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오순절 아침이었다. 미사를 마친 뒤 알로이시오 신부는 신학교 출신의 파업 주동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무척 영리하였으나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농성을 계속하면 알로이시오 신부가 자신들을 다시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에게 정문에서 계속 농성을 하면 학생들이 수업에 방해를 받고 필요 없는 긴장과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니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업무를 방해한다면 폭력으로 맞서겠다고 경고했다.
소년의 집 인근에는 국가와 개인 사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해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오래전부터 그들을 지속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그들은 알로이시오 신부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가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라도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알로이시오 신부에게는 폭력에 익숙하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1천 명이 넘는 결핵 환자들도 있었다. 두 집단 모두 파업 교사들과 기꺼이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말고도 알로이시오 신부에게는 8천 명이나 되는 힘센 학부모들이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알로이시오 신부가 도움을 요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다 학생들도 있었다. 사실 상급반 학생들은 덩치가 컸고, 그들은 알로이시오 신부와 파업 교사들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 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이 모든 사실을 파업 주동 교사에게 말했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말은 분명히 그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오후가 되자 그는 알로이시오 신부에게 연락해 협상을 요구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하여 이틀에 걸친 협상이 진행 되었다. 그 결과 파업 교사들에게 1인당 한 달분의 월급을 주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마침내 파업이 끝났다. 다만 협상에 불만을 가진 일부 교사들이 소송을 재기했다.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것은 알로이시오 신부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실제로 재판에서 알로이시오 신부가 이기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은 알로이시오 신부와 마리아수녀회에 좋은 경험이 되었다. 필리핀에서 소년의 집을 확대해 나갈 계획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일로 알로이시오 신부의 건강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말았다. 몸무게가 많이 준 그는 눈에 뛸 만큼 쇠약해졌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노리스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지신의 몸 상태와 증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알로시오 신부의 생명이 서너 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에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의 충고를 따랐다.