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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10월30일-31일(土日)雲▲내장산(3)-백암산(추령-장군봉-신선봉-구암사-백학봉-백양사)
해봉산악회(60명)
◈참 고
▲내장산(内蔵山)
소재지:노령산맥의 내장산․백암산을 중심으로 전라 남․북도에 걸쳐 있음
지정연도:1971년 11월 (국립공원)
면적:75.8㎢
명물:도덕폭포, 금선폭포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총면적 75.8km2. 1971년 11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경역(境域)은 전북 정읍
시 내장동(内蔵洞)․입암면(笠岩面)과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및 전남 장성군 북하면(北
下面)에 걸쳐 있어 내장산국립공원은 북동부의 내장산지구와 남서부의 백암산지구로 나
뉜다. 내장산지구 정읍에서 11km에 있는 내장산은 본시 영음산(霊陰山)이라 불렸다.
주봉인 신선봉(神仙峰:763m)을 비롯한 서래봉(西来峰)․불출봉(仏出峰)․연지봉(蓮池峰)
․장군봉(将軍峰)․문필봉(文筆峰) 등 내장6봉 외에 몇몇 산봉으로 구성된다. 내장산은
일찍이 대한8경의 하나로 꼽혀 왔고, 산중의 내장사(内蔵寺) 경내에 있는 정혜루기(定慧
楼記)에 의하면 남원의 지리산 등과 더불어 호남의 5대명산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폭포
가 있고 계류가 흐르는 많은 계곡과 비자림(榧子林)․굴거리나무군락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수림의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특히 그 수림이 이루는 단풍이 유명하여, 단풍철에
는 정읍시에서 주최하는 다채로운 단풍제가 연례행사로 열린다.
내장산지에서 발원하는 정읍천(井邑川)의 최상류부, 내장6봉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자리
잡은 내장사는 636년(백제 무왕 37)에 창건한 고찰로,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내장사 어
귀의 부도전(浮屠殿) 일대에 50여 동(棟)의 가람을 조영하여 영은사(靈隠寺)라고 하였
다. 그 뒤 여러 차례 소실․재건을 거듭하면서, 1925년에 본사(本寺)를 벽련암(碧蓮庵)
으로 옮겨 벽련사라 하고, 1938년에 지금의 자리에 내장사를 지었으며, 6․25전쟁으로
정혜루(定慧楼)를 제외한 건물이 소실되어, 그 후 대웅전을 재건하였다.
내장산 입구의 쌍암동(双岩洞)에 낚시터로 유명한 내장저수지가 있고, 동구리(洞口里)
에 도덕폭포가 있다. 서래봉(622m)은 내장사 북쪽을 두른 바위산으로, 산줄기에는 약 4
km에 걸쳐 기암절벽의 연봉이 이어지고, 그 밑에는 단풍을 이루어 뛰어난 경승을 보인다.
불출봉은 서래봉 서쪽 끝의 봉우리로, 내장사에서 계류를 따라 400 m쯤 올라가면 봉우
리 바로 밑에 이른다. 그곳에 불출암(仏出庵)터와 동굴이 있고, 도중에 비자림(榧子林)
이 있는데, 고려 때에 동굴 안에 16 나한(羅漢)을 모신 나한전(羅漢殿)과 승방을 지어
창건한 불출암은 6․25전쟁 때 불타 버렸다. 내장산의 최고봉인 신선봉은 내장사 남쪽
에 있다.
내장사에서 신선봉으로 올라가는 금선계곡은 곡벽(谷壁)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지고, 곡
저에 암반이 깔린 계곡미가 장관을 이룬다. 특히 유명한 경승은 신선문(神仙門)으로 불
리는 천연의 암석동문(岩石洞門)을 거쳐 올라간 곳에 있는 높이 30m 가량의 금선폭포이
다. 또 금선폭포 부근의 산비탈에 있는 천연동굴 용굴(竜窟)은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全
州史庫)의 조선실록 등 전적(典籍)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영정(太祖影幀)을 피난시켜
보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원적암(圓寂菴)터․벽련암터 등 유서 깊은 유적이 있다.
백암산지구는 장성읍에서 북쪽으로 약 20km의 거리에 있는 백암산(白岩山)의 최고봉인
백학봉(白鶴峰:722m) 및 옥녀봉(玉女峰)․가인봉(加仁峰) 등 백암3봉(白岩三峰) 외에 상
옥봉(象玉峰)․사자봉(獅子峰) 등으로 구성된다. 일명 백양산(白羊山)이라고도 불리는
백암산은, 일찍이 내장산을 포함하여 대한8경의 하나로 꼽혀 온 명산으로, ꡐ가을의 내
장ꡑ에 대하여 ꡐ봄의 백양ꡑ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봄경치가 뛰어나며, 가을의 단풍도
아름답다.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의 골짜기에 거찰 백양사(白羊寺)가 있다. 백양사는 633년(백제 문
무왕 33)에 창건, 백암사로 부르다가 고려 때에 정토사(浄土寺), 조선 숙종 때에 백양사
로 고쳤다.
경내에 약 3만 그루의 비자나무가 있어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일대에 구암
사(亀岩寺) 외에 천진암(天真庵) ․영천암(靈泉庵)․청류암(清流庵)․운문암(雲門庵) 등
이 산재하여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그 밖에 입암산(笠岩山)에서 흘러 내리는 황룡천(黄竜川)의 두 지류의 계곡미가 훌륭하
고, 몽계계곡에 있는 몽계폭포도 장관을 이룬다. 입암산 산정에는 조선시대에 호남의 요
새지 몫을 해 온 석성(石城) 입암산성(笠岩山城)이 있다.
※ 백암산(白岩山/741.2m)
▶개요와 유래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호남정맥으로 분기되어 남으로 뻗어가며, 전북지역에
수많은 산들을 솟구쳐 놓고 추령, 내장산의 주봉인 신성봉을 지나면서 전북과 전남지역
의 경계에 백암산의 정상인 백학봉을 일구어 놓고 정맥은 계속 남쪽으로 뻗어간다.
행정구역상 전북 정읍시 내장면과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경계하고 있는 백암산(白岩山)
은 내장산과 함께 1971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양사 입구에 들어서면 사찰
뒤편 저 멀리 흰 바위봉우리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학바위' 또는 '백학봉'이다.
백암산의 유래는 한자로 흰백(白), 바위암(岩)을 써서, 흰 바위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
졌다. 백양사를 향해 다가갈수록 사찰과 어울린 기암봉으로 눈길이 이끌리게 되는데,
산 이름이 왜? 백암산으로 불리는지 비로소 알게된다. 내장산, 입암산과 함께 내장산 국
립공원에 포함되어 있고, 내장산의 단풍에 빛이 가려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
만, 산세와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산의 짜임새와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적은 내장산
과 어깨를 견준다.
또 백암산은 만개한 연꽃을 연상시키는 '학바위'와 다양한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백양사
의 그윽함은 내장사보다 한 수 우위로 평가되고 있다. 단풍나무, 비자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기암괴석 등이 어우려진 10월말부터 11월초순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이 무
렵이면 단풍축제가 열린다.
백암산의 5천그루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3호), 굴거리나무숲(천연기념물 제91
호),고로쇠나무 등의 난대성 상록수림이 많고, 바자나무의 열매는 기충충인 촌충의 구제
약으로 쓰여져 옛부터 사찰에서 많이 길렀으며, 백암산의 비자나무도 고려 고종때 각진
국사에 의해 심어진 것으로 전해온다.
이 수백년생의 아름드리 비자나무에 새싹이 돋아나고, 사찰입구의 벚꽃이 만발했을 때,
기묘하게 솟은 백학봉과 천년고찰 백양사가 어우러진 풍광은 너무 아름다워서 '춘(春)백
양, 추(秋)내장'으로 불린다.
♥백양사의 유래
백양사의 유래는 환양선사가 학바위 아래 영천암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아미타불경
을 설법할 때 백양 한 마리가 백학봉에서 내려와 경청한 뒤 눈물을 흘리며 사라졌다하
여 백양사(白羊寺)로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조계종 제18교구의 본사로서 각진국사, 만암종사, 서옹종정 등의 이
름난 고승들이 거쳐 간 사찰이다.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선사가 창건하여 백암산 백암사로 이름 지었고, 그 뒤에
고려 덕종때 중연선사가 중창하여 정토사(浄土寺)로 개칭하였으나, 조선 선조때 환양선
사가 중창하여 다시 백양사로 바뀌었다.
이 사찰은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변종루 대웅전, 극락보전, 진영각, 칠성전, 명부전, 만
세루와 다층석탑 등이 있으며, 이중에서 극락보전과 대웅전은 유형문화재이다. 대웅전
안 오른쪽 벽에는 등을 긁는 모습의 나한상 등 해학적인 나한상 16위가 모셔져 있다. 극
락보전은 백양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4백여년전에 건축되었다. 도 팔층탑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 출신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함과 비가 있다.
♣산행 코스
추령(04시25분)--장군봉(05시43분)--신선봉(7시12분)--도화마을(8시7분)아침식사--구
암사(9시17분)--백학봉갈림길(9시50분)--학바위(10시7분)--백양사(11시25분)--주차장(12시)
총 7시간35분
☞☞예약자가 너무 많아 12인승 승합차를 빌려 임 대장이 운전하여 먼저 출발하고 밤 11
시, 통로에 집행부 요원이 간이의자에 앉아 평화시장 앞을 출발한다.
내 옆자리는 7학년을 목전에 두었다는 김 태완씨가 앉아 신변잡담을 나눈다.
김성수군이 마이크를 잡고 산행일정소개를 하고 지난 사량도 산행 시 촬영했든 비디오
를 보며 달린다.
새벽 3시, 추령을 목전에 두고 792번 지방도로변에 불야성을 이룬 내장산 단풍제가 열리
고 있는 먹거리 장터에 정차하여 약 한 시간을 지체하며 수면과 용무를 볼 사람은 조용
히 하차하라고 한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분다.
4시20분, 전라북도 정읍시와 전라남도 순창군의 경계선상에 있는 추령(秋嶺)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름 그대로 가을에 그 진가를 발휘하는 고개인가. 주변의 정상휴게실을 비롯해 유흥음
식점이 환히 불을 밝히고 있다.
10여명의 회원들이 인근에 있는 김성수군의 고향에 감 따러 간다며 잔류하고
4시25분, 도로이정표(정읍19km 내장사7km)가 서 있는 고개의 왼편 철망 옆을 거쳐 비탈
을 플랫시를 비추며 올라간다.
우측 아래로 내장산 집단시설 상가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10여분 올라가다 콘크리트 말뚝
이 박힌 곳에서 내리막을 탄다.
5시8분, 안부에 내려서는데 이정표(장군봉1km 추령2km)와 유군치(留軍峙)라는 간판이 플
랫시 불빛에 노출된다.
임진왜란 때 희묵대사(希默大師)가 승병을 일으켜 이곳에 매복하여 기습, 대승을 했다
는 가슴 아픈 유래가 있는 곳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탄다.
5시43분, 해발596m의 장군봉 공터에 올라선다. 동녘에 여명이 튼다.
이정표는 ‘연자봉1km'라고 표시해 놓았는데 이곳에 장군 대좌혈이 있어 장군봉이라 명
명했다고 한다.
후미가 올라올 때 까지 기다리다 다시 내리막을 탄다. 얼마가지 않아 암능을 타는데
6시5분, 암괴와 마주하면서 행렬은 정체하기 시작하고 저만큼 바위 비탈, 번득이는 불
빛 속에 신 회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나, 둘, 어이샤!”
하는 소리와
“팔목을 잡고...”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빗긴 바위 길에 위쪽에 버티고 서서 올라오는 회원들의 손을 잡고 잡아당기다 손이 아파 팔목을 잡고 올라오라고 한다.
뒤에 집행부 젊은이들에게 인계하고 불빛을 비추며 왼편으로 꺾어져 칼등바위 길을 거
쳐 동이 완전히 트이면서
6시23분, 해발675m의 연자봉에 올라선다.
일명 문필봉이라기도 하는데 맞은편의 서래봉의 백련암터를 연소(燕巢)라 부르는 까닭
에 풍수설에 연유하여 연자(燕子)봉이라고 부른다는 안내간판이 보인다.
이정표는 ‘신선봉1.2km'라고 표시해 놓았다.
다시 내리막길을 거쳐 낙엽으로 덮인 펑퍼짐한 오른쪽으로 금선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
길 안부에 내려선다.
다시 가파른 너덜의 오름을 탄다. 처음으로 내장산 단풍을 촬영하며 올라서니
바로 금선대 능선 안부다. 뒤따라 힘들게 올라오는 이 회원등을 촬영하고
6시56분, 때맞추어 먼 산 등성이위로 황금빛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고도가 얕은 탓인가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보는 감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먼
내장산까지 와서 일출을 담는 행운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나온 봉우리와 내장산의 서래봉등 연봉을 촬영하고 가파른 신선봉을 오른다.
7시12분, 산정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마당바위가 있다는 해발763m의 신선봉에 올라서
는데 신선은 간데없고 콘크리트 헬기장에 서로 찾는 뭇 남녀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일우
고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캠코더로 지나온 금선대와
장군봉등 주변과 보다 멀리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등을 300도로 턴하며 촬영하고 캐논
으로 촬영한다.
7시20분, 후미그룹에 끼어 대가리로 하산한다.
흙을 많이 밟는 하산 길, 좌로 대가저수지가 보이고 무덤을 거쳐 낙엽으로 덮인 잡목사
이 길에 붉은 단풍나무도 보인다.
8시7분, 감나무가 보이고 이정표(신선봉1km 새재4km 백양사5.5km)를 지나 대가리의 개울
가에 파라솔과 야외탁자와 의자가 놓여있는 곳에 많은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개울가에서 이 성분회원, 그의 올캐와 김양과 준비해간 빵으로 느긋한 아침식사를 하고
8시27분, 다시 출발한다.
임도에 많은 차량이 왕래하는지 ‘조금만 천천히 가세요.’라고 쓴 팻말이 길가에 서있다.
김 윤근 회원의 부녀동반 산행이 보기 좋았고 콘크리트 임도에 올라 도화마을에서 길가
빈농가에 먹음직한 곶감을 발견한 김 양이 살며시 한 개를 따다 도둑이 제발이 저린다
고 했든가 제풀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해프닝을 벌린다.
동내구멍가게에서 한잔에 천 원 한다는 커피를 사서 마시면서 보상심리에 비싸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석 잔을 사서 나누어 마신다며 웃는다.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숲 속으로 들어가며 산나물을 캐며 가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
자 집행부 한 군이
“걸로 가지 말고 빨리 닐로 오이소!”
하는 소리에 세 여자가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게 웃는다.
평소 그 정도의 사투리는 한쪽귀로 흘러들을 터인데 자연속의 인간은 자기 자신도 모르
게 천진난만해져 사춘기 소녀가 되는 모양이다.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낙엽과 이끼로 덮인 등산로를 거쳐 오른편으로 암벽을
끼고 돌아 왼편으로 가드레인을 잡으며 계곡을 꺾어져 바위 길로 올라가는데 아직 푸른
단풍잎과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숲 속을 지나친다.
9시17분, 거대한 은행나무아래 검은 천을 까라 은행 알을 받쳐놓는 곳을 거쳐 석축위의
구암사에 올라선다.
시간이 없어 발견을 못했지만 부근에 거북바위가 있어서 사찰 이름을 구암사라고 하는
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623년(백제 무왕 24) 숭제(崇濟)가 창건하였고 절을 세운 숭제가 신라 경덕왕 때 활약
한 진표(眞表)의 스승인 숭제와 같은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1392년(조선 태조 1) 구
곡(龜谷) 각운(覺雲)이 중창하였고, 태종 때에도 중창한 뒤 구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는 유래가 있는데 인적 드문 사찰은 스님도 보이지 않고 적막에 싸여있다.
또 김정희가 쓴 구암사 현판과 긍선과 김정희가 주고받은 서간문이 남아 있었으나 6.25
전쟁 때 불에 타 사라지고 1940년에 석전이 쓴 《중수구암사기(重修龜巖寺記)》와 김정
희가 쓴 편액 몇 편만이 전한다고 한다.
대웅전과 이정표(상왕봉2km 도집봉0.8km 내장사6.8km)만 촬영하고 사찰의 왼편으로 난
비탈을 타고 오른다.
9시45분, 안부에 올라서니 이정표(상왕봉1.5km 백학봉0.8km 구암사0.8km)가 서있고 김
지점장등 많은 회원들이 가쁜 숨을 쉬며 휴식을 하는데 잠시 빗발이 떨어진다.
촬영시간이 휴식시간인 나는 왼편으로 꺾어져 촬영하며 평지를 계속 느릿느릿 걸어가는
데 왼편 숲 가운데 진분홍 단풍이 깨끗하게 물들어 있는 군락지를 발견하고 속으로 쾌재
를 부르며 캠코더로 촬영한다.
9시50분, 다시 갈림길 또 다른 이정표(상왕봉1600m 구암사500m)를 발견한다.
오른편으로 꺾어져 상왕봉으로 올라갈까 아니면 백학봉까지 올라갈까 망설이다 계획에
없는 단독산행을 혼자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깨끗이 단념하고 왼편으로 내려간다.
9시53분, 약수동 계곡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이정표에서 스님이 신도들을 인도하는지 스
님이 앞장서고 그 뒤로 많은 남녀신도들이 줄을 이어서 올라와 오른편으로 꺾어져 내려
간다.
헬기장과 산죽 사이 길을 거쳐
좌로 벼랑 끝에 ‘추락주의!’간판이 서있고 시계가 한눈에 확 트인다.
백양사 모서리가 희미하게 보이고 그리고 오른편으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10시7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든 산행안내 약도가 서있는데 현 위치를 백학봉이라
고 표시해 놓았다.
백학이 여기까지 날아와 노닐어서 백학봉이고 학바위인가.
지도상에는 분명 백학봉은 지나온 갈림길 위에 표시되어있는데...
지도가 잘 못되었는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잘못되었는가.
가파른 바위사이 길을 내려가다 이 회원의 올케가 그 사이 물이 들었는가 집행부 이군에게
“일로 죽 니리가요?”
하고 묻자 그만 이 회원이 ‘니리가요’ 한다며 깔깔대며 웃는다.
뒤돌아 백암산의 상왕봉을 캠코더로 촬영하고 조심조심 내려간다.
철 계단을 거쳐 너럭바위위에 올라
백양사를 캠코더로 항공촬영 하듯 줌으로 당겨 촬영하며 아찔한 경관에 속으로 탄성을
발한다. 그리고 건너편의 가인봉과 사자봉을 촬영하고 다시 하산 길로 들어선다.
다시 철 계단을 거쳐 붉게 물든 단풍을 촬영하며 내려가는데 또다시 추락주의! 간판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 백학봉 암벽을 끼고 조심조심 내려가다 다시 추락주의! 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 들린다.
여기가 학바위 인가. 한 등산객이 촬영하고 있는 돌출바위위에 올라가 가까워져 있는 백
양사를 내려다보고 촬영하고 김 양이 단풍나무를 꺾어들고 포즈를 잡으며 한 커트 촬영
해달라고 부탁해 캐논을 꺼내어 촬영해 주고 그걸 갖고 가면 괜히 욕먹는다고 충고했더
니 누가 버린 걸 주었다며 곧 버린다.
다시 주변 암벽과 백양사를 내려다보고 촬영한다.
광각 렌즈를 갖고 안온 걸 후회하며 촬영했으나 파노라마로 일시에 담기가 힘들어 부분
촬영을 한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야호소리가 연이어 터진다. 멘 후미라 더 지체할 수 없어 자리를 뜬다.
다시 철 계단을 거쳐 된비알의 불규칙한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꼬맹이를 다리고 힘겹게 올라오는 아주머니와 꼬맹이를 만나 나이를 물으며 촬영하니
“쎄쌀!”
하며 손가락을 펴고 장하다고 칭찬하니 엄마가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하고 시키니 머리까지 숙이며 깜찍하게 혀 짧은 소리로
“안녕!...”
한다.
산행 중에 이런 가족을 발견하면 무조건 촬영하는데 오늘도 이런 관경을 촬영하며 그렇
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사랑스럽다고 과보호를 하지 말고 자연을 가까이, 예절을 가르쳐 준다면 사
랑스러운 자녀에게 그 이상 더 좋은 유산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오른편의 암벽 동굴에 만들어놓은 약사암을 지나친다.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 굴거리나무 숲을 지나
11시24분, 가랑비가 내리는 ‘古佛叢林白羊寺“현판 앞에 당도한다.
사월 초파일이 지난지가 언젠데 웬 꽃등이 달려있는가.
단풍제에 편승한 무슨 축제가 있는가.
경내는 인파로 부산하고 대웅전과 대웅전 뒤편에 버티고 서있는
백학봉과 학바위를 촬영하고 바쁘게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림 같은 연못 속에 또 다
른 단풍이 가랑비속에 흔들리며 잠겨있어 이를 촬영하는 내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 진다.
12시, 주차장 도착.
7시간35분의 산행이 끝난다.
뒤돌아 다시 백학봉과 학바위를 촬영하고 버스에 오르려는데 승합차에서 오래 만에 보
는 작가 수업을 한다는 김 경애양이 내리며 반갑게 인사한다.
산행은 안하고 감 따기 팀에 끼였다 오는 모양이다.
버스에 오르니 집행부에서 약사 회원님이 김밥 먹은 게 체했다며 치료 좀 해달라고 하는
데 환자가 고통스러운지 엎드려있다.
삼능침으로 두 번에 걸쳐 응급치료를 해주고 먹다 남은 빵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두 아
가씨 회원에게 산행소감을 물으며 캠코더에 담는다.
첫 번째 아가씨는
“...산을 좋아하는데, 일출을 못 봐서 아쉽지만... 초반에 너무 빨리 올라가 좀 힘들었어요.”
한다.
두 번째 김윤근 회원의 따님은
“두 번째 산행인데 힘들었 구요. 다음에 열심히 할 꺼구요. 아버지가 잘 도와주어서 감사하고, 그리고 사랑합니다!”
김 윤근 회원은 행복한 사람이다.
13시3분, 비 내리는 백양사 주차장을 승합차를 앞세우고 출발한다.
빗줄기는 제법 굵어지는데 승용차는 계속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남해고속도로가 차량정체가 심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기사양반이 문산I/C에서 국도로 빠
져 달리다 마산시내를 거쳐 창원터널로 빠져 그래도 예상보다 빨리?
19시12분, 가랑비속의 서부산T/G를 빠져나간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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