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일본 일간지에 '한국 여론 욘사마에 '후미에'(踏み繪) 강요'라는 기사가 난 걸 보았습니다. 이 기사의 가치판단을 떠나서 타이틀 자체는 매우 그럴듯하게 뽑아올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 밟기'라는 뜻의 '후미에'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기사는 한국의 여론이 독도문제에 대해 배용준의 입장을 쥐어짜고 있다는 것이 골자인데요.
'후미에'는 17세기 일본 막부가 기독교도를 골라내고자 사람들에게 예수와 마리아의 그림을 밟고 지나가게 한 것이 어원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기독교도에 대한 대박해의 시기였죠. 성화(聖畵)를 밟으면 기독교도가 아닌 걸로 인정돼 살아남을 수 있지만 밟지않는 자는 가차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물론 독실한 신자들은 이를 밟지않아 결국 순교했습니다.
독도문제가 들끓었던 며칠 전 신작발표 기자회견을 해야했던 배용준은 독도에 대한 입장을 추후로 미루며 비켜갔죠. 하지만 비판여론은 결국 그를 '후미에'의 시험대에 올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성적으로 대처하는게 옳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욘사마는 '성화'를 밟은 건가요, 안밟은 건가요?
'후미에'라는 말이 유명해진 것은 일본의 문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 의 대표작 '침묵'에 등장해서입니다.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일본인들은 "엔도 슈사쿠가 받았어야 하는데 .."라며 애석해했을 정도로 일본의 국보급 작가이지요.
'침묵'이라는 소설은 17세기 포르투갈 선교사 로드리고가 신앙적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에 잠행한 뒤 바티칸으로 보낸 4통의 편지로 이뤄졌습니다.
결국 로드리고는 스승이 진짜로 배교했음을 확인합니다. 엄청난 박해로 신자들이 고문당해 하나둘 죽어갑니다. 막부는 "네가 배교하지 않는한 저들을 구할 수 없어"라며 성화를 밟을 것을 강요합니다. 옥중 옆방에서 신자들이 토해내는 고문의 신음이 들려옵니다. 스승은 절망합니다. 스승은 결국 성화를 밟고 배교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확실히 그리스도는 저들을 위해 배교했을거야"
주인공 로드리고 역시 붙납혀 스승과 같은 길을 가게됩니다. 옥중에서 고문을 견디다못한 신자들이 시체가 되어 하나둘 던져지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한 인간이 죽었는데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 뜰의 정막과 매미 소리, 파리의 날개소리였다. 한 인간이 죽었는데도 외계는 마치 그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금 전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이것이 순교라는 것인가. 왜 당신(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그 역시 발을 들어 성화를 밟게됩니다. 동판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말이 들려옵니다. 배교를 허락하는 목소리입니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로드리고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욘사마도 마음의 갈등이 컸겠죠? 그는 성화를 밟은 걸까요? 안밟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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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배용준이 일본을 찬양하는 발언을 한 것도 아닌데 왜들 난리람? 지들이나 잘 할 것이지.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 <침묵>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내생각).
==><침묵>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내생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