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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면 북쪽에서 남으로 길게 처져 내린 행주형(行舟形)의 마을이다. 동리(洞里)의 북단(北端)인 해발 960m의 준령, 정각산(正覺山)의 정점을 선수(船首)로 하고 남단에 해당하는 590m의 뇌암봉(雷岩峰)(벼락드미)을 선미로 하여 번데기 산으로 노(棹) 끝을 삼은 배의 형국(形局)이다. 범도연(泛棹淵)이라 한 곳은 배를 띄워 사람이 노를 저어 간다는 뜻이라 하는데, 이 마을의 지형에 비추어 잘 들어맞는 지명이라 할 것이다. 이웃 마을인 고례리(古禮里)의 옛 이름을 고례(古禮)라 한 것은 이 배를 마고할미가 끌고 갔다 하여 붙인 지명이고, 근처의의 산을 진주산(進舟山)이라 한 것은 배가 나아간다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이 밖에 도 이 동리(洞里)에는 도연(櫂淵), 선소(船沼), 이선대(移船臺) 등 배와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고 풍수지리상으로 옛날부터 배설(舟穴)이라 하여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는 금기가 전해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동리(洞里)의 북쪽 돌출부인 정각산(正覺山)을 분수령(分水嶺)으로 삼아 동남에는 구천리와 이웃하였고, 서남에는 사연리와 경계를 지었으며, 정북방으로 산내면 임고리와 면계(面界)를 이루었고, 남으로 고례리, 무릉리와 대치해 있다. 또 이 동리(洞里)는 산과 강으로 양분되어 서북부에는 정각산(正覺山)과 뇌암봉(雷岩峰)을 축(軸)으로 한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으며, 동남부에는 고사천(姑射川)과 재약천(載藥川)의 합류로 넓은 하천을 이루고 있는 지대이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담수어(淡水魚)가 많이 잡히고 주변의 산에서는 닥(楮)나무가 흔하여 '범든종이'라는 우수한 한지(韓紙)의 생산으로 유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으로 고례리(古禮里)의 일부를 편입하여 범도리(泛棹里)라는 법정리(法定里)를 구성했는데 종래의 범도연(泛棹淵)을 비롯하여 아화(阿火), 골마, 석전(石田), 새말 등 자연 부락을 소속시켰다.
(1) 범도연(泛棹淵, 櫂淵, 범돈, 범든)
동리(洞里)의 중심 부락으로 메물산(木麥山)을 등에 지고 고사천(姑射川) 동편(東便) 강가에 자리잡은 고촌(古村)이다. 마을 앞에 호수처럼 생긴 깊은 소(沼)가 있어 범도연(泛棹淵) 또는 도연(櫂淵)이라 했으며 동리(洞里)의 지형(地形)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돛단배 같다 하여 붙인 지명이라 한다. 또 범돈, 범든이라 하는 것은 범도연(泛棹淵)의 발음이 줄고 바뀌어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조후기에 국난에 이바지한 공로로 나라에서 표창을 받은 서운룡(徐雲龍)이 이곳에 터를 잡은 후 대대(代代)로 달성(達城) 서씨(徐氏)가 살았고, 같은 시기에 효행으로 이름을 얻은 오정몽(吳禎蒙)이 입촌(入村)함으로서 해주(海州) 오씨(吳氏)의 세거지(世居地)가 되기도 했는데 철종 때는 도사(都事) 오필선(吳必善)의 효자 정여(旌閭)가 내리기도 했다. 또 인근 죽림(竹林) 안희원(安禧遠)이 그 아버지 치와(恥窩) 안효완(安孝完)을 위하여 세운 도연정(櫂淵亭)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다만 그 유허(遺墟)에 이선대(移船臺)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그리고 마을 남쪽 고례리와의 경계 지점인 박산(博山) 산 중허리에는 옛날 심진암(尋眞庵)이라는 절터가 있었고, 그 아래쪽에 1916년에 부북면 퇴로리(退老里)에 거주하는 여주(驪州) 이씨문중(李氏門中)에서 그 선조인 도원(桃源) 이종극(李鍾極)의 소요처라 하여 도원정(桃源亭)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이 마을은 표충사(表忠寺) 행국도(行國道)를 중심으로 그 남쪽에 있는 석바탱이(石田洞)도 행정상 범도연(泛棹淵) 부락에 소속되어 있다.
■ 뱃머리(船首, 移船臺)
범도연(泛棹淵) 마을 앞에 있는 깊은 소부근(沼附近)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옛날 이곳에서 뱃놀이를 할 때 배에 올라타는 곳이라 하여 뱃머리라고도 했다. 모두 범도연과 관계 있는 지명이다.
■ 보풀고개
범도연 마을 강 건너에 있는 산마루 고개의 이름인데, 국전리(菊田籬) 진주동(進舟洞) 등으로 넘어가는 곳이다. 보풀나무가 많다하여 생긴 지명이다.
■ 구실방골(凹岩谷)
범도연과 고례리의 경계 지점 길가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근처의 바위들이 구유 모양으로 둘러서 있다 하여 붙인 지명인데, 구시방이란 구유 바위라는 뜻이다.
■ 꿀뚝배기(煙突稜)
범도연 건너편 왼쪽에 있는 산마루의 능선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마치 굴뚝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 방미봉군(博山峰)
꿀뚝배기 아래쪽에 있는 박산사(博山寺)(방미절)의 뒷산봉우리를 말한다. 방미는 박산을 가리키며 봉군은 봉우리를 일컫는다.
■ 구시방골못(凹谷池)
범도연 건너편 구시방골 뒷산 중턱 골짜기 안에 있었다. 옛날부터 이곳이 명당 자리라는 소문이 있어 어떤 사람이 묘(墓)를 서고 나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자가 된 이후에는 찾아오는 식객(食客)과 과객(過客)들 때문에 그 가모(家母)가 많은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술(道術)이 있다는 중 한 사람이 찾아들어 시주(施主)를 청하였다. 그 가모(家母)가 은밀히 중을 만나서 듬뿍 시주를 하고는 전후 사정을 이야기한 끝에 과객(過客)과 식객(食客)이 찾아오지 않도록 하는 비방(秘方)을 물었다. 중은 대답하기를 "비방(秘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후회를 하실 터인데요."하고 난색을 표했다. 이에 가모(家母)는 나중에라도 후회와 원망은 하지 않을 터이니 비방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그 중은 입맛을 다시며 마지못해 하는 듯 하면서" 범도연 건너편 구시방골에 있는 선산 앞에 못을 파시오. 그러면 과객 식객의 발이 뚝 끊어질 것입니다." 하고는 떠나버렸다. 가모는 바깥주인과는 아무런 상의 없이 몰래 종복들을 동원하여 구시방골 선산 앞에다 못을 파 내려갔다. 얼마쯤 못을 파내려 가는데 별안간 땅이 터지는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땅속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이윽고 그 자리에 못을 완성시키기는 하였으나, 웬일인지 갑자기 가세(家勢)가 기울어 얼마 가지 않아서 집이 망해버렸다. 부자의 인색함과 가모(家母)의 분별 없음이 복(福)을 차버리고 화(禍)를 자초(自招)한 것이다. 지금은 못이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 안장설(鞍裝穴)
범도연 마을 뒷산인 미물봉(蕎山峰)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 능선의 이름이다. 마치 말안장처럼 잘록하게 생겼는데, 삼거리쪽에서 보면 미물봉이 말머리처럼 생겼고, 백마산(白馬山)은 말꼬리로 보인다는 것이다.
■ 쇠태기웅딩이(궤어소(沼))
범도연 마을 고례리로 가는 길의 첫번째 산모퉁이 아래에 있는 웅덩이 이름이다. 물이 맑고 깊어 이 웅덩이에서 쏘가리(궤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쇠태기는 쏘태기 또는 꺽저기, 꺽지라고도 하는데 모두 쏘가리의 방언이다.
■ 상둑들(上堤坪)
범도연에서 고례리로 가는 길가에 있는 들 이름이다. 위쪽 둑 안에 있는 들이라 하여 상둑들이라 했다.
■ 보건냇들(洑越坪)
상둑들과 마주보는 강 건너편의 들 이름이다. 보(洑)의 건너편에 있는 들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2) 아불(阿火, 阿佛)
범도연 북쪽에 있으며 표충사행 국도변에 위치한 큰 마을이다. 원래는 작은 주막(酒幕)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1922년에 이곳에다 사립표충학원(私立表忠學院)을 설치한데 이어 곧 태룡초동학교 산동분교가 들어서게 됨에 따라 마을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 후 학교는 다시 산동초동학교로 승격되고 표충사의 어구로서 시장과 정류소 등 생활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지금은 산중 도방의 구실을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아화(阿火)라 했다. 옛날에 어느 노승(老僧)이 지나가다가 큰불이 나겠다고 예언한 일이 있었는데, 과연 2년 만에 마을에 큰 화재가 났으므로 지명이 불길하다 하여 부처님의 가호(加護)를 빈다는 뜻에서 아불(阿佛)이라 표기한다고 한다. 이 마을의 서쪽 냇가에 있는 새마와 골마(谷村)도 행정상 아불에 소속된 땀이다.
■석바탱이(石田洞)
아불(阿佛) 본동의 서쪽, 단장천 건너에 있는 땀이다. 당초에는 지금의 반계정(盤溪亭) 건너편 산 중허리에 위치했으나 점차 그 아래쪽 산기슭으로 옮겨진 마을이다. 석바
탱이라는 지명(地名)은 산중허리(지금의 밤밭)에 마을이 있을 때 얻은 지명으로 그 곳에는 돌이 많아서 돌바탕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석바태이가 되었다고 한다.
■ 골마(谷村)
아불 본동의 서쪽에 있는 강 가의 작은 마을이다. 정각산 아래에 위치하여 골짜기 안에 있다 하여 골마(谷村)라는 지명을 얻었다. 옛날부터 정각산의 닥나무로 한지(韓紙)를 만들어 온 마을인데 범든종이의 본포가 이곳에 있었다. 구한말(舊韓末)에 사인(士人) 이병관(李炳觀)이 이 마을에 입촌하여 도연정사(道淵精舍)를 세우고 은거(隱居)한 일이 있다.
■ 새마(新村)
석바탱이에서 아불 마을로 가는 국도변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新村)라 하였다.
■ 정각동(正覺洞, 鼎角洞)
골마의 서북쪽 골짜기, 곧 정각산 중턱에 있었던 땀 이름인데 지금은 민가(民家)가 한 집도 남아 있지 않고 폐동(廢洞)이 되었다.
■ 절골(寺谷)
골마의 서북쪽, 반계정 뒤쪽 산골짜기에 있었던 절터이다. 오래 전에 금동(金銅)부처가 발견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돌 부도가 있다고 하는데 정각사터라고 한다.
■ 마당방우(場岩)
정각산의 중턱, 절골 옆에 정각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바위인데, 마당같이 넓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지금도 근처에 민가(民家) 한 채가 있다.
■ 뿔땅골(黃土谷)
골마에서 원구천(元九川)으로 가는 산모퉁이 왼쪽 하천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옛날에는 민가(民家)가 몇 집 있어 땀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황토(黃土)흙으로 땀이 붉다 하여 뿔땅골이 되었다.
■ 정각광산터(正覺鑛山址)
골마의 뒷산인 정각산 정상부(頂上部)에 일제(日帝) 때 아연(亞鉛)과 동(銅)의 광산(鑛山)이 있었다. 지금은 폐광(廢鑛) 상태이다.
■ 처매덤(치마덤, 裳崖)
정각광산(正覺鑛山) 아래쪽에 있는 절벽의 이름이다. 치마폭을 두른 것 같은 형국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 실봉(시루봉, 甑峰)
정각산 줄기에 있는 봉우리이다. 마치 떡시루(甑)같이 생겼다 하여 붙인 지명이다.
■ 한박등(芍藥嶝)
골마 북쪽 정각산 중턱에 있는 산등성이 이름이다. 정각산 주봉(主峰)에서 남으로 뻗어 있는 등성이의 모양이 마치 함박꽃(芍藥花)이 피어 있는 것 같은 형국이라 하여 붙인 지명이다.
■ 느릿등(니릿등, 緩嶝)
골마 북쪽 정각산 주봉(主峰)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의 모양이 느릿느릿하게 처져 있다 하여 느릿등 또는 니릿등이라 했다.
■ 아랫목지(下項地)
함박등 아래쪽에 있는 잘록한 산등성이이다. 아래쪽 잘룩이 목이라 하여 아랫목지라 한다.
■ 웃목지(上項地)
정각산의 함박등 위쪽에 있는 잘룩한 등성이이다. 아랫목지와 대비되는 지명이다.
■ 찬물새미(冷泉)
정각산의 윗목지 서편에 있는 옹달샘을 가리킨다. 여름에 물이 차고 겨울에는 따뜻한 샘물이다.
■ 뒷등(後嶝)
아불(阿佛) 마을 뒷편에 있는 산등성이의 지명이다.
■ 물골(水谷)
아불(阿佛) 마을 동쪽에 있는 계곡의 이름인데 항시 물이 흐르고 비가 오면 폭포가 된다.
■ 뒷골(後谷)
아불 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 양자바골짝(陽地谷)
아불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북쪽에 보이는 골짜기인데, 양지바른 골짜기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정각산 기슭이다.
■ 머정방우
골마 서쪽의 반계정(盤溪亭) 뒷산 중턱에 있는 바위이다. 나무꾼들이 이곳에 와서 어정어정 멈추며 쉬어 가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깨냉이방우(고양이방우, 猫岩)
석바탱이 뒷산마루에 있는 바위이다. 고양이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생긴 지명인데 이 곳 사람들은 이 바위 허리에 구름이 끼이면 비가 올 징조라 하고 있다.
■ 상당(上堂)
아불 마을 뒤쪽에 있는 미물산(蕎峰山)아래쪽 산비탈을 가리킨다. 이 곳에 큰 당(堂)나무가 있어 동신제(洞神祭)를 지내던 곳이라 하여 상당이라 했다. 골마 건너편에 있는 하당(下堂)과 대칭되는 것으로 숫당이라고도 했다.
■ 하당(下堂)
골마 맞은 편 냇가에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다. 상당의 아래쪽에 있다 하여 하당이라 하는데 상당을 숫당(男堂), 하당을 암당(女堂)이라고도 한다.
■ 첫들(初坪)
아불 마을 첫들 아래쪽에 있는 들 이름이다. 이 동리(洞里)에서 가장 큰 들이라 하여 붙인 지명이다.
■ 서만들(섬안들, 島內坪)
아불 마을 동쪽에 있는 들 이름이다. 재약천(載藥川)과 고사천(姑射川)에 둘러싸인 섬과 같은 들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 당산들(堂山坪)
아불 마을 앞의 당산 주변에 있는 들 이름이다. 곧 상당(上堂) 앞들을 말한다.
■ 딱심들(楮島坪, 딱섬들)
아불 마을 서쪽을 돌아 범도연(泛棹淵)으로 가는 길과 새마에서 범도연(棹淵)으로 가는 길 사이에 있는 삼각형으로 생긴 들판이다. 한지(韓紙) 생산 재료인 닥(楮)나무를 많이 쌓아 두는 곳이었다.
■ 갈골(蘆谷)
골마 동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갈대가 많이 난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 미물산(매물산, 木麥山)
아불 마을 남쪽에 봉우리가 뾰족한 삼각형의 산으로, 마치 메밀처럼 생겼다 하여 미물산, 매물산 또는 맥목산(麥木山)으로 불린다.
■ 뱃소(船沼)
아불과 범도연 사이에 있는 깊은 沼의 이름이다. 이 곳에 배를 타고 다녔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 감나무징이(枾木亭)
새말의 서쪽에 있는 들이다. 이 곳에 감나무가 많았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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