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아내는 한여름에 2-3일 정도 짧은 휴가를 즐겼는데 올 해는 일주일 휴가를 만들었단다. 지금까지 여름 휴가는 의례히 나 혼자만의 장기 여행을 즐겨온 나로서는 마음에 켕긴다.. 더군다나 아내는 은근히 " 당신은 이벤트의 대가 아이가" "일주일이나 쉬는데 그냥 집에만 있으면 억울한데 뭐 좀 특별한게 없나" 하면서 은근히 나를 협박한다. 어쨋던 내가 나서야할 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리 저리 고민이 시작되었지만 여행이나 캠핑 등 일정을 잡는데 그리 만만치가 않다. 여름 휴가 절정기라 거의 대부분 팬션은 이미 오래전에 예약이 완료되었고, 기타 관광지도 한꺼번에 밀려오는 피서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연신 방송에서 떠들어대니 휴가 날이 다가오자 은근히 불안하기까지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여간한 고생도 문제 없는데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는 일은 사실 쉽지가 않다. 남편의 입장에서 가능하면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사전에 정확히 여행 정보나 숙소 등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작정 집을 나섯다가는 낭패를 당한다면 남편으로서 창피하기도하고 혼자서는 신나게 잘 다니더니만 나하고 여행가는거는 왜이리 엉망이냐고 혹시나 아내가 따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야영, 등산 등 여러가지를 고민하다가 몇년 전 부터 아내와 한번 같이 가보고 싶어 이리 저리 여행정보를 알아보았던 거문도, 백도로 여행을 떠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사 홈피를 검색해 보니 아내의 휴가기간이 여름 휴가 성수기라 예약이 완료되어있었다.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알아볼까하다가 여행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혹시나 예약 후 취소하는 경우에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자 다음날 여행사로 부터 연락이 왔다. 오후 1시 40분 여수항을 출발하여 거문도에서 1박 후 유람선으로 백도를 둘러보고 거문도 등대고 둘러보는 여행패키지 상품이었는데, 즉시 여행경비 입금을 완료하고 어깨 힘주고 아내에게 여행내용을 설명했더니 아내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내 딴에는 머리를 굴리고 마음 고생하면서 "역시 당신은 이벤트의 천재야"하는 기대했던 말을 듣지 못해 약간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근 10년만에 아내와 단 둘이서 여행을 떠나는데 열심히 잘 모셔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8월 2일 금요일 오전 11시 쯤 아내의 소형차 모닝을 타고 여수항으로 출발했다. 광양아이씨에서 빠져 이순신대교를 건너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1시다. 하지만 터미널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고 근처의 갓길에도 차량이 빈틈 없이 주차되어있어 터미널과 제법 많이 떨어진 곳에 겨우 주차를 한 후 여수항 바다가를 걸어서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도착 후 여행사 사무실에 들러 간단히 여행상품 설명을 들은 후 오후 1시 40분 "오가고호"에 올라 난생처음 만날 거문도와 백도를 기대하며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거문도로 향해 출발했다.
여수연안여객터미널로 향하는 아내
터미널 안에는 피서객들로 복작거린다.
"오가고호" 배 바닥이 저항을 줄이기 위해 커다란 두개의 구멍이 있고 두개의 엔진이 달려있다고 한다. 시속 60킬로로 달리는 선박치고는 승선감이 꽤 좋았지만 나중에 먼바다고 나가가 너울이 심해 멀미로 고생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배는 돌산대교 아래를 지난 후 속도를 올리면서 부드럽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간다. 2층 창가 자리에 앉아서 바다 경치를 구경하다 보니 먼바다 쪽은 말 그래도 망망대해이고 반대편 육지 쪽은 코고 작은 섬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사라진다. 특히 작은 바위로 된 무인도는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아 뒷갑판에 나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커다란 너울로 배가 심하게 울렁거려 두발로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 사진이 잘 잡혀지지 않는다. "오가고"호는 나로도 손죽도 등 몇개의 작은 섬에 들렀다가 최종도착지인 거문도로 향한다. 버스로 치면 완행인 셈이다.
여수항에서 거문도로 가는 바닷길의 풍경들
오후 4시 경 드디어 거문도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착장은 배에서 내리고 오르는 승객들로 정신 없이 붐빈다. 특히나 터미널 공사가 진행중이라 더 혼잡한 것 같다. 같은 여행사를 통해 거문도에 들어온 관광객들은 전체가 15명 정도 되었다. 거문도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가이드는 만나자 마자 백도행 유람선으로 안내한다. 원래 여행 일정은 백도 유람선은 내일인데 거문도는 매일매일 기상상황이 바뀌어서 내일은 백도행 유람선이 운항을 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운항하는 지금 백도에 다녀 오는 것이 상책인란다. 얼떨결에 2시간 30분 동안 배를 타고 섬에 내리자 마자 다시 백도행 유람선에 올라 또다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는 백도를 향해 출발했다. 백도행 유람선은 낡고 커기도 작아 한바다 가운데 울렁이는 너울에 정신없이 좌우로 춤을 춘다. 한참을 달려가는 동안 아내는 멀미 때문에 속이 거북하단다. 배가 너무 출렁거려 약간은 위험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쐬기위해 유람선 2층 갑판으로 올라 갔다. 유람선이 심하게 출렁거려 갑판위에서는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거나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드디더 멀리 뱃전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나타난다. 하얀 암벽이 푸른 나무를 이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백도인것 같다. 하지만 눈으로는 가까워 보이는 백도를 향해 유람선이 달려도 좀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마음은 어서빨리 백도를 만나고 싶은데 거리 감감이 육지와 바다는 다르기 때문이다. 주변에 다른 사물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느끼는 거리는 실제 거리보다 훨씬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리라.
유람선 뒤로 보이는 거문도
백도로 운항하는 유람선 주변의 경치
멀리 희미하게 백도가 보인다.
굉음을 내뿜으며 춤을 추듯이 내달려온 유람선이 드디어 백도에 가까이 다가 선다. 유람선 선장님이 마이크로 열심히 설명을 하시는데 그게 전라도 사투리라 약간은 생소하고 더군다나 엔진 소음이 심해 설명을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다. 대충 내용은 백도를 한바퀴 둘러보면서 각각의 바위 이름과 그에 따른 전설을 설명하시는 것 같은데 구지 그 내용을 알아듣지 않아도 누구나 백도에 온다면 그 황홀한 경치에 넋이나갈 수 밖에 없을 것같다. 육지와 한창 떨어진, 멀고 먼 바다 한가운데 신비롭게 솟아오른 수십개의 크고 작은 하? 바위섬, 수십미터로 깍아지른 수직절벽의 섬들, 그리고 머리만 바다위로 내민 작은 바위섬들, 이 거센 바다 바람과 파도를 견디어 내었는지 신비할 정도로 금방 넘어지거나 부러질 것만 같이 위태롭게 보이는 송곳처럼 솟아 오른 바위들... 그리고 둥글고 모나고 때로는 구멍이 파여진 제각각의 바위섬은 억만년의 세월동안 바다 바람과 파도가 깎고 ?고 쪼고 나누어서 만들어진 그야말로 바다의 조각품일 것이다.
백 도
백도 동영상
유람선은 상백도로 접근해서 한바퀴 돈 후 다시 하백도로 내려가 한바퀴 돌아 다시 거문도로 돌아 온다.하얀 바위섬은 유람선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수시로 모양이 변하면서 온갖가지의 사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선장은 신이나서 각각의 조망 포인트를 지날 때다다 열이 오른 목소리로 설명하면서 스스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이렇게 각각의 바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억만겁의 세월 속에 바다와 바람과 자연이 백도를 만들었고 나는 지금 그 억만겁 세월의 결과물 불과 몇시간만에 눈에 담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거문도로 돌아간다.
거문도로 돌아와서 가이드가 다시 각각의 방을 배정해 주었다. 우리는 "섬마을횟집"이란는 식당 겸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 식사는 자유식이라 아래층 횟집에서 우럭매운탕을 먹었는데 주문을 받은 후 바로 수족관에서 팔딱팔딱 뒤는 우럭 두마리를 장만해서 매운탕을 내준다. 활어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약간은 우리 입맛에 짜다. 짜운 음식은 아마도 성마을의 특성인것 같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내가 술을 끊은지 1년가까이 되지만 아내가 소주한잔 걸친다면 속으로 두어잔 정도는 충분히 분위기를 맞추어 줄 요량으로 몇번이나 술을 권했지만 결국 아내는 사양한다. 오후 내내 배를 타다 보니 멀미 때문에 도저히 술을 입에 대기가 어렵단다. 오붓한 술자리는 포기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삼호교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서도로 산책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일찌감치 잠을 청한다. 가이드가 내일 새벽 5시 30분에 거문도 등대로 출발한다니 일찍 쉬어야 내일 일정이 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민박집 방은 좁지만 그래도 갖출건 다있다. 샤워시설, 에어콘, 선풍기, 그리고 작은 냉장고가 있는 어느 관광지의 민박집과 별반 차이가 없다. 샤워를 하고 밤 10시 쯤 고단한 몸을 뉘이며 거문도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저녁 식사후 산?을 다녀왔던 삼호교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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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좋고 물좋고 얼쑤좋다 원문보기 글쓴이: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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