부럽습니다. 우리가 어머님한테 잘못하는 점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저의 글에 공감하여 주셔서 넘 고맙구요 .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앉을 자리 설자리 할말 안할말을 더 조심하게 되더라구요. 은이님 재치나는 글 즐감하였습니다. 다음글 또 기대합니다. 늘 행복한 일상 되세요~~~
선생님의 댓글 많이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늘 즐거우십시오.
늙으면 다 서러운맴다.이글 읽으니 늙은이의 마음을 리해됨다.앞길이 창창한 우리젊은이들이 앞으로 잘해야지.
.저의 글을 읽어 주시고 공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즐거우십시오.
이글 읽으니 늙으신 어머님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덕분에 효도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였네요
사실은 어머님의 생각이 구구절절 다 도리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걸 나중에야 알게 된것입니다.있을때 잘해 드려야 합니다.댓글 감사합니다.
우리도 늙으면 저렇게 서러운일도 많겠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좋은글 잘 읽었어요
우리도 지금 시시각각 늙어가고 있는 겁니다. 서러운 일이 당장에 우리 앞에 띄울겁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즐건 시간 보내십시오.
이글을 읽으니 부모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리해되네요.앞으로 더 잘 해야겠네요.좋은글 감사합니다
있을때 잘해 드리십시오.아직은 부모님이 살아 계신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즐건 시간 보내시고요 추위에 감기 조심하십시오.
부모님 생전에 효도 더 못한것이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글 잘 읽었습니다.
원래 잃은다음에야 아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너무 속상해 하시지 마십시오.댓글 감사합니다. 즐건 시간 보내십시오.
좋은글에 부모님생각이 간절하네요.좋은글 즐감하였어요
저의 글에 공감하시고 댓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늘 즐겁고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