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자리 펴는 시간/ 민 혜
젊은 시절엔 세월 가는 게 두려웠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바뀌던 날엔 이십이란 숫자의 무게에 가슴이 철렁했고, 이십에서 삼십으로 접어들던 날엔 드디어 내가 늙는구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는데 그때는 심각했다. 인생이란 그날그날이 가장 젊은 날인 동시에 늙은(?) 날이라 그럴 만도 했지 싶다.
그러던 게 사십이 되던 초입엔 심경이 칙칙해지기까지 하는 거였다. 청춘 시절의 나는 사십 넘은 여자들을 중늙은이나 ‘아줌마’족으로만 폄하했으니 자업자득인지도 몰랐다.
살아보니 곰비임비 각다분한 삶이긴 했어도 사십도 좋은 나이였다. 오십은 뜸이 들어 원숙해진 느낌이 드는가 하면, 자타공인 노인 반열의 육십을 넘기고 나자 예기치 못한 반전까지 일어났다.
나이 듦이 초조해지기는커녕 ‘그래, 나, 나이 먹었다. 어쩔래?’하는 식의 뱃장이 나잇살마냥 생기며 이젠 제아무리 용을 써도 젊음 같은 건 저 멀찍이 물 건너갔다는 선뜻함에서 오는 그 확실성이 헛된 집착을 떨어내고 나이에 대한 달관을 안겨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돌이켜 보면 십대에서 불혹까지의 시기를 제외하곤 세월 가는 것에 순탄하게 대처한 편이긴 했다. 또래의 지인들은 폐경 징후가 보일 때부터 여성성을 상실한 감정을 토로해 왔지만 나는 귀찮은 달거리로부터 해방된 것이 싫지 않았기에 그 시기를 덤덤하게 넘겼다. 부모님 체질을 닮아 얼굴 주름이 적었던 터라 외모에 신경 쓴 적도 별로 없었다.
또한 젊을 때의 우려와 달리 진정한 인간미란 중년 이후에나 우러나는 것 같아 과거의 내가 미래를 추측하고 예단했던 모든 게 부질없고 부정확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애를 먹는 건 있었다.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수면의 질이 문제였다.
나는 평생을 새 나라의 어린이 마냥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해왔다. 이런 내가 어느 해 이후부터 자주 밤잠을 설쳤다. 평균 두 세 번은 잠이 깨었는데 그 시각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 무렵이었다. 나는 밤마다 같은 현상으로 뒤척이며 잠의 여신을 향해 다시 잠 좀 보내달라고 애원해야만 했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노화 증세의 하나라는 것이다.
노령으로 갈수록 기운이 잦아들고 남편은 병을 얻어 내 곁을 떠나갔지만 비교적 홀로서기를 큰 어려움 없이 해내었다. 삶의 고단함으로 우울감이 덮칠 때면 나는 피하거나 억누르려 하기보다 그 우울을 동무 삼아 끌어안고 눈물이 바닥날 때까지 울었다. 몸의 피로는 쉬어주며 다스렸고 몸이든 마음이든 그의 기분과 요구대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대로 받아주는 단순 명료한 정공법을 쓰다 보니 모든 게 그럭저럭 넘길 만 했다. 아니, 뜻하지 않게도 황혼이란 시기가 오래 입어 풀기 사라진 옷처럼 편안해지며 나이 듦의 장점만 새록새록 보였다. 무엇보다 삶의 많은 책무로부터 벗어났다는 게 나를 홀가분하게 했다. 마치 어렵고 양이 많던 학교 숙제를 거의 끝내간다는 해방의 느낌이었다.
언젠가 동창들 몇이 모이는 카톡 방에서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은가?’란 질문을 던져보았다. 유유상종이라 그랬는지 아무도 돌아가고 싶다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들 모두가 나름 사회인으로 성공도 하고 윤택하게 살고 있지만 그 어느 시절로도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세칭 일류 대학을 나오고 잘나가는 남성들의 구애를 받으며 그들의 애간장을 태운 걸로 유명했던 친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겉보기엔 화려하고 무탈하게 살아온 듯한 그네들에게도 남모를 애환이 있었던 모양이다. 삶의 고개를 넘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음을 새삼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론 이와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젊음을 연장시키려 성형외과를 찾는다. 어떤 이는 병원을 찾아 얼굴 공사를 주기적으로 한다면서 아예 주변에 공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만족도가 높다니 다행이지 싶었다.
생전의 친정어머니는 청소 말끔히 해놓은 뒤, 집 나갔던 식구들이 모두 들어 온 다음 이부자리 펴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하셨다. 하루가 즐거웠든 고달팠든 잠이야 말로 모든 걸 잊게 하며 평화를 안겨주기 때문이었을 테다. 어머니가 걸머졌던 삶의 하중이 그만큼 무거웠다는 반증 같았다.
산다는 건 어느 시절이든 그 연령에 준하는 수고와 인내의 땀방울을 흘리게 마련이다. 무구한 갓난아기조차도 어미젖을 먹을 때면 그 작은 콧잔등이 땀으로 촉촉이 젖는다. 오죽하면 사람이 힘든 일을 치룰 때 젖 먹던 힘을 다 쏟았다고 하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인생살이는 등고선이 높아질수록 고난도의 수고를 요하다가 삶의 정점을 지나서야 등짐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늦도록 수고하는 이들도 더러 있긴 하나 대부분은 인생살이의 긴장을 풀며 느슨한 여가를 맞는다.
한 생의 종착역인 죽음이란 것 역시 하루의 수고를 마감하는 잠과도 같은 것이리라. 왠지 이 예단만은 빗나갈 것 같질 않기에 언젠가 찾아들 그 시간이 나는 그다지 두렵질 않다. 하루 밤의 꿀잠은 반기면서도 한 생의 안식을 혐오하려 든다면 자가당착 아닌가. 지구별 안에서 간단없이 영영세세 살아가라 한다면 사람들은 외려 이제 그만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절규할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는 떠나갔고 내가 이부자리 펼 시간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 휴休의 시간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